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무사
2023-03-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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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3.3.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뻐국뻐국~~ 00하세요. 00~~ "

아침밥이 준비되었음을 뜻하는 기계음이 들려오자 임수가 놀라며 물었다.

"오잉? 저 소리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뭐? 저 소리 첨 들었어? 전기밥솥에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소리잖아. 나는 3년째 듣고 있는데..."

"난 처음듣는 것 같오."

"뭣이라 -.-"

 

2명만 같이 살아도 공동체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2명만 되어도 공동체다." 라고 말한다. 임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말의 찐 의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나는 외동이다. 것두 성 감별 낙태가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 귀하디 귀했던 '무남독녀 외동'. 당연지사 자라오면서 먹는 것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고 옆에서 부대끼는 사람 역시 없었다. 직장 초 특수했던 공동생활을 제외하면 죽~ '혼자' 살아온 셈이다. 그랬으니, 길게는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3년 전 함께 살 결심을 하고 합을 맞춰볼 요량으로 잠시 임수의 숙소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작은 거실 겸 주방이 있고, 방이 2칸인 집이었다. 큰방에서 잠을 자고 공부를 했다. 작은방에는 옷장과 냉장고 등 나머지 짐들이 있었다. 거실에는 2인용 식탁과 이케아 시그니처 의자가 놓여 있던, 아늑한 공간이었다. 혼자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지만, 둘이 지내다보니 나만의 공간이 없음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임수는 '혼자있고 싶을 땐 인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함께 마련한 지금의 주거공간에는 임수의 배려가 눈에 띈다. 거실에는 책장과 테이블이 있다. 맞은편에는 좀 가벼운 독서와 영화 시청에 최적인 1인용 리클라이너(L사, 강추!) 두 개가 놓여 있다. 큰방에는 전용 욕실이 달려 있고, 작은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이 있다. 임수가 쓰는 방이다. 전용 욕실이지만 샤워 공간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내 루틴은 임수의 수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 방에서 임수는 책상, 옷장, 침대를 끌어안고 오밀조밀 살고 있다. 가장 큰방이지만, 또 가구가 가장 많은 방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배치다. 나는 올해 3월 1일 대한백수만세를 외치며 퇴사했다. 앞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나에게 별도의 공부방을 확보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방 2개를 침실과 공부방으로 각각 사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3년 후 쯤엔 임수도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때는 방 배치를 다시 해볼수도 있겠다. 큰방에 기숙사방처럼 침대 2개를 들여놓고 작은방을 하나씩 공부방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생활 공동체의 '업무' 분장

 

요즘들어 공동생활의 민낯은 생활노동의 배분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인 이상도 공동체인만큼 생활노동 배분도 그야말로 '업무' 분장인셈. '난 화장실 청소 하나는 기가막히게 해', '나는 화장실 청소만 빼놓고 잘하는데. 어쩜~'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갓생 종목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천생연분이겠지만, 세상일이 그럴리가!

 

 

합을 맞춰보았던 기간동안 임수는 요리솜씨를 한껏 뽐냈다. 된장콩나물국, 무국, 무나물볶음, 피자토스트, 핫케이크, 각종 파스타, 시금치 프리타타 등 내가 평소 집에서 먹어보지 못하거나 만들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맛볼 수 있었다. 음식만들기를 즐기지 않는 나는 '임수한테 주쉐프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겠어. 흐흐흐' 하며 머릿 속으로 사심 가득한 업무분장을 끝냈더랬다.

 

임수는 주쉐프와 식(물)집사 직분을 맡고 설거지, 기타 주방 관리, 요리 보조 등 부쉐프, 청소, 세탁, 쓰레기 처리 등은 내가 하게 되었다. '좀 기우나?' 싶었지만, 세상만사가 칼로 딱 나눠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먹고사니즘 중 '먹고'에 좀 더 방점을 두자 나머지 문제는 사소하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달려 내려오기는 수월한 법. 그 외 보이지 않는 연결 노동들도 슬금슬금 내 몫으로 흘러내렸고, 점차 임수가 만드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외식이 잦아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증거물 1호

 

요리는 커녕 임수는 점점 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근길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실 테이블 위에 쓰레기(마스크, 핫팩 , 칫솔 포장지 등)를 휙~ 버리고 가기 일쑤고 싱크대 위에는 포장지를 자를 때 썼을 날 벌어진 가위와 비닐 조각, 생약 봉지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굳이 궁금하지 않은 임수의 동선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새 마스크를 쓰고 핫팩을 하나 꺼냈군. 회사 칫솔모가 마모됐나보군. 오늘은 무슨 생약을 드셨나?' 상대적으로 빨리 퇴근한다는 죄(?)로 임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출근길 임수가 벌인 사투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도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말을 꺼내기엔 너무 자잘하여 '그냥 내가 하고 말자'며 정리했지만, 소리없이 역치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나보다. 잔소리는 늘어갔다.(다들 알겠지만, 사실 가족 구성원의 잔소리는 대체로 잔소리가 아니다!!) 몇번이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분리배출 품목과 빨랫감은 베란다에'를 강조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나는 붕괴됐고, 급기야 (톡으로) 폭발했다.

