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함께 살 결심

무사
2023-01-30 09:38
616

함께 살 결심

2023.1.30.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예)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코비드 19와 자본주의적 욕망이 폭발한 2020. 개인적으로는 경경경(庚庚庚) 병존 시절인연의 기운을 받아 중대한 결단과 자기변형을 했던 해였다.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것은 퇴직 이후에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공부하다 만난 이와 심지어 함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결단과 변형의 시작은 문탁네트워크 '2020 양생프로젝트' 이었으니... 부디 조심하시라. 아니 기대하시라.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면, 샘들 옆에 찐 다른 인간(종)이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3 양생프로젝트가 궁금하시면, 클릭 ☛)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1년과정/2학기) | 문탁네트워크

 

2023 양생프로젝트 포스터

 
 
이 글은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두 동학이 좌충우돌, 티격태격 꾸려가는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가족' 이야기다. 1회는 태동편.
 
* 정임합목 : 사주팔자의 일간 정화(丁火) 임수(壬水)가 만나 합화(合化) (木)이 되는 것으로, 우주의 기운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 정화와 임수 일간인 무사와 루틴은 어쩌다 만나 목이 되는 바람에 역동적이고 어설픈 초목의 기운으로 좌충우돌 하고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임수편'에서 계속됩니다.) 
혹 사주명리가 궁금하시다면,
현재 진행중인 사주명리 강좌 커리큘럼을 읽어보시고 하반기(예정) 사주명리 강좌를 기대해주세요~ 클릭 ☛ MBTI보다 명리학 | 문탁네트워크
 
 

월드컵 4강 신화와 맞바꾼 꿈! 어쨌든 꿈은 이루어진다.

 

얕은 머리만 믿고 끌려 들어간 직업적 욕망은 폐소공포증으로 끝을 맺었다. '이름을 말하기도 싫은 그자'가 9수만에 합격했다는 그 시험이었다. 그자에 대해서는 고시공부 중에도 친구들의 대소사를 챙겨서라며 '다정이 병인 양' 후하게 포장해주던데, 고시 9수라니… 방만한 생활과 이를 가능케 해준 이코노믹 서포트가 없었다면 리얼리 임파서블한 일이다. 뭐 어찌되었든 내 다른 꿈은 이루어졌는데, 살아생전 다시 못 볼 월드컵 4강과 고생 끝에 곧 당도할 백수 라이프(^^)가 그것이다.

 

고시생활을 접고 머리(카락)를 짧게 자른 후에 지금의 직업에 접속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월지와 일지의 강력한 역마를 타고 이곳 저곳 부유하며 산지 20년. 그래서 늘 정주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렇다면 빨리 결혼해서 정착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하겠지만, 혈연이나 혼인을 매개로 한 민법상 가족이 오히려 남보다도 끔찍한 친밀함일 수 있음을 8살 이른 나이에 알아버렸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비혼이 더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숱한 물음에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다른 인간이나 (비인간) 동물 역시 돌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스스로를 돌보는 길조차 요원하다'며 답해왔다. 나로서는 원가족과의 경험에 근거한 선택이었지만, 물은 이들에게는 혼인하기를 선택하지 않는 '요즘 젊은 여성'의 변명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비혼의 삶도 그리 만만했던 것만은 아니다. 직장에서 보직을 옮길 때마다 ‘미혼 여성’은 조직 내 성폭력의 잠재적 유책 요인으로 다뤄지기 일쑤였다. 직장의 장()들은 ‘미혼 여성’이 조직에 틈입하는 것을 꺼렸다. ‘이런 취급을 받을 바에야 확 결혼해 버릴까?’ 싶다가도 나에게 결혼과 그로 인한 가족은 결코 비상구도 안식처도 아님을 다시 떠올릴 뿐이었다.

