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다큐보기 12일차] 어느날 그 길에서

곰곰
2022-07-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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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길에서

황윤 감독 | 다큐멘터리 | 한국 | 97분 | 개봉: 2008.03.27 | 관객: 3,548명

 

 

 

 

최태영, 최천권, 최동기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30개월 동안 지리산 인근 세 가지 유형의 도로(88고속도로, 산업도로, 섬진강변도로) 120킬로미터 구간에서 무려 5,770여 건의 로드킬을 발견했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는 세 사람이 도로에서 야생동물의 사체를 확인하고 사고지점과 유형을 분석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한국 도로가 생긴지는 100년이 지났지만 도로 위에서의 희생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평소에 보고 싶었던 동물들을 길 위에서 만난다며 안타까워한다. 

 

 

 

 

도로 위에서는 동물들이나 그들을 조사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위험천만해 보였다. 질주하는 자동차 바퀴들이 내는 굉음들. 이 소리는 자동차의 둥근 바퀴가 섬뜩한 칼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 누구나 잠재적 살해자라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야생동물의 로드킬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자동차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야생동물의 눈에 비친 가장 위험한 동물,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사람들은 왜 동물들이 도로 위에 올라와서 로드킬을 당하느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도로 길이가 10만 킬로가 넘는다. 1km2에 1km의 도로가 있는 셈. 영화에서는 행동반경이 가장 적은 너구리(1km2이내)를 데리고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데, 그들조차 도로를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야생동물은 살아가기 위해 먹이를 구하고 숨고 잠자는 등의 여러가지 서식지 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도로 밀도에서는, 하나의 단일한 유형에서 살 수 없고 다른 서식지를 찾아야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도로를 넘어야 한다. 일단 도로에 나오면 동물들에게 중앙분리대나 옹벽, 가드레인, 수로 등은 모두 장애물이 된다. 그들은 감옥의 벽에 갇힌 것이나 다름 없고 빠져나갈 길은 없다. 자동차 불빛은 고라니 같은 동물들의 눈을 순간적으로 멀게 만든다....

 

자동차 속도가 시속 50킬로미터 이하만 되어도 예방, 방어 운전이 가능해서 로드킬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속도를 늦춘다고 해서 모두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양서류나 파충류는 크기가 작고 이동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비 온 뒤 섬진강 강변도로에 가면 10미터 구간에서만 100여 마리의 두꺼비 사체를 발견한 적도 있다. (섬진강의 '섬'이 두꺼비 '섬'자) 곤충들은 헤아릴 수도 없다. 특히 대형 차량이 지나가면 주변 바람의 역류가 심하기 때문에 곤충은 물론 새들도 피하지 못하고 희생양이 된다. 

 

로드킬 조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야생동물들이 죽는 집중적 구간이 있고 특별한 원인이 있을 것이니 그로써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 연구자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결과는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도로 전반적인 문제로 드러났다. 한 두가지 원인이 아니었고, 동물마다 각각의 사연과 습성이 있기에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부는 로드킬을 줄이겠다고 생태통로, 유도펜스 등을 설치한다고 한다. 그런데 행동 반경이 넓은 삵만 해도 3-5km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보다 멀리 있는 것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예방책이나 대안을 넘어 이 영화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대지는 원래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이곳을 ‘길’이라 부르고 이들은 이곳을 ‘집’이라 부른다”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야생동물은 수만 년전부터 대지에서 살아온 거주자들이다. 이들은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이동하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도로는 자연의 핏줄을 마디마디 끊어 놓았다.

 

"야생동물이 우리가 관리하거나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지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 

그때 비로소 '길'은 죽음의 장소에서 생명의 장소로 바뀔 수 있다. 

로드킬 연구자 최태영이 동물의 눈을 좀더 유심히 바라보라고 권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실물을 통해서든 영화를 통해서든 동물의 눈을 마주한 사람들은 

핸들을 잡을 때마다 그 눈동자를 조금이나마 의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나희덕 <예술의 주름들> 중

 

한국에는 10만킬로미터가 넘는 자동차 길이 있다. 그런데 한국도로공사는 몇 년 이내에 고속도로를 20만킬로미터까지 건설하고 대부분의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겠다고 한다. 과연 주행시간이 단축되면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단절된 관계가 이어지게 될까? 그리고 길과 대지가 인간의 것이라는 생각이 그 위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체들에게도 두루 온당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때 ‘ 어느날 그 길에서’ 윤리는 시작될 것이다. 

댓글 5
  • 2022-07-22 02:45

    이 영화 극장에서 봤어요. 그 당시에는 '로드 킬'이라는 제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차에 친 삵을 치료해서 먼 곳에 놓아줬는데, 그 삵이 결국 자신이 처음 치었던 도로에서 죽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지난주 설악산에 다녀왔는데 속초까지 2시간반이면 가더군요. 이렇게 빨리 가기 위해 훼손된 산이며 삶의 터전을 잃은 동식물들에 대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두 배나 더 도로를 만든다니...

    • 2022-07-23 20:02

      아 그러셨군요. 관객 3500명 중의 소중한 한 분이셨어요! 저는 개봉한지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네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그 어린 삵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그것도 놀라웠어요. 이름은 '팔팔이'였어요. 구조 후 한 달 넘게 적응 훈련을 해서 방사를 했고 30킬로미터, 도로 12개를 지나 원래 살던 곳으로 용케 찾아 갔는데...  다시 그 자리에서 로드킬을 당했죠. 묘하면서도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였죠. 연구자들의 말처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꼭 교통사고 없는 좋은 초원에서 태어나 행복하길 바래봅니다....

  • 2022-07-22 14:24

    우리가 길이라 부르며 시속 100키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그곳이

    동물님들의 집이라니

    몰랐던 것도 아닌데 다르게 느껴집니다.

    대면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네요 ㅠㅠ

  • 2022-07-23 21:49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로드킬 동물들을 볼때가 있답니다.

    차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마음도 아프고 안타까웠답니다. 동물들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언제까지 도로를 확장할건지...

  • 2022-07-24 23:31

    저는 이 영화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황윤 감독님 모시고 봤어요. 

    도로를 그렇게 많이 건설하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