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우다다, 우다다

경덕
2023-02-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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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우다다, 우다다

 

 

 

잔디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두번째 입주자다. 나는 잔디가 실험용 돼지로 키워지다가 새벽이생추어리에 입주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새생이(운영활동가)로 오래 활동해온 무모의 목소리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고은   새벽이는 2020년 여름 종돈장에서 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잔디는 언제 <새벽이생추어리>에 오게 되었나요?

무모   잔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가을이었어요. 새벽이가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의약 회사에 있었던 실험 동물 돼지가 탈출하려다가 기구 같은 게 쓰러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요. 병원에서 잔디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회사에 할당된 예산이 있었겠죠? 수술하고 나서도 빨리 회복이 안 되니까 병원에서 안락사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잔디가 <새벽이생추어리>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잔디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2020년 가을, 겨울 동안 실내 생활을 하다가 2021년 2월 에 <새벽이생추어리>에 왔어요. 그때는 잔디도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이빨도 더 많이 튼튼 해지고 그랬던 상황이었어요.

 

- 김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무모 인터뷰 중

 

 

 

     

 

 

 

돼지와 돼지

 

작년 7월에 처음 만난, 무더운 여름 날의 잔디가 떠오른다.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잔디가 꾸우 꾸우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살아 있는 돼지와의 첫 만남에 나는 조금 벅차올랐다. 잔디는 처음 보는 인간에게도 금새 곁을 내어주며 보들보들한 코를 들이밀었다. 잔디는 다리를 쭈욱 펴고 일어섰을 때 머리 끝이 겨우 내 무릎에 닿을 정도로 작고 아담했다. 쪼그려 앉아 가까이서 얼굴을 보니 반짝이는 눈망울과 씰룩이는 코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토마토를 먹기 좋게 조각을 내어 잔디에게 건내주었다. 내 손가락까지 씹을까봐 살짝 움찔했지만 잔디는 당연히도 음식과 음식 아닌 것을 잘 구별했고 토마토만 입 속에 쏘옥 넣어 오물 오물 잘 씹었다. 잔디는 저녁식사 후에 미강 섞은 물까지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흙바닥에 털썩 누웠다. 가까이 다가가 잔디의 등이랑 배를 긁어주었다. 나와 잔디의 피부가 맞닿아 이리 저리 쓸렸다. 부드러우면서도 간질간질한 감촉이 내 손끝에 전해졌다. 그 순간 어쩌면 내가 상상해왔을 종과 종의 평화로운 만남, 인간과 비인간의 무해한 공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잔디와의 첫 만남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살아있는 돼지의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한 만큼 낯설었지만, 작고 귀엽고 인간에게 쉽게 곁을 내어주는 익숙한 (반려)동물이 연상된 만큼 익숙했다. 하지만 새벽이와의 첫 만남은 아주 달랐다. 낯설고, 낯설고, 또 낯설었다. 잔디 집 너머에 있는 새벽이 집 울타리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멀리서부터 우렁차고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꾸에에에!

걸걸걸, 걸걸걸

 

 

 

 

 

 

잔디의 ‘꾸우 꾸우’를 듣고 새벽이의 ‘걸걸걸’을 들으니 같은 돼지이지만 전혀 다른 소리처럼 느껴졌다. 울타리 입구에서 실제로 마주한 새벽이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새벽이는 처음 보는 사람을 굉장히 경계하고(특히 남성을!) 체격이 잔디의 몇 배나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전 교육 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마주했을 땐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새벽이 입 양 옆으로 길게 자란 날카로운 엄니는 보기만 해도 위압적이었다. 또 하필 그날 돌봄을 함께 한 활동가 L의 팔에 심상찮은 대형 반창코가 붙어 있어서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L님, 팔은 어쩌다 다치셨어요..?”

“아, 얼마 전에 새벽이 몸에 황토를 발라주다가요. 새벽이가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고개를 훽 하고 젓는 바람에 엄니에 긁혔어요. 살이 좀 찢어져서 병원 가서 꿰맸어요, 하하.”

“(….......................!)”

