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무사
2023-03-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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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3.3.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뻐국뻐국~~ 00하세요. 00~~ "

아침밥이 준비되었음을 뜻하는 기계음이 들려오자 임수가 놀라며 물었다.

"오잉? 저 소리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뭐? 저 소리 첨 들었어? 전기밥솥에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소리잖아. 나는 3년째 듣고 있는데..."

"난 처음듣는 것 같오."

"뭣이라 -.-"

 

2명만 같이 살아도 공동체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2명만 되어도 공동체다." 라고 말한다. 임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말의 찐 의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나는 외동이다. 것두 성 감별 낙태가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 귀하디 귀했던 '무남독녀 외동'. 당연지사 자라오면서 먹는 것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고 옆에서 부대끼는 사람 역시 없었다. 직장 초 특수했던 공동생활을 제외하면 죽~ '혼자' 살아온 셈이다. 그랬으니, 길게는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3년 전 함께 살 결심을 하고 합을 맞춰볼 요량으로 잠시 임수의 숙소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작은 거실 겸 주방이 있고, 방이 2칸인 집이었다. 큰방에서 잠을 자고 공부를 했다. 작은방에는 옷장과 냉장고 등 나머지 짐들이 있었다. 거실에는 2인용 식탁과 이케아 시그니처 의자가 놓여 있던, 아늑한 공간이었다. 혼자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지만, 둘이 지내다보니 나만의 공간이 없음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임수는 '혼자있고 싶을 땐 인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함께 마련한 지금의 주거공간에는 임수의 배려가 눈에 띈다. 거실에는 책장과 테이블이 있다. 맞은편에는 좀 가벼운 독서와 영화 시청에 최적인 1인용 리클라이너(L사, 강추!) 두 개가 놓여 있다. 큰방에는 전용 욕실이 달려 있고, 작은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이 있다. 임수가 쓰는 방이다. 전용 욕실이지만 샤워 공간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내 루틴은 임수의 수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 방에서 임수는 책상, 옷장, 침대를 끌어안고 오밀조밀 살고 있다. 가장 큰방이지만, 또 가구가 가장 많은 방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배치다. 나는 올해 3월 1일 대한백수만세를 외치며 퇴사했다. 앞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나에게 별도의 공부방을 확보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방 2개를 침실과 공부방으로 각각 사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3년 후 쯤엔 임수도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때는 방 배치를 다시 해볼수도 있겠다. 큰방에 기숙사방처럼 침대 2개를 들여놓고 작은방을 하나씩 공부방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생활 공동체의 '업무' 분장

 

요즘들어 공동생활의 민낯은 생활노동의 배분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인 이상도 공동체인만큼 생활노동 배분도 그야말로 '업무' 분장인셈. '난 화장실 청소 하나는 기가막히게 해', '나는 화장실 청소만 빼놓고 잘하는데. 어쩜~'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갓생 종목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천생연분이겠지만, 세상일이 그럴리가!

 

 

합을 맞춰보았던 기간동안 임수는 요리솜씨를 한껏 뽐냈다. 된장콩나물국, 무국, 무나물볶음, 피자토스트, 핫케이크, 각종 파스타, 시금치 프리타타 등 내가 평소 집에서 먹어보지 못하거나 만들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맛볼 수 있었다. 음식만들기를 즐기지 않는 나는 '임수한테 주쉐프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겠어. 흐흐흐' 하며 머릿 속으로 사심 가득한 업무분장을 끝냈더랬다.

 

임수는 주쉐프와 식(물)집사 직분을 맡고 설거지, 기타 주방 관리, 요리 보조 등 부쉐프, 청소, 세탁, 쓰레기 처리 등은 내가 하게 되었다. '좀 기우나?' 싶었지만, 세상만사가 칼로 딱 나눠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먹고사니즘 중 '먹고'에 좀 더 방점을 두자 나머지 문제는 사소하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달려 내려오기는 수월한 법. 그 외 보이지 않는 연결 노동들도 슬금슬금 내 몫으로 흘러내렸고, 점차 임수가 만드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외식이 잦아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증거물 1호

 

