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목의 문학처방전
  디스크 질환에는 시리얼 상자를 덧댄 스냅사진을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을 처방합니다      졸업 선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우리집 큰딸 소영이는 요즘 바쁘다. 어제는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재학증명서를 출력하더니, 오늘은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려왔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응급시 쓸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은행에 들려 환전을 할 계획이란다. 겨울방학 동안 살을 빼서 슬림한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라놓는 센스까지 빠트리지 않으며 착실히 여행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 소영이는 충동적으로 왕복유럽항공권을 끊었다. 이번 겨울이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인데, 4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절학기 수업으로 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하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쯤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대학생다운 감성이었다. 이때는 60만원짜리 저가항공권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설명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소영이의 가을 학기는 순식간에 ‘취준모드’로 전환되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서류 접수를 위해 벼락치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적성검사 문제 유형을 익히고, 면접스터디에 합류했다. 주말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보러 갔고, 그 사이 낀 중간고사도 대충 해치웠다. 면접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장바지를 사고 친구에게 구두를 빌려오며 소영이는 사원증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아마도 오피스드라마에 나오는 세련된 직장인의 모습이...
  디스크 질환에는 시리얼 상자를 덧댄 스냅사진을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을 처방합니다      졸업 선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우리집 큰딸 소영이는 요즘 바쁘다. 어제는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재학증명서를 출력하더니, 오늘은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려왔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응급시 쓸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은행에 들려 환전을 할 계획이란다. 겨울방학 동안 살을 빼서 슬림한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라놓는 센스까지 빠트리지 않으며 착실히 여행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 소영이는 충동적으로 왕복유럽항공권을 끊었다. 이번 겨울이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인데, 4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절학기 수업으로 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하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쯤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대학생다운 감성이었다. 이때는 60만원짜리 저가항공권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설명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소영이의 가을 학기는 순식간에 ‘취준모드’로 전환되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서류 접수를 위해 벼락치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적성검사 문제 유형을 익히고, 면접스터디에 합류했다. 주말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보러 갔고, 그 사이 낀 중간고사도 대충 해치웠다. 면접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장바지를 사고 친구에게 구두를 빌려오며 소영이는 사원증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아마도 오피스드라마에 나오는 세련된 직장인의 모습이...
겸목
2020.04.16 | 조회 536
문탁의 간병블루스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p31)       1.엄마의 정신은 어디로 외출했을까?     6개월 전, 2차 부상에 대한 병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퇴원시킨 가장 큰 이유는 ‘섬망’ 때문이었다. 오후만 되면 ‘집으로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를 계속 병원에 둘 수는 없었다. 2차 부상이냐? 섬망이냐? 거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준의 선택 앞에서 난 결국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하여, 섬망이 사라졌냐고? 결론을 먼저 말하면 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2차 부상까지 당하셨다. 특히 2번 요추 압박골절에 이어진 1번 요추 골절은, 어머니도 나도 간병인도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더 황당했다. 넘어진 적도 부딪힌 적도 없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심상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인들은 기침하다가도 부러져요. 흔한 일이예요” (그런데 왜 어머니의  6개월 입원기간, 4군데의 병원에서 어떤 의사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주지 않았지? 쩝!)       