 

"난 임수 당신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 백수 라이프는 당신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한 시간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물론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으니 배분된 것 외에 더 많은 생활노동을 할 수는 있겠죠. 그치만 그것은 내 호의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일들은 10초, 20초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전에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세요."

"죄송해요. 퇴근하고 정리하려고 했는데...할 말이 없네요."

 

'프로성찰러' 임수는 이번에도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에효~ 맘 약해지게...' 그래도 안된다. 변화가 필요하다.

 

사정변경의 원칙

 

민법에는 '사정변경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계약 체결당시의 사회적 사정이 변경되면 계약은 그 구속력을 잃는다는 원칙이다. 다만, 그 사정이라는 것이 ① 계약당시 예상하지 않았던 것 ② 현저한 변경일 것 ③ 계약 당사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실무에서는 계약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 소극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정화와 임수의 관계는 결혼(특정 성별 간의 혼인만 인정한다!)이나 생활동반자(아직 법적 근거가 없다!)와 같은 '법적 계약'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 민법상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는 더더욱 없다. 그렇더라도 예상치못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거나 그 사정이 일방 혹은 쌍방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기존의 생활노동 배분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은 재배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더욱이 우리가 '법적 관계'가 아닌 이상 그 사정에는 더 다양한 상황이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수는, 함께 살기 시작한 즈음에는 반짝 식상 기운이 들어왔었고 직장 일도 그리 바쁘지 않았던 덕분에 잘 먹고 살았었는데, 올초부터는 몰려드는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고 했다. 식상 기운도 식상해진 지금, 임수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일이 잘 풀려서 컨디션 좋은 금요일 저녁에 가끔 파스타를 만드는 정도다. 이마저도 토요일 오전 2023 양생 프로젝트 세미나를 시작하면서는 세미나 준비를 다 하지못했다는 이유로 건너뛰었다. 우리의 먹고사니즘은 이렇게 공부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오픈 포부대로 앎과 삶이 함께 가고 있으니 매우 뿌듯하다.(-.-)

 

그렇다고 주쉐프가 아예 개점휴업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2달에 한 번 정도 채소수프(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 한 달>12월호 '방구석 레시피' 참고)와 멸치볶음* 을 만들어서 두고 두고 먹는 루틴은 유지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음식은 내 소울푸드여서 늘 감사히 맛있게 감탄하며 먹고 있다. 감탄과 감사의 표시는 내 평소의 데시벨이나 반응정도에 비해 유별나게 크고 화려하게 하는 편이다!!)

 

* <멸치볶음> 간단 레시피

잔멸치 300g, 마늘, 들기름, 간장을 넣고 볶아 짭조름하게 만든다. 매일 새벽 산책을 마친 후 갓지은 밥에 들기름 한스푼, 멸치볶음 한스푼을 넣고 비벼 김에 싸서 먹고 있다. 3년 째 먹고 있는데, 질리지 않고 맛있다.

 

희생과 호의 사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한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성 역할의 비대칭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가사노동은 그러한 문제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내가 다니던 극남초 직장의 동료들은 갓 결혼한 남성 후배들에게 설거지나 청소를 대충하는 전략을 귀뜸했다. 아내에게 꾸지람을 듣긴 하지만, 그렇게 대충하고 나면 웬만큼 급하지 않고서야 시키지 않는다며.

 

2022년 뉴워커 X 두잇서베이 공동 설문조사 결과 인포그래픽

 

어쩌다보니, 일을 하는 회사원 임수, 집에 있는 백수 정화에게 배분된 가사노동은 '성별'만 제외한다면 가부장제 안에서의 편향된 성별 분업 구조와 닮아있었다. '정상' 가족과 달리 '성별'의 문제를 비껴간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의 가사노동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걸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상호호혜나 돌봄의 의미를 인용해야 하나? 지금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너어~ 자꾸 이렇게 하면 다음 달 연재에 쓸거야!' 하는 협박? ㅎㅎ

 

함께 산다는 것이, 일방만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된 또는 자발적) 희생이든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역할 분담에 익숙해져서든 간에 말이다. '본투비 가사노동 일잘러'는 없다. 그래야 한다고 여겨져온 사회인식과 이를 가능케한 제도와 규범, 그리고 관심 부족만이 있을 뿐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놀이용 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세워 탑처럼 쌓아 올리는 구조물에서 유래한 말이다. 카드의 두께가 매우 얇고 가운데가 비어있는 엉성한 구조라 무너지기 쉽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나 불안정한 계획 등을 말할 때 쓰인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우리가 겪은 '업무분장' 불균형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정화는 '포커페이스' 유지에 실패했다. '야호~ 더이상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며 사심만 그득했던 나머지 생활노동의 종류와 양, 빈도, 난이도, 소요시간, 우선순위 등을 고려하여 리스트화하지 않았다. 둘째, '있어빌리티'의 함정에 빠졌다. 각자의 역량을 숨김없이 밝히고 '고평가'된 부분이 있다면 거품을 제거했어야 했다. 셋째, '사정변경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았다. 각자의 생애주기, 라이프 일정에 따른 변경가능성, 건강, 감정상태, 기운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재조정하는 유연성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예측과 소통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조율해나가는 '공존의 기술'이 부족했다.