 

2006년 한 시민단체를 후원하게 되면서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가부장제-자본주의-군사주의'의 견고한 동맹에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에 동의하면서 삶의 현장에 대해 단순히 불편함과 불만을 토로하기 보다 뭘 좀 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공부가 나에게 준 것이 언어와 지지만은 아니었다.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12쪽)

 

"2006년 내가 만난 페미니즘은, 입가에만 맴돌았던 웅얼거림을 비로소 언어로 바꿔줬고, 누군가가 정해놓은 답을 찾는 대신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매순간 날을 벼리고 벼려야만 쓸 수 있는 어려운 인식론이지만, '언어와 질문'을 찾아가는 공부라니... 앞으로도 죽~ 해볼만하지 않은가.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문탁네트워크 프로그램 '내 인생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 무사's pick 중에서)

 

 

공부는 인연을 싣고~

 

책 파도를 타다가 우연히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다. '용인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비교적 느슨(메모/발제/에세이 )해 보이는 <파지사유 인문학>(매주 토, 4주 과정) 공부를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등록한 임수와는 마치 입학 동기같은 동질감을 느끼며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당시 임수는 '3년 프로젝트'(3년 안에 연애와 결혼과 출산 완료!)를 준비중이었다. '아니 그럴거면 문탁같은 생물학적 극여초 집단에 오면 안되지 않나요?'라며 가볍게 훈수를 두었지만, 한편으로는 3년 안에 그 어마어마한 일들을 다 끝내겠다는 임수의 선택 이면이 궁금했다. 무엇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는지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망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만 빼면 공부하는 삶, 퇴직 이후의 삶, 쌀쌀할 노후 등 임수와 정화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만 올레길을 걸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서, 목욕을 하면서, 무엇보다 공부하는 삶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면서 서로의 간극을 좁혀 나갔다.

 

유독 '누군가'에게 더 험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한 사람에게 생활 필수 노동의 독박을 씌우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면서도 서로에게 돌봄을 나눠주는 관계는 어떨까? 같은 집에 거주하면서 오늘의 찌질함은 잊고 내일의 세상과 맞설 수 있도록 돕는 '인생의 동료'같은 관계 말이다. 우리는 거친 밑그림을 그리며 '함께 살 결심'을 해보게 되었다.

 

제주, 비양도

 

 

혹시 신천지 언니?

 

본격적으로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합을 맞춰보기 위해 제주도로 M.T.도 다녀왔다. 생활비 통장을 만들었고 주거공간을 마련했다. 길 위에서 연대하기 위해 정임합목 기금도 매달 모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적, 제도적 결합 장치없이 성인이 돈을 모아 함께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터. 가끔 오해도 받는다. 당시는 신천지가 코비드 19의 대구지역 확산의 주범으로 언론보도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동거의 좋은 점에 대해 얘기하는 임수에게 이모님께서 진지하게 물으셨단다. '혹시 신천지 언니 아니니? 조심해라.'(신천지 아닙니다. 이모님^^) 법과 제도가 아닌 신의는, 연대는, 공부는 안전장치가 될 수 없을까?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느슨하고 경쾌한 관계 실험을 해보는 중이다.

 

 

그러나 어찌 꽃길뿐이겠는가

 

찐 다른 인간 둘이 만나 처음으로 의견충돌이 일어난 것도 계산 과정에서였다.(결과값은 같았다. 왜 싸운 거니?) 머리가 복잡해지면 먼저 혼자 곱씹고 소화한 후에 입 밖으로 꺼내는 정화와는 달리 임수는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하길 원했다.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일까지, 무엇보다 표면을 스쳐가거나 심층에 쌓여있는 숱한 감정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는 것이었다. 시시콜콜 말할 수 없는 개인의 속사정, 문제 해결 방식의 차이 등 각자 축적해 온 삶의 스타일이 그라데이션처럼 예쁘게 섞이지는 않았다. 한편 그 다름과 차이가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기도 하였으니, 이해와 오해의 한끝 차이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이곳이 앎과 삶의 현장,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겨울 정원

 

 

과연 정화와 임수는 합목하여 '가족'이 될 수 있을까?

 

2회 임수편에서 계속됩니다.

