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블루스> (4회) - 삼시세끼, 그 고단함과 고귀함에 대해

관리자
2020-06-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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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탐방했을 때 알이 막 맺히기 시작한 방울토마토를 보고 “어머 이 포도 좀 봐”라고 감탄한 사건은, 내 주변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나의 대표적인 흑역사이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자연’ 유전자나 제철’ DNA가 없다.

 

하여 혼자 살았으면 대충 먹고 살았을 내가 요즘엔 식생활에 아주 관심이 많아졌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심드렁했었던 유기농 재료를 찾고, ‘리틀 포레스트’도 아닌데 제철음식을 탐닉하며, 소위 ‘초록창’에 끊임없이 요리 레시피를 검색한다. 그렇게 유난을 떠는 이유는, 짐작하다시피 어머니 때문이다. 요즘 어머니 봉양의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어머니의 삼시세끼이다. 어쨌든 올 봄, 유래 없는 코로나 재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어머니를 위한 ‘슬기로운 제철밥상’을 꾸려나갔다.

 

3월 초 가장 먼저 어머니 식탁에 올린 식재료는 냉이였다. 그 때는 소위 ‘31번 확진자’가 기폭점이 되어 불과 20일 만에 감염자가 200배 이상 확산되던 때였다. 거의 모든 일상이 올 스톱 되고 인문학공동체인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미루어졌고 지난 10년간 한 번도 쉰 적이 없던 공동체밥상도 멈추게 되었다. 우리는 이 공백을 도시락을 싸오거나 매식을 하면서 보냈는데 어느 날 인디언 샘이 ‘냉이 김밥’을 말아오셨다. 아, 냉이 철이구나! 그리고 냉이는 된장국뿐만 아니라 김밥재료로도 훌륭하구나. 당장 냉이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와 다음 날 아침부터 냉이를 다듬고 데치고 양념을 하여 김밥을 쌌다. 재주가 미천하여 비록 옆구리 터진 김밥으로밖에는 마무리가 안 되었지만 그날 어머니는 그 냉이김밥을 맛있게 드셨다.

 

그 다음엔 가리비. 솔직히 나는 내가 산 가리비가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제철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장을 보는 유기농매장에 한철 반짝하는 식재료니까 그냥 믿고 사는 것이다. 가리비의 장점은 손질이 쉽다는 것이다. 나는 가리비로 두 가지 요리를 했다. 그냥 찜통에 넣고 찌면 되는 가리비찜, 그리고 핏자치즈를 뿌려 그릴에서 굽는 가리비치즈구이. 어머니는 찜을 훨씬 좋아하셨다.

 

 

 

 

 

 

 

 

4월엔 뭐니 뭐니 해도 주꾸미다. 문어, 낙지, 오징어 같은 동종업계 아이들 중 타우린 함양이 가장 높아 피로회복과 원기보양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식재료다. 마트에서 1킬로를 사면 좀 큰 놈 작은 놈을 포함해 9~10마리 정도가 되는데 이건 손질하는 게 좀 고되다. 먼저 머리를 뒤집어 알과 먹물주머니를 분리하고 눈 부분을 제거하고 이빨을 ‘여드름 짜내듯’ 떼어 내야 한다. 다음 굵은 소금 혹은 밀가루를 투하해 빨래 치대듯 바락바락 문질러 여러 번 헹궈내야 한다. 나에게 이건 난이도 상에 속하는 일이어서 알은 보존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눈과 이빨은 살점과 함께 가위로 뎅겅 잘려나간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엔 일사천리. 나는 다섯 마리는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과 함께 내놨고, 나머지 다섯 마리는 주꾸미 샤브샤브를 해드렸다. 이번에 어머니는 둘 다 잘~~ 드셨다.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효가 삶의 근본이고 군자는 무엇보다 근본에 힘쓰는 자라고 했는데 이쯤 되면 나, 효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심지어, 자칫 잘못하면, 군자도 될 판이다.

