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은영들, 물소리길을 걷다

기린
2023-03-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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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들, 물소리길을 걷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수에 나선 물소리길

 

 대동강 물도 녹으며 봄이 온다는 우수(雨水)다. 물소리길의 강물도 다 녹았을까. 그래서 양평 물소리길을 골랐다. 양평 주변을 흐르는 강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인데 총 여섯 개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고, 경의중앙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재작년 1월에 걸었을 때는 혼자였는데 이번에는 동행을 찾았다. 인문약방 프로그램 <일욜엔양생>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은영님, 나와 이름이 같다.

 

죽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해서 아신역까지 두 시간, 검색은 그랬다. 하지만 실제 경의중앙선은 지나가는 기차를 보낸다고 5분씩 대기하는 역이 몇 개나 되었다. 30분 지각,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은영님을 만났다. 우수라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아신역을 나서니 부슬부슬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비오다 오후 맑음이란 일기예보에 우산은 챙겼다. 둘레길에 들어서니 우산을 든 손이 시렸다. 장갑은 안 챙겼다. 방수가 되는 등산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낀 은영님은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같이 세미나를 했을 때도 누가 뭔가 필요해서 찾는가 하면 어느 새 챙겨 내놓던 은영님이었다. 그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좀 신기했다.

 

 

<은영님도 나도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 뒷모습이 나오도록 한 컷 찍었다>

 

 물소리길 3코스는 아신리 마을을 거쳐 옥천면을 통과하면서 남한강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재작년에 걸어봤던 길이라 좀 익숙하게 느껴졌다. 은영님이 같은 계절에 왔던 길을 또 걷는 까닭을 물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누구라도 같이 보면 좋겠다는 경치들이 있다. 물소리길을 처음 걸을 때도 그랬다. 탁 트인 겨울 강을 걸으며 마음도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도 이 경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은영님과 같이 걸을 만한 길을 고르자니 이 길이 떠올랐다. 강을 따라 걸으며 보니 아직 강기슭 쪽에는 얼음이 남아 있었다. 비는 그쳤고 하늘은 푸르게 투명해져서 드높았다. 바람이 제법 차서 앉아서 간식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3코스의 종점인 양평역에 도착했다. 우수라고 하지만 봄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은영과 은영

 

 양평역 주변에서 점심을 먹었다. 찬바람을 맞고 걸었더니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서 감자탕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들어가서 앉고 나니 좌석이 꽉 찼다. 푸짐한 시레기에 된장국물 베이스인 감자탕이 구수하니 맛있었다. 밥을 먹으며 올해 퇴근길 인문학을 같이 공부하게 되었는데 신청자가 둘뿐이라 열릴 수나 있을지 걱정을 했다. 일요일아침에서 목요일 저녁으로 시간을 옮기게 되면서 은영님도 부담이 늘었다. 의정부에서 퇴근해서 용인 동천동까지 공부하러 오는 일이 어떻게 쉽겠는가. 그래도 시작한 공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나의 바람에 흔쾌히 응답해줘서 많이 고마웠다. 같이 걸으며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물소리길 4코스는 양평역에서 원덕역까지 남한강과 흑천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겨울 강을 따라 걷는 길은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 사이로 시야가 트여서 멀리 추읍산까지 시야가 트였다. 버드나무길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니 다른 계절에 오면 푸릇푸릇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겨울에 두 번이나 걸었더니 다른 계절의 풍광이 더 궁금해지긴 했다. 경치가 좋다 좋다를 연발하다보니 서로 좋아하는 것들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둘 다 혼술을 즐기는 습관이나 사우나를 좋아하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니 우린 제법 통했다. 은영님이 최근에 받은 선물이라면서 가방에서 미니어처 위스키를 꺼냈다.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면서 제법 불량스럽게 키득거렸다. 둘이 걸으면 이런 재미도 있다.

 

<강기슭은 아직 얼음이 남아 았는 강 옆 길을 걸으며 위스키를 홀짝이니 몸이 데워졌다>

 

 

은영님, 고마워요

 

 원덕역에 거의 도착할 즈음 은영님이 전화를 받았다. 큰 아들이 군대 훈련소에 입소해서 처음 하는 전화였다. 은영님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편안히 전화 받으라 눈짓을 하고 나는 길에서 벗어나 주변에 있던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자식들도 점점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때라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은영님의 일상이 느껴졌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에 접속하여 일상을 꾸려가며 사는 은영의 삶과, 두 아들이 각각 독립을 하게 될 시기에 맞춰 은퇴를 준비하는 또 다른 은영의 삶이 이렇게 엮였다. 세상의 또 다른 은영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름이 같아서 왠지 더 궁금한 그녀의 삶 한 자락을 엿보며 함께 걸은 시간이었다.