 

L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나는 속으로 ‘얼마나 놀랐을까, 진짜 아팠겠다, 나를 다치게 한 동물을 다시 돌보러 오는 심정은 어떨까, 근데 나….............. 앞으로 괜찮을까?’ 같은 걱정이 올라왔다. 새벽이와 오래 관계를 맺어온 활동가도 새벽이를 완전히 파악하거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사항도 떠올랐다. 새벽이는 자신을 돌보는 인간 앞에서 고분고분하거나 그저 얌전히 있는(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새벽이를 ‘구조된 동물’이라는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기엔 새벽이는 엄청 쎄보였고, 울타리를 넘어가는 순간 나는 새벽이의 압도적인 피지컬 앞에서 한없이 취약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새벽이는 첫만남에서부터 나의 낭만적이면서도 위계적인 인간-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한 지붕 두 동물

 

돌봄 초반에는 아무래도 다가가기 쉬운 잔디와 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비가 추적 추적 오는 어느 여름 날, 나는 큼직한 장우산을 들고 새벽이생추어리에 방문했다. 돌봄 활동을 마치고 비를 피해 잔디의 집에 들어갔다.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새벽이와 달리 잔디는 몸에 물이 닿는 걸 싫어해서 비오는 날이면 주로 집 안에 머무른다. 그래도 인간 보듬이의 출입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무던함 덕분에 나는 잔디와 한 지붕 아래에 있을 수 있었다. 잔디의 지푸라기를 조금 빌려 방석 삼아 깔고 앉았다. 잔디는 집 안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끄응 끄응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다시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 밖에 펼쳐 놓은 우산을 코로 슬쩍 슬쩍 건드리고 비오는 풍경을 쳐다보기도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잔디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문득 새생이(운영 활동가) 무모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무모는 어느 겨울밤 잔디 옆에서 같이 잠을 잔 적이 있다고 했다. 추위를 잘 타는 잔디가 얼마나 추울지 체감해보고 싶었단다. 단열이 거의 되지 않아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 안에서 지푸라기와 이불을 함께 덮고 체온을 나누는, 밤새 움추리며 밤을 지새웠을 무모와 잔디를 생각하니 조금 뭉클해졌다 .

 

 

 

 

 

 

똥 줍기, 미션 impossible?

 

잔디에 비해 새벽이를 돌볼 때는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밥과 물을 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새벽이가 가까이 오기 전에 울타리 너머로 재빨리 밥그릇을 건내주면 되고, 물조리개에 담은 물을 물그릇에 잘 조준해서 부어주면 된다. 물을 줄 때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긴 하다. 물그릇에 거침없이 들이미는 새벽이 얼굴을 잘 피해 물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이는 인간이 물을 다 부어줄 때까지 다소곳이 기다리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안돼! 한다고 물러나는 훈련된 동물도 아니다. 물 조준에 실패해서 새벽이 얼굴에 물이 떨어지면 새벽이도 젖은 얼굴을 세차게 흔들며 응수한다. 그럼 우리도 시원한 물벼락을 맞을 수 있다!

 

문제는 똥이다. 새벽이 똥을 줍기 위해서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돌봄을 두 명이서 할 때는 한 사람이 음식으로 새벽이의 관심을 끌고 다른 한 사람이 반대쪽 울타리 입구로 들어가 똥을 줍는다. 새벽이는 대체로 일정한 장소에 볼일을 보기 때문에 똥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멀리서 간식을 먹는 새벽이 눈치를 보며 새벽이 응가 ZONE을 탐색한다. 주먹보다 큰 똥을 집게로 잘 집어 똥바구니에 담는다. 여름이라면 무성한 잡초 사이 사이를 헤집으며 보물 찾기를 하듯 똥을 찾아야 한다. 새벽이는 간식을 먹다가도 똥 줍는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볼 때가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

 

돌봄 세 달째부터 나는 정기 보듬이가 되어 혼자서 돌봄을 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나름 요령이 생겨 혼자서도 용감하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에 간식으로 채취한 덩굴잎을 잔뜩 부어 주고 새벽이가 간식을 먹을 동안 반대쪽 입구로 들어가 재빠르게 똥을 줍고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서 하는 돌봄도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새벽이도 나를 크게 경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똥을 줍고 나서도 종종 울타리 안에 머물며 새벽이를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은 간식을 다 먹은 새벽이가 느릿 느릿 다가오더니 내 옆에 있는 똥바구니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몇 걸음 정도 물러났지만 위협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아 피하지 않았다. 살짝 다가가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우리 많이 친해졌으니까 괜찮지? 그렇지?)

