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

진달래
2023-11-13 08:26
275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

-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1. 뚜웨이밍(杜維明), 어디서 들었더라

 

학이당에서 한참 공부할 당시 유학의 흐름을 따라 주자를 거쳐 어찌어찌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게 되었다. 그 때 문탁샘은 양명의 전기문으로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뽑으셨지만 아쉽게도 그 책이 절판인 고로 최재묵 교수님이 쓴 『내 마음이 등불이다』로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종종 왕양명이 등장하는 순간마다 문탁샘은 우리가 뚜웨이밍의 책을 읽었다고 기억하고 계신 듯하다.

 

“왜, 우리도 읽었잖아. 그 책 왕양명의 전기인데… 그 책 쓴 사람이잖아.”

“……?”

 

그렇게 이름만 익숙한 뚜웨이밍, 아마도 그가 궁금은 한데, 그의 다른 책이 딱히 없어서 이 책, 『문명들의 대화』를 사지 않았나 싶다.

1940년생인 뚜웨이밍은 현대 신유가로 대표되는 지식인이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에서 태어나 타이완의 뚱하이(東海) 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하버드에서 동아시아 역사 ·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중국 베이징대학교 고등인문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문명들의 대화』는 2000년 대 초 발행된 책으로 뚜웨이밍의 인터뷰, 강의록, 저널의 기고문 등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지은이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글들은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점도 없지 않다. 또 2000년 대 초에 쓰인 책이라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이제는 철지난 것이 되어버린 면도 좀 있다. 더 최근 자료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학,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2015년)라는 제목의 강연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문명들의 대화』는 ‘1부 세계화 시대, 문명의 대화’와 ‘2부 신유학의 새로운 사유’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의 내용은 21세기 초 세계화 담론에 맞추어, 세계를 동질화 시키는 현대화가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인 『문명들의 대화』는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 보인다. 냉전 이후에 각 문명들 사이에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화의 물결 속에 중국의 역할에 대한 뚜웨이밍의 고민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01년 중국 중산대학에서 강의 했다는 ‘세계화 물결, 중국과 미국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보면서는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더 불통이 되어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여러 분쟁을 보며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문명들 사이의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1. 신유학(新儒學), 현대 신유학

 

유학은 공자 학도들의 교학(敎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후에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정리한 경전 등을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유학의 범위는 사실 상당히 넓다. 저자는 2부를 ‘신유학의 새로운 사유’라고 했는데 여기서 ‘신유학’은 흔히 송대(宋代) 이후의 유학을 선진시기의 유학과 구분하여 부르는 것으로 성리학/주자학, 양명학 등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책에서 뚜웨이밍은 유학을 3분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제1기는 선진 및 한대의 유학으로 취푸(曲阜)의 지방문화가 점차 중원문화로 발전하여 중국 문화의 주류를 이루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 제2기는 유학이 위진남북조를 거치며 도교, 불교 등의 다양한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베트남, 일본, 한국 등등 다른 나라로까지 확산되어 동아시아 문명의 체현자로 등장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제3기는 아편전쟁 이후 유학이 서양문화의 충격을 받아, 주류 학문에서 주변화 되고 해체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린 시기를 말한다. 이후 중국의 뛰어난 지식인들, 대표적으로 후스(胡適,1891~1962), 천두슈(陳獨秀,1879~1942), 리다자오(李大釗,1889~1927), 루쉰(魯迅,1881~1936), 우위(吳虞,1874~1949) 등등은 ‘공가점(孔家店)’의 타도를 주장하면서 유학을 비판했다. 그런데 이렇게 유교이념에 대한 철저한 해체는 1919년 5·4운동 이후의 많은 유학자들에게 유학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5·4운동을 기점으로 하여 중국의 유학자들이 서양문화의 충격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세기 말에 이르러 ‘현대 신유학(New Confucian) 운동’이 일어난다. 대체로 공산화가 일어난 중국보다 타이완이나 홍콩 등지의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 현대 신유학자들은 서구의 계몽주의와 유학이 대립되지 않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며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서양의 자유, 민주, 독립과 같은 이념들을 어떻게 하면 유학 전통의 이념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등과 결합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또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 유학 전통이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앞서 1부에서 현대화는 여러 문명들을 서구 문명으로 동질화한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유학은 현실에 맞게 현대화 하면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저자의 맥락을 따라가면 이는 현대화라기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계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상호교류는 자신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타자를 배척할 필요가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신념 위에 기초한다. 우리로 하여금 문명의 대화를 진행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은 바로 지역적 지식의 세계적 의의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명들의 대화』 p321

 

  1. 유학 인문주의, 영적 휴머니즘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마지막 장인 제11장 “신유학의 인문주의, 유학 인문주의의 생태적 전환”이다. 이 글은 2001년 『미국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 저널』에 발표한 것으로 「종교와 생태 : 기후는 변화될 수 있는가」 특집호에 실렸다.

