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34회] 파괴가 곧 창조다/<도니 다코>(2001)

띠우
2024-03-31 20:01
441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꽤 오랜 시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 이어지는 ‘Wake Up’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는 이층의 방,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일어선 도니는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향한다. 집 밖으로 나와 마주친 것은 토끼탈을 쓴 괴물 프랭크, 그는 도니에게 ‘28일 6시 42분 12초 후면 세상은 멸망한다’고 말한다. 장면이 바뀌고 온 집안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지면서 암전, 다음 날 도니는 동네 골프장에서 깨어났다. 자기 방에는 비행기 엔진이 떨어져 있다. 어젯밤 침대에서 잠을 잤다면 도니는 죽었을 것이다. 원인불명의 사고 앞에서 도니 부모는 고교 동창 중에 프랭크를 떠올린다. 고등학교 졸업 파티 때 사고로 죽었는데, 그때도 세상의 종말 같았다고.

 

다음 무대는 학교다. 진보적인 카렌 선생은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파괴자들>을 수업 시간에 다룬다. 이 작품은 15세의 아이들이 미저리란 사람의 집을 파괴하는 내용을 다룬 13쪽짜리 단편소설이다. 카렌이 이런 파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묻자, 도니는 이렇게 답한다. “파괴는 창조이기 때문이죠··· 그애들은 파괴 후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변화를 원했어요”. <파괴자들>, 소설 속 아이들이 보여주는 방황은 부조리한 세상을 처음 마주한 인간에게 불가피해 보인다.  감독 리처드 켈리(당시 27세)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강렬하게 다가왔고 첫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어떤 것이 파괴됨으로써 생성되는 가능성,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28일 6시 42분 12초 후면, 창조될 세상’에 대한 이야기겠다. 다소 황당무계한 이 영화를 조금 더 따라가 보자.

 

돌고 도는 인생사

 

도니는 토끼 괴물 프랭크를 만날 때마다 일을 저지른다. 두 번째로 만난 날, 도니는 도끼를 들고 학교에 가서 남자 탈의실 수도관을 깨버린다. 학교는 임시 휴업 상태가 되고 이를 계기로 전학 온 그레첸과 가까워진다. 세 번째 만남에서 프랭크는 이런 말을 하였다.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그들은 위험해”. 여기서 ‘그들’은 파머 선생과 짐 커닝햄(감정교육강사)이다. 둘은 세상 모든 문제의 답을 이분법(사랑과 두려움, 긍정과 부정) 안에서 찾는다. 수업 때마다 오직 ‘사랑과 긍정’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그들을 향해 도니는 욕을 하고 비아냥대다 쫓겨난다. 파머와 짐은 영화가 흘러갈수록 자신들이 하는 말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그들은 사랑도 긍정도 없이, 사랑과 긍정이란 말만을 함으로써 자기기만을 저지르고 있었다. 둘 다 어떤 두려움에 빠진 상태로.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야"  귓속말하는 로버타

 

멸망 20일 전, 프랭크에게 “너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어”라는 말을 들은 후 도니는 과학선생으로부터 <시간 여행의 철학>이란 책을 선물받는다. 저자는 로버타 스패로우, 마을에서 ‘죽음의 할머니’라 불리는 존재다. 할머니는 멍한 눈빛으로 집과 길가의 우체통을 오가는데, 그 길을 달리던 자동차들이 그녀를 뒤늦게 발견해 피하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로버타는 그 길에서 만난 도니에게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야”라는 귓속말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로버타가 과거에 갇혀버린 시간 여행자이며, 어떤 변화도 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이 <시간 여행의 철학>인 것이다.

 

<시간 여행의 철학> 속 상황은 도니에게도 일어난다. 가슴에서 물풍선이 흘러나오는 환각을 보고 따라가다가 총을 발견한다. 그레첸과 극장에 갔다가 또 프랭크를 만난 도니, 토끼탈을 벗어버린 프랭크의 눈 한쪽이 푹 패어있다. 잠든 그레첸을 두고 도니는 극장을 나와 (다음날 아동성애자로 밝혀지는) 짐의 집에 불을 지른다. 도니가 벌이는 사건은 점점 쌓여가고,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도니는 도대체 왜 이럴까. 그러나 과거 방화 사건을 저질러 감옥에도 다녀왔다는 이야기 외에 다른 설명은 영화 안에 없었다. 그저 정신과 담당의 서먼에 의해 ‘위협적인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이 되었다’란 설명만 듣는다. 이대로 도니 역시 로버타처럼 자신의 시간여행 속에 갇혀버릴 것인가. 

