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 예술 9회]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2024-05-14 11:13
164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1. “왜 이렇게 달라요?”

  <한문이 예술> 수업을 마무리 할 때마다 오늘 배운 한자를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 대부분 한자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난 칸 안에 몇 번 써보는 것 조차 어려워 하는데, 더구나 배운 한자랑 모양이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갑골문으로 잔뜩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는 수업에서 다룬 모습과 다르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업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고대 사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사용하고 만나게 될 한자는 오랜 시간 속에서 의미가 바뀌어온 오늘날의 그것일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어나 문자의 모양과 의미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최근 유행하는 80년대 뉴스 패러디 컨텐츠만 봐도 몇 십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거나 새 단어를 추가한다. 우리나라 말도 몇 십년만에 포괄하는 어휘의 범위나 원래의 의미가 바뀔 바뀔 정도인데, 한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6000년 동안 쓰였다고 하니 그 변화가 얼마나 더 다채로울까! 한자의 경우에는 종이가 없던 시기부터 뼈, 돌, 대나무에 새겨지기 시작해 시기마다 필요에 따라 수 많은 한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바뀐 한자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의문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나도 궁금하다. 한자는 어떤 순간을 맞닥뜨리며 변화했을까?! 하지만 이런 한자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중국 역사의 흐름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생활사나 당대의 기술적 발명 등 함께 살펴야 하는 것이 많아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래서 아이가 한자를 가리키며 “왜 요즘에는 이렇게 쓰여요?”라고 물어보면 여러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가... “오랫동안 쓰다보니까 편하게 쓰려고 이렇게 됐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제대로 얘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슴 록鹿의 변화 과정

 

 

2. 갑골문의 친구들

  앞서 갑골문甲骨文이 거북이 배껍질甲과 소 뼈骨에 새겨넣은 문자文라는 걸 설명한 적이 있다. (링크)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자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 갑골문은 중국의 선진시대(하-상(은)-주나라) 중에서 앞선 하-상(은)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문자로, 이 시기를 대략 기원전 15세기부터 11세기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대는 중국 역사중에서도 아주아주 먼~ 옛날, 신들의 시대라고 여겨질 정도로 오래된 시대다. 워낙 갑골문에 대해 많이 얘기 해서 갑골문이 이 시기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갑골문은 뼈나 껍질에 새겨진 문자 전부를 의미하는 말로, 이 시기에 여러 문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하-상(은)나라 시절에는 갑골문을 가장 많이 사용했는데 점점 나라가 쇠퇴하고 주나라가 떠오르면서 약 기원전 11세기-기원전 3세기에는 여러 문자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상(은)나라 후기부터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어 문명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하게 사물을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상나라 후기 유물을 살펴보면 그 시기에도 이미 엄청난 규모의 쇠붙이를 다룰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주나라 시기에는 이를 넘어서 쇠붙이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붓과 죽간은 주나라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대에는 요즘처럼 쉽고 편리하게 필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필기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조각칼이나 망치와 끌 정도여서 문자를 새기려면 오랜 시간 조각하듯 새겼어야 했다. 그런데 주나라 시기에 붓과 죽간을 만들어 내면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문자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생겼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문자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선진시대의 문자는 어디에 새겨져 있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뼈와 거북이 껍질에의 갑골문 외에도 쇠붙이면 금문金文, 바위면 석문石文, 대나무면 간문簡文(혹은 죽문竹文), 비단이면 백문帛文! 이 중에서 갑골문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다른 문자들도 대부분 불상이나 금동판, 묘지나 토기같은 유물에서 발견되어 그 시기의 현장성을 담고 있다.  

 

 

다위딩(대우정大盂鼎)은 산시(陝西)성 바오지(寶鷄)시 치산(岐山)현에서 출토돼 현재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다위딩 서주(西周) 초기 금문서법(金文書法)의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 연회용 청동기 술잔이다.