어쨌든 척추 뼈가 두 개나 부러지고 그 뼈들이 다시 아무렇게나 붙어서 (혹은 여전히 덜 붙어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게 된 어머니는, 집에 오신 이후에도 수시로 ‘집으로 가자’를 외치셨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교회 성가대 애들 밥을 먹여야 하니 밥을 넉넉히 하라고도 하시고,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p31)       1.엄마의 정신은 어디로 외출했을까?     6개월 전, 2차 부상에 대한 병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퇴원시킨 가장 큰 이유는 ‘섬망’ 때문이었다. 오후만 되면 ‘집으로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를 계속 병원에 둘 수는 없었다. 2차 부상이냐? 섬망이냐? 거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준의 선택 앞에서 난 결국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하여, 섬망이 사라졌냐고? 결론을 먼저 말하면 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2차 부상까지 당하셨다. 특히 2번 요추 압박골절에 이어진 1번 요추 골절은, 어머니도 나도 간병인도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더 황당했다. 넘어진 적도 부딪힌 적도 없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심상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인들은 기침하다가도 부러져요. 흔한 일이예요” (그런데 왜 어머니의  6개월 입원기간, 4군데의 병원에서 어떤 의사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주지 않았지? 쩝!)       어쨌든 척추 뼈가 두 개나 부러지고 그 뼈들이 다시 아무렇게나 붙어서 (혹은 여전히 덜 붙어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게 된 어머니는, 집에 오신 이후에도 수시로 ‘집으로 가자’를 외치셨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교회 성가대 애들 밥을 먹여야 하니 밥을 넉넉히 하라고도 하시고,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문탁
2020.03.21 | 조회 811
문탁의 간병블루스
엄마를 퇴원시킨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음, 지구를 떠나고 싶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난, “엄마, 집에 와서 좋지?” 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와 눈을 맞추며 애교를 피우고, 전기밥통이나 세탁기 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고,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서 차단하고, 간병인 아줌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찍느라 종종 걸음을 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걸 널고 개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쓰레기를 버리러 수거장에 나갔다 오고 (그 사이, 잠시 망설인다. 병원에서 기저귀 쓰레기는 따로 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될까, 라면서), 엄마를 보러 온 온갖 친척, 친지들을 상대하고, 사이사이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루 두 번 엄마의 간식을 미리 챙겨놓고, 엄마의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입원비를 계산해서 엑셀로 만들어 동생들과 공유하고, 엄마의 똥을 살피고 통증지수를 가늠하여 체크리스트에 적고, 무슨 서방정, 서방정, 서방정들로 점철된 약을 분별하여 하루에 29개나 되는 약을 약통에 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포스테오 주사를 놓는다. (그걸 위해 알람을 다시 맞춰 놓았다. 동은에 대한 ‘감시알람’^^이 끝나자마자 ‘포스테오 알람’이 켜졌다^^) 발바닥엔 불이 났고 입안은 다 곪아 터졌다.       2. 엄마를 퇴원시켰다고 하니까 다들 좀 회복되신거냐구 묻는다. 글쎄,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허리골절이니 허리뼈가 붙는 것? 아니면 심각한 통증이 완화되는 것?...
엄마를 퇴원시킨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음, 지구를 떠나고 싶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난, “엄마, 집에 와서 좋지?” 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와 눈을 맞추며 애교를 피우고, 전기밥통이나 세탁기 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고,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서 차단하고, 간병인 아줌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찍느라 종종 걸음을 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걸 널고 개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쓰레기를 버리러 수거장에 나갔다 오고 (그 사이, 잠시 망설인다. 병원에서 기저귀 쓰레기는 따로 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될까, 라면서), 엄마를 보러 온 온갖 친척, 친지들을 상대하고, 사이사이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루 두 번 엄마의 간식을 미리 챙겨놓고, 엄마의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입원비를 계산해서 엑셀로 만들어 동생들과 공유하고, 엄마의 똥을 살피고 통증지수를 가늠하여 체크리스트에 적고, 무슨 서방정, 서방정, 서방정들로 점철된 약을 분별하여 하루에 29개나 되는 약을 약통에 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포스테오 주사를 놓는다. (그걸 위해 알람을 다시 맞춰 놓았다. 동은에 대한 ‘감시알람’^^이 끝나자마자 ‘포스테오 알람’이 켜졌다^^) 발바닥엔 불이 났고 입안은 다 곪아 터졌다.       2. 엄마를 퇴원시켰다고 하니까 다들 좀 회복되신거냐구 묻는다. 글쎄,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허리골절이니 허리뼈가 붙는 것? 아니면 심각한 통증이 완화되는 것?...
문탁
2019.09.19 | 조회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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