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책임 없는 쓰레기

문탁
2023-08-10 10:38
306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그리고 나의 의지대로 작동하는 시간.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입주 50일 만에 완전 지쳤다.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직전 세입자였던 싱크 사장님의 ‘마지막 이사’가 있었다. 그 날은 고물과 폐기물을 처리해야 했다. 나도, 싱크 사장님도 납기일에 쫓기는 나날을 보내는 작업자들인지라 외부에 있는 짐을 치우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미뤄 왔던 탓이다. 하여 이사를 온 지 40일이 넘어서야 마지막 이사를 시작했다.

창고 외부 벽면에 산처럼 쌓여 있던 스테인리스 싱크 상판들……. 그것들을 나와 내 동료, 싱크 사장님, 싱크 사장님의 친구 4명이 하루종일 들러붙어 치웠다. 자석을 가지고 자성을 시험해 가면서 스테인리스는 스테인리스대로 모아서 고물상에 가져다 팔았다. 알루미늄은 알루미늄대로, 철은 철대로 돈 되는 것을 다 가져다 팔고 나니, 정체를 정의할 수 없는 바닥이 마지막에 등장했다.

 

▲ 이것은 흙일까, 쓰레기일까

 

 

 

온갖 폐기물들이 적당히 썩고 분해되어 이것이 흙인지 스티로폼인지 구분이 안 가는 바닥이었다. 종량제 봉투에 넣을 수도 없고, 채를 쳐서 거를 수도 없는 부스러기가 범람해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스스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죄를 짓는 일이라는 판단이 점점 명확해지는 순간이 너무나 싫었다.

 

함께 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폐기물들을 땅에 묻자고 했다. 묻는 것은, 몸을 미친 듯이 움직이고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답이 없는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니까. 눈앞에서 문제를 치워 버리는 것만큼 쉬운 문제 해결이 또 있을까.

나 또한 셀 수 없는 것들을 묻은 채 매일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도시로 가는 전기를 나르기 위한 초고압 송전탑 때문에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잊고 살고, 묻고 지내고 있다.  미래의 나와,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그렇게 잘 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2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속이 받쳤다. 묻고 살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2.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다.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1톤이 넘는 폐기물을 막 가져다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최근 1년 동안만 해도 다른 이들이 평생 만들어 내는 쓰레기의 총량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를 버렸다. 이런 나와 쏙 닮은 세상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쓰레기를 한가득 만드는 중이다.

서울 시민들이 버리는 생활 폐기물만 하루에 1만 톤가량 된다고 한다. 재활용되는 쓰레기와 음식물을 제외하고 태우거나 묻는 쓰레기만 해도 하루에 3,000톤이 넘는다.1 대도시들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는 도시를 벗어나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산 전체를 깎은 쓰레기 처리장에는 온갖 악취가 진동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쓰레기들은 그렇게 산에 묻히고, 바다로 흘러간다.

 

현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아주 위험하고 처리 불가능한 쓰레기가 밤낮없이 생산된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25기의 핵발전소는 고준위 핵 폐기물2을 40년 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봉’은 강한 방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완전히 차폐된 상태에서 10만 년을 보관해야 위험성이 없어진다. 그런데 이를 발전소 내 수조에 임시로 보관 중이며, 이마저도 10년 안에 모두 넘치게 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핵 발전소 바로 옆에 임시로 건식 저장 시설을 만들어서 일단 핵 발전소를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하자는 입장이다.

 

발전소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건식 저장 시설의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사실상 답이 없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는 척 하면서 영영 옮기지도 버리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처분하기 위해 만든 쓰레기장은 핀란드에 단 한 곳뿐이다. 핵폐기물의 영구적 처리를 위해서는 10만 년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보장할 수 있는 지리적 특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단층이 없고, 지하수도 흐르지 않으며, 아주 오랜 세월을 버틸 큰 암반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은 세계에 단 한 곳도 없다. 그리고 누구도 자기가 사는 집 근처에 고준위 핵폐기장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3월 11일은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후쿠시마 핵 발전소가 차례로 폭발한 지 12년째 되는 날이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제는 수습된 사고’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최근 다시 오염수 방류 문제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지 1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원자로 안으로 끊임없이 냉각수를 쏟아붓고 있다. 뜨거운 핵연료봉을 식히지 못하면 2차 사고의 위험과 더불어 사고를 수습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핵 발전소의 기초가 파괴된 상황에서, 발전소를 냉각시키기 위해 들이부은 물과 지하수가 섞여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이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라고 부른다. 일본 정부는 이를 2023년 여름부터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바다로 방류할 예정이다. 과학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방사능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에도, 이를 희석하여 아주 넓은 바다로 보내면 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1 이는 심지어 건설 폐기물과 사업장 폐기물은 제외한 통계이다. (출처: 서울 열린데이터 〈서울시 생활폐기물 발생량 및 처리현황 통계〉 참조)

