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침묵과 명상의 열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요요
2023-03-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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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집중명상은 단기 출가와 같다

 

2월에 열흘 간의 집중명상을 다녀왔다.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대면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집중명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사이에 아픈 어머니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고, 4주마다 돌아오는 일주일의 아버지 돌봄 일정으로 인해 집중 명상에 참여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작년 가을에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후 불현듯 지금이야말로 반드시 집중 명상을 다녀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맞닥뜨린 늙음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물음을 수행과 연결시키고 싶었다. 또 지난 4년간 꾸준히 명상을 해 오기는 했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싶기도 했다.

 

잠시나마 번다한 일상을 멀리하고 오직 수행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집중명상은 단기 출가와도 같다. 명상센터에 있는 동안은 핸드폰과 전자기기 등을 소지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펜이나 노트와 같은 필기도구, 책과 같은 읽을거리도 금지된다. 온전히 수행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식사는 채식을 하고, 오전에만 밥을 먹는 오후 불식을 엄격히 지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묵언이다. 침묵함으로써 거짓말, 과장된 말, 비방하는 말 등과 같은 구업(口業)을 짓지 않고, 말로 인해 생겨나는 번뇌를 예방함으로써 수행에 집중할 수 있다. 남녀 수행자가 엄격히 분리된 생활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하루 일과는 4시 반에 새벽 수행이 시작되고, 저녁 9시에 저녁 수행이 끝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9시 반에 잠자리에 드는 셈이다.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0시간 정도 명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이번에 참가한 명상센터는 묵언을 철저히 지켜서 더 좋았다.^^)

 

                                담마코리아 명상센터(진안)                                                 

 

 

호흡관찰에서 감각(느낌)의 알아차림으로

 

10일의 집중명상, 아니 정확히 말해서 11박 12일의 프로그램은 아주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었다. 첫 번째 사흘은 위빠사나에 입문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호흡 관찰을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를 알아차릴 수 있게 돕고, 감각(느낌)의 관찰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해온 방법보다 집중력과 관찰력이 훨씬 예리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전체를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할 때는 거친 감각(가려움이나 열기, 저림 등)을 느끼는 것과 달리, 들숨 날숨이 오가는 코주위로 관찰대상을 제한하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명상방법을 바꾸려니 약간의 저항감도 있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명상은 신비체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 연습하고 훈련하면 누구나 집중력과 관찰력을 키울 수 있다. 코끝에서 들숨과 날숨의 온도차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것은 열흘의 수행 중에서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흘 동안 호흡과 감각을 관찰하는 힘을 키운 뒤 나흘째부터 본격적인 위빠사나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끝에서 느낀 미세한 감각을 몸 전체에서 느낄 수 있게 관찰력을 예리하게 하는 연습과 훈련을 하루, 이틀, 사흘…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금씩 나누어서 어떤 감각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면서 거친 감각으로부터 미세한 감각으로 알아차림을 예리하게 갈고 닦는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에 있지 않다. ‘일어난 것은 사라진다’, 다시 말해 ‘감각은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하고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괴로움에도 즐거움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통증, 가려움, 마비 같은 거친 감각을 느끼면 괴롭다. 반면 미세한 진동을 느끼면 펀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괴로운 감각을 멀리하고 즐거운 감각을 즐기는 것은 명상의 목표가 아니다. 괴롭든 즐겁든 거친 감각이든 미세한 감각이든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각의 변화를 알아차림으로써 무상의 지혜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평정심을 키운다.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바로미터는 평정심이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자비명상

 

하루 종일 명상을 하다보면 아주 작은 차이라도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떨 때는 반복이 지루하다는 느낌, 싫다는 느낌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앉아 있으려니 처음 며칠은 몸이 매우 고달팠다. 그때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수행도 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루는 자려고 누워 눈을 감았는데 당최 눈앞이 훤하기만 할 뿐 어두워지질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눈에 무슨 탈이 났나? 명상 와서 몸과 마음에 거듭 새긴 것이 무상(無常)이었기 때문에 주문처럼 무상을 떠올리며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서 멀쩡하다는 걸 알고 한시름 놓는 코미디 같은 일도 있었다. (집중하다보면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고 한다.) 어느날은 몸이 파동으로 변하여 몸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혹시 내 상상력이 이런 느낌을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다. 명상을 지도하는 분은 ‘평정을 유지하며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라’고 할 뿐이었다. 하루 종일 밥먹고 방석에 앉아 있는 열흘이었지만 매일매일이 놀랍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한 변화무쌍한 나날이었다.

