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20대의 탄생 16회] 지원 - 펜타토닉 스케일을 넘어!

김지원
2019-02-28 05:01
666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16

 

 

펜타토닉 스케일pentatonic scale을 넘어!

    

 

 

 

 

 

 

 

지원 프로필02.png

: 김지원 (길드; )

 

천재는 27살에 요절한다던데, 스스로 천재라 믿고 산 나는 28살이 되어버렸다. 대학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대신 지난 5년간 공동체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목수 일을 해왔다. 그 간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살 길을 모색해보려 한다.

 

 

 

 

 

 

 

Smells like teen spirit

십대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학교에 대한 기억보다는 학교 밖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것이 주로 생각난다. 그런 기억들은 교실 안의 기억들보다 역동적이다. 밤에 엄마 몰래 집을 나가 친구들과 술 마시고, 건물 지하에 락카 스프레이로 아무 의미 없는 낙서를 하고, 다른 학교 아이들과 쌈질하고, 한 평 남짓 좁은 연습실에 대여섯 명이 모여 Nirvana의 곡을 몇 번이고 합주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와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노력하던 기억들. 그야말로 smells like teen spirit이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같다. 지루한 수업, 똑같은 일상, 내가 학생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주어진 일들로부터 말이다. 난 똑똑했다. 공부를 하지 않을 방법으로 실용음악을 선택했다. 다들 공부를 하는데, 그건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실용음악은 정당하게학교로부터 멀어질 방법이었다. 입시가 다가오자 학교에선 아예 학원 연습실로 가도 출석을 인정해 준다고 했다.

역동? 자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참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나의 일상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게임하고, 담배피고, 커피마시고, 좁은 연습실에 앉아 손에 쥔 베이스기타를 멍하니 쳐다본다. 학교가 끝나고서야 올 친구들을 기다리며 휴게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아이들 올 때쯤이 되면 하루 종일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연습실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연출했다. 아이들이 오면 ~ 좀 쉬어야겠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 졸고, 가끔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던 시간들. 어떨 땐 막연한 불안감에 차라리 학교를 갈까, 생각했다. 그렇담 난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안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친구들의 눈치, 학교라는 공간이 나에게 강요하는 어떤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도피 자유의 차이

그렇게 도피한 학원 연습실엔 꼭 나보다 조금 일찍 나와 있는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밴드를 한 기타를 치는 친구다. 나는 연습실에서 친구들이 올 하교시간을 기다리며 빈둥거렸지만, 그 친구는 정말 하루 10시간씩 매일 연습을 했다. 가끔 그 친구가 쉴 때 담배를 함께 폈다. 어떤 음악가의 영상을 보았냐며, 엄청나다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 난 곧장 휴게실로 가서 그 영상을 찾아봤다. 멋지다고 생각하며 누워있었다. 그 친구는 연습실로 들어가서 그 음악을 연주했다.

일주일에 두 번, 합주 때마다 친구에게 늘 혼났다. 연습 좀 하라고. 함께 밴드를 하고 있었으니, 안 혼날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점점 더 어려운 곡을 연주하고 싶어 했다. 친구는 특히 재즈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음악이 별로라는 핑계를 대며, 취향의 차이라 둘러대며, 면피하기를 반복했다. “쉽고 대중적인 음악이 좋다. 그렇다고 해도, 언제까지고 내 맘대로만 할 수도 없었다. 자존심도 구겨질 만큼 구겨졌을 때, 난 연습을 시작했다.