 

 

<시간 여행의 철학>에 나오는 물풍선

 

인간에게 멸망의 때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혼자 죽는 것,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두려움이다. 인간은 안정적인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틀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로버타가 혼자 죽는 것을 두려워하며 집과 우체통을 오가는 행위와 유사하다. 그 시간 여행을 통해 로버타는 죽음을 유예해 왔다. 또 파머나 짐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어떤 질문에나 같은 답을 하는 모습 역시 자기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말 강력한 충격이나 각성이 오지 않는 한 우리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안정을 추구한다.

 

서먼과의 최면 상담에서 도니는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서먼이 어떻게 시간 여행이 가능하냐고 묻자, 곧 멸망의 때가 오고 하늘이 열릴 것이라는 프랭크의 말을 전한다. 도니는 자신이 저지른 사건들 때문에 곧 경찰에 잡힐 것이고, 프랭크만이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서먼은 두려움에 떨며 울먹이는 도니에게 성심껏 말했다. “하늘이 갑자기 열리면 법도 규칙도 필요 없어, 남는 건 너 자신과 기억뿐이야. 네가 경험한 것과 만나 온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게 종말이라면 그때는 너와 그만이 남는 거야, 나머진 없어.”

 

10월 29일 멸망 1일 전, 하버드에 합격한 누나의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레첸도 오고 누나의 친구인 ‘프랭크도 왔다가 맥주를 사러 갔다’(는 메모가 보였다). 다시 환상이 보이기 시작한 도니는 멸망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이제 멸망까지 6시간 남았다. 도니는 이를 막아보고자 친구들과 로버타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 만난 2인조 강도, 멀리 자동차 불빛이 보이는데 도니는 이번에도 자신은 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차는 우체통을 향해 걷던 로버타를 피하다 그레첸을 치여 죽인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할로윈 코스프레로 토끼탈을 쓴, 맥주를 사러 갔던 ‘프랭크’였다. 총으로 프랭크의 눈을 쏴버리는 도니 다코, 파국이다.

 

도니 다코, 파괴의 날

 

도니는 죽은 그레첸을 차에 태우고 산속 언덕으로 향한다. 멀리 검은 기운들이 보이고 엄마와 여동생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 누나는 사랑하는 프랭크를 잃었다. 이때 들려오는 목소리, “과거로 돌아가서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과 기억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도니는 1988년 10월 2일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그때는 프랭크가 도니를 집 밖으로 불러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 “28일 6시간 42분 12초, 집으로 가”. 도니가 집으로 간다면 비행기 엔진에 맞아 죽을 것이다. 불현듯 첫 장면에서 보여주었던 미소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도니는 계속 사건을 일으키면서도 늘 살아남았다. 그 미소는 반복해서 살아남은 자의 미소였다. 혼자 죽기 싫다는 두려움, 도니는 그 두려움에 잠식된 나머지 살아남는 것만을 목적으로 살고 있었다. 이번에도 도니는 시간 여행에 성공한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할머니, 로버타가 기다리던 편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도니가 로버타에게 쓴 편지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로버타가 기다린 편지의 주인공은 바로 도니였다. “로버타 스패로우, 당신 책을 읽었는데 궁금한 게 많아요··· 차라리 세상이 끝난다면 좋겠어요. 그럼 안심할 수 있을 거에요. 뭔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이 편지에 이어 다시 <파괴자들>이 떠오른다. “파괴는 창조이기 때문이죠··· 그애들은 파괴 후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변화를 원했어요”.

 

세상은 기억과 기록을 반복하며 지탱되어왔다. 만약 매일매일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했다면, 인간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세상에서 진리나 확신으로 굳어지면, 불합리함과 부조리가 생겨난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몇 달 차이로 태어나도 서로의 다름을 느낀다고 하니 말이다. 과거의 상식이 오늘의 부조리가 된다. 그러니 세상은 변화를 거부하고 싶어도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다. 도니처럼 외부 자극에 의해서 혹은 혼자 하는 사유 안에서도 변한다. 문제는 기를 쓰고 변하지 않으려고 무언가를 놓지 않을 때다. 그걸 놓아 버린 날, 똑같은 패턴으로 시간 여행을 반복했던 도니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나 이제 죽을 수 있어~~

 

자신이 아끼던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도니는 혼자 죽는 두려움을 털어낸다. 심지어 죽음을 앞두고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자신이 부여잡았던 두려움을 파괴함으로써 생성될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만약 도니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딴지를 건다면, 이 죽음이 현실이 아닌 머릿속 세계에서 벌어진 비유라고 주장해 보련다). 아마도 이번엔 로버타도 편지를 받을 것이다. 그걸 받은 로버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도니 다코>는 인간이란 존재가 변화에 저항해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변화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 파괴가 곧 창조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말이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댓글 2
  • 2024-04-01 09:26