 

 2월이 다 갔는데 퇴근길 인문학 프로그램은 여전히 신청자가 없었다. 아무래도 폐강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신청한 두 사람에게 장문의 톡을 보냈다. 폐강 결정 시한 하루를 남기고 한 사람이 신청했다. 다음 날 한 사람이 더 신청했다. 우주의 기운까지 끌어다 프로그램이 열리길 기원하자던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방방 뛰었다. 개강을 하고 보니 한 분은 은영님이 아는 분이란다. 혹시나 폐강이 될까 주변을 물색해서 같이 퇴근길 인문학을 하자 권했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이렇다. 소박하니 다섯 명이 모여서 올해의 공부길이 열렸다. 뚜벅뚜벅 걸어가 볼 참이다. 은영님^^고마워요!

 

 

댓글 12
  • 2023-03-06 00:05

    저는 물소리길 6-5코스로 걸어봤는데. 용문산 은행나무길은 예뻣지만 논에서 헤매기도 했지요ㅋ. 위스키 (한모금?ㅋ) 홀짝이며 걷는 두 은영 언니의 인연과 마침내 열린 퇴근길 인문학길 소식까지 따뜻하게 전달되어요. 잘 읽었습니다. 무릎 건강 챙기시며 또 다음 길도 걷고 나눠 주세요!

  • 2023-03-06 07:57

    좋군요^^

  • 2023-03-06 08:46

    은영들 부럽네~~

  • 2023-03-06 08:55

    둘이 위스키 꺼내먹는 장면이 상상되면서 잼있네요~ㅋㅋ
    은영들도 정임합목만큼 잘 맞으시는듯해요~~!!
    두분도 퇴근길 인문학도 응원합니다^^

    • 2023-03-06 10:58

      정임합목만큼이요?ㅋㅋ

  • 2023-03-06 08:56

    다른 계절에 물소리길 4코스 도전해봐야징

  • 2023-03-06 09:22

    아우 물소리길이 존재하는것도 처음 알고..두은영님의 길을 같이 잠시 걸었던거 같아요~저도 이길을 찾아 걸어보고 싶어졌어요^^
    부산스런 월요일 아침 ...차분하게 마음정리해지는 글이네요~

  • 2023-03-06 09:57

    은자 돌림 저도 다음엔 끼어주세요.
    위스키 챙겨갈께요^^

  • 2023-03-06 11:01

    ‘은영 시스터즈’샘들의 걷기 풍경. 넘나 따뜻합니다^^
    나중엔 저도 데려가 주셔요~
    위스키, 꼬냑 챙겨놓겠습니다!!
    그나저나 ‘화요’는 들어올 생각을 안하네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ㅎㅎ)

  • 2023-03-06 12:54

    쌀쌀한 날 위스키를 마시며 몸을 뎁히는 장면을 상상해봤네요!
    걷는 길에 여러 이야기가 쌓이고 있네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집니다!! ^^

  • 2023-03-07 06:51

    앗. . . 내이야기네 ㅎ ㅎ 기린샘과 동행으로 등장해 좋네요 . 걷는게 목적이 아닌 관계를 위한수단일수 있다는걸 배운 날이었네요

  • 2023-03-08 11:39

    뭔가 잔잔하면서도 극적이에요ㅎㅎ 저도 양평 사는 지인이 언제 물소리길 걷자고 했는데 기린샘 글로 먼저 체험했네요^^ 퇴근길 인문학 개강도 축하드려요!!!

아스퍼거는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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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 조회 218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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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7.20 | 조회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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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7.19 |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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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만난 지렁이   어제 아버지 집으로 오던 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햇살이 내리쬐는 뜨거운 인도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못 본 척하고 길을 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지렁이에게 되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올려서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런 뒤 지렁이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곧바로 흙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렁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렁이는 머리 부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오래도록 흙의 상태를 탐색했다. 이렇게 자세히 지렁이를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부터 비 온 다음날이면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파놓은 흙 속 터널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기 어려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지렁이는 물속에서 오랫동안 피부호흡이 가능하다며 비가 흙에 부딪칠 때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 소리로 알고 위협을 느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협을 느껴 밖으로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들이 지렁이 사체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는 포식의 축제가 되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지나치게 된다. 간혹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지만 지렁이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지렁이를 향한 연민이 가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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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 조회 202
K장녀_돌봄을 말하다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인디언
2024.07.15 | 조회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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