요리는 커녕 임수는 점점 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근길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실 테이블 위에 쓰레기(마스크, 핫팩 , 칫솔 포장지 등)를 휙~ 버리고 가기 일쑤고 싱크대 위에는 포장지를 자를 때 썼을 날 벌어진 가위와 비닐 조각, 생약 봉지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굳이 궁금하지 않은 임수의 동선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새 마스크를 쓰고 핫팩을 하나 꺼냈군. 회사 칫솔모가 마모됐나보군. 오늘은 무슨 생약을 드셨나?' 상대적으로 빨리 퇴근한다는 죄(?)로 임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출근길 임수가 벌인 사투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도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말을 꺼내기엔 너무 자잘하여 '그냥 내가 하고 말자'며 정리했지만, 소리없이 역치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나보다. 잔소리는 늘어갔다.(다들 알겠지만, 사실 가족 구성원의 잔소리는 대체로 잔소리가 아니다!!) 몇번이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분리배출 품목과 빨랫감은 베란다에'를 강조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나는 붕괴됐고, 급기야 (톡으로) 폭발했다.

 

"난 임수 당신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 백수 라이프는 당신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한 시간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물론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으니 배분된 것 외에 더 많은 생활노동을 할 수는 있겠죠. 그치만 그것은 내 호의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일들은 10초, 20초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전에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세요."

"죄송해요. 퇴근하고 정리하려고 했는데...할 말이 없네요."

 

'프로성찰러' 임수는 이번에도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에효~ 맘 약해지게...' 그래도 안된다. 변화가 필요하다.

 

사정변경의 원칙

 

민법에는 '사정변경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계약 체결당시의 사회적 사정이 변경되면 계약은 그 구속력을 잃는다는 원칙이다. 다만, 그 사정이라는 것이 ① 계약당시 예상하지 않았던 것 ② 현저한 변경일 것 ③ 계약 당사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실무에서는 계약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 소극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정화와 임수의 관계는 결혼(특정 성별 간의 혼인만 인정한다!)이나 생활동반자(아직 법적 근거가 없다!)와 같은 '법적 계약'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 민법상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는 더더욱 없다. 그렇더라도 예상치못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거나 그 사정이 일방 혹은 쌍방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기존의 생활노동 배분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은 재배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더욱이 우리가 '법적 관계'가 아닌 이상 그 사정에는 더 다양한 상황이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수는, 함께 살기 시작한 즈음에는 반짝 식상 기운이 들어왔었고 직장 일도 그리 바쁘지 않았던 덕분에 잘 먹고 살았었는데, 올초부터는 몰려드는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고 했다. 식상 기운도 식상해진 지금, 임수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일이 잘 풀려서 컨디션 좋은 금요일 저녁에 가끔 파스타를 만드는 정도다. 이마저도 토요일 오전 2023 양생 프로젝트 세미나를 시작하면서는 세미나 준비를 다 하지못했다는 이유로 건너뛰었다. 우리의 먹고사니즘은 이렇게 공부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오픈 포부대로 앎과 삶이 함께 가고 있으니 매우 뿌듯하다.(-.-)

 

그렇다고 주쉐프가 아예 개점휴업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2달에 한 번 정도 채소수프(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 한 달>12월호 '방구석 레시피' 참고)와 멸치볶음* 을 만들어서 두고 두고 먹는 루틴은 유지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음식은 내 소울푸드여서 늘 감사히 맛있게 감탄하며 먹고 있다. 감탄과 감사의 표시는 내 평소의 데시벨이나 반응정도에 비해 유별나게 크고 화려하게 하는 편이다!!)

 

* <멸치볶음> 간단 레시피

잔멸치 300g, 마늘, 들기름, 간장을 넣고 볶아 짭조름하게 만든다. 매일 새벽 산책을 마친 후 갓지은 밥에 들기름 한스푼, 멸치볶음 한스푼을 넣고 비벼 김에 싸서 먹고 있다. 3년 째 먹고 있는데, 질리지 않고 맛있다.

 

희생과 호의 사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한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성 역할의 비대칭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가사노동은 그러한 문제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내가 다니던 극남초 직장의 동료들은 갓 결혼한 남성 후배들에게 설거지나 청소를 대충하는 전략을 귀뜸했다. 아내에게 꾸지람을 듣긴 하지만, 그렇게 대충하고 나면 웬만큼 급하지 않고서야 시키지 않는다며.