뚜웨이밍을 비롯한 현대 신유학자들은 동아시아 전통의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가치로 ‘유학 인문주의’를 제창한다. 그러나 유학 인문주의는 한편으로 5·4운동 이후 세속적 인본주의로 재구성된다. 따라서 한동안 신유학은 세속화, 이성제일주의, 진보·발전주의 등으로 자본주의의 발전과 근대 국가 형성에 일조했다. 21세기 들어 이들 가치들은 유학 안팎으로 비판을 받았다. 뚜웨이밍은 이런 가운데에서도 유학이 생태주의적으로 변환 가능할 수 있는 가치들은 꾸준히 연구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장에서 타이완, 홍콩, 중국의 대표적 신유학자인 첸무(錢穆,1895~1990), 탕쥔이(唐君毅,1909~1978), 펑유란(馮友蘭,1895~1990)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현대 세계에 대한 유학의 중대한 공헌으로 보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이들로부터 유학 사상을 재평가하고 회복시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첸무는 천인합일을 인심(人心)과 천도(天道)의 상호성(合德)으로 파악했다. 탕쥔이는 ‘내재적 초월성’을 강조, 천(天)의 초월성이 인간의 공통된 자기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주의를 떠난 말년의 펑유란은 천인합일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말했다. 저자는 이 세 원로들의 지혜를 통해 현대 신유학의 생태주의적 전환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주장을 ‘인간·우주 동형동성적 세계관’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천인합일을 주장하는 유학의 인문주의는 세속적이거나 인간중심적이지 않고 인간과 우주 질서의 조화를 긍정한다고 주장한다.

 

“하늘은 나의 아버지요 대지는 나의 어머니이다. 나와 같은 미물도 그 가운데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우주를 가득 채운 것을 내 몸으로 여기고 우주를 다스리는 것을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나의 형제자매요 모든 사물들은 나의 동료이다.(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 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장재 『서명(西銘)』 중

 

뚜웨이밍은 2015년 강연에서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장재의 『서명(西銘)』의 구절을 소개했다. 이 책에서는 『서명』을 천·지·인 합일의 ‘인간·우주 동형동성적’ 관점을 설명하는 신유학의 핵심문헌으로 간주했다. 2015년의 강연에서는 ‘유학 인문주의’가 아니라 ‘영적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유학 인문주의의 생태적 전환’이 발전된 것인 듯하다. 강연의 내용은 사실 크게 특출나 보이는 것이 있진 않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 또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동양 고전의 내용들과도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영적 휴머니즘의 주요 개념으로 ‘개인’, ‘공동체’, ‘지구’, ‘하늘’을 들고 있는데 이는 뚜웨이밍식 유학의 현대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수양을 현대 사회의 ‘개인’의 가치로 삼고,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동체’를 말하고, 타자로서의 ‘지구’를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인간 이성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신비의 차원으로써 ‘하늘’을 말하고 있다. 유학이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인본주의를 넘어 생태주의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뚜웨이밍은 여전히 유학의 기본가치인 ‘인간성’ 즉 ‘휴머니즘’에 가치를 두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가치를 창조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고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인(仁)’을 다시 제시한다. 포괄적 감수성, 공감 및 교감으로서의 인성을 다시 제시한 것이다.

 

 

  1. 유교 공부를 한다는 것

 

나는 결혼 전에는 제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친가는 제사를 안 지냈고, 외가 제사는 가끔 참석해서 밥만 얻어먹고 왔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시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시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면서 하루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박씨 제사에 왜 다른 성씨들이 음식을 차리면 박씨들은 절하고 밥만 먹고 가지?” 그러자 남편은 평생 제사를 지내면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내 말에 수긍은 했지만 이후로도 제사에 무슨 변화가 있진 않았다. 그랬던 제사에 변화를 준 것은 ‘코로나’였다. 사람들을 못 모이게 하자, 제사를 지내는 일도 건너뛰게 되었고, 그냥 성묘로 대체되는 경우도 생겼다.