 

 

 

2. 이러다가 앞치마로 변신할지도 모르겠어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논어』, 위정)

자하가 효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이 있을 때면 젊은이가 힘든 일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을 때는 어른이 먼저 드시게 하는 것, 이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낭송 논어』, 60쪽)

 

 

하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우여곡절이 많았고 부침도 심했다. 기승전결로 간략히 요약해보자.

 

기(起) :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처음에 나는 결의가 대단했다. 딸과 같이 살면 어머니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드리리라. 내가 얼마나 정성껏 어머니를 봉양하는지 증명하리라. 난 아침마다 색다른 ‘브랙퍼스트’를 선보였다. 하루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토스트와 우유, 다음 날은 미니주먹밥과 주스, 다음 날은 김치달걀스크램블과 두유, 그 다음 날은 닭가슴살 또띠아, 그 다음 날은 브루컬리감자 스프에 과일...

하지만 어머니는 단 한번도 "맛있다"거나 "수고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매일 이런 타박, 저런 타박을 곁들인 부정적 피드백만 남기셨다. 그 모든 게 어머니 우울증의 증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따라서 어머니가 그런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고 그건 어머니를 원망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가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침마다 애를 쓰면서 욕을 먹는 일을 무심히 계속하는 건 힘들었다. 난 금방 지쳤고 몇 달 못가서 아침 쉐프 활동을 중단했다.

 

승(承): 하지만 어머니의 삼시세끼를 준비하는 일도 어머니와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저녁식사를 함께 해야 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했다. 어머니는 가벼운 설거지 정도는 하셨지만 장을 본다거나 요리를 하시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아니 육체적 조건상 하시기가 힘들었다. 난 거의 매일 장을 보았고 식재료를 다듬었고 반찬을 만들었고 냉장고를 채우고 비우는 일을 반복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처럼 늘 종종거리며 5시면 가방을 싸서 후다닥 집에 들어와 옷도 못 갈아입고 밥을 하고 새 반찬 한 가지라도 만들어서 상을 차리는 일이 지속되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읽고 써야 하는 일들이 밀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였고 '손에 물마를 날 없는' 가사노동이 고단했다.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입만 벌리면 하소연이 흘러나왔다. “이러다간 나, 앞치마로 변신도 가능할 것 같아!!”

 

 

 

 

 

 

전(轉):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사노동이 아니라 감정노동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가사노동에 시시콜콜,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했다. 장을 봐오면 이게 뭐냐? 부터 시작해서, 이건 왜 사왔냐? 뭘 이렇게 많이 사왔냐? 이건 왜 데치냐? 이걸 왜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을 넣느냐? 뭘 이렇게 늘어놓았냐? 왜 설거지를 중간 중간 하지 않느냐? 넌 뭘 이렇게 많이 버리냐? ...........

 

하루 종일 심심하셨을 것이고 딸이 들어왔으니 반가우셨을 테고 하여 이 모든 것이 소통의 욕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난 어머니의 기분에 장단을 맞춰가며 어머니의 속도에 따라 늘적늘적 일을 할 만큼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점점 대꾸하는 말이 짧아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상추를 씻어 채반에 받혀놓고 다른 식재료를 다듬고 있을 때였는데,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시면서 또 한마디를 하셨다. 상추 밑동을 아래로 향하게 놓아야 하는데 내가 반대로 놓았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결국 폭발했다. 그리고 선을 넘었다. “엄마, 제발 나 좀 냅둬. 엄마 때문에 정말 죽을 것 같아”

 

“색난(色難)!!” 공자는 효도에 대해 묻는 자하에게 효도란 부모 대신 어려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 바로 그걸 해야 효도라고 한다. 난 어머니랑 합친 이후 어머니 비서 혹은 진가네(어머니가 진(秦)씨이다) 집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잡다한 일을 해왔다. 어머니 대신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고, 어머니 대신 은행 심부름을 하고, 어머니 대신 형제들 일에 개입한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어머니의 삼시세끼를 챙기느라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공자님은 이 따위는 효도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늘 기쁘고 즐겁게, 그래서 자연스럽게 얼굴의 낯빛도 온화해져야 비로소 효도라 할 만하다는 것이다.

