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현민
2023-07-17 09:06
442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사진에서 누굴까요.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종종 외국에 나와 사는 여자애들을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 정처 없는 느낌.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떠도는 사람들의 정처 없음을 그들과 나로부터 느낀다.

 가족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나와 친구들의 화두였다. 우리는 만나면 처음엔 웃긴 얘기나 좀 하다가 결국 가족사로 가서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할 것 같은 얼굴들로 끝냈다. 자신의 상처를 바탕삼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원가족은 집이었는데,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아니었다. 가족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괴해서 웃겼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처량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는 자기 탓을 하기가 가장 쉬웠다. 이제는 그때처럼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지겹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핸드폰 녹음기에서 한 시간짜리 녹음 기록을 발견했다. 작년 베를린에서 모였던, 아무도 한국에서 살지 않는 친구들과의 대화였다. 우리는 대안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그 대화는 조금 현실적인 느낌으로 끝났다. 원가족에 대한 결핍을 대안가족으로부터 메꿀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안정과 현재의 혼란과 과거의 결핍은 그대로, 서로 뒤섞이지 않고 영원히 너와 함께 살 거야. 어쩌면 살아가면서 그것을 잘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처 없는 아이들은 필연처럼 비슷한 장소에서 모인다. 예를 들면 퀴어 페스티벌이라던가. 다르게 말하자면, 정상세계에서 이상함을 감지하는 아이들은 이상한 것이 주류가 되는 날에 모인다. 6월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였다. 내가 사는 뮌헨에서는 6월 24일에 CSD 행사를 했다. CSD는 Christopher Street Day의 약자로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지역의 퀴어 페스티벌 명칭이다.

우연히 이 날짜에 맞춰 튀빙엔에 사는 지해, 쾰른에 사는 성은이 뮌헨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서울 퀴어 페스티벌이 가장 크지만, 독일에서는 6월과 7월에 걸쳐 거의 모든 도시에서 CSD 행사를 한다. 당일 아침 우리는 룸메이트들에게 CSD에 가는지 물으며 간다고 하면 가서 만나자고, 안 간다고 하면 왜 안가냐고(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독일에는 16개 주가 있다.

그 중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 주의 지역별 CSD 행사 날짜표

예를 들면 경기도에서만 25개의 지역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있는 것이다. 와웅

 

점심을 넉넉히 먹고, 선크림도 두 번씩 바르고, 서로의 머리를 땋아준 뒤 집을 나섰다. 퍼레이드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지는 알았지만, 그 시간에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타고 가던 트램이 고장 나 내렸는데 저 멀리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엄청난 사람들의 색깔과 몸짓, 노래로 저곳이 우리의 목적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가슴이 벅찼고 발이 가벼워졌다. 우리 셋은 폴짝폴짝 뛰면서 신호등을 건너 무리에 들어갔다. 야하게 입었을까봐 나시 위에 마지막 자기검열로 걸친 겉옷을 스르륵 벗었다. 그들과 만난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리를 걸을 때 아시안이라 익숙히 받는 시선을 느낄 수 없었고, 옷과 화장이 너무 튈까봐 걱정하지 않았고, 더 꾸미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과 외국인과 동양인 여자애가 아니었다. 그냥 나는 거기 있었다.

 퀴어의 상징인 무지개가 내 몸에 없다는 게 아쉬워지자마자, 한 사람이 무지개 스티커를 길거리에 서 있는 경찰에게 붙여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만 줄 수 있어? 물으니 그는 나에게 한 뭉치를 주었다. 곧장 가슴팍에, 왼쪽 뺨에, 매고 있는 가방에 붙이고 지해와 성은에게도 붙여주었다.

 

 

퍼레이드는 엄청나게 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어디에 있었을까? 이러다간 진짜 세상이 바뀌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싸우지 않고, 책을 만들지 않고, 설득하지 않아도 이 흐름과 기세로 세상이 바뀌어버릴 수도 있다고. 물론 그것은 누군가들이 무수히 해왔고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모습이 특이하면 특이할수록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덥썩 안기고, 아무에게나 말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어디까지가 우리, 퀴어와 앨라이(Alley, 지지자)들이며 어디서부터가 그들, 우연히 길에 있던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멈춰 이 행진을 구경하고 있었고 아무도 화나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는 고함을 지르거나 북을 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이 없었다. 최근 서울 퀴어퍼레이드 개최가 서울 시청으로부터 거부된 것과 매번 퀴퍼에 갈 때마다 입구에서 고성방가로 우리를 위협하는 혐오세력을 웃어넘겨야 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네가 이곳에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도 너를 위협할 수 없어. 네가 남들과 다르게 때문에 차별받을 일은 없어. 이 간단하고 마땅한 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다양성이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궁금해 왔다. 그건 혼란이나 공포가 아니었고, 부드럽고 편했으며 달고 벅찼다. 언젠가 이런 것에 유난하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걸으며 생각했다.