 

"관계는 노동이기도, 함께 살기의 감각,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는 관계노동이 요구된다. 공존의 기술은 타자와 연결되고 서로에게 결속되면서 획득하는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122쪽

 

어떠한 관계든, 그것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정상' 관계든 아니든 간에 찐 다른 인간 두 마리는 사심의 동상이몽 속에 있다. 구체적 돌봄없이 있는 척, 잘하는 척, 위하는 척 포장으로만 세운 '하우스 오브 카드'는 결코 '스위트홈'이라는 허상조차도 될 수 없다.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들은 주말에 가사도우미를 부르거나, '어지르기 대마왕' 황선우 작가가 상대적으로 집안일을 많이 하는 김하나 작가 통장에 추가 비용을 입금하는 것으로 해결하면서, '돈을 쓰라!'고 일갈한다. 돈을 쓰는 방법도 '공존의 기술'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좀 다르게 조율해보고 싶다.

 

 

도량 단위부터 다른 두 인간

 

양간인 임수와 음간인 정화는 도량 단위부터 다르게 받아들인다. 정확한 설명없는 '소금 한 스푼'이 임수한테는 1T이지만, 정화에게는 1t이다. 정화가 삶은 계란의 맛이 밍밍했던 이유가 있었다. 1남1녀인 임수는 늘 2살 터울 오빠와 처절한 음식 쟁탈전을 치뤄왔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통닭 각 1마리씩을 사주시면서부터 그나마 휴전이 유지됐다고. 그래서 임수의 식사 속도는 빠른 편이다. 천천히 오래 먹는 정화에게는 매우 불리한 전선이다. 그래서일까? 이대로는 못먹고 살겠다 싶었는지 내 식사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적자생존' 진화의 법칙이 단기간에 속성으로 몸에 새겨졌다. 이제는 '스페셜' 음식을 먹을 때면 양의 배분에 신경을 쓴다. '정임합목 동물의 왕국'에 잠시나마 찾아온 평화가 반갑다.

 

영국 BBC 방송 <메이팅 게임>

 

(톡으로) 폭발 사건이 있은 이후, '프로성찰러' 임수는 한결 조심하는 모습이다. 쓰레기를 여기 저기 방치하는 것은 확실히 나아졌고, 내 호의를 당연하게 인식하지 않고 감사함을 표현하려 애쓴다. 우리는 서로 참을 수 없는 것, 정말 하기 싫은 것들을 식별해내는 것부터 다시 해보고 있다. 연재가 끝나는 연말 즈음엔 '하우스 오브 카드'가 '하우스 오브 나무' 정도는 되어 있으려나? 우리 하우스 이름에 걸맞게 말이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봄의 정원(feat.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Special Thanks To

이 에피소드를 몸소 만들어 주고, 연재까지 허락해준 임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ㅎㅎ

(우리 임수가 참 품이 넓습니다. 여러분~~!)

 

댓글 12
  • 2023-03-31 01:56

    같이 사는 일은 '치열한' 일이네!! 나도 치열하게 살아야지~

  • 2023-03-31 07:08

    읽는 내내 웃기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건 뭔 일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3-31 09:04

    이 글을 읽는데 어디선가 오디오가 들려오는 듯하네용 ㅋㅋ. 그래도 두 사람 현명하시네요. 불편함을 얘기하고 또 듣기 위해 귀와 마음을 여시잖아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하우스 오브 나무 응원합니다~~~~^^

  • 2023-03-31 09:25

    으하하하하하 너무 웃겨요. 같이 사는 것의 99%는 가사분담 문제죠...! 앞으로도 치열하게 싸우시기를!!

  • 2023-03-31 11:14

    아하하~~~ 제가 일지에 관성있는 사람이라 입 꽉 다물고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잔소리)해" 복화술을 하는 편인데~ㅎㅎ
    연재에 턱하니 저의 만행이 까발려지니 참 부끄럽네요^^;;;; 사실 댓글도 나중에 달려했는데.
    백만 가지 변명 거리가 머릿속에서 풀가동하지만... 사실 맞습니다. 제가 좀 한 번에 치우려고 눈을 꼭 감아요. 안 보이기도 하지만 못 본척하기도 해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거죠. 그래도 반성은 빠른 편이라 빠르게 시정조치합니다. 유통기한이 쫌 짧아서 그렇지만..^^;;
    그래서 늘 정화에게 감사합니다.