 

난  비로소 동양고전에 왜 그렇게 효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왕자의 난들이 수시로 벌어지는 난세를 어떻게든 돌파하려는 공자의 정치적 비전(“君君臣臣父父子子”)과도 상관없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其顙有泚 睨而不視”)를 통해 정치적 과제의 이론적 기초를 놓으려했던 맹자의 형이상학적 전략과도 무관한 것은 혹시 아닐까? 그것은 다만 ‘효’가 어렵기 때문에, 정말 어렵기 때문에, 절대로 자연스러운 본성으로는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탐구의 과제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결(結) : 성인들처럼 온화한 마음이 “저절로” 온화한 낯빛으로 표현되는 경지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어머니와 날 선 감정을 지속하면서 살 수도 없다. 나는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동네 반찬가게에서 음식을 사와서 후다닥 집안의 반찬통에 옮겨놓고 발각되기 전에 잽싸게 반찬가게 플라스틱 통을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활동시간이 아닌 시간을 틈타, 그러니까 새벽이나 오밤중에, 우엉 채를 썰고 콩자반을 만들고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소인배처럼 온화한 낯빛을 “꾸미는 것”이 가능해졌다. 

 

 

3. 엄마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논어』, 위정)

자유가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孝)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부모를 잘 부양하는 것만을 일컫는다. 그러나 개와 말들도 모두 길러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우응순, 2010 문탁논어강좌 강의록)

 

 

어머니를 퇴원시키면서 나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나의 가사노동량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했다. 간병인 아주머니를 채용하면서 어머니 식사 준비를 알아서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리고 반찬배달서비스업체를 활용해 한 달에 여섯 번쯤 국 하나 + 반찬 3~4개로 구성되어 있는 세트를 배달받았다. 이 정도면 우리 집 삼시세끼가 대충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의도를 배반한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의욕이 넘치셨지만 행동이 느리셨고 책임감이 강하셨지만 센스는 없으셨다. 아주머니가 주방에 있는 동안 내가 어머니를 보느니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내가 주방에 있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결국엔 어머니뿐만 아니라 간병인 아주머니의 식사준비도 내 몫이 되었다. 반찬배달서비스도 여러 달 지나다보니 그 국에 그 반찬이 반복되어 지루해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어머니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는 것이다. 올 초 머리를 벽에 꽝 부딪혀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킨 이후 더 그렇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고기든 나물이든 조금이라도 질기면 아이가 음식을 뱉어내듯 뱉어내시고 몇 달 전부터는 이를 갈기 시작했다. 치과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이를 가는 이유가 치의학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차라리 가정의학과나 정신의학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부쩍 “힘들어, 힘들어, 밥 먹는 게 너무 힘들어”라며 수저질도 안 하시려고 한다.

 

늙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의 생명체가 소멸로 가는 과정은 어떠한 것일까? 매일 매일 기능이 조금씩 약화되고 매일 매일 예기치 않은 증세가 드러나는 어머니를 겪으면서 나는 생명의 마지막 시그널이 혹시 ‘입맛’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찾아 씹어 삼키고  소화기관이 소화를 시키고 그 에너지가 뇌에서 발가락 끝까지 전달되는 것이 생명이라면, 그것의 소멸과정은 그 중 어느 하나가 버그를 일으키면서 전체 순환시스템이 조금씩 연속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시스템 전체가 망가져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다가 마지막엔 물 한 모금 삼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 그것이 아닐까? 어머니는 그 길을 가고 계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입맛을 완전히 잃으시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입맛을 붙들어 놓는 게 병원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는 것보다 어머니 삶에 가장 긴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어머니에게 한 끼 한 끼는 그 자체로 매번 특이하고 존귀한 생명활동이다!!