 

 

퍼레이드가 끝나는 기점에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팻말을 읽었다.

Equality is not like cake. If someone get’s it. you don't get less.

평등함은 다른 사람이 가지면 네가 적게 얻는 케이크 같은 것이 아니다.

Not same but equal.

똑같은 게 아니라 평등함.

Never apologize for who you are.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 절대 미안해하지 마.

Max-Planck-Gymnasium

막스 플란크 김나지움

 

 

김나지움은 독일에서 4학년부터 12학년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다. 내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속해있을 때 퀴어 퍼레이드에 학교 깃발을 들고 갔다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해졌을까 싶다. 내가 만난 어떤 어른들은 정말, 그저 차별주의자들에 가까웠다. 다른 건 모두 되는데 퀴어와 페미니즘, 장애, 동물권, 정신병 등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떠나온 시대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왜 어떤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가장 나중에 도착할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은 차별과 혐오가 그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뿐인 줄 안다. 하지만 침묵이나 중립 혹은 그들의 한마디도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유해했다. 지나온 과거에 대해 날 선 질문들이 드는 반면에 지금은 그런 것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이미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정말로 괴롭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말해주고 싶다. Never apologize for who you are. 절대 사과하지 마. 네 존재에 대해서. 네가 너인 것에 대해서 절대 미안해하지 마.

 

퍼레이드 중

 

퍼레이드가 끝나고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뮌헨 시청 앞에 설치된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공연이 이어졌다. 무대 위에는 성별을 예측할 수 없거나 아니면 너무 예측할 수 있거나, 금기된 말들을 장난처럼 노래하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대체로 웃겼고, 맨 가슴을 흔들었고, 무대 위에서 서로 입을 맞췄고, 노래가 끝나면 엉덩이로 인사를 했다. 무대 한 켠에는 늘 열정적인 수화 통역사가 있었다. 종종 더우면 무리에서 나가 부스를 한바퀴 돌았다. 그 후에는 내 손에 무지개 팔찌와 깃발, 부채와 선캡, 비눗방울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음란 축제라고 부르는 곳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관광객이 365일 붐비는 뮌헨 시청 앞 무대 위의 저 가수가 젖꼭지를 드러내도 괜찮고, 괜찮아야만 하는 일이 나의 생존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는 밤 12시 이후에는 시청 안에서 뒷풀이 파티를 한다고 했다. 시청에서의 퀴어 파티라니 굉장히 구미가 당겼지만, 밤에는 우리 집에서도 파티가 있었기에 9시쯤 돌아갔다.

 

메인 스테이지 위 공연

가슴에 X자로 밴드만 붙이고 나왔는데 그마저도 공연 중에 뗐다.

 

퀴어 페스티벌에 왔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퀴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은 퀴어 정체성 만을 가진 이들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나여서 슬펐거나, 종종 싫었거나, 어떨 땐 내가 나인 걸 미안해 본 기억을 가진 몸들. 쫓겨났거나, 탈출했거나, 싸워봤거나, 그러다가 포기해봤거나, 결핍을 채워보려고 사랑을 갈구했거나, 상처가 커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거나 그런 역사를 가진 몸들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프라이드가 필요해서, 프라이드를 외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 공간에 오게된 이들은 각자의 상처를 발판삼아 서로를  존중한다. 궁극의 고난이 만들어내는 유머와 노래와 춤과 이야기는 차원이 다르게 아름다운 법이다. 이것이 어떤 미래가 될지 아무도 모르고 우리가 과거보다 정녕 낫기는 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겠지만, 나의 몸은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셰어 하우스 파티를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날 했다.

파티 테마는 Gay crop top이었고

현관문 앞에 입장 규칙이 써져 있다.

 

댓글 6
  • 2023-07-17 11:37

    특이할수록 나를 해치지 않을 거란 느낌!! 왠지 알 것 같네.