 

댓글 12
  • 2023-01-30 11:17

    다름과 차이로 이어지는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일 좌충우돌의 경험! 재밌겠습니다~~~기대돼요 ~~~~

  • 2023-01-30 11:48

    첫 스타트를 끊은 정화 감사합니다~~~^^
    다름과 차이는 불편한데, 생명력을 불어넣어요~! 재미있습니다~!! 정임합목 이야기 기대해주세요~~ㅎㅎ

  • 2023-01-30 12:10

    공부로 만나 '함께 살 결심'을 한 정화와 임수! 장합니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글을 쓰는 형식도 기대감을 한층 up 시키는군요.ㅎ
    오랫동안 베일에 쌓여 있다 이제야 공개되는 정화입목양생하우스의 함께 살기 실험, 다음 회가 기다려집니다.^^

  • 2023-01-30 15:55

    신의, 연대, 공부가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1인으로서 앞으로의 두 언니들(멋지면 다 언니!!)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0^

  • 2023-01-30 16:00

    오프닝이 긴 느낌!! 본편은 언제 시작하나요? 더글로리처럼은 하지 맙시다^^

  • 2023-01-30 16:11

    '마췸내' 연재가 시작되었군요! 기대되요~~~~~

  • 2023-01-30 17:34

    와...정말 멋집니다!
    궁금...기대...^^
    다음편을 고대합니다!!!

  • 2023-01-30 20:06

    우하하 쌤들의 실험에서 저와 제 친구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를 엿보겠습니다

  • 2023-01-31 10:11

    저와 삶의 정거장(살림과연신내,금천구 시흥동)이 시간차를 두고 비껴갔다는걸 양생 캠프 가는 차 안에서 알게 되어 무사님 저 둘다 놀랜 경험이 있었어요.
    그러나 올해 계묘년 시작부터 양생 캠프 가는 이동 차에 같은 조가 되고, 나이듦 연구소 번개세미나, 칸트 해설서 읽기, 곧 시작할 2023양생 프로젝트까지 비껴간 인연들이 올해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것 같아 무지 신기해 하고 있어요. ㅎㅎ
    그리고 저도 정화..ㅎㅎㅎㅎㅎ
    정임합목 하우스 연재를 응원합니다.
    또 기대하며 기다릴께요.

  • 2023-01-31 13:53

    다음얘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
    어서어서 써주세요~^^

  • 2023-02-02 13:37

    저도 잠깐 다른 공동체 꿈꾸다 결혼 제도로 들어왔는데요. 다른 가족이야기 흥미진진이고요. 넘 멋있는 언니(멋있는 여성은 다 언니ㅋ)두 분 등장! 다음 화를 기다립니다.

