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해파랑길 24코스를 걷다보면(with 땡볕)

기린
2023-08-06 06:27
350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중에서 24코스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도에서는 직선으로 단조롭게 그어진 해안선으로 보이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바닷가 파도는 거셌고 바다 위로 융기한 삐죽 삐죽한 바위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기억의 바다는 위험하고 한 여름에도 깊은 수심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유난한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집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든가, 해수욕을 하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갔다는 누구 집 자식의 이야기도 가끔 들려오는 그런 곳이었다.

 

 

 

변한 것들

 

 

   내가 고향을 떠난 후 바다의 주변은 점점 변해갔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개통되고 항구에 배가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바다 가운데 방파제가 건설되었다. 파도가 치면서 실어 나르는 모래들로 예전에는 없었던 모래사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는 해수욕장이 개장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해수욕장과 관련 부대시설이 들어서고 여름 한 철 피서객들이 제법 북적였다. 등대가 있던 등기산이 정비되어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최근에는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가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생겼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바다 주변을 메우고 깎고 뭔가 짓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후포항은 교통이 불편했던 1960년대까지 만선으로 돌아온 어선들이 부근에 팔고 남은 생선들이 많아 누구라도 가져가게 할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거기서 후포(厚浦)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날로 어획량이 줄어 경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가 하면, 뱃일을 하겠다는 사람도 계속 줄어서 몇 년 사이 이주 노동자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24코스를 따라 거일-직산-구산-기성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옹기종기 형성된 마을에 집들이 많이 낡아 보였다. 빈집도 많았다. 도시 집중화와 맞물려 쇠락해가는 지방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은 것들

 

 

   24코스는 내내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다. 바다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주변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동해의 푸른 빛 바다와 파도 소리, 갈매기들이 드나드는 터전은 그대로였다. 그늘 한 점 들지 않는 길을 걷자니 땀방울이 맺혔지만 주르륵 흘러내리기 전에 말랐다. 햇빛으로 뜨거워진 몸을 동해의 푸른 바람에 말려가며 걷는 맛이었다. 팔토시로 가린 손목을 경계로 해서 손등이 점점 구리빛으로 달구어졌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한결 같았을 태양과 바다와 내가 합체가 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사라질 나와 달리 늘 뜨겁게 빛나고 늘 푸르게 파도치며 살아가는 존재의 위엄이 흘러 넘쳤다.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24코스의 삼분의 일 지점 무렵에 위치해 있다. 고려 시대 왜구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로 세워진 것을, 조선 중기에 정자로 중건된 곳이라고 한다. 월송정 주변은 푸른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정자에 올라 보면 앞으로 흰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로 이어지는 풍광이 시야에 들어왔다. 월송정에서 내려오는데 다정히 손을 잡고 오르는 연인을 지나쳤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월송정은 울진에 있는 남고와 후포고 여학생들의 미팅장소였다. 미팅이 있던 일요일을 보낸 월요일 아침이면, 누구와 누가 사귀게 되었다는 소문이 교실에 퍼지곤 했다. 정자 주변 소나무 숲에서 한 쌍씩 짝을 지어 제법 숙덕거렸겠다. 졸업 때까지 나에게는 한 번도 기회가 없었던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반짝 떠올랐다.

 

 

 

 

걷다가 마주친 즐거움

 

 

  24코스의 삼분의 이 지점을 통과할 즈음에는 바다에서 떨어진 산중턱으로 길이 나 있었다. 산에 가려서 바람도 불지 않는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내 옆을 지나쳤다. 내내 쌩쌩 달리는 자동차만 나를 지나쳤는데, 이 땡볕에 마침 지나가는 차도 없는 경사진 도로를 함께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 짧은 스침임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에 하마터면 소리칠 뻔 했다. 반가워요! 그 기분을 살려 저만치 멀어지는 뒤통수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날렸다.

 

 

 

 

   해안선을 따라 융기한 암석 주변에서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잡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 따다가 말리려고 널어놓은 청각도 보였다. 몇 년 사이 동해안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오징어 서너 마리를 바다 바람에 널어놓은 건조대도 지났다. 그 풍경들을 지나가면서 파도와 모래만이 아니라 뭔가 잡을 수 있는 그래서 오랜 동안 우리를 먹여 살린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고향집 근처에 바다에서도 여름이면 백합을 캐서 삶고 부치고 구워서 먹곤 했다. 24코스의 종점 기성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이미 바다 속에 들어가 조개를 캐고 있었다. 3만보에 다섯 시간 내내 땡볕을 걷고 난 참이었는데도 바다로 들어갈 마음이라니, 바다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로 나를 부르는 곳이다. 