 

2022년 뉴워커 X 두잇서베이 공동 설문조사 결과 인포그래픽

 

어쩌다보니, 일을 하는 회사원 임수, 집에 있는 백수 정화에게 배분된 가사노동은 '성별'만 제외한다면 가부장제 안에서의 편향된 성별 분업 구조와 닮아있었다. '정상' 가족과 달리 '성별'의 문제를 비껴간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의 가사노동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걸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상호호혜나 돌봄의 의미를 인용해야 하나? 지금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너어~ 자꾸 이렇게 하면 다음 달 연재에 쓸거야!' 하는 협박? ㅎㅎ

 

함께 산다는 것이, 일방만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된 또는 자발적) 희생이든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역할 분담에 익숙해져서든 간에 말이다. '본투비 가사노동 일잘러'는 없다. 그래야 한다고 여겨져온 사회인식과 이를 가능케한 제도와 규범, 그리고 관심 부족만이 있을 뿐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놀이용 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세워 탑처럼 쌓아 올리는 구조물에서 유래한 말이다. 카드의 두께가 매우 얇고 가운데가 비어있는 엉성한 구조라 무너지기 쉽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나 불안정한 계획 등을 말할 때 쓰인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우리가 겪은 '업무분장' 불균형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정화는 '포커페이스' 유지에 실패했다. '야호~ 더이상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며 사심만 그득했던 나머지 생활노동의 종류와 양, 빈도, 난이도, 소요시간, 우선순위 등을 고려하여 리스트화하지 않았다. 둘째, '있어빌리티'의 함정에 빠졌다. 각자의 역량을 숨김없이 밝히고 '고평가'된 부분이 있다면 거품을 제거했어야 했다. 셋째, '사정변경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았다. 각자의 생애주기, 라이프 일정에 따른 변경가능성, 건강, 감정상태, 기운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재조정하는 유연성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예측과 소통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조율해나가는 '공존의 기술'이 부족했다.

 

"관계는 노동이기도, 함께 살기의 감각,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는 관계노동이 요구된다. 공존의 기술은 타자와 연결되고 서로에게 결속되면서 획득하는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122쪽

 

어떠한 관계든, 그것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정상' 관계든 아니든 간에 찐 다른 인간 두 마리는 사심의 동상이몽 속에 있다. 구체적 돌봄없이 있는 척, 잘하는 척, 위하는 척 포장으로만 세운 '하우스 오브 카드'는 결코 '스위트홈'이라는 허상조차도 될 수 없다.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들은 주말에 가사도우미를 부르거나, '어지르기 대마왕' 황선우 작가가 상대적으로 집안일을 많이 하는 김하나 작가 통장에 추가 비용을 입금하는 것으로 해결하면서, '돈을 쓰라!'고 일갈한다. 돈을 쓰는 방법도 '공존의 기술'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좀 다르게 조율해보고 싶다.

 

 

도량 단위부터 다른 두 인간

 

양간인 임수와 음간인 정화는 도량 단위부터 다르게 받아들인다. 정확한 설명없는 '소금 한 스푼'이 임수한테는 1T이지만, 정화에게는 1t이다. 정화가 삶은 계란의 맛이 밍밍했던 이유가 있었다. 1남1녀인 임수는 늘 2살 터울 오빠와 처절한 음식 쟁탈전을 치뤄왔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통닭 각 1마리씩을 사주시면서부터 그나마 휴전이 유지됐다고. 그래서 임수의 식사 속도는 빠른 편이다. 천천히 오래 먹는 정화에게는 매우 불리한 전선이다. 그래서일까? 이대로는 못먹고 살겠다 싶었는지 내 식사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적자생존' 진화의 법칙이 단기간에 속성으로 몸에 새겨졌다. 이제는 '스페셜' 음식을 먹을 때면 양의 배분에 신경을 쓴다. '정임합목 동물의 왕국'에 잠시나마 찾아온 평화가 반갑다.

 

영국 BBC 방송 <메이팅 게임>

 

(톡으로) 폭발 사건이 있은 이후, '프로성찰러' 임수는 한결 조심하는 모습이다. 쓰레기를 여기 저기 방치하는 것은 확실히 나아졌고, 내 호의를 당연하게 인식하지 않고 감사함을 표현하려 애쓴다. 우리는 서로 참을 수 없는 것, 정말 하기 싫은 것들을 식별해내는 것부터 다시 해보고 있다. 연재가 끝나는 연말 즈음엔 '하우스 오브 카드'가 '하우스 오브 나무' 정도는 되어 있으려나? 우리 하우스 이름에 걸맞게 말이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봄의 정원(feat.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Special Thanks To

이 에피소드를 몸소 만들어 주고, 연재까지 허락해준 임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ㅎㅎ

(우리 임수가 참 품이 넓습니다. 여러분~~!)