그때 느낀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연주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는 기쁨. 재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가 가능하지만, 곡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크게 주제Theme-즉흥연주Improvisation-주제Ending theme의 순서로 진행된다. 주제는 주로 과거에 연주되었던 곡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편곡한 것이다. 밴드가 함께 멜로디와 코드를 맞추어 연주함으로써 우리가 앞으로 펼쳐갈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공유한다(예컨대 유명한 스탠더드 재즈 중 하나로 꼽히는 ‘Autumn Leaves’1940년대 작곡된 샹송이다. 이것이 1950년 영어 가사가 붙어 미국으로 넘어왔고,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 히트 덕에 재즈로 편곡되었다). 그 후에 주제와 같은 코드 진행 위에서 연주자가 돌아가며 즉흥 연주를 한다. 말하자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 해석을 즉흥 연주를 통해 표현한다. 나머지 연주자들은 즉흥 연주를 하는 연주자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으며 반응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맞춰주기도 한다. 마지막엔 주제로 돌아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가를 상기시키며 끝난다.

재즈는 따라서 곡을 단순히 커버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각각의 예외적 상황에 재치 있게 반응하고,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파악하고, 무엇이 내 이야기를 하는,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좋은 방향인가를 끊임없이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선 그 어떤 커버 연주보다 직설적으로, 연주자의 능력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연주하는 곡(주제)이 어떤 곡이건 간에 똑같은 솔로와 프레이즈를 반복한다. 이는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매번 바뀌는 곡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매번 다른 프레이즈와 느낌을 전달한다. 무슨 차이냐 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절대적인 연습량의 차이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자유로워진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내가 느낀 잠깐의 즐거움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점에서 자유는, 도피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연습실로 공간을 옮겼을 뿐, 갑자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자유는 어떤 시간, 공간에서든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명령들을 거부할만한 능력이다. 그러나 이 거부, 능력은 단순히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능동적인 다른 어떤 행위로, 적극적으로 상황을 이전과 다르게 해석하고, 대처하는 일이다. 도피생활을 할 당시 우연히 내가 맛 본 자유가 재즈를 통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 그것은 아이러닉하게도 (그 당시엔 도피의 대상이었던)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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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버리는

내가 졸업을 하고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학교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다. 군대를 다녀와 목공소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들은 내 학원 친구들은 괜찮냐며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들 입장에선 아마도 어쩔 수 없이 꿈보다 일을, 돈을 택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더러 지원이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내가 문탁에서 하는 공부에는 의문을 가졌다.

우리가 공부에 대해 갖는 표상은 대부분 학교 공부로 귀결된다. 읽고, 외우고, 시험보는 공부 말이다. 더 많이 외우는 것, 그리하여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것. 점수는 더 좋은 대학, 한 단계 어려운 자격증, 좋은 직장으로 연결되는 목표와 관련된다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SKY캐슬>을 보라!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단언컨대 서울의대. 그리하여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 뒤에 공부가 있다. 친구들이 내가 공부를 한다는 말에 의아해 한 것은 이런 표상이 큰 몫을 한다. 대학도 안 나왔고, 음악을 관뒀고, 이미 목공을 통해 돈도 벌면서 왜 공부를 하지? 그 공부의 목표는 뭐지?

레베카 솔닛의 <맨스플레인<span lang="en-us" style="background:rgb(255,255,255);letter-spacing:0pt;font-family:Arial, Helvetica, sans-se

댓글 2
  • 2019-03-04 22:45

    어떤 명령에 거부만하려구 학교를 안갔더니만

    도피를 문탁으로해서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 같어요. 아주 조아요

    보다 시선을 넓히기 위해 무얼해야할까 전 아직 모르겠네요..!

    공부를 택하다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는 시작은 읽기여도 중간부터 달라져야 되던데..!

  • 2019-03-05 11:09

    지원이의 글로 다른 20대의 탄생은 연재를 마칩니다.