    ps. 아.. 저 증거물 1호... 사진을 찍었을 줄이야, 역시 우리집 수사반장^^;;

  • 2023-03-31 11:28

    ㅋㅋㅋㅋㅋㅋ 사진 찍는 무사의 포즈가 루틴의 댓글로 확 떠오름~~~~ ㅋㅋㅋㅋㅋㅋ

  • 2023-03-31 16:34

    사정변경의 원칙이 잘못했네. 죄가 제일 커~~ㅋㅋㅋ

  • 2023-03-31 17:09

    ㅋㅋㅋ 너무 우껴...
    나무 한그루 잘 키우려면, 화창한 봄날만이 아니라, 소쩍새 울고, 천둥번개 치고, 땡볕 이글이글 타오르는 날도 있어야겠쥬~ ㅋㅋㅋ

  • 2023-03-31 23:10

    ㅎㅎㅎ 넘나 재미있네요~봄의 정원도 멋지고요!

    저도 초반에 집에 있는 시간 길다고 집안일 더 한다고 생각하니 화딱지가 나서, 지금은 저 혼자살 때보다는 약~간 더 하는 정도로 불공평하다 느끼지 않는 정도만 해요. 짝꿍 방은 청소기 들어갈 틈도 없어 문 닫고 아예 안 건드림. 저희는 어느 정도 집안일 목록화하는 것은 필요했고, 누가 집안일 하든 그때그때 서로에게 카톡으로라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좋더라고요. 청소기.설거지.빨래 완료! 요래

    아무쪼록 두 분만의 공존의 기술 소통하며 갈고 닦아 나가시며 계속 이야기도 들려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D

  • 2023-04-01 11:00

    일단.. 민법과 증여론까지 읽고 강의하러 나갑니다. ㅋㅋ 너무 재밌어요.

  • 2023-04-05 10:11

    갓지은 밥에 멸치볶음 "비벼'먹는 궁합을 알고 계셨군여! 엄지척!