  • 2023-02-06 19:45

    ‘극여초집단’, ‘신천지 언니’ㅋㅋㅋ 아슬아슬한 줄타기, 핑퐁핑퐁 주고 받는 연재 무지 기대됩니다!!!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함께 살기, 베이스캠프-되기   2023.5.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잠시 제주에 있다.    여기는 제주다. ​ 여기는 제주다.(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5월 들어 자기배려의 기술 글쓴이들로부터 연재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외침이 들려왔다.(그리고 이는 결코 남일이 아니었다.) 글쓴이들의 탓만도 아니다. 솔직히 5월은 그럴만하지 않은가. 각종 법정(과 대체) 공휴일도 많고,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은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뭘 하거나 어디를 가야할 것만 같은 부담을 준다. 또 노동절(5월 1일)로 문을 열고 세계 금연의 날(5월 31일)로 문을 닫는 아이러니한 달이기도 하다. 진정 금연을 하려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나 하는 잡(JOB)생각이 들게 만든다. 각종 민주화 관련 기억도 행사도 많은 '오월의 사회과학' 달이기도 하다. 이뿐이랴? 여름 초입을 앞두고 늦은 봄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는 조급함도 들게 하니 어찌 바쁘지 않겠는가. 어찌 연재 마감을 맞출 수 있겠는가. 정없게 말이다!     수용성과 휘발성의 땅, 제주 ​ 지난 4월 글쓰기의 기쁨(0.01%)과 슬픔(99.99%)을 나누는 시간에 글감과 아이디어의 속성에 대한 간증이 터져나왔다. "샤워할 때만 반짝 생각났다가 곧바로 물에 쓸려 녹아버리니, 분명 아이디어는 수용성이다."(D씨), "샤워가 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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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23.05.31 조회 169
요요의 월간명상
두 개의 돌 정원이 던지는 질문 -료안지의 돌 정원과 고야산 곤고부지의 돌 정원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딸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와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찰 투어. 그 컨셉에 맞게 무리하지 않은 속도로, 그러나 알차게 이곳저곳 탐방을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교토방문이 세 번째였지만 딸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내가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딸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구글맵을 켜고 효율적으로 목적지를 찾고, 궁금한 게 있으면 빠르게 검색하는 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길을 잃는다거나 혹은 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에 내린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던 시절이 갔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빈틈이 있고, 빈틈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침입해 들어왔다. 여행의 맛은 그 빈틈을 향유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료안지의 돌정원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토에서 3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1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돌아와 오사카에서 2박을 하며 하루는 온종일 나라를 둘러보는 코스를 짰다. 교토에는 보아야 할 것들이...
두 개의 돌 정원이 던지는 질문 -료안지의 돌 정원과 고야산 곤고부지의 돌 정원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딸과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와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사찰 투어. 그 컨셉에 맞게 무리하지 않은 속도로, 그러나 알차게 이곳저곳 탐방을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교토방문이 세 번째였지만 딸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내가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딸이 나를 데리고 다녔다. 구글맵을 켜고 효율적으로 목적지를 찾고, 궁금한 게 있으면 빠르게 검색하는 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길을 잃는다거나 혹은 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에 내린다거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던 시절이 갔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빈틈이 있고, 빈틈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침입해 들어왔다. 여행의 맛은 그 빈틈을 향유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료안지의 돌정원   여행을 떠나기 전 교토에서 3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1박을 하고, 고야산에서 돌아와 오사카에서 2박을 하며 하루는 온종일 나라를 둘러보는 코스를 짰다. 교토에는 보아야 할 것들이...
요요 2023.05.22 조회 241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젯밤의 이야기   어제는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초콜렛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는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두 달 전쯤 이사 온 이탈리안이자 독일인이다. 내 윗방에 사는데 내가 늦게 자기 때문에 레오가 얼마나 늦게까지 안 자는지 그의 발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레오는 늦은 밤에 꼭 담배를 한 대씩 피러 나온다. 문을 열어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쇼파 위에서 자고 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레오는 그 고양이와 같이 찍은 셀카를 보여주었다.   나와 레오가 같은 물건을 산다면 나는 설명서를 아예 읽지도 않고 무작정 끼워보는 편인 반면에 레오는 침착하게 읽은 뒤 하나씩 맞춰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겠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평안도, 마음의 평안도 주는 사람이다. 