대체로 우리 세대가 죽고 나면 다들 제사를 안 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딸들도 가끔 우리 집은 아들도 없는데 나중에 아빠, 엄마 제사는 누가 지내냐, 혹은 어떻게 지내냐를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너희 둘이 모여 지내라”라고 대답했다. 단 지금처럼 음식을 차리지 말고 끝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정 바쁘면 포장 음식도 괜찮고, 냉동식품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내가 제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였다. 한동안은 시어머님에 대한 추억으로, 그 다음에는 제사가 아니면 가족이 다 모이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가족 공동체에서 특히 제사가 중요해 진 것은 송대 이후이다. 「주자가례」 같은 것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제사의 가장 큰 역할은 가족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있었다. 사실 그렇게 보자면 가족 공동체의 결속력을 떨어뜨리는 오늘날의 제사 형식은 확실히 제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짐짓 고루해 보이는 ‘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내용과 형식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시대에 맞게 바꿀 수도 있고 제대로 계승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뚜웨이밍이 제시하는 유학의 새로운 비전은 사실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유학은 언제나 시대에 맞추어 늘 변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뚜웨이밍은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에서 한국 내의 활발한 여성운동과 함께 많은 여성 유학자들이 유교를 변화 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가부장적이라고 여기는 유학 안에는 여성과 남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가치 또한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유교적 전통 안에서 찾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나의 공부도 이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이런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의 제목인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는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와 경희대학교가 함께 기획한 문명전환 강좌시리즈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 중 뚜웨이밍 교수의 강연 제목이다. https://tv.naver.com/v/10330844

댓글 1
  • 2023-11-13 17:02

    재밌네요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논어 카메오 열전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진달래
2023.12.05 | 조회 311
한문이예술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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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3.11.30 | 조회 396
AI 시대가 열렸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삶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우려가 현실화 된다. 러시아가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적을 식별해 전투하는 AI 기반의 무인전투차량 ‘마르케르’(Marker)를 투입하며 AI의 판단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시대가 열렸다. 우려하였던 것처럼 AI 알고리즘의 활동반경이 챗GPT로 지식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제 고도화된 AI는 자유와 정의 같은 보편적 가치들과도 좋든 나쁘든 간에 상호작용을 시작했다. AI를 더는 기술과 편리의 영역으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I를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은 어떤가.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고 결과는 인간의 의지에 좌우된다는 낙관론이 여전히 과학계를 지배한다. ‘AI 윤리’는 (인간의, 프로그래머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영향은 아직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AI를 상대하는 이런 인류의 안일함에 반기를 든다. 저명한 기술철학자인 저자는 “AI는 하나부터 열까지 정치적”이라고 지적한다. AI 알고리즘을 정치적 맥락에서 개념화하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인간이 AI에 권력을 뺏기고 종속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가 100여 년 전 쓴 소설 『소송』에서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던 요제프 K를 소환하면서 시작한다. 그와 비슷하게 최근 미국의 평범한 흑인 남성이 고급 의류 매장에서 물건을 훔쳤단 혐의로 가족 앞에서 강압적으로 경찰에게 체포됐다 풀려난 사건을 환기시킨다. 안면인식 알고리즘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생긴 일인데, 이를 두고 형사는 “컴퓨터가 틀렸나 봅니다”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다. 여러 인구 집단 중 백인 남성의 얼굴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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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2023.11.26 | 조회 24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정군
2023.11.26 | 조회 379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 『세대 감각』 리뷰      작년부터 ‘MZ’, ‘MZ하다’라는 표현이 유행 중이다. ‘MZ’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Z세대’의 합성어다. 대략 40대부터 10대까지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이 표현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반면 그 기원이나 의미에 반해 이 표현의 사용처는 명확한 편이다. ‘항공 샷’(광각카메라로 높은 위치에서 수직 각도로 ‘셀카’를 찍는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탕후루’를 사 먹는 등, 소위 ‘어른’들(여기서의 어른은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정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 요즘 젊은이들을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탕후루’나 ‘항공샷’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을 여과 없이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치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회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을 비하하는 ‘잼민이’,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 등. 밈(MEME)이나 유행이 빠르게 생산되고 없어지는 인터넷 세상에선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MZ하다’는 말은 다른 표현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지 않은 표현에 속한다.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한탄은 19세기에도, 16세기에도, 심지어는 기원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 『세대 감각』 리뷰      작년부터 ‘MZ’, ‘MZ하다’라는 표현이 유행 중이다. ‘MZ’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Z세대’의 합성어다. 대략 40대부터 10대까지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이 표현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반면 그 기원이나 의미에 반해 이 표현의 사용처는 명확한 편이다. ‘항공 샷’(광각카메라로 높은 위치에서 수직 각도로 ‘셀카’를 찍는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탕후루’를 사 먹는 등, 소위 ‘어른’들(여기서의 어른은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정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 요즘 젊은이들을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탕후루’나 ‘항공샷’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을 여과 없이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치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회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을 비하하는 ‘잼민이’,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 등. 밈(MEME)이나 유행이 빠르게 생산되고 없어지는 인터넷 세상에선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MZ하다’는 말은 다른 표현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지 않은 표현에 속한다.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한탄은 19세기에도, 16세기에도, 심지어는 기원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우현
2023.11.21 |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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