  • 2023-04-16 16:16

    '너어~ 자꾸 이렇게 하면 다음 달 연재에 쓸거야!' 하는 협박?
    호신용 글쓰기인가요ㅋㅋㅋ 다음 글쓰기에 독자 반응이 중요하겠어요 :]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함께 살기, 베이스캠프-되기   2023.5.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잠시 제주에 있다.    여기는 제주다. ​ 여기는 제주다.(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5월 들어 자기배려의 기술 글쓴이들로부터 연재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외침이 들려왔다.(그리고 이는 결코 남일이 아니었다.) 글쓴이들의 탓만도 아니다. 솔직히 5월은 그럴만하지 않은가. 각종 법정(과 대체) 공휴일도 많고,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은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뭘 하거나 어디를 가야할 것만 같은 부담을 준다. 또 노동절(5월 1일)로 문을 열고 세계 금연의 날(5월 31일)로 문을 닫는 아이러니한 달이기도 하다. 진정 금연을 하려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나 하는 잡(JOB)생각이 들게 만든다. 각종 민주화 관련 기억도 행사도 많은 '오월의 사회과학' 달이기도 하다. 이뿐이랴? 여름 초입을 앞두고 늦은 봄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는 조급함도 들게 하니 어찌 바쁘지 않겠는가. 어찌 연재 마감을 맞출 수 있겠는가. 정없게 말이다!     수용성과 휘발성의 땅, 제주 ​ 지난 4월 글쓰기의 기쁨(0.01%)과 슬픔(99.99%)을 나누는 시간에 글감과 아이디어의 속성에 대한 간증이 터져나왔다. "샤워할 때만 반짝 생각났다가 곧바로 물에 쓸려 녹아버리니, 분명 아이디어는 수용성이다."(D씨), "샤워가 끝날...
  함께 살기, 베이스캠프-되기   2023.5.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잠시 제주에 있다.    여기는 제주다. ​ 여기는 제주다.(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5월 들어 자기배려의 기술 글쓴이들로부터 연재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외침이 들려왔다.(그리고 이는 결코 남일이 아니었다.) 글쓴이들의 탓만도 아니다. 솔직히 5월은 그럴만하지 않은가. 각종 법정(과 대체) 공휴일도 많고,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은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뭘 하거나 어디를 가야할 것만 같은 부담을 준다. 또 노동절(5월 1일)로 문을 열고 세계 금연의 날(5월 31일)로 문을 닫는 아이러니한 달이기도 하다. 진정 금연을 하려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나 하는 잡(JOB)생각이 들게 만든다. 각종 민주화 관련 기억도 행사도 많은 '오월의 사회과학' 달이기도 하다. 이뿐이랴? 여름 초입을 앞두고 늦은 봄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는 조급함도 들게 하니 어찌 바쁘지 않겠는가. 어찌 연재 마감을 맞출 수 있겠는가. 정없게 말이다!     수용성과 휘발성의 땅, 제주 ​ 지난 4월 글쓰기의 기쁨(0.01%)과 슬픔(99.99%)을 나누는 시간에 글감과 아이디어의 속성에 대한 간증이 터져나왔다. "샤워할 때만 반짝 생각났다가 곧바로 물에 쓸려 녹아버리니, 분명 아이디어는 수용성이다."(D씨), "샤워가 끝날...
무사 2023.05.31 조회 169
요요의 월간명상
두 개의 돌 정원이 던지는 질문 -료안지의 돌 정원과 고야산 곤고부지의 돌 정원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딸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와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찰 투어. 그 컨셉에 맞게 무리하지 않은 속도로, 그러나 알차게 이곳저곳 탐방을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교토방문이 세 번째였지만 딸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내가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딸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구글맵을 켜고 효율적으로 목적지를 찾고, 궁금한 게 있으면 빠르게 검색하는 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길을 잃는다거나 혹은 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에 내린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던 시절이 갔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빈틈이 있고, 빈틈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침입해 들어왔다. 여행의 맛은 그 빈틈을 향유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료안지의 돌정원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토에서 3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1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돌아와 오사카에서 2박을 하며 하루는 온종일 나라를 둘러보는 코스를 짰다. 교토에는 보아야 할 것들이...
두 개의 돌 정원이 던지는 질문 -료안지의 돌 정원과 고야산 곤고부지의 돌 정원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딸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와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찰 투어. 그 컨셉에 맞게 무리하지 않은 속도로, 그러나 알차게 이곳저곳 탐방을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교토방문이 세 번째였지만 딸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내가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딸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구글맵을 켜고 효율적으로 목적지를 찾고, 궁금한 게 있으면 빠르게 검색하는 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길을 잃는다거나 혹은 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에 내린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던 시절이 갔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빈틈이 있고, 빈틈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침입해 들어왔다. 여행의 맛은 그 빈틈을 향유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료안지의 돌정원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토에서 3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1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돌아와 오사카에서 2박을 하며 하루는 온종일 나라를 둘러보는 코스를 짰다. 교토에는 보아야 할 것들이...