 

집중명상의 피날레는 자비명상을 배우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는 『숫타니파타』의 「자애경」을 읽을 때마다 자비와 기쁨과 평정의 마음을 기르는 사무량심(四無量心) 수행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이런저런 명상 매뉴얼을 보고 따라하기도 했지만 읽은 대로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날에 이르러서야 자비명상이 어떤 특별한 명상이라기 보다는 수행의 공덕을 다른 존재를 향해 되돌리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회향廻向이라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된 덕분에 이제는 매일 하는 명상을 다른 존재의 행복과  평화를 서원하는 자비명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상의 공부와 수행은 계속된다

 

오래전 집중명상을 마치고 수행처를 나서자마자 가라앉은 줄 알았던 번뇌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난 몇 년간 매일 아침 명상방석에 앉은 덕분일까, 아니면 불교공부로 마음의 힘을 키웠기 때문일까. 열흘 집중명상의 효과일까.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일은 겪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고요했다. 그러나 일상의 중력은 짧은 열흘 명상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나고 조금씩 마음의 동요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마음의 출렁거림이 일어날 때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고, ‘나와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무상과 무아가 단지 지적인 이해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깨어있는 앎이 되려면 몸과 마음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알게 모르게 축적된 어떤 습관과 경향성에 따라 움직인다. 명상은 관찰과 알아차림을 통해 바로 그런 습관과 경향성으로 반응하는 몸과 마음을 바꾸어내려는 것이다.

 

이번에 집중명상을 다녀오면서 생각한 게 있다. 불교학교에서 일상의 수행에 대해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음.. 잘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고 친구들이 뭐라 하는지 보면서 과연 가능할지 어떨지 생각해보려 한다.^^

 

 

댓글 9
  • 2023-03-11 09:21

    일상의 중력은 힘이 셉니다.
    일탈의 유혹도 힘이 세구요.

    전 98.745% 넘어갔습니다. ㅎㅎㅎ

    우리 모두, 성불합시다~

    저는 로봇이 아닙니다. ㅋㅋㅋ

  • 2023-03-11 09:44

    전 명상 배우고 싶어요~~ 100% 이미 넘어가 있음요! ㅋ
    소중한 수행 체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3-03-11 12:55

    저도 넘어갔죠
    잘할수 있을지는 자신없지만
    늘 배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3-03-11 15:59

      요요님의 글들에서
      제 명상의 방향을 얻어갑니다.
      고맙습니다.^^

  • 2023-03-11 15:52

    저도! 요요샘 글을 읽으며 명상이 궁금합니다^^

  • 2023-03-11 17:48

    “괴롭든 즐겁든 거친 감각이든 미세한 감각이든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텍스트로만 읽었던 무상과 명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네요 🙂

    일상의 중력의 힘은 쎄다라는 말이 넘 와닿아요! 일상을 수행처로 삼아야한다는 말을 스님 유튜브에서 자주 들었는데. 또 단기 명상도 가보고 싶네요.

  • 2023-03-12 15:11

    명상은 정적이면서도 무척 다이나믹한 수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못견디고 중간에 퇴소하는 사람도 꽤 있다던데 잘 마치고 돌아셔서 기쁩니다! 일상의 수행에 대한 대화도 기대됩니다^^

  • 2023-03-13 08:41

    저는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새벽산행을 시작했었는데요. 해가 뜨지않는 산기슭이 정말 무섭거든요. 무사샘하고 같이 가는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근데 조금만 지나면 해가 살짝 드리워지면서 그 무서움의 금세 사라진다는 걸 알았어요. 두려움의 감정이 그리 오래가지않는 다는걸 알았죠. 평소에도 한번씩 두려운 감정에 휩싸이곤 하는데 이 무상의 감각을 잊지말자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일상의 중력은 쎕니다. 일상에서는 기억이 잘 안나요~ㅎㅎ
    요요샘 글을 보며 무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 2023-03-21 11:13

    무상의 지혜가 절실한 요즘입니다.
    명상 함께하고 싶어요!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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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93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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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91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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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34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5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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