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 밀양통신 - 3회] 동화전 사랑방
밀양통신
2018-03-26 07:23
1131
동화전 사랑방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동화전 사랑방을 뜯게 되었다. 한때는 ‘철탑 막는 데모’를 함께 했던 땅주인이 땅을 비워주길 요구했다. 수없이 근거지를 세우고 뜯어왔지만 때마다 이 씁쓸한 느낌은 희석되지 않는다. 7평짜리 조립식 농막 하나 뜯는다고 생각하면 편할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방은 하늘에 있는 팽창섭 아저씨의 땀이 배어 있고, 농활 온 사람들과 손수현 아저씨의 막걸리잔 부딪치는 소리가 담겨 있고, ‘포기는 없다’라는 뜻이 새겨 있는 공간이다. 귀영엄니의 높은 목소리와 은숙엄니의 빠른 말이 어우러지던 순간이 그립다. 글을 읽는 당신들의 기억에도 동화전 사랑방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공간이 사라진다.
2014년 행정대집행 이후, 우리는 송전탑 경과지 7개 마을에 사랑방을 세웠다. 대부분의 이장들이 ‘송전탑 찬성’으로 넘어가, 더 이상 마을회관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전탑을 여전히 반대하는 주민들과 연대자들에게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각 마을 사랑방들은 ‘반대 주민의 마을회관’으로 잘 쓰여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변했다. 철탑이 완공된 지 4년, 포기하는 주민은 더 늘었다. 250세대였던 미 합의 가구수는 100세대 이하로 줄었다. 끝까지 남아봐야 무엇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은 무섭다. 나는 사랑방을 만들며, 공간이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있어야 공간도 쓸모가 생기는 것이었다. 이제 사랑방 숫자는 반으로 줄었다. 동화전 마을 사랑방은 뜯어져 밀양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삼평리에서는 밀양을 ‘큰집’이라 부른다. 밀양과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나온 전기가 북경남 변전소(창녕)에서 변압을 거친 후 대구로 가면서 삼평리 들판 위로도 345kV 송전탑이 들어섰다. 삼평리 주민들도 지난 10년 동안 끈질기게 싸워 왔다. 최근 들어서는 바깥에서 보기에 이상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을 점거하는 투쟁’이다.
10여명 남짓한 할매들이 한 여름 아스팔트에 몸을 녹여가며 싸우는 동안, 한전은 찬성 주민들에게 마을발전기금을 지급했고, 그 돈으로 새로운 마을회관이 생겨났다. 여전히 합의하지 않고 버티는 주민들에겐 신축 마을회관은 송전탑만큼이나 모욕적인 실체였고, 조롱과 멸시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삼평리 할매들은 처음에는 마을회관 공사를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로 모이셨다. 습하고 어두운 하우스가 어떻게 사랑방이 될 수 있겠나. 작년 여름, 할매들은 잠겨 있던 구(舊) 회관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기도 하며 반 년 넘게 지켜왔다. 이러한 행동은 마을에서 소수인 그들도 동네사람으로서 권리가 있고, 존중 받아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찬성주민들은 구 회관을 매각하겠다고 나왔고, 결국 매각이 결정되어 얼마 전에 마을사람에게 팔렸다. 농한기에 할매들이 모여 놀고, 공동의 회의와 경사를 치뤄야 할 회관은 긴장 가득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마을을 발전시키라며 준 돈은 마을을 산산조각 냈다. 이러한 비극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곳에서 반복되는 것을 알면서도, 원인 제공자인 한전은 여전히 모른 채 하고만 있다. 두 개의 마을회관이 있었으나 합의하지 않은 사람이 갈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리하여, 동화전 사랑방은 삼평리 사랑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 삼평리 주민들이 동화전으로 사랑방을 보러 오셨다. 비가 온 다음 날이라 바람이 강해 스산했다. 사람이 자주 모이지 않으니 건물이 여기저기 상해 있다. 건물이 당하는 수난이 사람이 당하는 시련과 겹쳐 보여 더 심란하게 다가온다.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은주 부녀회장님이 중학교 학부모 운영위원을 신청했는데 송전탑 때문에 생긴 빨간 줄 때문에 불합격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록만 보면 업무 방해, 폭행, 공무집행방해... 참 이상했을 꺼에요. 행정실로 오라고 하더라고. 행정실에서 교장쌤과 행정실장과 면담을 했는데 교장쌤은 힘든 일 하신다고 하고, 행정실장은 그래봐야 바뀌는 것이 없다며 이제 좀 그만하라고 하대요. 그래서 법이 바뀌었고 자식한테 한 점 부끄럼 없으니 되었다고 했죠. 참 당해보면 그만 둘 수가 없는데. 그죠?”