요요 2023.05.22 조회 241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젯밤의 이야기   어제는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초콜렛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는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두 달 전쯤 이사 온 이탈리안이자 독일인이다. 내 윗방에 사는데 내가 늦게 자기 때문에 레오가 얼마나 늦게까지 안 자는지 그의 발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레오는 늦은 밤에 꼭 담배를 한 대씩 피러 나온다. 문을 열어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쇼파 위에서 자고 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레오는 그 고양이와 같이 찍은 셀카를 보여주었다.   나와 레오가 같은 물건을 산다면 나는 설명서를 아예 읽지도 않고 무작정 끼워보는 편인 반면에 레오는 침착하게 읽은 뒤 하나씩 맞춰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겠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평안도, 마음의 평안도 주는 사람이다. 마주친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레오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레오는 약간 피곤하다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요새 나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어떻게 해야 더 머무를 수 있을지. 아니 정말 내가 독일에 머무르고 싶긴 한 건지. 나는 누가 묻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데, 레오에게...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젯밤의 이야기   어제는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초콜렛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는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두 달 전쯤 이사 온 이탈리안이자 독일인이다. 내 윗방에 사는데 내가 늦게 자기 때문에 레오가 얼마나 늦게까지 안 자는지 그의 발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레오는 늦은 밤에 꼭 담배를 한 대씩 피러 나온다. 문을 열어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쇼파 위에서 자고 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레오는 그 고양이와 같이 찍은 셀카를 보여주었다.   나와 레오가 같은 물건을 산다면 나는 설명서를 아예 읽지도 않고 무작정 끼워보는 편인 반면에 레오는 침착하게 읽은 뒤 하나씩 맞춰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겠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평안도, 마음의 평안도 주는 사람이다. 마주친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레오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레오는 약간 피곤하다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요새 나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어떻게 해야 더 머무를 수 있을지. 아니 정말 내가 독일에 머무르고 싶긴 한 건지. 나는 누가 묻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데, 레오에게...
현민 2023.05.17 조회 238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아찔한 동거     어느 날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정체불명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봄 일지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보듬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울음소리는 한 두 명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인원들이 호롤ㄹㄹ- 호롤로ㄹㄹ- 하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쪽에서 무언가 폴짝 뛰는 움직임이 보였다. (헉..!)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무언가가 땅에 납짝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저기요?) 손을 내밀어 꽁무니를 슬쩍 건드리니까, 폴짝!     새벽이생추어리에 개구리가 나타났다. 경칩이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기였다. 올해 경칩은 3월 6일이고 내가 개구리 소리를 들은 날은 3월 9일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지 며칠밖에 안 된 날이었다. 개구리는 특히 겨울잠을 깊이 자는 동물이다. 곰의 경우엔 겨울잠 중간에 깨기도 하는데, 개구리는 심장박동과 호흡이 거의 멎는 가사 상태로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자다가 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는 것이다.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깼다가 갑작스런 추위에 얼어 죽는 개구리가 많다고 한다. 제때 개구리 소리를 듣는 건 점점 귀한 일이 되고 있다.   호롤ㄹㄹ- 호롤로ㄹㄹㄹ- (...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아찔한 동거     어느 날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정체불명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봄 일지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보듬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울음소리는 한 두 명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인원들이 호롤ㄹㄹ- 호롤로ㄹㄹ- 하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쪽에서 무언가 폴짝 뛰는 움직임이 보였다. (헉..!)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무언가가 땅에 납짝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저기요?) 손을 내밀어 꽁무니를 슬쩍 건드리니까, 폴짝!     새벽이생추어리에 개구리가 나타났다. 경칩이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기였다. 올해 경칩은 3월 6일이고 내가 개구리 소리를 들은 날은 3월 9일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지 며칠밖에 안 된 날이었다. 개구리는 특히 겨울잠을 깊이 자는 동물이다. 곰의 경우엔 겨울잠 중간에 깨기도 하는데, 개구리는 심장박동과 호흡이 거의 멎는 가사 상태로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자다가 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는 것이다.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깼다가 갑작스런 추위에 얼어 죽는 개구리가 많다고 한다. 제때 개구리 소리를 듣는 건 점점 귀한 일이 되고 있다.   호롤ㄹㄹ- 호롤로ㄹㄹㄹ- (...
경덕 2023.05.10 조회 300
기린의 걷다보면
'할미꽃'과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희(喜)   올해로 86세가 되신 어머니는 4남매가 모두 경기권에 자리를 잡은 탓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자 별 수 없이 독거노인의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연세가 들수록 점점 거동이 둔해지는 어머니를 보며 그나마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으실 때,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자는 마음이었다. 올해는 평창에 있는 친구의 집을 숙소로 잡아서, 그 근처에 있는 ‘허브나라 정원’을 관람하며 걷는 일정으로 잡았다.       허브나라 정원은 테마별로 세익스피어 가든, 팔레트 가든 등 여러 가든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선 곳은 세익스피어 가든이었는데 주변으로 튜울립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작년 순천만정원에서 온갖 색깔을 뽐내던 튜울립을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다. 어머니도 작년의 튜울립을 올해는 여기서 본다며 좋아하셨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던 남동생이 우리가 어릴 때 고향집에도 화단이 있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는 남동생까지 태어나면 네 명이나 되는 자식을 데리고 더 이상 셋방살이를 할 수는 없어서 빚을 내서 집터를 장만해야했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빚을 갚느라 형편은 쪼들렸지만, 내 집이라 하고 싶은 대로 꽃도 심고 나무도 키웠다고 하셨다. 우리를 키우느라 손끝에 물이 마를 새가 없던 그 시절에도 틈틈이 그 꽃밭을 가꾼 취향은...
