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과 장자 6회> 내가 본 진인 이야기

기린
2024-05-10 22:53
217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고요히 타고난 덕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널리 세상과 어울렸지만 세상의 모든 제약을 초탈했습니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듯했지만 무심히 말을 잊은 듯도 했습니다. 『낭송 장자』 179쪽

 

 

    MBC 경남에서 제작한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진주에서 한약업사로 60여 년 동안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했던 김장하 선생님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한약방을 개업한 이후 수익의 대부분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데 전념했다. 가난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 사업에 앞장섰고, ‘형평사운동’(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형평사 기념사업회를 설립 운영했고, 각종 문화 사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는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쉼터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후원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약방운영과 지역사회를 위한 일에 정성을 기울이다 2022년 5월에 약방을 닫으면서 은퇴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었다.

 

 

 

  자신이 한 일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한사코 거절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인생이 세간에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서 간곡하게 권해서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하게 넘겼다. 그 외 선생님 일상의 모습에서는 한 톨의 겉치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많은 재산을 일구었지만 평생 자동차 없이 집에서 한약방까지 걸어서 오가며 사셨다. 외투를 걸치는데 팔이 잘못 들어가 다시 입으려는 장면에서 카메라에 잡힌 안쪽 옷깃이 다 헤져서 그 속으로 팔이 들어갔다. 어느 날 당시 노무현대통령 후보가 예고 없이 방문했을 때도, 담담히 차 한 잔 권할 뿐 별다른 요동도 없었다. 자신의 삶이 굳이 조명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일상 전반에서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고요하게 드러나는 일화였다.

 

모은 재산 대부분을 지역 사회를 위해 쓰게 된 까닭을 물었을 때 선생님은 조금은 어눌한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른 지식으로 모은 것도 아니고,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선생님의 어떤 부득이함이 느껴졌다. 먹고 살려고 배운 일이었는데 문전성시를 이루어 식구들 건사하고도 남을 만큼 돈이 쌓였다. 남의 고통을 빌미삼아서 어쩔 수 없이 얻어진 수익이었다. 그것들이 세상에 널리 쓰였을 때에서야 부득이함의 제약에서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연하게 돈만 밝히는 세상에서, 홀로 우뚝 솟아난 김장하 어른의 풍모에서 다른 세상을 사는 품격이 느껴졌다. 고요히 무심하게 드러나는 진인의 품격이었다.

 

 

2.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진인

 

얼마 후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 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낭송 장자』 188쪽

 

   리 호이나키는 『아미쿠스 모르티스』 에서 남동생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의 남동생 버나드는 TV보는 것을 즐기고, 아내와 쇼핑과 외식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 가끔은 친구들과 푼돈 내기 포커도 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끝없이 말하고 쓰는 호이나키와 달리, 자신의 생각을 거의 말하지 않았던 동생이 1998년 12월 16일에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식도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의사들의 진단으로 화학치료 등의 관례적인 암 치료과정을 밟다가 다음 해 2월에 가서는, 그가 더 이상 의료시스템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편지를 보냈다. 버나드는 편지에서 자신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하느님이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을 넣어줬다.”(74쪽)고 썼다.

 

 

 

   이후 버나드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받아들였다. 동생이 죽음에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이나키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버나드의 몸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호이나키는 처음에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팔다리는 쪼그라들어 주름진 갈대 같았다 ...... 위와 복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깊고 움푹 꺼진 공간이 있었다.”(87쪽) 먹을 욕구까지 완전히 사라져 얼음조각 정도만을 녹여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호이나키는 그를 알아보고 그와 동화되며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곧 “인간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순환, 충만한 순환”(93쪽)이었다. 만약 버나드가 의료시스템에 계속 머물렀다면 깨져버리고 말았을 순환이었다. 그가 첫 편지를 받은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후, 버나드는 자신이 30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예전에는 자여가 병이 들어 곱사등이가 되었다는 위의 문장은 과장이 심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 버나드가 죽음을 경험하는 과정을 접하고 나니 다르게 읽혔다. 창자는 위에 올라붙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아 보이는 것은 몸에 붙은 살들이 다 빠져서 뼈만 남은 상태를 연상시켰다. 그러느라 몸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평온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버나드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면, 자여는 음양(陰陽)의 기(氣)를 통해 도달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버나드의 경험에서 “삶도 좋아할 줄 모르고 죽음도 싫어할 줄 몰라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진인, 자여의 모습이 보였다.

 

 

3. 가난에 쫄지 않는 진인

 

자여와 자상은 친구였습니다.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자 자여는 먹을 것을 싸들고 자상에게 갔습니다. 자상의 집 앞에 이르자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곡을 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상이 거문고를 타면서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라며 힘겹게 읊조리는 소리였습니다.

