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24회] 네오리얼리즘, 어떻게든 존재하기/<무방비 도시(1945)>
띠우
2023-01-04 00:36
492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흑백영화를 보러갔다! 3부작 중 3편
네오리얼리즘, 어떻게든 존재하기
<무방비 도시 Roma, Citt Aperta(1945)>/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
네오리얼리즘 - “배우 없이, 스타 없이, 오직 실제의 삶만!”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네오리얼리즘은 살아 있는 현실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영화 운동이다. 할리우드가 스타시스템이나 스튜디오시스템으로 대작 영화를 만들어가던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은셔츠 영화’와 ‘백색전화 영화’가 퍼져나갔다. 무솔리니를 지지하는 군사조직이 검은 셔츠를 입은 데서 유래한 ‘검은셔츠 영화’는 파시즘 선전용이었다. 또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상류층의 사랑이야기에 백색 전화가 자주 등장해 붙여진 ‘백색전화 영화’는 사람들의 눈을 처참한 현실에서 환상으로 돌려버렸다. 이탈리아는 독일과 달리 영화예술에 관대했지만, 내용을 철저히 검열하고 통제함으로써 지배층이 관리하였다. 차츰 그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 속에서 네오리얼리즘은 출현한다.
네오리얼리즘의 특징은 우선 비전문 배우의 캐스팅이다. 일찍이 소비에트 영화에서 비전문 배우들의 일상연기에 주목했던 젊은 감독들은 궁핍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던 일반인들을 출연시켜 실감나는 장면들을 찍었다. 카메라는 스타가 아닌 민중의 삶을 롱테이크로 바라보았다. 또한 인공조명 대신 자연광을 이용하여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살렸다. 할리우드식 특수효과나 극적 연출을 배제했으며 레지스탕스 정신을 이어받아 대부분의 영화 소재를 사회 문제에서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달려나갔고, 거기에 로베르토 로셀리니도 있었다. 로셀리니는 영화미학을 추구하기보다는 카메라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카메라의 눈에 비친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서부터 그의 영화는 시작된다.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드라마보다 더한 일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였다.
<무방비 도시>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
1906년 로마에서 태어난 로셀리니는 1977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창 젊은 시기에 1,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국제적으로 로마가 무방비도시로 선포된 그 순간에도 그곳에 있었다. 그만큼 로마의 구석구석을 잘 알던 그였기에 엄혹한 독일의 감시하에서도 카메라로 거리를 찍는 것이 가능했다. 로셀리니의 전쟁 3부작 <무방비 도시(1945)>, <전화의 저편(1946)>, <독일 영년(1948)>은 전쟁의 참상을 여러모로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무방비 도시>는 네오리얼리즘의 시초로 자주 이야기되고 있다. 네오리얼리즘은 1950년대 초반까지 불과 십여 년의 움직임이었지만, 훗날 세계영화사에서 누벨바그, 뉴웨이브 등 혁명적 변화의 물결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43년 로마, 무방비 도시
<무방비 도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3년부터 게릴라식으로 찍기 시작해 전쟁이 끝나고 발표되었다. 배경은 독일 점령하의 로마, 아직은 전쟁 상황으로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지도자인 만프레드는 도망자 신세다. 그를 돕는 사람들과 나치에게 밀고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이와 나란히 일상에서는 아이들이 폭약을 설치하거나 암거래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살기 위해 빵을 훔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민족이나 이념, 성별, 계층, 종교를 뛰어넘어 평범한 일상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다양한 층위에서 움직이게 된다. 여기에는 전쟁 속에서 변치 않는 저항 정신과 살기 위해 타락해가는 인물들의 선택을 둘러싼 감독의 복잡한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나의 관심 대상은 인간이다. 나는 언제나 인간을 표현하고자 했고, 그들 내부의 반짝이는 빛을 포착하고자 했다. 요컨대 순수하게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현실 존재가 그것을 에워싼 외부 조건들 속에서 지니는 독특한 현실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 로베르토 로셀리니
당시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레지스탕스는 무려 1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일제 치하에서는 알게 모르게 독립운동에 개입하지 않았겠는가. 로셀리니는 반짝이는 빛을 내던 인간이 외부적인 조건의 변화로 인해 어떤 결정과 행동을 하는지를 멀리서 지켜본다. 예를 들어 레지스탕스인 만프레드는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신념은 끝까지 지키지만,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위축되고 시선은 비관적이다. 살기 위해 타협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만프레드는 경멸당한 여성에 의해 밀고된다. 만프레드를 돕던 프란체스코도 경찰에 잡히고 여주인공 피나도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총살장면은 그대로 영화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순수한 존재로서의 개인들이 그 빛을 반짝이며 살기에는 그들을 둘러싼 외부 조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로셀리니 감독은 실제 있었던 레지스탕스 사건을 가져옴으로써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였다. 나치에게 잡힌 만프레드는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결코 입을 열지 않고 숨을 거둔다. 피에트로 신부도 공개 처형되고, 결국 등장인물 대부분이 죽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이야기였다. 나치는 이탈리아인들을 노예민족으로 취급하며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한 나치의 태도를 보면서 어느 틈에 편협하고 이분법적 태도를 다시 답습하게 된다. 식민 치하에서 저항하다 폭력에 희생된 이탈리아인들에게 감정 이입하며 주관적인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무리를 구분하여 다시 적을 만드는 반복된 행위다.