 

댓글 6
  • 2023-08-07 09:47

    바다 가고 싶다!!!

  • 2023-08-07 14:16

    오징어가 잡히긴 하나보네요. 줄지어 널려있는 모습이 정겹군요. ^^ 근데 뙤약볕 아래 5시간 걷기는 좀 걱정됩니다! 이제 몸도 생각해 가면서~

  • 2023-08-07 22:32

    잔잔한 남해바다만 보고 자란 저에게 동해바다는 처음 봤을 때 참 무섭게 느껴졌는데,
    기린의 바다에는 짭조롬한 이야기가 함께 있네요.

  • 2023-08-11 09:52

    7월 초 속초와 고성으로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고성의 송지호 주변에도 해파랑길이 있더라고요. 포레스트 기린샘께 몇번 들었던 길이어서 나름 친근했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길을 소개해주시며 같이 걷자 이야기를 건네실지 궁금하네요^^

  • 2023-08-12 07:25

    처음 나타난 지도를 보고 저 길을 다 걸었어?하고 놀랄뻔~ㅋㅋ
    바닷가 나란히 서있는 갈매기(맞죠?) 사진 너무 신기해서 다운받았어요.

    해파랑길 걸어보고 싶어요. 저도 반가워요 소리치는 마음 갖고 싶어요 ㅎㅎ
    언제 같이 걷는 기회를 주세요^^

  • 2023-08-15 08:57

    기린샘은 지금도 귀엽지만 중고딩시절엔 더 귀여웠을것 같지 말입니다.ㅎㅎ

    귀여움 플러스....
    땡볕을 걷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패기와 호기가 넘치는군요. ㅎㅎ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기린
2023.12.05 | 조회 371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나는 남산 밑에 자리했던(지금은 안산으로 옮긴)예술대학을 다녔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퍼시픽호텔이 있는 방향으로 나와서 경사진 골목을 올라가면 강의를 듣던 건물이 있었다. 그 골목을 끝까지 올라가면 남산자락으로 통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를 다닐 때 한 번도 골목 끝까지 올라 남산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기도 했고, 주말에는 2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 집만 오가며 보냈던 것 같다. 10월에 날씨 좋을 때 남산 둘레길을 걷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학교를 졸업한지 25년이 흘러갔는데 그 골목은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10월 15일 일요일, 서울 시청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뭔지 모르게 설레었다.   약속장소인 덕수궁 앞에서 먼저 와있던 두 친구를 만났다. 공동체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활동하다 보니 따로  보면 각각 다르지만, 뭉쳐 있으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닮아 보이는 사이가 된 친구들이다. 안으로 들어가 국립현대 미술관 덕수궁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했다. 이름은 처음 듣는 화가였는데, 그림은 달력에서 본 기억이 나는 그림도 있었다. 한 친구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대하는 폼이 참으로 진지해서 전시회의 제목에 걸맞은 관람객이었다. 반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나는 남산 밑에 자리했던(지금은 안산으로 옮긴)예술대학을 다녔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퍼시픽호텔이 있는 방향으로 나와서 경사진 골목을 올라가면 강의를 듣던 건물이 있었다. 그 골목을 끝까지 올라가면 남산자락으로 통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를 다닐 때 한 번도 골목 끝까지 올라 남산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기도 했고, 주말에는 2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 집만 오가며 보냈던 것 같다. 10월에 날씨 좋을 때 남산 둘레길을 걷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학교를 졸업한지 25년이 흘러갔는데 그 골목은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10월 15일 일요일, 서울 시청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뭔지 모르게 설레었다.   약속장소인 덕수궁 앞에서 먼저 와있던 두 친구를 만났다. 공동체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활동하다 보니 따로  보면 각각 다르지만, 뭉쳐 있으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닮아 보이는 사이가 된 친구들이다. 안으로 들어가 국립현대 미술관 덕수궁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했다. 이름은 처음 듣는 화가였는데, 그림은 달력에서 본 기억이 나는 그림도 있었다. 한 친구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대하는 폼이 참으로 진지해서 전시회의 제목에 걸맞은 관람객이었다. 반면,...
기린