이은주 부녀회장님은 학교 규정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더라며 웃으며 이야기 하셨지만,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평생 살아왔던 동네에서조차 ‘나’의 존재를 다시 인정받아야 하고, ‘송전탑싸움’의 흔적이 삶의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 무겁게 슬프다. ‘합의’하지 않으면 마을회관에 발도 들일 수 없는 현실은 사람을 옥죄고, 현실이 버거워 포기한 사람들은 아프고 억울해도 침묵해야 하는 감옥으로 들어간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고립되었다. ‘사랑방’마저 잃고 있다. 이 고통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소중했던 공간을 잘 보내주고 싶다. 동화전 사랑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날을 잡아 술도 한 잔 따르고 철거 작업도 함께 했으면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여유 조차 없다. 땅 주인으로부터 빨리 뜯어내야 한다는 독촉 전화를 받았다. 25일(일요일) 동네 주민 몇 분과 철거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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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화전....동화전....사랑방....어제였구나....
아...
아........
3월 원고에서는 어진이의 분노가 느껴지네요.
사랑방 뜯기는데 다들 어디 있나?
미안한 마음 한바가지...
어진의 슬픔이 어르신들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와닿습니다
평생 살아왔던 동네에서조차 ‘나’의 존재를 다시 인정받아야 하다니
참 이상한 세상을 우리가 살아갑니다,,,
자식한테 한점 부끄럼 없다는 말씀에 가슴이 아리네요
마을 회관이 두 곳이나 되어도 갈 곳이 없다니...
그 가운데에서 찬성하는 분들도 반대하는 분들도
모두 속이 상하실텐데....
어떻게 하나...
작년 봄에 저 사랑방에서 자고 먹으며 며칠을 보냈지요.
용회마을 구미현샘 내외와 동화전 어르신들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던 일이며
사랑방 뜰 앞에 불을 피우고 귀영샘이 끓여준 오리백숙을 먹던 밤도 생각납니다.
송전탑 세워진 산에도 들에도 봄이 오고 있네요.
사랑방이 없어도, 일손 보태러 농활갈 계획을 꿋꿋하게 세워봅시다.
정말이지 누구를 위한 전기이고 송전탑인지....
마을이 산산조각나고 마을 사람들 마음도 산산조각이 나네요
그래도 사람이 있어야 공간이 쓸모있다는 어진씨 말마따나
우리는 꿋꿋하게 또 갑시다요...
지금 무슨 글을 읽었는데...장소가 사라져도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그 장소는 이제 다른 장소로 다시 잘 태어나..또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겠지요.
그래도 잠시... 속은 쓰리네요....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그래요 장소는 바스러져도 우리 모두 함께 했었던 일들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한전의 돈이 마을을 갈기갈기 찢었지만
내 가슴마저 찢기게는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모여야 하나봅니다.
동화전 사랑방.... 손수현쌤의 두 손 가득한 막걸리, 귀영엄니의 오리백숙, 동화전 어른들의 따뜻했던 손...
많이 슬프네요...
다시 갈께요
얼른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