 

그런데 계속 느릿 느릿 움직일 것 같던 새벽이가 어느 순간, 정말 느닷없이, 성큼 성큼 내쪽으로 돌진해왔다. 육중한 몸과 엄니가 몇 배는 더 크고 날카로워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 재빨리 도망쳤지만 며칠 전에 내린 폭우로 질퍽해진 땅에 발이 푹푹 빠졌다. 그러다 한쪽 장화가 벗겨지면서 넘어졌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맨발로 다시 죽어라고 뛰었다. 실컷 뛰고나서 뒤돌아보니 새벽이는 똥바구니 근처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느릿 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며 멀리 피신해있다가 새벽이가 다른 쪽으로 이동한 틈에 똥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가 어떤 이유로 나에게 달려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새벽이와 가까워졌다고 쉽게 생각한 나의 안일함을 반성했다. 또 맹수도 아닌 돼지 앞에서, 완전히 무력해질 수 있는 인간 신체의 나약함을 느꼈다. 사족 보행 동물의 추진력 앞에서 직립 보행 동물의 움직임은 얼마나 느리고 둔하던지. 부끄러움, 나약함, 무력함을 느끼면서도 살짝 오만했졌다가 한없이 겸손해지는 나의 모습이 조금은 쌤통이었다. 진흙 범벅이 된 바지와 양말을 보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몸은 엉망이었고 머릿 속은 복잡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날 돌봄 일지에는 이렇게 간단히 적었다.

 

“새벽이가 오늘 따라 경계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어요. 똥을 줍고 멀리 떨어져 있다가 빠져나왔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그 후로는 더 조심했지만 새벽이의 행동과 감정을 계속 궁금해하며, 조금씩 다가서고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이전 만큼 급박하지는 않았지만 몇 번 더 쫓고 쫓기는 일(나의 일방적인 줄행랑!)을 겪기도 했다. 새벽이는 괜찮다가도 괜찮지 않았다. 새벽이와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정해진 메뉴얼이 없기 때문에 새벽이를 만날 때마다 새벽이의 얼굴을 보고, 새벽이의 소리를 듣고, 새벽이의 행동에 그때 그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까워지고 멀어지다가 점차 새벽이와의 적정 거리가 만들어졌다. 다가올 때 함부로 가까이 가지 않고 10m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면 밖으로 나가거나 새벽이가 잘 올라오지 않는 언덕 위에서 머문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거리를 상황에 따라 조율했다.

 

어느 날에는 멀리서 새벽이를 부르며 좌우로 우다다, 우다다 뛰어다녔다. 그랬더니 새벽이도 나에게 돌진하지 않고 좌우로 우다다, 우다다 뛰었다. 같이 노는 기분이 들어 나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면 새벽이도 점프를 하며 몸을 마구 흔들었다. (지난 화 ‘돼지와 함께 춤을’에서 등장한 내 안의 기묘한 동물성의 탄생 배경이다!)

 

새벽이와 적정 거리를 조율하며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왔다.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흙바닥과 개울물이 단단하게 얼었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해진 땅에서는 새벽이가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항상 조심 조심 걸었고, 주로 안방 근처를 서성였다. 반대로 단단한 땅에서 나의 움직임은 가볍고 민첩해졌다. 장화가 벗겨질 일이 없어 나의 우다다는 좀 더 자신감이 붙었다. 느려진 새벽이와 빨라진 나의 적정 거리는 새롭게 조율되었다. 어느 날엔 루팅하는 새벽이 주위를 맴돌다가 조심스래 다가가 엉덩이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래도 새벽이는 가만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또 어느 날엔 천천히 다가오는 새벽이와 몇 걸음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울타리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기다란 나뭇가지로 등을 긁어주니까 새벽이가 식빵 자세로 내 앞에 엎드렸다.