마주친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레오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레오는 약간 피곤하다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요새 나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어떻게 해야 더 머무를 수 있을지. 아니 정말 내가 독일에 머무르고 싶긴 한 건지. 나는 누가 묻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데, 레오에게...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젯밤의 이야기   어제는 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초콜렛을 찾으러 부엌에 들어갔다. 부엌에는 레오가 있었다. 레오는 두 달 전쯤 이사 온 이탈리안이자 독일인이다. 내 윗방에 사는데 내가 늦게 자기 때문에 레오가 얼마나 늦게까지 안 자는지 그의 발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레오는 늦은 밤에 꼭 담배를 한 대씩 피러 나온다. 문을 열어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쇼파 위에서 자고 있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를 가리켰다. 레오는 그 고양이와 같이 찍은 셀카를 보여주었다.   나와 레오가 같은 물건을 산다면 나는 설명서를 아예 읽지도 않고 무작정 끼워보는 편인 반면에 레오는 침착하게 읽은 뒤 하나씩 맞춰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겠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물리적인 평안도, 마음의 평안도 주는 사람이다. 마주친 김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나는 레오와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레오는 약간 피곤하다며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요새 나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 어떻게 해야 더 머무를 수 있을지. 아니 정말 내가 독일에 머무르고 싶긴 한 건지. 나는 누가 묻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데, 레오에게...
현민 2023.05.17 조회 238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아찔한 동거     어느 날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정체불명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봄 일지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보듬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울음소리는 한 두 명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인원들이 호롤ㄹㄹ- 호롤로ㄹㄹ- 하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쪽에서 무언가 폴짝 뛰는 움직임이 보였다. (헉..!)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무언가가 땅에 납짝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저기요?) 손을 내밀어 꽁무니를 슬쩍 건드리니까, 폴짝!     새벽이생추어리에 개구리가 나타났다. 경칩이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기였다. 올해 경칩은 3월 6일이고 내가 개구리 소리를 들은 날은 3월 9일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지 며칠밖에 안 된 날이었다. 개구리는 특히 겨울잠을 깊이 자는 동물이다. 곰의 경우엔 겨울잠 중간에 깨기도 하는데, 개구리는 심장박동과 호흡이 거의 멎는 가사 상태로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자다가 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는 것이다.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깼다가 갑작스런 추위에 얼어 죽는 개구리가 많다고 한다. 제때 개구리 소리를 듣는 건 점점 귀한 일이 되고 있다.   호롤ㄹㄹ- 호롤로ㄹㄹㄹ- (...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아찔한 동거     어느 날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정체불명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봄 일지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보듬이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울음소리는 한 두 명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인원들이 호롤ㄹㄹ- 호롤로ㄹㄹ- 하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쪽에서 무언가 폴짝 뛰는 움직임이 보였다. (헉..!)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무언가가 땅에 납짝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저기요?) 손을 내밀어 꽁무니를 슬쩍 건드리니까, 폴짝!     새벽이생추어리에 개구리가 나타났다. 경칩이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기였다. 올해 경칩은 3월 6일이고 내가 개구리 소리를 들은 날은 3월 9일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지 며칠밖에 안 된 날이었다. 개구리는 특히 겨울잠을 깊이 자는 동물이다. 곰의 경우엔 겨울잠 중간에 깨기도 하는데, 개구리는 심장박동과 호흡이 거의 멎는 가사 상태로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자다가 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는 것이다. 요즘은 온난화 때문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깼다가 갑작스런 추위에 얼어 죽는 개구리가 많다고 한다. 제때 개구리 소리를 듣는 건 점점 귀한 일이 되고 있다.   호롤ㄹㄹ- 호롤로ㄹㄹㄹ- (...
경덕 2023.05.10 조회 300
기린의 걷다보면