  • 2023-07-17 18:47

    사실 전 퀴어퍼레이드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썼는데.. 갑자기 옛날 기억이 불쑥 떠올랐어요.
    20년도 전에 토론토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참관한 적이 있군요. 그냥 화려하고 신나고 멋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우리나라에는 아직 퀴어퍼레이드가 없었던 때라 굳이 찾아가서 내심 그들의 자유를 부러워하며 구경꾼으로 보고 왔었군요.
    구경꾼이었으니.. 참여는 아닌 게 맞군요!ㅎ
    현민의 글을 읽으며 퀴어한 공간과 시간이 취약하고 상처입은 개인들을 치유하는 느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아요.
    내년에는 퀴퍼에 꼭 가서 그 느낌 저도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안심하고 나를 드러내도 되는 작은 해방구들을 우리 함께 여기저기에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2023-07-17 19:18

    저도 서울시청 앞에서 퀴퍼 구경만 한번 하고 직접 참여해본 적은 없는데 꼭 가고 싶네요
    무지개 스티커 뺨에 붙인 현민의 신나는 얼굴이 참 좋아요
    글은 항상 좋구요~^^

  • 2023-07-17 19:37

    저도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이번에 튀빙겐 퀴퍼에 처음 참석해봤어요. 한국 퀴퍼와 달리 평온하고 혐오세력 없는 퍼레이드가 낯설었던 것, 평온하게 그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와 해방감-에 공감돼요. 마지막 문단이 너무 와닿고요! 이렇게 현민님 글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7-18 07:47