 

- 새벽이 똥 치우고 근처에 좀 있다가 긴 나뭇가지로 새벽이 등을 긁어주니까 식빵 자세로 엎드렸어요! 처음 있는 일이라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폰을 땅에 거치하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가 다시 일어났어요..! 또 살살 긁어주니까 다시 엎드려서 새벽이 허리랑 등을 쓰다듬었어요. 중간에 지푸라기를 등 위에 조금 덮어줬는데 별로였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켰어요. 놀라긴 했는데 움직임이 위협적이지 않아서 다시 천천히 다가가니까 다시 누웠어요. 잠깐이었지만 새벽이와 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어서 설렜고, 새벽와의 관계가 이전보다 편안해진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2023. 2. 9. 돌봄일지에서)

 

 

   

 

 

 

내가 나의 방식으로 새벽이를 살펴온 시간 만큼이나 새벽이도 새벽이의 방식으로 나를 살펴온 것 같다. 새벽이는 정기적으로 오는 나를 알아보고, 나의 움직임과 소리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나와의 적당한 거리를 끊임없이 조율했을 것이다. 조율이 잘 맞아떨어지는 순간 서로 안심할 수 있다. 

 

 

 

봄소식

 

입춘이 지나면서 새벽이생추어리의 땅도 서서히 녹고 있다. 새벽이는 부드러운 땅을 밟으며 점점 더 움직임이 날렵해지고 있다. (우리의 관계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최근 활동가 돌봄 일지에는 좀처럼 뛰지 않는 잔디의 우다다 소식이 올라와 모두가 반가워했다. 올해는 새벽이와 잔디의 우다다로 봄 소식을 전해 듣는다. 

 

 

 

 


 

추신!

 

 

 

새벽이생추어리 이사합니다!

 

새벽이생추어리는 올해 현재 부지를 떠나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년부터 오랜 시간 고민해온 사안이며, 최근 활동가들을 가장 바쁘게 만든 일이기도 합니다. 새벽이와 잔디, 그리고 새벽이생추어리의 미래가 불투명한 현재 상황에서 보다 많은 분들의 연대가 절실합니다.

 

모두와 함께 이뤄낸 새벽이와 잔디의 기적 같은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이 견고한 폭력의 시대에 계속해서 균열을 낼 수 있도록 힘을 더해주세요. 지금껏 그래왔듯이 우리는 연대함으로써 착취의 고리를 끊고 해방으로 연결되는 돌봄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와 후원 방법은  https://box.donus.org/box/dawnsanctuary/moving_project 에서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성공적인 모금을 위해 본 게시글과 모금함을 널리 공유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새벽이생추어리 인스타그램에서 퍼옴)

댓글 10
  • 2023-02-21 09:38

    새벽이, 잔디 이제 .. 경덕님도 같이 생각나겠어요. 중간 중간 무모님 소식도. 죄송하지만 새벽이 생추어리 보듬이가 겪는 우여곡절 .. 중간 중간 재미나요. 새벽이 생추어리.. 원하지 않는 이사를 결정하게 된거죠? 소 생추어리도 생기고 .. 작년에 희망찬 소식들 있었는데 역시.. 아직 더 많은 연결고리, 관심이 필요한 곳이네요. 저도 여기 저기 기회있을 때 공유할께요.
    건강하고 뭔가 충만해보이는 보듬이 활동!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2023-02-21 09:59

    이것저것 생각하게하는 글이네요
    그러면서도 재밌고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가는데 행동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시간을 들여야하는데
    인간-비인간의 위계에 익숙한 인간이라 ㅠㅡ

  • 2023-02-21 10:56

    글을 읽고 저도 막연하게 새벽이를 반려동물처럼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원래 돼지는 활동 영역이 넓어서 사주명리에서는 역마살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새벽이는 훨씬 야생성이 살아있는 돼지네요!
    후원도 하겠습니다!!! ^^

  • 2023-02-21 10:56

    새벽이의 식빵자세, 너무 너무 궁금해요😁
    서로의 행동을 살피고 적정 거리를 조율하는 과정,
    존재를 알아가는 그 시간이 이렇게 쉽지도 않고 애틋하네요~
    마음을 두는 그 어떤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더 관심 챙길께요~

  • 2023-02-21 11:03

    평화롭게 식빵굽는 새벽이의 모습을 꼭 사진으로 보고싶습니다.
    새벽이 은근 매력 넘치는 걸요?
    다음엔 새벽이를 피해 도망치더라도 경덕쌤의 장화가 벗겨지지 않기를~ ^^ㅎ