'할미꽃'과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희(喜)   올해로 86세가 되신 어머니는 4남매가 모두 경기권에 자리를 잡은 탓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자 별 수 없이 독거노인의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연세가 들수록 점점 거동이 둔해지는 어머니를 보며 그나마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으실 때,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자는 마음이었다. 올해는 평창에 있는 친구의 집을 숙소로 잡아서, 그 근처에 있는 ‘허브나라 정원’을 관람하며 걷는 일정으로 잡았다.       허브나라 정원은 테마별로 세익스피어 가든, 팔레트 가든 등 여러 가든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선 곳은 세익스피어 가든이었는데 주변으로 튜울립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작년 순천만정원에서 온갖 색깔을 뽐내던 튜울립을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다. 어머니도 작년의 튜울립을 올해는 여기서 본다며 좋아하셨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던 남동생이 우리가 어릴 때 고향집에도 화단이 있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는 남동생까지 태어나면 네 명이나 되는 자식을 데리고 더 이상 셋방살이를 할 수는 없어서 빚을 내서 집터를 장만해야했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빚을 갚느라 형편은 쪼들렸지만, 내 집이라 하고 싶은 대로 꽃도 심고 나무도 키웠다고 하셨다. 우리를 키우느라 손끝에 물이 마를 새가 없던 그 시절에도 틈틈이 그 꽃밭을 가꾼 취향은...
기린 2023.05.06 조회 271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몇 년 전부터 파지사유 2층에 아주 예민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은 파지사유에서 나는 작은 소음 즉, 의자 끄는 소리, 가죽 망치 소리에도 힘들어 했다. 그런데 요즘 몇 달 안 내려 와서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그분들이 임신을 하셨단다. 누구는 임신을 해서 신경이 무뎌진 거 아닐까 했지만, 난 그분들이 이제 삼가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꺼라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제일 겸손해질 때가 아이를 가지고 키울 때, 그리고 암환자 중간검사 기다릴 때인 것 같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중간검사를 한다. 재발과 전이가 많은 암이라 온갖 검사를 하루 종일 한다. 한 달 전부터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고 반성모드가 된다. 내가 그날 아이스크림을 왜 먹었을까? 운동을 왜 빼먹었을까? 요즘 고기를 넘 많이 먹은 게 아닐까? 샐러드 안 먹은 거, 잡곡 안 먹은 거 등등 모두 반성할 일 뿐이다.     중간검사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다시 6달,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특별회비를 낸다!) 환우 커뮤니티에 6개월 검진 통과, 1년, 3년, 5년 통과 글들이 올라오면 수십 개의 댓글이 쭈욱 달린다.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그 분들의 히스토리를 검색하고 나와 비슷한 병력을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나도 잘하면...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몇 년 전부터 파지사유 2층에 아주 예민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은 파지사유에서 나는 작은 소음 즉, 의자 끄는 소리, 가죽 망치 소리에도 힘들어 했다. 그런데 요즘 몇 달 안 내려 와서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그분들이 임신을 하셨단다. 누구는 임신을 해서 신경이 무뎌진 거 아닐까 했지만, 난 그분들이 이제 삼가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꺼라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제일 겸손해질 때가 아이를 가지고 키울 때, 그리고 암환자 중간검사 기다릴 때인 것 같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중간검사를 한다. 재발과 전이가 많은 암이라 온갖 검사를 하루 종일 한다. 한 달 전부터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고 반성모드가 된다. 내가 그날 아이스크림을 왜 먹었을까? 운동을 왜 빼먹었을까? 요즘 고기를 넘 많이 먹은 게 아닐까? 샐러드 안 먹은 거, 잡곡 안 먹은 거 등등 모두 반성할 일 뿐이다.     중간검사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다시 6달,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특별회비를 낸다!) 환우 커뮤니티에 6개월 검진 통과, 1년, 3년, 5년 통과 글들이 올라오면 수십 개의 댓글이 쭈욱 달린다.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그 분들의 히스토리를 검색하고 나와 비슷한 병력을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나도 잘하면...
문탁 2023.05.05 조회 190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올해는 양생프로젝트에서 ‘돌봄’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읽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어려운 책을 공부하다보니 계절을 즐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던 아침 산책은 올해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손에 꼽힌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보면 늦게 잠들게 되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계절 감각은 주말에만 즐기게 된다. 그래도 아예 계절감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거실 풍경은 계절감을 충분히 선사해준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2층 단독주택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짙은 어둠을 지나 해가 길어지니 출근하기 전에 거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좁쌀 같던 산수유 꽃은 꽃다발이 되었고 오밀조밀 새하얗게 피었던 살구꽃은 살구로 변신 중이다.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가 신기했는데 힘없이 붉은 잎이 나오더니 파릇한 초록 잎으로 변했다. 산수유나무 위에서 먹이 활동하는 새들의 소리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내 눈높이에서 이루어진다. 나무를 올려보거나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준다. 산수유 꽃이 만개하던 날 안개꽃 다발 속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올해는 양생프로젝트에서 ‘돌봄’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읽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어려운 책을 공부하다보니 계절을 즐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던 아침 산책은 올해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손에 꼽힌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보면 늦게 잠들게 되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계절 감각은 주말에만 즐기게 된다. 그래도 아예 계절감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거실 풍경은 계절감을 충분히 선사해준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2층 단독주택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짙은 어둠을 지나 해가 길어지니 출근하기 전에 거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좁쌀 같던 산수유 꽃은 꽃다발이 되었고 오밀조밀 새하얗게 피었던 살구꽃은 살구로 변신 중이다.