 

댓글 12
  • 2023-03-31 01:56

    같이 사는 일은 '치열한' 일이네!! 나도 치열하게 살아야지~

  • 2023-03-31 07:08

    읽는 내내 웃기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건 뭔 일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3-31 09:04

    이 글을 읽는데 어디선가 오디오가 들려오는 듯하네용 ㅋㅋ. 그래도 두 사람 현명하시네요. 불편함을 얘기하고 또 듣기 위해 귀와 마음을 여시잖아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하우스 오브 나무 응원합니다~~~~^^

  • 2023-03-31 09:25

    으하하하하하 너무 웃겨요. 같이 사는 것의 99%는 가사분담 문제죠...! 앞으로도 치열하게 싸우시기를!!

  • 2023-03-31 11:14

    아하하~~~ 제가 일지에 관성있는 사람이라 입 꽉 다물고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잔소리)해" 복화술을 하는 편인데~ㅎㅎ
    연재에 턱하니 저의 만행이 까발려지니 참 부끄럽네요^^;;;; 사실 댓글도 나중에 달려했는데.
    백만 가지 변명 거리가 머릿속에서 풀가동하지만... 사실 맞습니다. 제가 좀 한 번에 치우려고 눈을 꼭 감아요. 안 보이기도 하지만 못 본척하기도 해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거죠. 그래도 반성은 빠른 편이라 빠르게 시정조치합니다. 유통기한이 쫌 짧아서 그렇지만..^^;;
    그래서 늘 정화에게 감사합니다.

    ps. 아.. 저 증거물 1호... 사진을 찍었을 줄이야, 역시 우리집 수사반장^^;;

  • 2023-03-31 11:28

    ㅋㅋㅋㅋㅋㅋ 사진 찍는 무사의 포즈가 루틴의 댓글로 확 떠오름~~~~ ㅋㅋㅋㅋㅋㅋ

  • 2023-03-31 16:34

    사정변경의 원칙이 잘못했네. 죄가 제일 커~~ㅋㅋㅋ

  • 2023-03-31 17:09

    ㅋㅋㅋ 너무 우껴...
    나무 한그루 잘 키우려면, 화창한 봄날만이 아니라, 소쩍새 울고, 천둥번개 치고, 땡볕 이글이글 타오르는 날도 있어야겠쥬~ ㅋㅋㅋ

  • 2023-03-31 23:10

    ㅎㅎㅎ 넘나 재미있네요~봄의 정원도 멋지고요!

    저도 초반에 집에 있는 시간 길다고 집안일 더 한다고 생각하니 화딱지가 나서, 지금은 저 혼자살 때보다는 약~간 더 하는 정도로 불공평하다 느끼지 않는 정도만 해요. 짝꿍 방은 청소기 들어갈 틈도 없어 문 닫고 아예 안 건드림. 저희는 어느 정도 집안일 목록화하는 것은 필요했고, 누가 집안일 하든 그때그때 서로에게 카톡으로라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좋더라고요. 청소기.설거지.빨래 완료! 요래

    아무쪼록 두 분만의 공존의 기술 소통하며 갈고 닦아 나가시며 계속 이야기도 들려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D

  • 2023-04-01 11:00

    일단.. 민법과 증여론까지 읽고 강의하러 나갑니다. ㅋㅋ 너무 재밌어요.

  • 2023-04-05 10:11

    갓지은 밥에 멸치볶음 "비벼'먹는 궁합을 알고 계셨군여! 엄지척!

  • 2023-04-16 16:16

    '너어~ 자꾸 이렇게 하면 다음 달 연재에 쓸거야!' 하는 협박?
    호신용 글쓰기인가요ㅋㅋㅋ 다음 글쓰기에 독자 반응이 중요하겠어요 :]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77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124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기린
2024.04.06 | 조회 18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
경덕
2024.04.02 | 조회 284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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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29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298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06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291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289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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