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의 간병블루스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겸목의 문학처방전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