    새벽이 생추어리의 이사에도 관심을 갖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감사~

  • 2023-02-21 12:38

    글을 읽다보니 제가 평소에 생각했던 돌봄에 이미지가 떠오르는군요. 저는 돌봄의 대상이 제 기준상 저보다 약자라고만 생각했어요. 정말 오만이 따로 없네요. 서로가 취약한 존재여서 상호의존 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것부터 돌봄의 시작이라는 말이 경덕샘 글을 보며 다시금 되새겨집니다~
    이사에도 관심가질게요^^

  • 2023-02-21 15:38

    진정한 보듬이가 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군요.
    앞으로는 장화 벗겨지는 일 겪지 않게 조심하셔요~
    그래도 경덕님을 통해 알아가는 성깔 있는 돼지 새벽이, 은근 매력있어요.^^

  • 2023-02-21 18:33

    보듬이활동의 생생한 기록, 몰랐던 세계를 만나는 낯섬, 그리고 놀라움도 교차하며 읽는 시간이네요~

  • 2023-02-22 12:10

    나를 다치게 한 동물을 다시 돌보러 오는 마음이 어떨까? 궁금해지다가도, 인간 사이의 관계도 사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3-02-23 07:55

    제 사주에도 돼지와 돼지(해수 두개)가 있습니다.
    음ᆢ 이런 뜬금 맥락적 해석은 어디로 연결될수 있을까요ᆢ여튼 잔디와 새벽이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궁금하고, 무엇보다 저도 새벽이 등짝을 한번 살살 쓸어주고 싶다는ᆢ ㅎㅎ!