나는 쉐프에서 영양사로 변신하였다. 머릿속으로 5대 영양소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균형 잡힌 상차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냉장고 반찬을 점검해 표로 만든다. 가장 먼저 신경쓴 것은 단백질의 섭취였다. 잘 씹지를 못하시니 조리법은 굽기가 아니라 삶기가 좋겠다. 나는 수육을 자주 해드렸다. 그리고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신 식감이 부드러운 훈제 오리고기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생선도 웬만한 건 비리다고 타박을 하시니 굴비를 준비했지만, 워낙 비싼 지라 마치 자린고비처럼 아무도 못 먹게 하고 오직 가끔씩 어머니에게만 한 마리씩 구워 드린다. 그랬는데 하도 열심히 챙겨드렸나? 어머니가 소화불량에 걸리셨다.

 

 

 

 

 

 

나는 어머니 간식을 끊었고 어머니가 식사를 마다하면 굳이 드리지 않았고, 인문약방표 ‘평위산’으로 어머니 소화기관을 달랬다. 그랬더니 이번엔 드시는 양이 적었나보다. 변비가 생기셨다. 아, 섬유질 섭취가 필요하구나. 오이를 간식으로 드리고 상추쌈을 자주 식탁에 올려놓고 야채위주의 샤브샤브를 종종 끓이고 한꺼번에 야채를 많이 드실 수 있는 월남쌈을 만든다. 최근 어머니는 다시 굵은 똥을 누기 시작했다.

 

논어 위정 편에는 위에서 인용한 문장 말고도 효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그 중의 하나, 이번엔 자하가 공자에게 효를 묻는다. 그러자 공자는 효는 ‘양(養)’이 아니라 ‘경(敬)’의 문제라고 대답하면서 부양은 개나 말도 하는 일이라고 한다.

 

‘경(敬)’! 보통은 공경, 사람에 따라 ‘진지함’, ‘성실함’, ‘삼가함’, ‘엄숙함’ ‘경건함’ 등으로 번역되는 용어. 주자의 스승인 정이천이 제시하였고 주자가 평생의 화두로 삼았으며 퇴계 역시 군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던 성리학의 최대 아젠다, 바로 ‘경(敬)’! 나는 예전부터 이 단어가 너무 어려웠다. 주자가 불학논쟁을 통해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닦는 ‘주정(主靜)’의 수양법에서 시끄럽고 번다한 일상 속에서 수행하는 주경(主敬)의 수양법으로 방향을 확 틀었다는 것도 알겠고, 그가 경(敬)의 주석을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고 단 이후 경(敬)에 대한 보편적 해석이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게 하는 것이 된 것도 알겠는데, 그게 현실에서는 무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늘 아리송했다.

 

그런데 최근 어머니 한 끼 한 끼에 애면글면 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혹시 이 마음이 경(敬)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소멸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지만 그 마지막 언저리 어느 즈음, 지금 어머니가 그런 상태이고 앞으로 나도 반드시 그렇게 될, 늙고 병든 육신을 누군가가 애틋하게 여기고 정성스럽게 돌보는 것. 그것이 효라는 이름으로, 경(敬)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수행의 삶 아닐까?

 

 

 

 

 

 

요즘 나는 나영석도 아닌데 혼자서 <삼시세끼>를 찍고 있다. 나는 유해진도 차승원도 아닌데 매일 “오늘 뭘 먹어야지?”, 아니 “오늘 뭘 드려야지?”를 생각한다. 가장 최근의 나의 픽은 알이 통통하게 벤 암꽃게였다. 1킬로를 사서 한마디는 쪄서 드렸고 두 마리는 간장게장을 만들었다. 며칠 후 잘 숙성된 간장게장의 노란 알을 어머니 수저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댓글 9
  • 2020-06-09 11:36

    참...동양 고전 잘알못이지만 경(敬)! 할만 한 스토리네요.
    읽자마자 반성모드입니다.
    엄마를 제가 모셔야 하는데 요샌 엄마한테 제가 붙어 사는 것 같아서...
    샘, 삼시세끼 찍다 식상고립을 벗어나실 것만 같네요 ^^

    근데 패독환(감기약)을 소화제로 드린 건 아니겠지요? ^^;;

  • 2020-06-09 12:15

    저 역시 "효는 ‘양(養)’이 아니라 ‘경(敬)’의 문제"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면서 참 양생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꼰대'가 안 되는 것도 어렵지만, '꼿꼿이'사는 일도 참 어려운 듯 합니다.

