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잡식가족의 딜레마> 너무 좋아해서 잘 안되는 것

작은물방울
2022-11-1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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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하고 심심하고 무료하지만 속은 시끄럽다.

사춘기의 아들과의 관계가 매일매일 힘들다.

나의 요가 선생님은 화를 내려놓는 맘을 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내려놓고 싶지만 내려놓을 수 없다.

인생은 왜? 하려 하는 것일 수록 못하게 훼방 놓는 느낌이다.

전학을 온 뒤 몇 가지 안좋은 일을 당하면서 아들에게 더욱 더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녀석은 요즘...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내가 하는 말은 다 쌩가며, 

하는 말이라곤 밥달라는 말뿐이다.

열받는 건 먹는 건 또 열나게 엄청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누가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던가?

그집 아이는 아마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일 것이다.

예전의 말 잘듣던 찬결이는 사라졌다. 이럴꺼면 잘해주지나 말지!!

내가 너무나 관심을 쏟는 것인가 싶어서

니가 알아서 하고 책임지는 방식으로 살아보자고 하니까

그것은 싫단다. 속으로 아직까지 내 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좋아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나는 협상의 천치였다.

자신이 밥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 귀찮은 일을 선택하는 바보가 어디있겠는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다해주는 시녀가 있는데....

오늘도

명상을 하고 호흡을 고르고 물을 마셔가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서론을 지나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찬결이가 말했다. “엄마 이야기 끊어서 미안한데... 내가 알아서 하면 안될까?”

너무나 예의를 갖춘 말에 난 쿨한 부모인척 “그래”라는 한마디만 했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입으로는 뱉을 수 없는 욕이 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요가 선생님은 화를 내면 화가 결국 나에게 돌아와 몸에 마음에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욕을 하고 나면 화가 가라앉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배은망덕, 결초보은, 머리검은 짐승.... 같은 말들이 떠오르면 화는 계속 커졌다.

밖에 나가 걷자 걷자. 

걷다가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와 맥주를 사왔다.

술을 먹다 보니 이놈에게 맘을 쓴게 생각나 계속 화가 났다.

크는 것이려니... 생각해도...

내 맘이 내맘 처럼 안된다.

아무래도 내가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안되나 보다.

댓글 10
  • 2022-11-12 08:12

    찬결모의 찬결사랑이 곳곳에 배어있는 글이네요.
    아이도 엄마도 서로 애정(또는 애증) 하며 자라는 중!!
    티격태격, 티키타카 그러다 훌쩍 커버릴거예요.
    물방울의 “화내려놓기” 잘 되어가길……

  • 2022-11-12 11:17

    ㅋㅋㅋ 이건 잡식가족 이야기 인가? 아닌가?

    근데 왜 이렇게 감동적인거야 ㅡㅡ

    아ㅡㅡ 옆에 있으면 꼭 안아주고 싶어ㅡㅡㅡ

    얼마나 마음이 복잡하면
    노이미지로 표현했을까 ㅠ

    1668219208036.jpg

    • 2022-11-12 11:19

      이 때 찬결이가 준 행복이
      지금의 괴로움을 다 위로해주었으면ㅡㅡㅡ

    • 2022-11-12 12:42

      아우 이뽀!

  • 2022-11-12 11:30

    화를 내면 가라앉는 게 아니라, 돌아와서 내 몸에 쌓인다는 말이, 와 닿네요~
    우린,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기운 내시고, 홀로 어려워 마시길.
    그래도 위안을 삼으세요. 그대는 자식이 하나지만,
    누군 둘이고, 누군 셋이니
    그대는 지나간 시간을 흘려보내겠지만,
    누군 두 번, 누군 세 번 돌아와
    기어코 맞이해야 하는 시간들이라오.
    그러니 너무 힘들어 마시고, 같은 시간을
    슬기롭게 같이 흘려보도록 합시다.

  • 2022-11-12 11:56

    거참...한결이가 어느새.... 가까이 있으면 마음을 자주 나눌텐데..... 혼술은 너무 자주 하지 마시오^^

  • 2022-11-12 12:01

    너무 좋아해서 잘 안되는 것…
    울컥 하네요…

  • 2022-11-12 12:39

    얼굴보고 말로 털어내는 시간을 가집시다~
    술? 안주? 뭐든 준비해둘게요!!! 아자아자
    아들 둘 있는 엄마가

  • 2022-11-13 00:30

    나한테서 나간 화가 다시 나한테 쌓여있다는 말이 나에게로 나아가 나한테 다시 돌아오는 연기적 관점이 생각나는 구려~

    승질 승질..순간 내 입을 다물고..밖으로 향한 물방울 현명스러웠어~~~지나가 보자구~~~난오늘 목꾸멍을 열고 득음을 했다우~흑~

  • 2022-11-13 00:32

    너무 좋아해서 마음처럼 안되는 일.. 딜레마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