 

 

3. 문文에서 서書로

  그러나 이 시기의 한자들은 그저 문文일 뿐, 아직 서書라고 할 수는 없다. 왜일까? 고대에 사용된 한자는 문장구조를 갖추어 사용되기보다는 단어들의 나열이었다. 이를테면 ‘아침에 해가 뜨고 새소리가 들린다.’라는 말을 ‘해(아침이라는 뜻)/새(새소리와 함께 사용)’로 축약한다. 이는 문자를 ‘오랜 시간 새겨야 하는’ 물리적인 한계의 영향이 컸다. 게다가 물체의 경도에 따라서 새겨지는 모양이 모두 달라 통일된 스타일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날 글과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문文은 애초에 사람 몸에 새겨진 무늬에 가까운 문신을 가리키는 문자였다. 書는 필기구를 쥐고 있는 모습을 본따 만들어진 문자다. 새겨진 것은  文, 쓰여진 것은 書! 선진시대의 문자는 각자 다른 곳에 새겨진 것이기에 물체에 따라 ‘-문’으로 나눈 것이다. 

 

  한자의 형태를 문文이 아니라 서書로 구분하기 시작한 건 종이가 발명되어 본격적으로 긴 문장으로 글을 쓰면서 부터다. 물론 죽간에도 문장을 쓸 수 있었지만 종이에 비해서 그 부피나 보관의 용이함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한자에 처음 서체가 만들어진 건 진나라가 중국의 대륙을 통일하면서 부터다. 진나라가 통일하기 전, 중국에는 7개가 넘는 나라가 있었다. 진시황은 이들을 하나로 통일하자마자 도량형을 정비해 강한 왕권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문자를 정리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은 승상(오늘날의 국무총리)이었던 이사李斯에게 진나라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글씨체를 만들라고 명했다. 이사는 이전에 각국에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사용되던 문자를 모두 모아 대전大篆이라 칭하고 이를 다듬고 정제해 새로운 서체인 소전小篆을 만들었다. 이 대전과 소전을 합쳐 전서篆書라고 한다. 10개가 넘는 나라가 모두 한자를 사용했지만 서로 사용하고 있는 의미나 형태가 조금씩 달랐을텐데 이를 한번에 정리해내다니...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후 시간이 지나 한자는 점점 더 쓰기 편리하고 단정한 형태로 정돈된다. 소전으로 한 번 정리된 한자는 진나라 시기에 예서隸書로 더 간략화되고, 500년동안 이 서체가 유지되다가 한나라 후기에 더욱 단정해진 해서楷書가 만들어졌다. 한나라 후기에는 해서뿐만 아니라 한자의 조자 원리를 정리한 『설문해자』가 쓰여지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필기체처럼 흘려쓰는 행서行書, 초서草書도 만들어 졌다. 어디에 문자가 어디에 쓰여졌나보다 문자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정도로 한자 사용이 대중화 되었던 것을 보아 진나라에 한자의 형태를 정리해낸 것이 한자가 안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눈에 보는 서체 변화

 

 

4.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변화하는 한자

  상(은)나라와 주나라의 문자 수준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사상체계가 바뀌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상(은)나라는 국가형식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문자 체계와 강력한 제정일치 사회로서 상당히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해온 문명이었다. 주나라 건국 세력은 이런 상(은)을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운 명분을 만들어 내야 했다. 주나라는 그 명분으로 이전과는 다른 국가이념을 만들어 낸다. 상(은)나라 시절에는 예측 불가능하고 변덕스러운 인격신이었던 帝(제, 상제)를 주술로 달래고 두려워하며 의존하는 수동적인 관습을 유지해야 했는데, 이와 결별하기 위해 천명天命사상을 창안한 것이다. 천명은 인간의 도덕적인 의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으로 주나라 초기에 개발되어 춘추 전국 시대 여러 사상가에 의해 체계적 구조를 갖춘 철학으로 완성된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자백가들이다.

 

  한자는 이렇게 문명 변화와 흐름에 맞춰 모습을 바꾸며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자는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마음 심心은 사랑愛이나 염려念, 미움惡처럼 감정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상나라 시기 갑골문에서 사용되는 心은 단순히 심장이라는 인간의 신체 기관을 의미하는 한자였다. 이를 두고 『한자의 풍경』의 저자 이승훈은 제의적 목적으로 갑골문을 사용하던 상나라 시기에는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시간이 지나 신석기 시대였던 상나라에서 청동기 시대의 주나라 금문에서도 心으로 구성된 글자는 20여 자가 전부였다.

