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의 암 이야기2> 항암'산'을 넘다

문탁
2023-04-18 14:09
176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3기에 걸맞게 나의 암 사이즈는 7.5센티였다.(보통 1,2기는 1,2센티) 게다가 암세포는 왼쪽 림프절까지 많이 침범하였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쇄골조직검사를 하러 갔는데 연세 지긋하신 의사 샘이 초음파를 여러 번 보시더니 조직검사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처음 칭찬을 받았다. 만약 암세포가 쇄골이나 다른 장기까지 옮겨갔으면 4기인데 그것은 끝없는 항암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난 84차까지 항암을 하는 환자를 봤는데 그건 5년 가까이 항암제를 맞았다는 뜻이다. 저절로 감사의 인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검사하는 내내 병원에 있는 의사들에게 내 가슴을 보여줬다. 처음엔 여의사를 찾아 헤매더니 이제 부끄럽다는 생각은 간데없이 아무에게나 즉각즉각 보여줬다. 하루 종일 내가 보시를 하고 다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그게 과연 보시였는지 의심해보라고 했다.

 

 

유방암은 크게 4종류로 나뉜다. 조직검사에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양성과 HER2 양성이 나왔다. 여성호르몬과 HER2유전자로 인해 내 암이 자란다는 뜻이다. 요즘엔 유방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기에 각 원인에 따른 치료법과 새로운 항암제가 많이 나와 있다. 내가 받아야 하는 표준치료는 3주 간격으로 선항암 6차, 수술, 방사선 19차, 후항암 12차로 총 14개월 동안 진행된다. 게다가 5년 동안 호르몬 억제약도 먹어야 한다. 긴 치료이기에 가깝고 좋은 병원의 선택이 제일 중요하다.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가야 하나 본인이 사는 곳에 있는 병원을 가야하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표준치료는 모든 병원이 다 똑같다! 난 가까이 좋은 병원이 있어서 큰 고민이 없었다. 내 생각엔 초기인 경우는 가까운 병원, 3,4기인 경우는 큰 병원이 좋겠다. 큰 병원은 새로운 항암제에 대한 임상실험이 많고, 부작용에 대한 응급처치가 즉각 진행되기 때문이다.

 

 

나처럼 암세포가 크면 독한 항암제로 일단 사이즈를 줄이고 수술을 한다. 모든 과정 중에서 항암이 제일 힘들다. 그래서 ‘항암산을 오른다’고 말한다. 집안어른들의 항암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는 나는 그 과정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리고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어야 항암제로 손상당한 세포들이 다시 잘 자랄 수 있다. 첫 항암은 4병의 약을 8시간 맞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슬픈 일은 몸무게에 따라 항암제 양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비용이 청구된다는 것이다. (난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비쌌게 맞았다 ㅠㅠ) 3주에 한 번씩 항암제를 맞으면 1주일은 거의 죽음이고, 2주째 조금 나아졌다가, 3주째는 몸이 회복된다. 1,2주 때는 정말 먹기가 힘들다. 마치 입덧을 할 때처럼 모든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그나마 친구들이 보내준 물김치와 죽들이 깔깔한 목에 간신히 넘어갔다. 그리고 남편이 매일 만들어 준 쉐이크! 쉐이크는 비싸서 평소에 잘 못 사먹던 고급음료였다. 난 고구마 쉐이크, 딸기 쉐이크, 단호박 쉐이크를 먹으며 버텼다. 쉐이크의 달인이 된 남편은 어느 날 삶은 달걀 쉐이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날 이후 난 쉐이크를 딱 끊었다!

 

 

 

 

 

 

항암제를 맞은 후엔 엄청 많은 종류의 약 꾸러미를 받는다. 부작용 방지약이다. 증상이 오기 전부터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나는 책에 나오는 부작용을 빠짐없이 경험하였다. 구토, 변비, 설사, 구내염, 멈추지 않는 코피, 관절통, 어지러움, 불면증,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손발 저림! 독한 항암약으로 인해 말초신경들이 손상을 많이 받아 밤새 시리고 저려서 잠을 못 잔다. 여름에도 수면양말을 신었다 벗었다 할 정도이다. 첫 항암부터 며칠 후에 어떤 부작용이 오는지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래야 그 다음 차수 항암에서 주기적으로 오는 통증을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불면증과 우울증! 특히 가족들이 다 잠든 밤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통증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울음이 저절로 나온다. 난 원래 우울증과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조증에 가까운) 그런 나도 투병 중에는 우울해졌다. 끝없는 항암통증은 그냥 모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몸이 나아지는 3주차에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탈모! 첫 번째 항암제 투약 후 2주일 안에 머리가 뭉텅뭉텅 빠졌다. 그래서 환우들은 빠지기 시작할 때 머리를 밀곤 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남는 것은 누구나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들 ㅠㅠ) 머리는 단번에 빠지지 않기에 조심해야 한다. 머리를 다 민 후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샤프심이 떨어진다’고 표현하는데 따끔따끔 침대와 옷 속에서 찔러댄다. 인모가발은 몇 백만 원이 넘는데 가격에 비해 만족도는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부분 가발을 여러 개 사서 쓰는 환우들도 많다. 난 머리를 밀지 않았다! 집에서는 비니도 쓰지 않고, 가발도 사지 않고 그냥 ‘골룸’처럼 살았다. 외출 시에는 모자를 쓰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모자 밖으로 빼어내어 마치 환자가 아닌 듯 꾸미고 다녔다. (그러나 그 시절 사진을 보니 탈모인지 누구나 알았을 듯) 평생 샀던 모자보다 더 많은 모자 선물을 받았다. 간혹 모자를 쓰는 걸 잊고 차에서 내려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던 적도 많았다.

 

 

 

남편은 항암산을 잘 넘고 내려온 나에게 말했다. ‘살집이 있었기에 암에 걸렸고 살집이 있었기에 항암을 잘 이겨냈다’라고. 근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이제 가장 재미있었던 ‘수술이야기!’ 다음번에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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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의 암 이야기는, 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한달>에  2022년7월부터 6개월간 연재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홈페이지 <자기돌봄의 기술>에 Re-Play 합니다.

 

 

1편: "우리 엄마 아미래"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0&mod=document

2편: 항암'산'을 넘다 

3편: 수술이 가장 쉬었어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9&mod=document&pageid=1

4편: 방심하면 안 되는 방사선 치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0&mod=document&pageid=1

5편: 돈 많이 든 '재활치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1&mod=document&pageid=1

6편: 사람이 아주 겸손해질 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2&mod=doc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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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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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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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0 | 조회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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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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