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이 여름의 끝, 걷기의 단상들

기린
2023-09-07 01:23
432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 한 여름 걷기의 맛

 

  8월 내내 둘레길을 걸을 엄두가 안 나는 무더위가 계속 되었다. 근데 올해 여름이 제일 시원할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그래도 누가 같이 걷자고 하면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서 경기옛길 영남길 4코스도 걸었고, 서울 둘레길 1코스도 걸을 수 있었다.  이 코스들은 모두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코스였다. 영남길 4코스는 용인 동백 호수 공원에서 석성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고, 서울 둘레길은 수락산 둘레를 걸었다. 그래서 한 여름이라도 숲 속을 통과하는 길이라 정수리로 내리꽂는 땡볕은 피할 수 있었다.

 

 석성산 코스는 정임합목 하우스와 함께 걸었다. 471 미터 고지정도 되지만 동백동쪽 등산로는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경사면의 암벽 길까지 타고 올라야 하는 코스였다. 매일 새벽 아파트 뒤로 난 석성산 산책로를 걷는다는 두 사람은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초입부터 숨이 가팠다. 헉헉대며 올라가자니 온 몸으로 땀이 차올랐다. 뒤처지는 나를 기다려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정상에 올라서니 윗도리가 땀으로 흥건했다. 정상에 얼음이 동동 뜨는 막걸리를 파는 미니 주점이 있었다. 반색하는 나를 보고 무사님이 한 잔 사주었다. 얼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뒷덜미가 시원해졌다. 한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낙차의 온도였다.

 

 서울 둘레길 1코스는 친 자매인 새봄과 시소와 걸었다. 도봉산역에서 시작해 수락산자락을 둘러 걷는 총 18.6키로 코스였다. 일요일에 하는 세미나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한 주 쉬는 방학이니 같이 걷자고 연락이 와서 반가웠다. 역 앞에서 만났을 때 가랑비가 흩뿌려서 어쩌나 했는데 점점 개였다. 그래도 습도는 높아서 걷기 시작할 때부터 후덥지근했다. 이 길은 잘 정비되어 있긴 했는데 계단이 너무 많았다. 산길을 조금 걷는가 하면 오르는 계단이더니 내려가는가 싶으면 또 계단이 나왔다. 길을 걷는다기보다 계단을 계속 오르내리는 느낌이었다. 산길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보니 아무리 더워도 계절은 가을로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0키로쯤 걸었을 즈음 당고개역으로 빠지는 이정표가 보였을 때, 시소님이 이 길은 계단이 너무 많다며 역으로 빠지면 어떠냐고 물었다. 지친다 싶었던 터라 단번에 그러자고 했다.

 

 한 여름의 숲에서 윗도리가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리며 걷고 내려오면 온 몸이 수분을 원한다는 걸 느낀다. 혼자서 걸을 때는 물 몇 모금 축이며 집에나 와서야 그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일행이 있어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일단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하면서 맥주부터 달라고 부탁했다.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온 몸의 세포가 갈증을 푸는 느낌이랄까. 술을 즐기지 않는 이 친구들도 너무 맛있다고 한 마디씩들 했다. 한 여름을 통과하면서 놓칠 수 없는 맛이다. 함께 즐기니 더 좋았다.

 

 

 

2. 혼자 걷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둘레길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아주 가끔 친구들과 함께 걸었고 대부분 혼자 걸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와 달리 둘레길은 한적한 편이었다. 그래도 무섭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잘 걸어 다녔다. 8월 중순 신림동 관악산 둘레길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그동안 거리낌 없이 외진 길을 혼자 다녔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21년 여름 김대건길을 걸었다. 용인에 있는 은이성지에서 출발해 안성 미리내 성지까지 걷는 순례길이다. 은이성지를 지나 은이계곡으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길이 시작되고 걷는 내내 점점 숲이 깊어지는 길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지나가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10키로가 넘는 우거진 숲 속의 길을 혼자서 내내 걷자니 차츰차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거였다. 그러다 문득 그 무렵 용인 처인구 곰농장에서 곰이 탈출했다던 기사를 본 게 떠올랐다. 그러자마자 흠칫 몸이 굳는가 싶었는데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내처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고개를 내려가는 길이기도 해서 걸음아 나 살려라는 심정으로 내달렸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려서 쉼터가 있는데 와서 멈추었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지만 숨을 가누다보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점점 마음이 가라앉자 혼자서 뭔 난리 부루스냐며 픽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머릿속에 곰이 떠오른 순간은 정말 심장이 쫄깃해졌다. 이번 사건을 듣는데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망상이었음에도 몸이 그 순간의 두려움을 기억해냈던 거다. 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거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다른 친구들과도 그 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혼자서 둘레길 걸을 엄두가 안 난다고 투덜거렸다.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했다. 그렇게 될까. 어쨌든 지금은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3. 마음을 걷게 하기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가 대세가 된 현대인의 삶에서 자신 또한 어떻게 가느냐보다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느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술력으로 점점 빠르게 통과하는 대신 두 발의 움직임을 따라 “보면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이미 알 고 있는 것 속으로 흡수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 말이다. 그렇다면 걷기는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를 통해 마음에서도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는 기회이다. 빠름에 매몰된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 두 발로 걷는 속도에 맞추는 일, 마음을 걷게 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 나는 운동 삼아 걷기도 하고, 오일 내내 공간 안팎을 맴도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 드문드문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사는 얘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었다. 한 편으로 매주 새로운 둘레길에서 낯선 길을 헤매다보면, 머리가 텅 비고 온 몸이 나른하게 피로해지는데 이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놀려서 끊이지 않는 망상에서 빠져나오는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기도 했다. 레베카 솔닛의 문장을 따라 그동안 나의 걷기를 되돌아보니 나 역시 마음이 내달리는 속도에 지쳤다가 내내 걸으며 그 속도를 늦추곤 했던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내달리고 마는 반복이었다. 그러면 다시 걷기였다.