  • 2020-06-09 13:17

    논어공부를 시작한 하룻강아지로서 온과 색에 대해 아는 체를 하고 싶으나
    자판에서 한자를 쓰기 어려워 한글로 쓰니 뽀대가 안 사네요.
    친정엄마와 사는 저는 양도 경도 아니고 온과 색을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얼굴색 밝게 하는 것부터 안 돼요....
    오늘 배운 예를 생각해보지만, 이것도 한자로 안 쓰니 그 느낌이 안 사네요.

  • 2020-06-10 08:53

    고전셰프 ^^
    엄마를 생각하며 셰프도 되었다가 영양사도 되었다가 ㆍㆍ
    그래도 늘 딸이라는거
    샘의 마음씀에 박수를 보내요 짝짝짝

  • 2020-06-10 08:54

    그제인가 어머니께 문안전화에서 주고받은 대화
    "이번에 병원 가면 니네 집 안가고 바로 후포 내려 올란다."
    "왜... 우리 집에서 며칠 계시죠?"
    "겉 다르고 속 다른 소리 하고 있네. 지난 번에는 나더러 그 집에 혼자 살라더니. 그런 집에 안 간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하긴... 사람 족속이 겉다르고 속 다른 것 같기도 하더라 쯧."
    "오케이. 그럼 오늘의 교훈은 사람은 겉다르고 속다른 존재다 로 결론내는 걸로"
    "말이나.. 못하면 쯧! 잘란다~ 끊어라"
    "네~~ 평안평안 하시고 궁금하면~ 전화할게요~"

  • 2020-06-10 10:31

    저는 글을 읽으면서 매일 엄마 옆에서 식사를 챙겨드릴 수 있어서 샘은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리서 어쩌지 못해 속이 타는 것도 못할 노릇이 거든요. 이번 엄마를 뵙고 오는 길엔 '저렇게 좋아 하시는데 옆에서 챙겨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했어요. 것두 막상 살아보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점점 대구를 가는 걸음이 잦아지고 마음이 조긍해 집니다.
    논어에 '부모의 나이를 생각하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는 구절에 더욱 공감되는 요즘입니다.

  • 2020-06-10 19:41

    분명 더 힘들었을듯한 어머니께 내놓는 세끼보다 선생님 글이 훨씬 더 맛깔나네요^^ 또 그 글 너머 졸이시고 가담으시고 쫑따구를 다스리는 마음에서 효에서 말하고자 했던 경을 엿봅니다. 경은 또 자신에대한 성과 충과도 가닿을듯도 하고요

    어떻거나 난리부루스를 함께 출 어머니가 계셔서 부럽습니다

  • 2020-06-11 08:21

    저도 바당쌤 마음~
    느닷없이 떠나셔서 겨우 한끼 녹두죽 드린게 다인지라.. 그 날 드시던 장면만 스냅샷으로 남아있어서..

  • 2020-06-12 20:05

    저에게도 다가오는 이야기들이에요..
    사실 효라는 단어는 저에게 큰 의미를 준 말이 아니었어요.
    그냥 불조심이라는 말이나 어른공경이라는 말이나...
    당연하지만 별 생각없이 지나치는 그런 말들이었던 거죠.
    문탁샘이 올리신 연재를 읽으면서 미리미리...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말들을 들추어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그렇지만 뭐가 양(養)이고 뭐가 경(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ㅋ
    양과 경이 따로 떨어진 것인지...
    우선은 당황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마주하기 위해...
    잘 읽었습니다~~

겸목의 문학처방전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겸목
2020.07.09 | 조회 455
문탁의 간병블루스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관리자
2020.06.09 | 조회 870
겸목의 문학처방전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겸목
2020.05.30 | 조회 570
겸목의 문학처방전
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의 ‘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의 ‘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겸목
2020.04.27 | 조회 568
문탁의 간병블루스
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관리자
2020.04.24 | 조회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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