2023.11.06 | 조회 417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준비   작년에 이어 올해는 9월 23일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는 소식이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올해 행진에는 소창조각보로 플랭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시청역까지 가면 본집회는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진 2주전, 파지사유 벽면이 하얗게 칠해졌고, 푸른 빛깔로 물들인 커다란 천이 걸렸다. 그 위에 에코실험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창조각보에 메시지를 담아 한 장씩 붙여나갔다. 이번 행진의 슬로건인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던가 문어, 고래, 녹아내리는 빙하도 보였다. 세미나를 하러 온 친구들을 불러다 소창조각을 내밀면 대부분 진지하게 뭔가를 그리거나 썼다. 내가 속해 있는 ‘양생프로젝트세미나’팀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따온 문장들로 조각보를 채웠다. ‘우리는 모두 크리터(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때로는 기계까지 포함하는 잡다한 것들)다’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퇴비다’ 등이었다.      행진 전날, 에코실험실팀이 친구들이 그려준 소창조각보를 떼어내 일일이 이어 시침질을 해서 커다란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망토로 쓸 수 있는 크기와 몇 사람이 펼쳐서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두 개로 완성되었다. 작년 행진 때 종이박스를 재활용해서 각자 만들었던 피켓에 비하면 한...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준비   작년에 이어 올해는 9월 23일에 기후정의행진이 있다는 소식이 공동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올해 행진에는 소창조각보로 플랭카드를 만들자는 제안도 함께였다. 토요일 오전에 세미나를 하고 시청역까지 가면 본집회는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진 2주전, 파지사유 벽면이 하얗게 칠해졌고, 푸른 빛깔로 물들인 커다란 천이 걸렸다. 그 위에 에코실험실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소창조각보에 메시지를 담아 한 장씩 붙여나갔다. 이번 행진의 슬로건인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던가 문어, 고래, 녹아내리는 빙하도 보였다. 세미나를 하러 온 친구들을 불러다 소창조각을 내밀면 대부분 진지하게 뭔가를 그리거나 썼다. 내가 속해 있는 ‘양생프로젝트세미나’팀은 요즘 한창 읽고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책에서 따온 문장들로 조각보를 채웠다. ‘우리는 모두 크리터(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때로는 기계까지 포함하는 잡다한 것들)다’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퇴비다’ 등이었다.      행진 전날, 에코실험실팀이 친구들이 그려준 소창조각보를 떼어내 일일이 이어 시침질을 해서 커다란 플랭카드를 만들었다. 망토로 쓸 수 있는 크기와 몇 사람이 펼쳐서 잡을 수 있는 크기로 두 개로 완성되었다. 작년 행진 때 종이박스를 재활용해서 각자 만들었던 피켓에 비하면 한...
기린
2023.10.06 | 조회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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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1. 한 여름 걷기의 맛     8월 내내 둘레길을 걸을 엄두가 안 나는 무더위가 계속 되었다. 근데 올해 여름이 제일 시원할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 그래도 누가 같이 걷자고 하면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서 경기옛길 영남길 4코스도 걸었고, 서울 둘레길 1코스도 걸을 수 있었다.  이 코스들은 모두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코스였다. 영남길 4코스는 용인 동백 호수 공원에서 석성산 정상을 통과하는 길이고, 서울 둘레길은 수락산 둘레를 걸었다. 그래서 한 여름이라도 숲 속을 통과하는 길이라 정수리로 내리꽂는 땡볕은 피할 수 있었다.    석성산 코스는 정임합목 하우스와 함께 걸었다. 471 미터 고지정도 되지만 동백동쪽 등산로는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경사면의 암벽 길까지 타고 올라야 하는 코스였다. 매일 새벽 아파트 뒤로 난 석성산 산책로를 걷는다는 두 사람은 출발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초입부터 숨이 가팠다. 헉헉대며 올라가자니 온 몸으로 땀이 차올랐다. 뒤처지는 나를 기다려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정상에 올라서니 윗도리가 땀으로 흥건했다. 정상에 얼음이 동동 뜨는 막걸리를 파는 미니 주점이 있었다. 반색하는 나를 보고 무사님이 한 잔 사주었다. 얼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뒷덜미가 시원해졌다....
기린
2023.09.07 | 조회 43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기린
2023.08.06 | 조회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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