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삼살제왕이 이 땅에 내려 오실 제, ...(중략)..... 계백장군 백살신, 관우장군 백살신.....”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 시루떡 앞에서 아래 아(·)자가 나오는 옛 한글로 쓰여 있는 백살기를 읽으신다. 대략 삼십여 분이 걸린다. 어릴 적에는 그 것이 마냥 싫었다. 어서 저 따뜻한 떡을 먹어야 하는데, 할머니 고사(?) 때문에 군침만 삼키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다. 나에게 백설기 떡은 그저 그런 떡이 되었는데, 내 생일날 할머니가 그 백살기를 읽으신다.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며 읽으시는 뒷모습에서 보며, ‘나는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귀신이 있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할머니의 정성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온 것이다. 형제들만의 제사. 우리 집은 이제 방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큰 형님 댁에서 기제사(忌祭祀)로 일 년에 네 번,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어느 해인가 두 분이 성당에 나가신 뒤로는 연미사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또 죄스럽기도 하였다. 특히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신부님의 말씀에 앉았다가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정해진 댓구를 따라해야 하는 미사는 매우 껄끄러웠다. 큰 형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큰 형수님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제사 날에, 우리는(우리집과 작은 형님네) 큰 형님네 아파트 문 앞에서 저녁이 다 될...
“삼살제왕이 이 땅에 내려 오실 제, ...(중략)..... 계백장군 백살신, 관우장군 백살신.....”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 시루떡 앞에서 아래 아(·)자가 나오는 옛 한글로 쓰여 있는 백살기를 읽으신다. 대략 삼십여 분이 걸린다. 어릴 적에는 그 것이 마냥 싫었다. 어서 저 따뜻한 떡을 먹어야 하는데, 할머니 고사(?) 때문에 군침만 삼키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다. 나에게 백설기 떡은 그저 그런 떡이 되었는데, 내 생일날 할머니가 그 백살기를 읽으신다.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며 읽으시는 뒷모습에서 보며, ‘나는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귀신이 있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할머니의 정성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온 것이다. 형제들만의 제사. 우리 집은 이제 방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큰 형님 댁에서 기제사(忌祭祀)로 일 년에 네 번,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어느 해인가 두 분이 성당에 나가신 뒤로는 연미사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또 죄스럽기도 하였다. 특히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신부님의 말씀에 앉았다가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정해진 댓구를 따라해야 하는 미사는 매우 껄끄러웠다. 큰 형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큰 형수님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제사 날에, 우리는(우리집과 작은 형님네) 큰 형님네 아파트 문 앞에서 저녁이 다 될...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탄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다. 살랑 살랑 잉어들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도 있지만,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사람, 속도를 내어 걷는 사람, 경보하는 듯이 걷는 사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집중하며 걷는다. 그 들은 걷는 것이 운동인 듯 하다. 연전에 나도 한 동안 탄천을 걸었다. 마눌님이 허리가 나빠졌는데, 걷는 운동을 해야 한단다. 나의 당뇨수치를 걸고 넘어져서 하는 수 없이 ‘함께’ 걸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걸어 드렸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난 그냥 이유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다. 아니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는 것이 싫다. 목적지를 위하여,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운동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같은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자고로 운동이란 축구, 야구, 탁구, 스키, 마라톤 등등 뭔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몸과 마음사이 한 동안 주말 축구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숨이 차고 헐떡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힘들 때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보면 된다. 몇 년을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점점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소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자기 분수를 넘는 움직임을 하려다가 다치는 것이다. 나도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탄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다. 살랑 살랑 잉어들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도 있지만,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사람, 속도를 내어 걷는 사람, 경보하는 듯이 걷는 사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집중하며 걷는다. 그 들은 걷는 것이 운동인 듯 하다. 연전에 나도 한 동안 탄천을 걸었다. 마눌님이 허리가 나빠졌는데, 걷는 운동을 해야 한단다. 나의 당뇨수치를 걸고 넘어져서 하는 수 없이 ‘함께’ 걸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걸어 드렸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난 그냥 이유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다. 아니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는 것이 싫다. 목적지를 위하여,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운동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같은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자고로 운동이란 축구, 야구, 탁구, 스키, 마라톤 등등 뭔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몸과 마음사이 한 동안 주말 축구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숨이 차고 헐떡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힘들 때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보면 된다. 몇 년을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점점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소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자기 분수를 넘는 움직임을 하려다가 다치는 것이다. 나도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