    "각자의 상처를 발판삼아 서로를 존중한다" 좋아요~~^^

    • 2023-07-18 08:19

      찌찌뽕! 저도 이 문장이 콕! 독일의 문화가 부럽네요!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현민
2023.08.18 | 조회 495
현민의 독국유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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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사진에서 누굴까요.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종종 외국에 나와 사는 여자애들을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 정처 없는 느낌.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떠도는 사람들의 정처 없음을 그들과 나로부터 느낀다.  가족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나와 친구들의 화두였다. 우리는 만나면 처음엔 웃긴 얘기나 좀 하다가 결국 가족사로 가서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할 것 같은 얼굴들로 끝냈다. 자신의 상처를 바탕삼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원가족은 집이었는데,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아니었다. 가족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괴해서 웃겼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처량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는 자기 탓을 하기가 가장 쉬웠다. 이제는 그때처럼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지겹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핸드폰 녹음기에서 한 시간짜리 녹음 기록을 발견했다. 작년 베를린에서 모였던, 아무도 한국에서 살지 않는 친구들과의 대화였다. 우리는 대안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그 대화는 조금 현실적인 느낌으로 끝났다. 원가족에 대한 결핍을 대안가족으로부터 메꿀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안정과 현재의 혼란과 과거의 결핍은 그대로, 서로 뒤섞이지 않고 영원히 너와...
현민
2023.07.17 | 조회 442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바램이 삶이 되려면       최근에는 집 재계약과 전기세, 정원 가꾸기로 매일매일 그룹채팅방이 시끄러웠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임의적으로 회의를 만들지만 회의 시간을 잡기란 굉장히 어렵다. 생각보다도 더 12명이 한집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금방 바뀌고, 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4년이 된 이 셰어하우스에 현재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알론소다.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한국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코스타리카에서 온 그는 이 도시에서 현대무용 학교를 다닌다. 그는 댄서다.   최근 그의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학년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알론소는 셰어하우스 톡방에 공연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티켓 값이 생각보다 비싸 못 가겠군 하던 차였다. 공연 오냐고 묻는 그에게 표 비싸더라 궁시렁대니 무료 티켓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알론소가 댄서라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한 번도 그가 제대로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입구를 못 찾아 공연 시작 10분 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머리가 아름답게 센 할머니를 만났다.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 할머니도 입구를 못 찾는 중이었다. 같이 입구를 찾고 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할머니는 시야에서 없어졌다. 부랴부랴 좌석에 앉아 놓여있던...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바램이 삶이 되려면       최근에는 집 재계약과 전기세, 정원 가꾸기로 매일매일 그룹채팅방이 시끄러웠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임의적으로 회의를 만들지만 회의 시간을 잡기란 굉장히 어렵다. 생각보다도 더 12명이 한집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금방 바뀌고, 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4년이 된 이 셰어하우스에 현재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알론소다.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한국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코스타리카에서 온 그는 이 도시에서 현대무용 학교를 다닌다. 그는 댄서다.   최근 그의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학년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알론소는 셰어하우스 톡방에 공연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티켓 값이 생각보다 비싸 못 가겠군 하던 차였다. 공연 오냐고 묻는 그에게 표 비싸더라 궁시렁대니 무료 티켓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알론소가 댄서라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한 번도 그가 제대로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입구를 못 찾아 공연 시작 10분 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머리가 아름답게 센 할머니를 만났다.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 할머니도 입구를 못 찾는 중이었다. 같이 입구를 찾고 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할머니는 시야에서 없어졌다. 부랴부랴 좌석에 앉아 놓여있던...
현민
2023.06.17 | 조회 464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젯밤의 이야기   어제는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초콜렛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는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두 달 전쯤 이사 온 이탈리안이자 독일인이다. 내 윗방에 사는데 내가 늦게 자기 때문에 레오가 얼마나 늦게까지 안 자는지 그의 발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레오는 늦은 밤에 꼭 담배를 한 대씩 피러 나온다. 문을 열어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쇼파 위에서 자고 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레오는 그 고양이와 같이 찍은 셀카를 보여주었다.   나와 레오가 같은 물건을 산다면 나는 설명서를 아예 읽지도 않고 무작정 끼워보는 편인 반면에 레오는 침착하게 읽은 뒤 하나씩 맞춰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겠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평안도, 마음의 평안도 주는 사람이다. 마주친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레오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레오는 약간 피곤하다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요새 나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어떻게 해야 더 머무를 수 있을지. 아니 정말 내가 독일에 머무르고 싶긴 한 건지. 나는 누가 묻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데, 레오에게...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젯밤의 이야기   어제는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초콜렛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는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두 달 전쯤 이사 온 이탈리안이자 독일인이다. 내 윗방에 사는데 내가 늦게 자기 때문에 레오가 얼마나 늦게까지 안 자는지 그의 발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레오는 늦은 밤에 꼭 담배를 한 대씩 피러 나온다. 문을 열어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쇼파 위에서 자고 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레오는 그 고양이와 같이 찍은 셀카를 보여주었다.   나와 레오가 같은 물건을 산다면 나는 설명서를 아예 읽지도 않고 무작정 끼워보는 편인 반면에 레오는 침착하게 읽은 뒤 하나씩 맞춰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겠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평안도, 마음의 평안도 주는 사람이다. 마주친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레오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레오는 약간 피곤하다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요새 나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어떻게 해야 더 머무를 수 있을지. 아니 정말 내가 독일에 머무르고 싶긴 한 건지. 나는 누가 묻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데, 레오에게...
현민
2023.05.17 | 조회 531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좋은 이별 나쁜 이별     나의 집은 오래된 3층짜리 주택이다. 우리가 살지 않으면 허물어 새집을 지어야만 하는, 12개의 방과 12명의 사람들이 있는 집. 5년 전 레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이 집을 찾고 사람을 모아 셰어하우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이 필요에 의해 이 곳에 모이고 떠나가 지금 내가 이곳에 산다. 각자 사느라 바쁘면서도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서로의 시간들을 경험한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 비싸게 세놓으려 했던 집주인이 치솟는 물가 탓에 집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당분간 우리 12명은 집을 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넉넉한 기간을 재계약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 살았던 미키와 캐시가 이사를 가 가일과 레오가 들어왔고, 나와 앞, 옆방을 마주하는 쿠쉬와 필리페는 본국으로 장기 휴가를 가 그 기간 동안의 단기세입자 다니와 발렌티나가 새로 들어왔다. 그리고 A가 쫓겨났다.   최근 사람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내가 임시로 만들었던 우체통 이름표   A는 영화를 공부한다고 했다. 내가 이사를 온 직후, 한동안은 그를 볼 수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 A가 어디에 갔냐고 물었는데, 그의 개인적 문제 때문에 잠시 집을 비웠다고...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좋은 이별 나쁜 이별     나의 집은 오래된 3층짜리 주택이다. 우리가 살지 않으면 허물어 새집을 지어야만 하는, 12개의 방과 12명의 사람들이 있는 집. 5년 전 레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이 집을 찾고 사람을 모아 셰어하우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이 필요에 의해 이 곳에 모이고 떠나가 지금 내가 이곳에 산다. 각자 사느라 바쁘면서도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서로의 시간들을 경험한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 비싸게 세놓으려 했던 집주인이 치솟는 물가 탓에 집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당분간 우리 12명은 집을 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넉넉한 기간을 재계약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 살았던 미키와 캐시가 이사를 가 가일과 레오가 들어왔고, 나와 앞, 옆방을 마주하는 쿠쉬와 필리페는 본국으로 장기 휴가를 가 그 기간 동안의 단기세입자 다니와 발렌티나가 새로 들어왔다. 그리고 A가 쫓겨났다.   최근 사람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내가 임시로 만들었던 우체통 이름표   A는 영화를 공부한다고 했다. 내가 이사를 온 직후, 한동안은 그를 볼 수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 A가 어디에 갔냐고 물었는데, 그의 개인적 문제 때문에 잠시 집을 비웠다고...
현민
2023.04.16 | 조회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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