<6회> 과로사하는 사람들
문탁
2023-11-13 08:02
283
심장병은 응급실 1순위
두해 전 즈음, 2020년 12월 초 겨울이었다. 11월부터 바깥에서 데크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손도 얼고 드릴도 어는 추위가 찾아왔지만 마감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날도 종일 열심히 일했다. 겨울에 종일 바깥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몸이 녹진녹진해지면서 모든 의욕이 다 사라진다.
겨울에 바깥에 오래 나가 있으면 몸이 퉁퉁 붓는데, 부었던 몸이 녹을 때까지,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자기 직전에 어쩔 수 없이 씻었다. 씻고 나오는데 식은땀이 나면서 어질어질하길래 ‘어 몸이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며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던 중에 쓰러졌다. 일어나 보니 2ℓ짜리 생수가 거실 바닥에 다 쏟아져 있었다. 내가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잤던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빨래 바구니에 들어있는 수건을 가져와 방바닥을 닦고 나니, 그제서야 무서웠다.
“아…… 나 죽을 뻔했네?”
나는 보통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외상이 없으면 병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날은 느낀 적 없던 공포가 찾아왔다. ‘혼자 사는 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쓰러지다가 재수없게 머리를 박았거나 심장이 멈췄더라면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동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부정맥이 의심된다며 대학 병원에 가보라는 의뢰서를 받았다. 뭘 대학 병원까지 가냐, 하는 생각에 집으로 갔다. 그런데 다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완전 쫄아 버린 나는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심작 박동을 체크하는 기계(?)가 내 가슴팍에 철썩 달라붙게 되었고, 그 길로 1주일 간 입원해 있으면서 온갖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그렇게 진단된 나의 병명은 ‘원인 불명의 심방세동(부정맥)’이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현상이라고 한다. 의학적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나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병을 얻었다.
나의 첫 노동
보통 주위의 또래는 흔하게 겪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나니, 친구들의 걱정이 많아졌다. 그들은 모두, 이 병의 원인이 과로이니 일을 좀 줄이라는 충고를 건넨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일을 너무 많이 하던 와중에 몸이 버티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걱정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수긍이나 위로보다는 변명을 하게 된다. 내가 왜 일을 이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기 바쁘다. 일이 실제로 많아서 노동 시간이 길기도 하지만, 과로는 내가 오래 쌓아 온 습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 사회생활부터 나는 지독하게 오랜 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일해버릇 하다 보니, 굳은살이 배기듯 오랜 시간 동안 일을 많이 하는 습관이 생겼다.
10년 전, 밀양에 처음 와서 활동가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출근과 퇴근의 개념조차 없었다. 눈을 붙이고 몸을 누이는 곳은 깊은 산 속 비닐 천막이었고, 눈을 떴을 때는 앞에 경찰 방패가 보였다. 새벽 5시에 운전을 시작해 서울에서 11시 기자 회견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는 일정 내내 운전대를 잡고 꼬박꼬박 졸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긴박하고 시급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렇게 큰 사건들을 마주하던 시간을 부지런하게 보내며 살았다.
밀양의 노인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는 일이 그랬다. 마음이 힘든 것을 떠나서라도, 이들은 저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던 할머니들은 농성을 하기 위해 도로로 나갔다. 수년 동안 여름이건 겨울이건 모여들어 하루종일 도로에 앉아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극렬해 보이는 투쟁 현장에도 일상이 있다. 건설을 강행하려는 측과 충돌하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에게는 그 산을 지켜야만 하는 일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일했다. 나무가 베어진 송전탑 부지에 세운 비닐 움막일지라도 이를 유지하는 건 집을 가꾸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치고, 쓸고, 먹고, 닦았다. 새벽에 생을 건 싸움을 하고서, 낮에는 밭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감을 땄다.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 곁에서 있던 나는 온 삶을 투여해서 사는 방식을 배웠다. 활동가 일은 나에게 임금을 받고 하는 첫 노동이기도 했다. 나의 첫 노동은 진짜 빡셌다.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는 그것, 과로
활동가에서 목수로 삶이 바뀌고 나서도 비슷한 나날을 보낸다. 목공 일도 데모 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간다. 5㎏은 될 것 같은 못 주머니를 차고 종일 쏘다니면, 하루에 8시간만 일해도 허리가 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온갖 악취와 쓴맛이 느껴지는 유해 물질들을 마시다 보면 “몸에 좋은 거 많이 먹어서 오래 살겠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목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목수가 참 멋있고 낭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목수 일은 매우 긴박하면서도 지루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도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잘해 내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니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작은 가구 하나를 만들어도 어떤 제작 방식을 택하는가에 따라서 작업 시간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각이 많이 진 가구를 만들 때, 미리 마감 칠을 해 놓고 조립을 하면 최종 마감이 조금 편해진다. 하지만 결국에는 결합 때 쓰는 본드 때문에 결합부를 다시 사포질하고 마감하게 되니 두벌일을 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조립을 모두 하고 마감 칠을 하게 된다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완벽하게 마감을 할 수가 없다.
이렇듯이 목수는 끊임없이 과정을 생각하면서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부족한 경험치로 인해, 고려하지 못한 변수가 계속 생긴다. 결국에는 그 변수들이 모두 추가되는 노동 시간으로 변한다.