    스스로 죽기란 참 어렵지만 죽어야 새로워진다는 메세지가 영화속에서도 어렵게 펼쳐지고 있네요. ㅋ 잘 읽었습니다~~

  • 2024-04-13 18:43

    파괴가 곧 창조라는 면에서..
    라는 말이 참 오묘하니 여러생각을 들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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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0 | 조회 143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문장인데, 사람 좋아하는 나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덕(德)이다. 반드시 외롭지 않으려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 문장만으로는 너무 막연해서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소화불량이다. 『장자』의 「덕충부」편에는 덕이 충만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어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다면 덕을 몰라 답답한 나에게 어떤 팁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덕이 충만한 표시는 어떻게 드러날까.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그들의 매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1. 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존하다    형벌을 받아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 숙산무지가 공자를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 공자는 무지의 외형을 보고 이런 몰골이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질책했다. 유가인 공자 입장에서는 형벌로 발목이 잘린 무지가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유가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기기 때문이다. 불효도 모자라 형벌까지 받은 몸이라니 구제불능이 아니냐는 반문이 내포되어 있는 반응이다. 무지는 발을 잃은 후 자신을 깨우칠 새로운 배움을 찾아 왔는데 이렇게 말하다니 실망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안으로 들어오라 권했으나 무지는 그 자리를 떠났다.         신도가도 형벌을 받아서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다. 그가 정나라 재상인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이라는 스승께 배우고 있었는데, 자산은 신도가와 함께 스승의 방에 드나드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문장인데, 사람 좋아하는 나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덕(德)이다. 반드시 외롭지 않으려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 문장만으로는 너무 막연해서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소화불량이다. 『장자』의 「덕충부」편에는 덕이 충만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어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다면 덕을 몰라 답답한 나에게 어떤 팁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덕이 충만한 표시는 어떻게 드러날까.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그들의 매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1. 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존하다    형벌을 받아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 숙산무지가 공자를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 공자는 무지의 외형을 보고 이런 몰골이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질책했다. 유가인 공자 입장에서는 형벌로 발목이 잘린 무지가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유가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기기 때문이다. 불효도 모자라 형벌까지 받은 몸이라니 구제불능이 아니냐는 반문이 내포되어 있는 반응이다. 무지는 발을 잃은 후 자신을 깨우칠 새로운 배움을 찾아 왔는데 이렇게 말하다니 실망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안으로 들어오라 권했으나 무지는 그 자리를 떠났다.         신도가도 형벌을 받아서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다. 그가 정나라 재상인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이라는 스승께 배우고 있었는데, 자산은 신도가와 함께 스승의 방에 드나드는 것이 아무래도...
기린
2024.07.13 | 조회 19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이 글은 2024년 1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텍스트가 현실을 창조하다 『맹자』를 통해 본 고대 중국의 글쓰기     들어가기   “이 책은 정체政體의 이 텍스트적 대역代役, double, 즉 성인과 군주라는 대응적 형상 속에 구체화된 하나의 대역이 부상하는 과정과 그것이 국가 구조에 결속되는 방식을 다룬다.”(17쪽)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 제국으로 가는 글의 여정』(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최정섭 번역, 미토)가 다루는 대상은 한자로 쓰여진 텍스트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자백가의 텍스트나 『시경』, 『주역』, 역사서는 물론이고 행정 법률 문서, 호적부, 청동기 명문이나 묘비문 및 의학서적와 점술서 등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글의 유형들이 국가나 사회에서 어떻게 힘을 발생시키고 또 어떻게 힘을 행사하는지 역사적으로 밝히고 있다.   글은 정치적, 종교적, 지역 영역들을 아우르며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영역을 상호 교차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힘을 갖고 사용되었던 글자는 그것의 정치적 전유술을 통해서 행정 법률 문서나 호적부조차도 정치적으로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위를 주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제1장에서 이뤄진다....
 이 글은 2024년 1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텍스트가 현실을 창조하다 『맹자』를 통해 본 고대 중국의 글쓰기     들어가기   “이 책은 정체政體의 이 텍스트적 대역代役, double, 즉 성인과 군주라는 대응적 형상 속에 구체화된 하나의 대역이 부상하는 과정과 그것이 국가 구조에 결속되는 방식을 다룬다.”(17쪽)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 제국으로 가는 글의 여정』(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최정섭 번역, 미토)가 다루는 대상은 한자로 쓰여진 텍스트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자백가의 텍스트나 『시경』, 『주역』, 역사서는 물론이고 행정 법률 문서, 호적부, 청동기 명문이나 묘비문 및 의학서적와 점술서 등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글의 유형들이 국가나 사회에서 어떻게 힘을 발생시키고 또 어떻게 힘을 행사하는지 역사적으로 밝히고 있다.   글은 정치적, 종교적, 지역 영역들을 아우르며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영역을 상호 교차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힘을 갖고 사용되었던 글자는 그것의 정치적 전유술을 통해서 행정 법률 문서나 호적부조차도 정치적으로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위를 주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제1장에서 이뤄진다....
자작나무
2024.07.07 | 조회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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