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가 신기했는데 힘없이 붉은 잎이 나오더니 파릇한 초록 잎으로 변했다. 산수유나무 위에서 먹이 활동하는 새들의 소리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내 눈높이에서 이루어진다. 나무를 올려보거나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준다. 산수유 꽃이 만개하던 날 안개꽃 다발 속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루틴 2023.04.30 조회 268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똥 냄새, 땅 냄새         냄새 공동체   새벽이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고기 냄새’와 ‘새벽이 냄새’가 동시에 감각되어 혼란스러웠다, 고 지난 글에 적었다. 하지만 새벽이를 만날수록 새벽이 냄새는 n가지 냄새로 확산되었다. 식단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또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냄새라고 딱 구분 짓기 어려운 다양한 냄새를 풍겼다.   새벽이생추어리를 오가며 새벽이 이외의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할수록 새벽이 냄새와 새벽이 아닌 냄새는 마구 섞여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익숙하고 공유된 냄새가 점차 우리 안에 스며들고, 흐르고, 쌓이는 것 같았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비인간 존재들은 서로의 신원을 냄새로 알아볼 수 있을까? 킁킁.. 저기 혹시?)       똥과 부식토학   새벽이생추어리의 냄새들 중에서 새벽이가 갓 배출한 응가 냄새는 꽤 강렬했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응가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을 땐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근데 맡으면 맡을수록 우리의 관계가 점점 더 끈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맡다 보니 또 익숙해졌다. 사람 똥과 비교하면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숨을 참지 않았다. (후-하-, 후-하-)   새벽이는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조금 걷고 뛰다가 일정한 장소에 볼일을 본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똥 냄새, 땅 냄새         냄새 공동체   새벽이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고기 냄새’와 ‘새벽이 냄새’가 동시에 감각되어 혼란스러웠다, 고 지난 글에 적었다. 하지만 새벽이를 만날수록 새벽이 냄새는 n가지 냄새로 확산되었다. 식단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또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냄새라고 딱 구분 짓기 어려운 다양한 냄새를 풍겼다.   새벽이생추어리를 오가며 새벽이 이외의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할수록 새벽이 냄새와 새벽이 아닌 냄새는 마구 섞여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익숙하고 공유된 냄새가 점차 우리 안에 스며들고, 흐르고, 쌓이는 것 같았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비인간 존재들은 서로의 신원을 냄새로 알아볼 수 있을까? 킁킁.. 저기 혹시?)       똥과 부식토학   새벽이생추어리의 냄새들 중에서 새벽이가 갓 배출한 응가 냄새는 꽤 강렬했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응가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을 땐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근데 맡으면 맡을수록 우리의 관계가 점점 더 끈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맡다 보니 또 익숙해졌다. 사람 똥과 비교하면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숨을 참지 않았다. (후-하-, 후-하-)   새벽이는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조금 걷고 뛰다가 일정한 장소에 볼일을 본다....
경덕 2023.04.20 조회 279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1년이 금방 지나갔다. 힘든 일도 금방 잊혀 진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환자 같지 않은 내가 작년 이맘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답! 표적항암과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난 암이 림프절까지 침범하였기에 수술에서 림프절을 40개 넘게 떼어내었다. 림프액은 림프관을 따라 흐르면서 몸의 순환과 균형을 맞추는 일은 한다. 림프액이 잘 흐르지 않아 부종이 올까 늘 조심해야 한다. 일단 왼손으로 5kg 넘는 짐을 들면 안 되고, 압박 스타킹을 왼팔에 끼고 있어야 되고, 림프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 림프절이 부어서 팔이 코끼리 다리처럼 되면 다시 큰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림프절을 보호한다고 왼팔을 안 쓰다 보니, 어느 날 왼쪽 어깨가 굳어 버렸다. 대신 오른쪽 어깨를 많이 쓰다 보니 그 어깨에도 문제가 생겼다. 밤마다 어깨가 아파 울면서 잠을 깼다. 난 재활의학과로 옮겨가 도수치료를 받아야 했다.             도수치료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0분씩 받는다. 한 번에 10만원씩 지불하다보니 돈이 푹푹 들어갔다. 국가에서 암환자라 주던 중증환자 혜택은 (치료비의 5%) 여기서는 없다. 첫 날 치료를 받으며 난 ‘독립투사’는 절대 못 하겠다 생각했다. 고문기구판 같은 곳에 매달려서 협착된 근육조직을 뜯어내는 것은 너무 아팠다. 신음과 고함을 지르는 고문을 자발적으로 받으러 가야했다. 치료사는 매일 팔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 주에 해야...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1년이 금방 지나갔다. 힘든 일도 금방 잊혀 진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환자 같지 않은 내가 작년 이맘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답! 표적항암과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난 암이 림프절까지 침범하였기에 수술에서 림프절을 40개 넘게 떼어내었다. 림프액은 림프관을 따라 흐르면서 몸의 순환과 균형을 맞추는 일은 한다. 림프액이 잘 흐르지 않아 부종이 올까 늘 조심해야 한다. 일단 왼손으로 5kg 넘는 짐을 들면 안 되고, 압박 스타킹을 왼팔에 끼고 있어야 되고, 림프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 림프절이 부어서 팔이 코끼리 다리처럼 되면 다시 큰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림프절을 보호한다고 왼팔을 안 쓰다 보니, 어느 날 왼쪽 어깨가 굳어 버렸다. 대신 오른쪽 어깨를 많이 쓰다 보니 그 어깨에도 문제가 생겼다. 밤마다 어깨가 아파 울면서 잠을 깼다. 난 재활의학과로 옮겨가 도수치료를 받아야 했다.             도수치료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0분씩 받는다. 한 번에 10만원씩 지불하다보니 돈이 푹푹 들어갔다. 국가에서 암환자라 주던 중증환자 혜택은 (치료비의 5%) 여기서는 없다. 첫 날 치료를 받으며 난 ‘독립투사’는 절대 못 하겠다 생각했다. 고문기구판 같은 곳에 매달려서 협착된 근육조직을 뜯어내는 것은 너무 아팠다. 신음과 고함을 지르는 고문을 자발적으로 받으러 가야했다. 치료사는 매일 팔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 주에 해야...
문탁 2023.04.19 조회 83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문탁 2023.04.19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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