 

  주나라 시기에 중국문화를 꽃피운 촉매觸媒가 된건 이런 사상적인 측면의 변화와 함께 발전된 매체였다. 다양하게 사물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붓과 종이로 빠르게 한자의 사용이 사람들에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천명이 인간의 영역으로 바뀌면서 같은 문자이지만 다른 사상으로서 사용하게 되었고, 제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한자는 서서히 그 성격과 역할이 바뀌어 문자 자체를 다루고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인간 중심의 보편적 사용이 강조되면서 사람들은 감정과 마음이 세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후에 한나라에 쓰인 『설문해자』를 살펴보면 心자를 부수로 하는 한자가 250개가 넘어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 心이 사람들에게 신체기관에서 사람의 감정과 마음의 상징으로 된 것이다. 이렇게 한자를 보면 역사의 흐름과 함께 사람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5. 중국은 왜 아직도 한자를 사용하고 있을까?

  1956년 중국에서는 문맹율을 낮추기 위해 문자개혁위원회를 조직해 아주 간략한 형태의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간체자는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이 취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자는 소리를 담는 한글이나 알파벳보다 효율적인 면에서 현저히 불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간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한자에 담겨있는 섬세한 내용들이 획일화되어 한자의 특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보니 같은 한자 문화권임에도 간체자는 새로운 문자 수준이다. 중국어를 익히려면 기존에 알고 있는 한자가 별로 도움이 안될 정도다. 처음 간체자를 배포할 때도 새로운 문맹을 만드는 일이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사정이 있음에도 한자는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표의문자다. 이집트 상형문자나, 수메르 문자처럼 갑골문과 비슷해보이는 상형문자들이 있었지만 그 끝은 결국 표음문자가 되거나 더 추상화되어 기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한자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주나라가 상나라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자를 채택하지 않고 상나라의 문자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문자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과거의 왕조와 문화적 차별성을 강조하고, 단일 문명권이 지속되는 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그냥 쓴다’라는, 어쩌면 단순하고 특별해 보이지 않은 선택이 이후 몇천 년 동안 중국 문화권이 유지되는 단초가 되었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한자의 미래는 어떨까?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바뀔까? 아니면 종국에는 사라지고 말까? 쉽사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한자가 쓰이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고대의 향취를 담고, 사람들에게 고대의 세계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 참고문헌

『아틀라스 중국사』, 박한제, 김형종, 김병준, 이근명, 이준갑, 사계절

『한자왕국』,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청년사

『한자의 탄생』, 탕누어, 김영사

『한자의 풍경』, 이승훈, 사계절

 

댓글 3
  • 2024-05-14 23:49

    새겨진 것은 文, 쓰여진 것은 書... 처음 알았어요 ^^
    우리가 아는 한자도 고문이라 간자체 섞인 <전습록> 읽으려니 힘들더구만요 ㅋ
    글자하나하나가 문양처럼 생긴 것들도 많은데 한자도 나름 "예술"인듯...

  • 2024-05-16 07:41

    '갑골문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이 은근하고 재밋네요~~은나라가 국가형식을 갖추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런가? ... 좀 더 공부해봐야겠어요.

  • 2024-05-16 08:25

    하여,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는 중국 글자에서 유래했지만 중국글자가 아니고, 우리 조상들의 고어라고 하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타자기로는 쓸수 없는 중국한자가 컴퓨터의 등장으로 쓸수 있게 되었는데, 발음되는대로 알파벳으로 쓰면 나오는 여러 한자 중에서 그 뜻에 맞는 글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더군요.
    동은이의 글을 읽다보니, 간자체가 변한다면(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면) 뭔가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섞인 형태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잘 보았습니다.......

한문이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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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5.14 | 조회 164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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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10 | 조회 21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띠우
2024.04.28 | 조회 207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186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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