아스퍼거는 귀여워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조금은 부끄럽고, 지루하며, 우울한 이야기임을 미리 밝힌다. 원래 나는 (믿기 힘들겠지만) 선천적으로 텐션이 낮은 종류의 인간이다. 자주 우울하고, 늘 하는 일에 절망하고, 자신이 없으며, 자신에 대해 의심하며, 반성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삶의 딜레마는, 나는 굉장히 활달한 류의 인간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에서 평생동안 의문을 가지며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슬픔에 취해 사는 나르시시스트인 걸까. 우울한 내가 멋져 보이는 그런 유아적인 발상인 걸까. 그러면서도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두 가지 면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래서 늘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인 거겠지.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원래도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살면서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뭐지. 이건 ‘정말로’ 잘못된 거잖아.”   비행기에서의 공황 장애, 공포와 만나다     ‘정말로’ 이상함을 느낀 건 비행기 안에서였다. 발리로 가는 중이었는데, 비행기가 뜨자마자 답답해지더니, 조금 지나자 기체의 작은 움직임에도 비행기가 금방이라도 떨어져서 바다 위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공포에 부딪혔다. 몸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나며, 배가 꾸륵거리고, 심장이 튀어나오듯 쿵쿵거렸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증상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처방받거나 개인이 들고탄 것 이외에 약을 제공할 수 없다고...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조금은 부끄럽고, 지루하며, 우울한 이야기임을 미리 밝힌다. 원래 나는 (믿기 힘들겠지만) 선천적으로 텐션이 낮은 종류의 인간이다. 자주 우울하고, 늘 하는 일에 절망하고, 자신이 없으며, 자신에 대해 의심하며, 반성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삶의 딜레마는, 나는 굉장히 활달한 류의 인간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에서 평생동안 의문을 가지며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슬픔에 취해 사는 나르시시스트인 걸까. 우울한 내가 멋져 보이는 그런 유아적인 발상인 걸까. 그러면서도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두 가지 면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래서 늘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인 거겠지.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원래도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살면서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뭐지. 이건 ‘정말로’ 잘못된 거잖아.”   비행기에서의 공황 장애, 공포와 만나다     ‘정말로’ 이상함을 느낀 건 비행기 안에서였다. 발리로 가는 중이었는데, 비행기가 뜨자마자 답답해지더니, 조금 지나자 기체의 작은 움직임에도 비행기가 금방이라도 떨어져서 바다 위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공포에 부딪혔다. 몸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나며, 배가 꾸륵거리고, 심장이 튀어나오듯 쿵쿵거렸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증상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처방받거나 개인이 들고탄 것 이외에 약을 제공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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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 조회 217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연결 1       “윤경샘, 청춘삘딩 대표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지난번 윤경샘이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을 때 거기 대표가 청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문탁에서 마을 주간 행사를 주관하는데 패널로 모실라구요.”     작년 1년 동안 양생프로젝트에서 같이 공부한 겸목샘의 전화였다. 내가 직접 캐스팅하는 것은 그렇고 연결은 해드릴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건넸다. 나는 23년 6월부터 청춘삘딩과 연이 닿아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었다. (노랑식탁 이야기는 2월 연재 참고.^^) 그때 박대표를 알게 되었다. 청춘삘딩의 센터장, 박대표는 금천구 토박이다. 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금천을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나도 태어나고 자란 금천이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금천을 떠났다가 20여 년 만에 돌아온 것도 엄마가 살고 계셨기 때문이지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       나고 자란 마을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은 청소년들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금천구청소년의회’였다. 이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박대표의 마음속에 금천마을은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닌 ‘내가 가꿔나갈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금천의 청년으로서 금천을 가꿔나갈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다 <청소년독서실 기능전환>이란 타이틀로 주민참여예산에 공모했다. 그것이 청춘삘딩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16년에 문을 연 청춘삘딩은 청년들의 커뮤니티 플랫폼이자 사회참여의 통로가 되었다. 지금 청춘삘딩의 대표 사업은 커뮤니티 지원사업 ‘두잇’과 1인 가구 청년을 위한 소셜다이닝 ‘노랑식탁’,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를 누리는 체육활동지원사업 ‘피지컬100’등이 있다.       박대표가 나의 연결로(^^) 참여한 행사는 2024...
      #연결 1       “윤경샘, 청춘삘딩 대표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지난번 윤경샘이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을 때 거기 대표가 청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문탁에서 마을 주간 행사를 주관하는데 패널로 모실라구요.”     작년 1년 동안 양생프로젝트에서 같이 공부한 겸목샘의 전화였다. 내가 직접 캐스팅하는 것은 그렇고 연결은 해드릴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건넸다. 나는 23년 6월부터 청춘삘딩과 연이 닿아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었다. (노랑식탁 이야기는 2월 연재 참고.^^) 그때 박대표를 알게 되었다. 청춘삘딩의 센터장, 박대표는 금천구 토박이다. 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금천을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나도 태어나고 자란 금천이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금천을 떠났다가 20여 년 만에 돌아온 것도 엄마가 살고 계셨기 때문이지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       나고 자란 마을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은 청소년들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금천구청소년의회’였다. 이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박대표의 마음속에 금천마을은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닌 ‘내가 가꿔나갈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금천의 청년으로서 금천을 가꿔나갈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다 <청소년독서실 기능전환>이란 타이틀로 주민참여예산에 공모했다. 그것이 청춘삘딩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16년에 문을 연 청춘삘딩은 청년들의 커뮤니티 플랫폼이자 사회참여의 통로가 되었다. 지금 청춘삘딩의 대표 사업은 커뮤니티 지원사업 ‘두잇’과 1인 가구 청년을 위한 소셜다이닝 ‘노랑식탁’,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를 누리는 체육활동지원사업 ‘피지컬100’등이 있다.       박대표가 나의 연결로(^^) 참여한 행사는 2024...
