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잡식가족의 딜레마> 페스코비건 내적 딜레마

경덕
2022-11-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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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에서 페스코 비건을 선언하고 다음 날. 오전 농활을 마치고 마을 어르신 댁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탁 중앙에 불고기 반찬이 있고 그 주위에 다양한 밑반찬이 놓였다. 국은 추어탕과 미역국 중에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추어탕을 골랐다. (음.. 추어탕은 괜찮지.)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밥 두 공기 뚝딱했다. 근데 나도 모르게 몇 번 불고기로 손이 가서 화들짝..!
 
- 사다리에서 미학 세미나가 있던 날. 우리(우현, 동은, 경덕)는 가는 길에 붕어빵을 사 먹었다. (음.. 붕어빵은 괜찮겠지.)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에서 세미나 책을 읽었다. 나는 이곡라떼를 마셨다. (음, 라떼에 들어가는 우유도 괜찮지.) 이후 머내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동은님이 여기 알밥 엄청 맛있다며 알밥을 시켰다. (음, 알은 괜찮지. ) 나도 알밥을 먹었다. 
 
- 간단히 김밥을 먹으려고 분식집에 들어갔다. 모둠 김밥(참치+치즈)이 눈에 띄었다. 이전에는 여기서 야채만 들어가는 기본김밥을 먹었는데 그날은 왠지 모둠이 땡겼다. (음, 참치와 치즈는 괜찮으니까.)
 
- 어느 뒷풀이 때 누가 맥주 안주로 치킨을 시켰다. 페스코 비건을 하는 중이라고 하니까 옆에 앉은 채식지향인 친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양념치킨 앞에서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사이드로 치즈볼이 같이 왔다. 입이 심심해서 치즈볼을 입에 넣었다. (음, 치즈볼은 치즈니까 괜찮지.)
 
- 돌아보니 자꾸 괜찮지, 괜찮지, 하고 있는데 아주 괜찮지는 않은 기분.. 설마 나, 페스코가 허용하는 동물성 식품(동물성 해산물, 유제품, 동물의 알)을 굳이, 애써, 어쩌면.. 집요하게 고르며 안도하고 있나? (흠..)
 
 
 크림히어로즈 라는 유튜브 계정 영상에서 캡쳐. 채식 잘하는 고양이랍니다ㅎㅎ
댓글 18
  • 2022-11-13 17:20

    뭘 선언하면 그리 되는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2-11-13 17:58

      이것은 선언의 딜레마...............일까요ㅎㅎㅎ

  • 2022-11-13 18:08

    선언한 사람들에게 엄지척 하면서도,
    그래서 선언한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살피게 되고,
    그걸 지키는 지 지켜보는 못된 마음이 들 때도. .
    그래서 선언하지 않는 비겁함도 느껴지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모순을 바라보게 되네요.
    더욱 더 엄지척!!

    • 2022-11-14 12:46

      선언 이후에도 흔들리는 마음, 내 안의 모순을 마주하고 있어요.....ㅠ^^

  • 2022-11-13 19:32

    괜찮아ㅡㅡ
    괜찮아 ㅡㅡ

    경덕님은 뭐를 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군요 ㅋㅋ

    • 2022-11-14 12:49

      ㅋㅋㅋㅋㅋ 엄청 다정하고 사려깊은 '괜찮아'에 힘 얻습니다!

  • 2022-11-13 21:25

    괜찮은거 같은데, 찝찝하고~
    재밌는데, 짠한~
    정말 딜레마가 느껴지는 글이로군요^^

    • 2022-11-14 12:56

      재밌는데 짠한ㅎㅎㅎ 딜레마는 일상 곳곳에 숨어 있더라는 걸 실감하는 중입니다^^

  • 2022-11-13 22:28

    경덕님 속마음이 솔직해서 재미나네요^^
    괜찮겠지?…
    나한테만 관대해지는 저의 모습과 닮았네요~

    • 2022-11-14 13:00

      제 안의 관대한 목소리, 괜찮아 괜찮아.. 근데 너무 관대해지기 전에 이실직고 해보았습니다ㅎㅎ

  • 2022-11-13 22:36

    계속 해가는 경덕님!! 당근 괜찮습니다 ~~~

    • 2022-11-14 15:01

      당근!!ㅎㅎ 저도 이런 저런 딜레마를 끌어 안으며.. 계속 해보겠습니다~~~

  • 2022-11-14 23:52

    저는 채식주의는 아니고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밥을 해주는 사람이라
    뭐는 괜찮지? 뭐도 괜찮지? 라고 묻게 된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괜찮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했는데..
    이제는 괜찮지 않다고 ㅜㅜ
    괜찮지 않은 가지수가 늘어만 가는 듯..
    경덕님도 괜찮지 묻는 것만큼 아마 괜찮지 않은 가지수가 늘고 있는 중일 수도 있어요 ㅎㅎㅎ

    • 2022-11-15 12:44

      물어보면서 밥 해주는 정성에서 이미 감동.....프로젝트 이후에 저는 얼마나 괜찮고 괜찮지 않게 될까요ㅎㅎㅎ

  • 2022-11-15 01:05

    괜찮겠지?괜찮겠지? 라는 자문에 저도 같이 괜찮지~했네요~
    이렇게 많이 알아야 하는구나~~이것까지도? 했어요~~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타자의 절대적인 개입이 되어 있음에도 이렇게 무지 하구나....이런 생각이 들었네요~

    • 2022-11-15 12:51

      매 끼니 고민할 때마다 하나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한꺼번에 배우려면 엄두도 내지 못할텐데, 괜찮을 때도 괜찮지 않을 때도 나름 배우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 2022-11-15 22:14

    늦게 보지만.. 재미나서 댓글 남깁니다. 아무래도 뭐든 초기에는 그렇게 자문하게 되는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중엔 '이게 괜찮은가?'가 아니고 '내가 지금 어떤가?'를 질문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마음이 흐뭇한 쪽으로 긴장없고 홀가분한 쪽으로 결정합니다. 저도 외식이 많아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지금은 조개, 종종 멸치국물.. 인거 알고 먹어요.
    글고... 저도 '비건'이라고 하다가 그러면 종종 쏟아지는 질문과 시선들이 부담이 되어서.. 요새는 '비건 지향'이라고 해요. 그 궁금함도 이해는 됩니다.
    얼마나 궁금한게 많으시겠어요...
    암튼 비건, 락토, 락토 오보, 페스코.. 이런 말들은 자꾸 '그 사람'에게 초점이 가는것 같아서요.
    채식을 지향하면.. 채식지향, 비건을 지향하면 비건지향 .. 그게 나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도와주더라구요.
    저도 페스코로 한참 살았어요. 응원하고 감사합니다. 흔들리면서 공부는 하면서 '그 쪽'으로만 갑시다!!

    • 2022-12-07 01:30

      오 샘, 초보 비건지향인에게 아주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힘이 되는 댓글입니다!!!
      비건 정체성을 자꾸 강조하다 보면 '그 사람'에게 초점이 가는 것 같다는 말씀도 매우 공감이 됩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보면서 긴장없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꾸준히 그쪽으로 가야겠다 싶네요! 말씀 너무 너무 감사드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