2 ‘고준위(高準位)’란 원자, 분자, 원자핵 따위의 정상 상태가 취할 수 있는 에너지값보다 높은 수준의 에너지를 지닌 상태이다. ‘고준위 핵 폐기물’은 원자력을 생성하고 난 후에 버리는 찌꺼기 가운데 세슘, 아이오딘, 스트론튬, 테크네튬 등 방사선의 세기가 강한 물질로, 반감기가 길다.

3.   각양각색의 책임 없는 쓰레기가 온 세상에 넘친다.

 

도시인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통받는 바다를 안타까워하지만, 정작 연간 쓰레기 발생 총량은 줄지 않는다.  책임이 있는 그 누구도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지금 당장 직시해야 할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정부는 그저 책임을 미래로 전가시키며 핵폐기물의 총량을 늘리고만 있다. 전기를 만들어 수십 년째 돈벌이를 하고 있는 몇몇 대기업들의 카르텔은 10만 년의 책임을 몇 마디 말로 회피한다.

 

그리고 그 전기를 소비하는 한국 사회는, 이를 묵인한다. 내가 주변인들에게 “지금보다 적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며 살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다들 아연실색한다. 핵 발전으로 얻어지는 전기가 마치 산소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일본 정부는 최악의 핵 발전소 사고를 예견하고 이에 대한 안전한 수습을 대비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비용이다.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것도 비용이 가장 적게 들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모른다.

크고 먼 이야기에서 다시 내 공장 앞의 쓰레기로 돌아와 본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사람과 돈을 써 가며 쓰레기와 흙을 골라내는 것보다 파묻어 버리는 방법이 훨씬 쉬울 것 같다.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쓰레기가 어느 산골으로 가서 태워지거나, 묻히거나, 다른 생명체의 몸속으로 가서 생명체를 병들게 할지라도 내 공장이 깨끗하고, 당신의 집이 깔끔하고, 거리가 깨끗하면 나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꿈틀한다.

 

하지만 묻을 수 없다. 버리는 것에만 책임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만드는 만큼의 책임도 가져야 한다. 게다가 나는 새 물건을 끊임없이 만드는 목공소 사장이지 않은가. 나에게도 사라지지 않은 채 장소만 이동하는 쓰레기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정체불명의 쓰레기를 땅에 파묻지 않고 체로 거르는 것. 도로 위 운전자들이 차가 막힌다며 쌍욕을 퍼부어도 핵폐기물 모형의 드럼통을 끌고 가장 번화한 거리를 행진하는 일. 이런 작은 행동들조차 포기하고 살 순 없다.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오래 살수록 짓는 죄가 많아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조금은 가난해지더라도, 사는 동안은 조금은 더 잘 살고 싶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다.

▲ “가져가라 핵폐기물!”

댓글 4
  • 2023-08-11 09:12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무지막지하게 쓰레기를 만들면서 세상이 점차 쓰레기더미가 되어가지만...
    그리고 나도 그 세계의 일부지만... 그 쓰레기 속에서도 풀은 자라나고 꽃은 핍니다.
    "조금은 가난해지더라도 사는 동안 잘살고 싶은" 마음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풀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할거라 생각합니다.

  • 2023-08-11 14:04

    저도 최고의 관심사가 쓰레기입니다.

  • 2023-08-12 07:14

    아마 이 시대에는 쓰레기가 천형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버리는 속도가 분해의 속도보다 빠른 불균형한 속도의 세상이니까요.
    건축일 하면 전과정을 관여하게 되니 눈에 더 잘들어와서 괴롭겠어요.
    보통은 만들기와 버리기가 별개여서 문제인지 잘 모를수도 있을텐데..