    세 명의 필자들에게 감사해요~

    마지막글 많이 많이 읽어주세요!!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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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식
2019.04.20 | 조회 535
지난 연재 읽기 플라톤이 돌아왔다
      [플라톤이 돌아왔다 9회] 시(詩), 호메로스에서 문학레이블 '공전'까지 -『국가』 7권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글 :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철인왕 사관학교의 커리큘럼 『국가』7권에서는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와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플라톤의 인식론이 설명되고 있고, 이것을 철인왕의 교육방법에 적용한 커리큘럼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교육을 거쳐 철인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인가? 철인왕 후보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인가? ‘철인왕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을 알아보자. 이 사관학교에 들어오려면, 음악과 체육 수업으로 이루어진 예비학교에서 철인왕(수호자)에 적합한 학생이라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예비학교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통해 부드러움과 조화, 그리고 균형의 감각을 몸에 익힌 다음 체력 단련으로 들어간다. 체력 단련으로 근육이 단단해지면 그것을 교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단해지는 수업을 유연해지는 수업 다음에 배치하고 있다. 음악교육은 오늘날의 구분에 따르면 역사교육이며 문학교육이기도 하다. 음악교육의 내용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당대 유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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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
2019.04.09 | 조회 724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16)   2008년, 서울의 기억 임정은,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아이들에게 “정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사실 정치라는 단어만큼 아이들과 동떨어진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아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드무나 어른들이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임정은의 책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는 그러한 아이들의 정치를 조망한다. 딱 보아도 아동서적‘다운’ 아기자기한 제목은 벌써부터 그 내용이 엿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아, 이 책은 아이들에게 정치가 뭔지 조곤조곤 알려주는 책이겠구나. 민주주의가 왜 정의로운지, 선거에 왜 꼭 참여해야 하는지, 삼권분립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그런 내용들을 친절한 말들로 설명해주는 책이겠구나 싶다. 그러나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치도 꽁치도 아닌 정치』는 민주주의 대의제의 교과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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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식
2019.04.06 | 조회 450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⑮   1980년, 광주의 기억 한강, 『소년이 온다』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돌이켜보면 그 때 나는 녀석들에게 무언가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단지 한 사람의 시선에서 역사의 기억을 바라보고 그에 이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 우리와 우리를 지나쳐가는 하루하루 역시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나아가 자신의 질문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아직 그러지 못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생각했다. 내 바람과 기대는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녀석들과 『쥐』를 읽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소년이 온다』를 읽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하지만 녀석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텍스트와 자신을 연결시켰고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앞서 읽은 책들을 통해 인지했을지도 모를 자기 삶의 문제들을 타인의 기억 속에서 묻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아우슈비츠의 ‘무엇’에 대하여 묻느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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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식
2019.03.22 | 조회 579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⑭   1940년, 폴란드 남쪽의 기억 아트 슈피겔만, 『쥐』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었고 수업도 그 해의 마지막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상.     봄에는 ‘학교’였다. 여름에는 ‘집’이었다. 가을에는 ‘마을’을 하고, 겨울에는 ‘세상’. 처음부터 그렇게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 해의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익숙한 관계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깨어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했기에 집보다도 학교를 먼저 놓았다. 익숙하다 여길 테지만 실은 턱없이 낯설 ‘집’이 두 번째였다. 늘 거닐면서도 지각 밖에 있을 ‘마을’은 그 다음이었다. ‘세상’은 마지막이었다.     앞의 주제들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시즌을 시작할 때에도 나는 어떤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가장 멀게 느낄 이야기일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우리조차도 자신의 이야기로...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⑭   1940년, 폴란드 남쪽의 기억 아트 슈피겔만, 『쥐』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1.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되었고 수업도 그 해의 마지막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상.     봄에는 ‘학교’였다. 여름에는 ‘집’이었다. 가을에는 ‘마을’을 하고, 겨울에는 ‘세상’. 처음부터 그렇게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 해의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익숙한 관계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깨어있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했기에 집보다도 학교를 먼저 놓았다. 익숙하다 여길 테지만 실은 턱없이 낯설 ‘집’이 두 번째였다. 늘 거닐면서도 지각 밖에 있을 ‘마을’은 그 다음이었다. ‘세상’은 마지막이었다.     앞의 주제들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시즌을 시작할 때에도 나는 어떤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가장 멀게 느낄 이야기일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우리조차도 자신의 이야기로...
차명식
2019.03.15 | 조회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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