김윤경~단순삶
2024.07.20 | 조회 168
현민의 독국유학기
    나 아시아 여자     최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작년 겨울에 만났던 서경과 반년 만에 만나 24시간 동안 한국 음식을 잔뜩 먹었다. 들기름 막국수, 불닭볶음면, 팥빙수, 연어 덮밥, 식혜. 타지에서 어렵게 구해 만든 한국 음식은 맛도 좋았지만, 그걸 같은 마음으로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최근 서경은 외국살이에 정이 떨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묵은 인종차별 경험담을 서로에게 들려주며 한바탕 분노를 풀고나면 씨발...하지만 어쩌겠나 하며 끝낸다. 아시안 얼굴의 여자여서 겪는 차별의 경험은 분명 화가 나지만 세상엔 절대불변의 좆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서경은 삼일 뒤 한국에 간다고 했다. 한국 가면 뭐 할 거야? 몰라 그냥 집에서 강아지랑 고양이 만지면서 쉬고 싶어. 나에겐 한국에 가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비행기에 앉아 반나절 있으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경과 네덜란드에서 빙수를 해먹은 뒤, 집에 돌아와서 플랫메이트들과 팥빙수를 만들었다. 단팥이라는 게 유럽에서는 굉장히 드물어서 다들 굉장히 신기해하며 먹었는데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내 남자친구 니키는 네덜란드에 오랫동안 살았다. 우리는 그의 친구 그리스인 에반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네덜란드에 갔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에반스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잘 긴장하는데 그날도 담배를 핑계로 집 뒤편에 있는 테라스에 의식적으로 숨어있었다. 그때 한 아시안 여자애가 다른 사람들과 들어왔다. 그 애의 이름은...
    나 아시아 여자     최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작년 겨울에 만났던 서경과 반년 만에 만나 24시간 동안 한국 음식을 잔뜩 먹었다. 들기름 막국수, 불닭볶음면, 팥빙수, 연어 덮밥, 식혜. 타지에서 어렵게 구해 만든 한국 음식은 맛도 좋았지만, 그걸 같은 마음으로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최근 서경은 외국살이에 정이 떨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묵은 인종차별 경험담을 서로에게 들려주며 한바탕 분노를 풀고나면 씨발...하지만 어쩌겠나 하며 끝낸다. 아시안 얼굴의 여자여서 겪는 차별의 경험은 분명 화가 나지만 세상엔 절대불변의 좆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서경은 삼일 뒤 한국에 간다고 했다. 한국 가면 뭐 할 거야? 몰라 그냥 집에서 강아지랑 고양이 만지면서 쉬고 싶어. 나에겐 한국에 가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비행기에 앉아 반나절 있으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경과 네덜란드에서 빙수를 해먹은 뒤, 집에 돌아와서 플랫메이트들과 팥빙수를 만들었다. 단팥이라는 게 유럽에서는 굉장히 드물어서 다들 굉장히 신기해하며 먹었는데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내 남자친구 니키는 네덜란드에 오랫동안 살았다. 우리는 그의 친구 그리스인 에반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네덜란드에 갔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에반스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잘 긴장하는데 그날도 담배를 핑계로 집 뒤편에 있는 테라스에 의식적으로 숨어있었다. 그때 한 아시안 여자애가 다른 사람들과 들어왔다. 그 애의 이름은...
현민
2024.07.19 | 조회 238
일상명상
    길에서 만난 지렁이   어제 아버지 집으로 오던 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햇살이 내리쬐는 뜨거운 인도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못 본 척하고 길을 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지렁이에게 되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올려서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런 뒤 지렁이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곧바로 흙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렁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렁이는 머리 부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오래도록 흙의 상태를 탐색했다. 이렇게 자세히 지렁이를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부터 비 온 다음날이면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파놓은 흙 속 터널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기 어려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지렁이는 물속에서 오랫동안 피부호흡이 가능하다며 비가 흙에 부딪칠 때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 소리로 알고 위협을 느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협을 느껴 밖으로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들이 지렁이 사체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는 포식의 축제가 되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지나치게 된다. 간혹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지만 지렁이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지렁이를 향한 연민이 가볍고...
    길에서 만난 지렁이   어제 아버지 집으로 오던 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햇살이 내리쬐는 뜨거운 인도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못 본 척하고 길을 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지렁이에게 되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올려서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런 뒤 지렁이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곧바로 흙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렁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렁이는 머리 부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오래도록 흙의 상태를 탐색했다. 이렇게 자세히 지렁이를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부터 비 온 다음날이면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파놓은 흙 속 터널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기 어려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지렁이는 물속에서 오랫동안 피부호흡이 가능하다며 비가 흙에 부딪칠 때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 소리로 알고 위협을 느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협을 느껴 밖으로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들이 지렁이 사체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는 포식의 축제가 되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지나치게 된다. 간혹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지만 지렁이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지렁이를 향한 연민이 가볍고...
요요
2024.07.15 | 조회 202
K장녀_돌봄을 말하다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인디언
2024.07.15 | 조회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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