    어떤 영상을 보니 핵 제작자측과 일본 핵피해자들의 대담에서 핵제작자측은 애초에 일본이 문제였다고,
    핵으로 받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사죄를 반드시 하라는 피해자들의 요구에도
    끝까지 일본이 문제였다고만 반복하더군요.
    만드는 자들이 안전한 폐기를 설계하지 못한 것은 사죄도 모자랄 정도인데..
    우리에게 천형을 지우는 것인데도 알지 못해요 ㅠㅠ

  • 2023-08-30 19:03

    “버리는 것에만 책임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만드는 만큼의 책임도 가져야 한다”
    저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네요.
    오늘보다는 조금은 나은 내일을 위해서 말입니다..
    글 고맙습니다…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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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20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심장병은 응급실 1순위 ​ 두해 전 즈음, 2020년 12월 초 겨울이었다. 11월부터 바깥에서 데크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손도 얼고 드릴도 어는 추위가 찾아왔지만 마감 날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날도 종일 열심히 일했다. 겨울에 종일 바깥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몸이 녹진녹진해지면서 모든 의욕이 다 사라진다.   겨울에 바깥에 오래 나가 있으면 몸이 퉁퉁 붓는데, 부었던 몸이 녹을 때까지,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자기 직전에 어쩔 수 없이 씻었다. 씻고 나오는데 식은땀이 나면서 어질어질하길래 ‘어 몸이 이상하네?’라고 생각하며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던 중에 쓰러졌다. 일어나 보니 2ℓ짜리 생수가 거실 바닥에 다 쏟아져 있었다. 내가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잤던 것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빨래 바구니에 들어있는 수건을 가져와 방바닥을 닦고 나니, 그제서야 무서웠다.   “아…… 나 죽을 뻔했네?”   나는 보통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외상이 없으면 병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날은 느낀 적 없던 공포가 찾아왔다. ‘혼자 사는 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쓰러지다가 재수없게 머리를 박았거나 심장이 멈췄더라면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날 동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부정맥이 의심된다며 대학 병원에 가보라는 의뢰서를 받았다. 뭘 대학 병원까지 가냐, 하는 생각에 집으로 갔다. 그런데 다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완전 쫄아 버린 나는 결국 응급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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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1.13 | 조회 283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노동자가 아닌 사장이 되다 ​ 나에게는 함께 일하는 좋은 동료 직원이 있다. 직원은 작년 봄, 목수 일을 배우고 싶다며 대구에서 밀양까지 나를 찾아왔다. 첫 만남 후에 그는 일이 있으면 불러 달라는 연락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 “보기처럼 멋있지 않고,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서울에 한 달 다녀와야 할 일이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함께 일하기를 피했다. 일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맡은 일들도 많아지는 상황이었지만 누군가를 고용하여 안정적인 고용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친동생이나, 동생의 친구들을 잠깐씩 알바로 쓰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 그러다가 그를 불렀다. 전시용 가벽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 보고 싶다니 하루 같이 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여태껏 같이 일해 본 초보자들 중에 가장 이해도 빠르고, 손재주도 좋았다. 나는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일 중독자인 나에게 ‘좋은 동료’의 기준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을 잘 하는 것’이다. 나를 쏙 빼닮은 사람이 나타났다. 눈치가 빠르고, 성실하고, 끈기도 있고, 악도 있고, 게다가 손재주도 좋은 사람이다. ​ 어느덧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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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0.10 | 조회 340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 일이다. 비가 올 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것으로 쉽사리 여기니 말이다. 나에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 그저 그런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올해 봄은 정말 가물었다. ​ ​ ​ 접시 물에 망할 뻔 ​ 완도군에서는 주 1~2회만 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위쪽 광주 광역시도 제한 급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봄날을 열심히 보내다 ‘아 이거 좀 비가 너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다. 문득 한 농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작년에 그 농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보면 어느샌가 돌아가 있는 물꼬 때문에 미쳐 버리겠단다. 그는 ‘이대로라면 올해도 벼가 자라지도 않은 논에서 허수아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날이 가물다고 해서 당장 내 목을 비틀어 쥐는 일은 아니니, 나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기는 것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충실한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에서는 가뭄이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 일이다. 비가 올 때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저 화창한 날이 많은 것으로 쉽사리 여기니 말이다. 나에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건 그저 그런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었다. 올해 봄은 정말 가물었다. ​ ​ ​ 접시 물에 망할 뻔 ​ 완도군에서는 주 1~2회만 물이 나오는 ‘제한 급수’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위쪽 광주 광역시도 제한 급수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은 봄날을 열심히 보내다 ‘아 이거 좀 비가 너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뭄이 코앞에 다가왔다. 문득 한 농부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작년에 그 농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길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보면 어느샌가 돌아가 있는 물꼬 때문에 미쳐 버리겠단다. 그는 ‘이대로라면 올해도 벼가 자라지도 않은 논에서 허수아비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날이 가물다고 해서 당장 내 목을 비틀어 쥐는 일은 아니니, 나에게는 기우제를 지내기는 것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충실한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문탁
2023.09.11 | 조회 356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문탁
2023.08.10 | 조회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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