 

 이렇게 여름이 가는 사이 8월의 사건이 회자되는 와중에도 친구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았다. 친구들의 마음의 속도에도 귀 기울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한동안은 두려울 것 같은 마음에 같이 걸을 친구들을 물색 중이다. 두 발로 걷는 속도에 맞춰 마음을 걷게 하고 싶은 분, 저한테 연락 주세요^^ 코스는 제가 물색해 보겠습니다.

 

 

댓글 6
  • 2023-09-07 09:02

    저랑도 걸어요. 죽전에서 오시다가 불곡산에서 만날까요?
    전 걷기보다는 숲이 좋아서요. 나무가 많은 곳으로 걸으면 좋겠어요.^^

    • 2023-09-07 09:38

      저도 숲길 같이 걸어요~ 저도 숲길파!

  • 2023-09-07 13:23

    평일 오후 광교산도 한 번 같이 가요~~!

  • 2023-09-07 14:58

    아~~ 그날 석성산 막걸리 장난아니였죠?ㅎㅎ
    더운날에만 느낄수 있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내년에도?ㅎ

  • 2023-09-07 19:20

    너무 더웠고, 지금까지도 더운데.. 그래도 걷는다!
    또 걷자고 꼬신다. 포레스트 기린 만세!!ㅎㅎㅎ

  • 2023-09-09 11:14

    저야 말로 걸어야하는데......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2023.12.05 | 조회 370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나는 남산 밑에 자리했던(지금은 안산으로 옮긴)예술대학을 다녔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퍼시픽호텔이 있는 방향으로 나와서 경사진 골목을 올라가면 강의를 듣던 건물이 있었다. 그 골목을 끝까지 올라가면 남산자락으로 통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를 다닐 때 한 번도 골목 끝까지 올라 남산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기도 했고, 주말에는 2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 집만 오가며 보냈던 것 같다. 10월에 날씨 좋을 때 남산 둘레길을 걷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학교를 졸업한지 25년이 흘러갔는데 그 골목은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10월 15일 일요일, 서울 시청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뭔지 모르게 설레었다.   약속장소인 덕수궁 앞에서 먼저 와있던 두 친구를 만났다. 공동체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활동하다 보니 따로  보면 각각 다르지만, 뭉쳐 있으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닮아 보이는 사이가 된 친구들이다. 안으로 들어가 국립현대 미술관 덕수궁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했다. 이름은 처음 듣는 화가였는데, 그림은 달력에서 본 기억이 나는 그림도 있었다. 한 친구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대하는 폼이 참으로 진지해서 전시회의 제목에 걸맞은 관람객이었다.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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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11.06 | 조회 417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준비   작년에 이어 올해는 9월 23일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는 소식이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올해 행진에는 소창조각보로 플랭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시청역까지 가면 본집회는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진 2주전, 파지사유 벽면이 하얗게 칠해졌고, 푸른 빛깔로 물들인 커다란 천이 걸렸다. 그 위에 에코실험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창조각보에 메시지를 담아 한 장씩 붙여나갔다. 이번 행진의 슬로건인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던가 문어, 고래, 녹아내리는 빙하도 보였다. 세미나를 하러 온 친구들을 불러다 소창조각을 내밀면 대부분 진지하게 뭔가를 그리거나 썼다. 내가 속해 있는 ‘양생프로젝트세미나’팀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따온 문장들로 조각보를 채웠다. ‘우리는 모두 크리터(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때로는 기계까지 포함하는 잡다한 것들)다’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퇴비다’ 등이었다.      행진 전날, 에코실험실팀이 친구들이 그려준 소창조각보를 떼어내 일일이 이어 시침질을 해서 커다란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망토로 쓸 수 있는 크기와 몇 사람이 펼쳐서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두 개로 완성되었다. 작년 행진 때 종이박스를 재활용해서 각자 만들었던 피켓에 비하면 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준비   작년에 이어 올해는 9월 23일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는 소식이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올해 행진에는 소창조각보로 플랭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시청역까지 가면 본집회는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진 2주전, 파지사유 벽면이 하얗게 칠해졌고, 푸른 빛깔로 물들인 커다란 천이 걸렸다. 그 위에 에코실험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창조각보에 메시지를 담아 한 장씩 붙여나갔다. 이번 행진의 슬로건인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던가 문어, 고래, 녹아내리는 빙하도 보였다. 세미나를 하러 온 친구들을 불러다 소창조각을 내밀면 대부분 진지하게 뭔가를 그리거나 썼다. 내가 속해 있는 ‘양생프로젝트세미나’팀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따온 문장들로 조각보를 채웠다. ‘우리는 모두 크리터(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때로는 기계까지 포함하는 잡다한 것들)다’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퇴비다’ 등이었다.      행진 전날, 에코실험실팀이 친구들이 그려준 소창조각보를 떼어내 일일이 이어 시침질을 해서 커다란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망토로 쓸 수 있는 크기와 몇 사람이 펼쳐서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두 개로 완성되었다. 작년 행진 때 종이박스를 재활용해서 각자 만들었던 피켓에 비하면 한...
기린
2023.10.06 | 조회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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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09.07 | 조회 43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2023.08.06 | 조회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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