“자네 소리가 왜 이 지경인가?”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네.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랐겠는가? 하늘은 사심 없이 모두를 덮어 주고 땅도 사심 없이 모두를 실어 주니, 어찌 하늘과 땅이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였겠는가? 나를 이렇게 만든 자를 찾았지만 알 수 없었네. 내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 이것은 운명일세.”  『낭송 장자』 202쪽

 

 

  3년간의 정규직 일을 그만 두고 6개월간 실업 급여를 받게 되었다. 실업급여는 실직한 근로자에게 일정기간 급여를 지급해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도록 돕는 서비스다. 재취업을 위해 취업 교육, 구직을 위한 이력서 제출 등의 활동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기존에 받았던 급여를 기준으로 책정된 금액이 지급된다. 그 중에는 고용보험센터로 직접 출석해서 구직 활동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날이 의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출석일 당일 여유를 두고 센터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센터가 위치한 건물 2층 복도에서 도착한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안내 하는 분이 있었다. 이후로 속속 사람들이 도착했고 머지않아 출석한 사람들로 복도가 빼곡해졌다. 그 밀도가 낯설어지면서 실업한 사람들 틈새에서 내가 한없이 가난하게 느껴졌다.

 

  인문학 공동체에 접속한 이후 꽤 오랫동안 공부도 하고 밥도 해결했던 환경에서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공동체에서 받은 활동비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의 일정 부분을 충당했고, 부족분은 공동체 안의 상호부조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 복도에서 나는 근로자에서 이탈해서 생계가 불안정해진 상태로 규정되었다.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증명해야 급여를 지원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동안 별로 느끼지 못했던 가난이 확 와 닿았다. 그러자 저절로 마음이 쫄리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어 끼니를 이을 수 없는 지경에서 자상은 노래를 불렀다. 부모도 하늘도 땅도 사심으로 그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는가. 고용보험 센터 복도에서 가난과 마주친 순간 나는 마음부터 위축되었다. 노래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닥이고 싶지 않는 무기력을 느꼈다. 자상은 노래인지 곡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읊조림 끝에 이 가난이 운명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어떤 마음의 동요도 일지 않는 상태에서 비롯된 깨달음이 아닐까. 배부름이 기쁨이 아니듯 굶주림도 슬픔이 아닌 것을 깨달은 마음일 때, 비로소 주어진 대로 살 수 있는 운명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지에 따라 마구잡이로 요동치는 마음으로는 좀처럼 터득하기 어려운 이치였다. 자상의 노래로 가난을 대하는 내 마음의 수준은 알게 되었다.

 

 

 

 「대종사」편에서 읽었던 진인은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활활 타는 불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 본 진인을 떠올리자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문장이 다시 읽혔다. 삶에서 직면하는 어떤 순간이 마치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당황하게 될 때, 우리는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다가 일을 그르치게 되기 일쑤다. 그 때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모색하는 사람이 진인이었다.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도 평안하게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 마음이 직면한 가난은 노래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노래에는 삶의 이치를 체득한 담담함이 담겨 있었다. 내가 본 진인의 이야기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어떤 순간이 가능성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곧 양생의 지혜일 것이다.

댓글 9
  • 2024-05-11 07:23

    다시 시작한, 이어지는 장자 탐구를 응원합니다. 홧팅!!

  • 2024-05-11 09:17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진인이 되는 양생의 지혜 넘 잘 읽었습니다!^^

  • 2024-05-11 11:53

    전 장자가 어렵습니다.
    근데 샘 글을 읽으니 조금 친해질 수도 있을 듯한 생각이 드네요. 다음 글도 기다려집니다.^^

  • 2024-05-11 13:07

    기린샘의 깨달음이 점점 깊어가는 것 같네요 ^^
    장자에서 길어낸 양생 이야기 앞으로도 잘 읽을께요~

  • 2024-05-12 15:59

    삶의 이치를 체득한 담담함이 담긴 노래라... 감동적입니다.
    장자와 양생이야기 잘 읽었어요~

  • 2024-05-12 21:01

    잘 읽었습니다~

  • 2024-05-12 23:35

    샘 글을 읽으니 장자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 2024-05-13 09:35

    <어른 김장하> 저도 보았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죠. 아 우리시대에 저런 어른도 있었구나. 참 든든하고 따뜻해졌었는데, 기린샘의 글로 보니 더욱 좋네요.
    고요히 무심하게 드러나는 진인의 품격.....이런 품격의 발 뒷꿈치라도 따라가 보려 노력하며 살아야겠어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24-05-16 07:37

    잘 읽었습니다. 장자, 다시 읽고 싶네요.

한문이예술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1. “왜 이렇게 달라요?”   <한문이 예술> 수업을 마무리 할 때마다 오늘 배운 한자를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 대부분 한자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난 칸 안에 몇 번 써보는 것 조차 어려워 하는데, 더구나 배운 한자랑 모양이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갑골문으로 잔뜩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는 수업에서 다룬 모습과 다르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업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고대 사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사용하고 만나게 될 한자는 오랜 시간 속에서 의미가 바뀌어온 오늘날의 그것일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어나 문자의 모양과 의미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최근 유행하는 80년대 뉴스 패러디 컨텐츠만 봐도 몇 십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거나 새 단어를 추가한다. 우리나라 말도 몇 십년만에 포괄하는 어휘의 범위나 원래의 의미가 바뀔 바뀔 정도인데, 한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6000년 동안 쓰였다고 하니 그 변화가 얼마나 더 다채로울까! 한자의 경우에는 종이가 없던 시기부터 뼈, 돌, 대나무에 새겨지기 시작해 시기마다 필요에 따라 수 많은 한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바뀐 한자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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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5.14 | 조회 164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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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10 | 조회 21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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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4.28 | 조회 207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186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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