이런 과정을 잘 설계하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마감의 품질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하는 선택도 남아 있다. 누가 봐도 좋아 보이게 만들 수는 있지만, 비용은 정해져 있다. 비용에 따라 제작하더라도 마감 수준의 하한선을 지키려다 보니 또 시간이 든다.
그렇게 어떤 선택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나조차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과정을 생각하고 행동을 선택한다.
복잡다단한 과정들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실행해야만 하는 삶이 계속되지만, 내 경험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노하우가 없어 밤을 새고 나서야 ‘아 이렇게 하면 힘들구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 참 슬프다.
스스로 변수들을 통제하고 나면 일을 좀 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거의 모든 순간, 어제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5년 전보다는 훨씬 많은 경험이 쌓였다. 그렇다면 내가 이 일을 잘 해내려 애쓰는 과정은 목 뒤 근육이 뚝 하면서 경직되거나 온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
몸에 엄청난 무리를 가할 것이 예상되는 일정의 일이더라도 “하겠다”고 번번이 외치는 나의 선택 때문일까? 하지만 이 일을 받지 않으면 다음 주에 할 일이 없으니…… 흔쾌히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이 끊겨 생계가 흔들리는 것보다는, 일의 성격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그냥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단가는 안 좋고 마감은 바빠 밤을 새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좋은 일만 골라 할 팔자가 아니다. 나에게 그런 여유가 있었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비용도 넉넉하고 마감 기한도 충분한 일은, 나 같은 별볼 일 없는 실력을 가진 기술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결국 주에 60~80시간을 오가는 이 길고 긴 노동 시간은 내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일을 배운 방식과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너무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집착하는 가구의 품질과도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고. 그런 태도와 집중력은 작게 일하더라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핵심은 이러한 질문들에 담겨 있을 것이다.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일들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만큼 고려되는가.
세상은 노동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노동으로 얼마 만큼의 돈을 벌려 하는가.
업무의 책임이 한 곳으로 쏠린다면 그건 괜찮은 구조인가.
사람은 너무 많이 일하고 있을 때 멈춰야 한다고 충분히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기도 하고, 그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과로사로 죽는다.
잘게 나눈 책임
요즘 세상에, 일을 많이 해서 맞이하는 죽음이란 참 이상하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워라밸을 최고 가치로 치는 시대에 믿기지 않겠지만, 여전히 과로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해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2020년 한 해에만 택배 노동자 22명이 과로로 죽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대형 트럭에서 쏟아지는 택배 수천건을 분류하고 밤늦게까지 계단을 달리며 물건을 배송하다 쓰러졌다. 하루에 18시간씩 화물차를 몰고 인천에서 부산을 오가는 노동자가 졸음운전으로 죽는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외쳤던 그들의 파업은 탄압과 조롱을 받았다.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물류 센터에서 까대기1를 하던 노동자는 열사병으로 죽는다. 너무 늦게까지 야근하던 직장인들이 저도 모르게 쓰러진다. 나 같은 자영업자들은 과로 때문인지도 모르고 죽는다. 작년에 봤던 어느 기사에 따르면 2017~2021년 동안 업무상 재해 인정자 중 뇌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만 2,503명 이라고 한다. 1년에 500명이 뇌 심혈관 문제 때문에 죽는 꼴이다.2산재처럼 사회 보험망 안에서 파악되는 수치만 해도 이렇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랜 노동으로 병들고, 쓰러진다.
모두들 세상이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잠깐 파업이라도 하면 세상은 ‘저 놈들은 배부른 소리 하는 놈들’이라며 난리를 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이 멈추면 삶은 굴러가지 않으니까. 그들이 쓰러지더라도, 그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만 세상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이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주간 노동 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자고 말하고, 최저 임금이 최고 임금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실업 급여를 ‘시럽 급여’라고 이야기하는 치들이 있다. 이 자들에게 계속 마이크가 가고, 권력을 휘두를 힘이 계속 실리고 있다. 나에게 정치란, 마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더욱 더 공고해졌으면 하는 큰 욕망덩어리’로 보인다. 힘있는 자들이 힘이 없는 자들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무력감이 든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노동을 돕고, 지지하고 응원하며 살아간다. 그런 힘으로 때로는 더 재밌게, 때로는 미친듯이 열심히 일할 수 있기도 하다. 집중력 있는 노동에는 이러한 긍정적 에너지가 만드는 매력이 있다. 몰입감이 넘치는 한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다.
또 우리는 때로, 한마디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도 한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생계의 책임이나 현장에서의 책임이 그 일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에 대한 몰입 때문이든 피하지 못할 책임이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앓거나 죽는 것은 너무 슬프고 억울하다. 잘 살아 보려고 하는 것이 일인데, 바로 그 일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런 고통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게 돌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책임을 잘게 나눌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리하여 나도 주말에는 쉬고, 저녁에는 일찍 마치고 씻고 밥 먹은 후 산책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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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려고 일하는데 그 일때문에 죽는 ㅠ
한세대 두세대가 지나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건 우리책임일텐데 ㅠㅠ
과로인지 알아차리기도기리 전에.... 죽는 현실, 어진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착찹하네요 ㅠ
날씨가 쌀쌀해집니다.
몸을 살피는 일도 정신줄을 바짝 잡아야 하는 현실...
뭘 어째야 하나 싶으면서도..
그저 작은 마음이라도 어진님의 마음에 보태고 싶어집니다.
글 고맙습니다.
어진님과 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내년에도 드립커피 내려주세요. 감 열심히 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