카메라는 존재하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어느 틈에 우리에게 윤리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 ‘무방비 도시’란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 무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감독이 주요 인물들의 죽음이라는 결말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것일 것이다.
“이 영화는 지금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물러나고 연합국이 오기 전, 로마는 ‘무방비 도시’로 선포되었다. ‘무방비 도시’란 군사시설이나 부대가 없는 상태로, 국제법상으로는 전쟁 중에도 공격이 금지된다. 그러나 나치는 계속 이탈리아인들을 탄압했고 이에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영화 <무방비 도시>는 그야말로 역사의 기록이었다. 로셀리니는 “이 영화는 지금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폐허와 잿더미로 뒤덮여버린 최악의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쟁 자체가 가진 처참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데 힘을 쏟는다. 로셀리니가 직접 목격한 로마의 역사, 바로 그 현실적 토대가 네오리얼리즘이 되었다.
우리 군은 적에게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을, 국민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는 강군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 - 2022년 12월 29일 한겨레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우리나라 대통령의 말이다. 국민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기 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한다는 말을 보며 아이러니와 기괴함을 느낀다. 더불어 새해 첫날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은유나 상징이 아니다. 전쟁은 현실의 삶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고 있다. 네오리얼리즘 운동을 일으켰던 이들은 이렇게 실재하는 현실을 담고자 했었다. 그렇다면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바티니는 이러한 말을 했다.
나는 기이한 인물에 반대한다. 나는 영웅에 반대한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를 느낀다. 나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제외되었다는 모욕감을 느낀다. 우리들 모두가 등장인물이다. 영웅은 관중들에게 열등감을 준다. 이제는 관중들에게 당신들 자신이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말할 시간이다. 그 결과는 책임감과 모든 인간 존재의 위엄에 대한 끊임없는 호소가 될 것이다.
영화 역사에서 최대한 가공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어떠한 의식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아마도 네오리얼리즘이 시작일 것이다. 로셀리니는 모든 인간 존재의 위엄을 앞에 두고 전쟁이라는 현실 자체를 질문한다. 도대체 그것은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다른 상황도 떠오른다. 국민적 재난 앞에서는 다수가 침묵하고,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나선 시위 앞에는 불법이란 딱지가 붙는다. 당면한 과제들 중에 장애인 이동권이 가장 중요하냐 아니냐를 두고 지리멸렬한 논쟁을 벌인다. 과연 이것은 질문이 되는가. 살아가는 존재로서 당연한 일임에도 이동할 권리마저 생존을 건 투쟁이 되어야 하는 오늘이다. 누군가가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그러한 존재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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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전쟁이 도대체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하지만 동시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니 이런 질문의 무기력함도 동시에 떠오릅니다요.
영화 초반, 무거운 주제와 참혹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유머를 잃지 않았던 감독의 태도가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영화 <무방비도시>
아마도 로마에서 태어나고 죽었던 그의 삶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런 삶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유머가 장면으로 담겨 있는 듯했다.
띠우샘의 글을 보면서,
이 댓글을 지금 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광, 비전문배우, 다큐같은 느낌의 연출
네오리얼리즘 영화 한 편 봐야겠어요
청량리가 알려준 중간중간의 유머도 궁금하네요
북한 무인기가 서울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좀 오싹하긴 합니다만
전장연과 화물연대와 노동조합을 향한 총질이 더 끔찍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