'할미꽃'과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희(喜)   올해로 86세가 되신 어머니는 4남매가 모두 경기권에 자리를 잡은 탓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자 별 수 없이 독거노인의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연세가 들수록 점점 거동이 둔해지는 어머니를 보며 그나마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으실 때,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자는 마음이었다. 올해는 평창에 있는 친구의 집을 숙소로 잡아서, 그 근처에 있는 ‘허브나라 정원’을 관람하며 걷는 일정으로 잡았다.       허브나라 정원은 테마별로 세익스피어 가든, 팔레트 가든 등 여러 가든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선 곳은 세익스피어 가든이었는데 주변으로 튜울립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작년 순천만정원에서 온갖 색깔을 뽐내던 튜울립을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다. 어머니도 작년의 튜울립을 올해는 여기서 본다며 좋아하셨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던 남동생이 우리가 어릴 때 고향집에도 화단이 있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는 남동생까지 태어나면 네 명이나 되는 자식을 데리고 더 이상 셋방살이를 할 수는 없어서 빚을 내서 집터를 장만해야했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빚을 갚느라 형편은 쪼들렸지만, 내 집이라 하고 싶은 대로 꽃도 심고 나무도 키웠다고 하셨다. 우리를 키우느라 손끝에 물이 마를 새가 없던 그 시절에도 틈틈이 그 꽃밭을 가꾼 취향은...
'할미꽃'과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희(喜)   올해로 86세가 되신 어머니는 4남매가 모두 경기권에 자리를 잡은 탓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자 별 수 없이 독거노인의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연세가 들수록 점점 거동이 둔해지는 어머니를 보며 그나마 지팡이라도 짚고 걸을 수 있으실 때,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자는 마음이었다. 올해는 평창에 있는 친구의 집을 숙소로 잡아서, 그 근처에 있는 ‘허브나라 정원’을 관람하며 걷는 일정으로 잡았다.       허브나라 정원은 테마별로 세익스피어 가든, 팔레트 가든 등 여러 가든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선 곳은 세익스피어 가든이었는데 주변으로 튜울립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작년 순천만정원에서 온갖 색깔을 뽐내던 튜울립을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다. 어머니도 작년의 튜울립을 올해는 여기서 본다며 좋아하셨다. 어머니와 나란히 걷던 남동생이 우리가 어릴 때 고향집에도 화단이 있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는 남동생까지 태어나면 네 명이나 되는 자식을 데리고 더 이상 셋방살이를 할 수는 없어서 빚을 내서 집터를 장만해야했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빚을 갚느라 형편은 쪼들렸지만, 내 집이라 하고 싶은 대로 꽃도 심고 나무도 키웠다고 하셨다. 우리를 키우느라 손끝에 물이 마를 새가 없던 그 시절에도 틈틈이 그 꽃밭을 가꾼 취향은...
기린 2023.05.06 조회 271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몇 년 전부터 파지사유 2층에 아주 예민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은 파지사유에서 나는 작은 소음 즉, 의자 끄는 소리, 가죽 망치 소리에도 힘들어 했다. 그런데 요즘 몇 달 안 내려 와서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그분들이 임신을 하셨단다. 누구는 임신을 해서 신경이 무뎌진 거 아닐까 했지만, 난 그분들이 이제 삼가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꺼라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제일 겸손해질 때가 아이를 가지고 키울 때, 그리고 암환자 중간검사 기다릴 때인 것 같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중간검사를 한다. 재발과 전이가 많은 암이라 온갖 검사를 하루 종일 한다. 한 달 전부터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고 반성모드가 된다. 내가 그날 아이스크림을 왜 먹었을까? 운동을 왜 빼먹었을까? 요즘 고기를 넘 많이 먹은 게 아닐까? 샐러드 안 먹은 거, 잡곡 안 먹은 거 등등 모두 반성할 일 뿐이다.     중간검사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다시 6달,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특별회비를 낸다!) 환우 커뮤니티에 6개월 검진 통과, 1년, 3년, 5년 통과 글들이 올라오면 수십 개의 댓글이 쭈욱 달린다.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그 분들의 히스토리를 검색하고 나와 비슷한 병력을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나도 잘하면...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몇 년 전부터 파지사유 2층에 아주 예민한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은 파지사유에서 나는 작은 소음 즉, 의자 끄는 소리, 가죽 망치 소리에도 힘들어 했다. 그런데 요즘 몇 달 안 내려 와서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그분들이 임신을 하셨단다. 누구는 임신을 해서 신경이 무뎌진 거 아닐까 했지만, 난 그분들이 이제 삼가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일 꺼라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제일 겸손해질 때가 아이를 가지고 키울 때, 그리고 암환자 중간검사 기다릴 때인 것 같다.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중간검사를 한다. 재발과 전이가 많은 암이라 온갖 검사를 하루 종일 한다. 한 달 전부터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고 반성모드가 된다. 내가 그날 아이스크림을 왜 먹었을까? 운동을 왜 빼먹었을까? 요즘 고기를 넘 많이 먹은 게 아닐까? 샐러드 안 먹은 거, 잡곡 안 먹은 거 등등 모두 반성할 일 뿐이다.     중간검사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다시 6달,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특별회비를 낸다!) 환우 커뮤니티에 6개월 검진 통과, 1년, 3년, 5년 통과 글들이 올라오면 수십 개의 댓글이 쭈욱 달린다. 좋은 기운을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그 분들의 히스토리를 검색하고 나와 비슷한 병력을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나도 잘하면...
문탁 2023.05.05 조회 190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올해는 양생프로젝트에서 ‘돌봄’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읽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어려운 책을 공부하다보니 계절을 즐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던 아침 산책은 올해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손에 꼽힌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보면 늦게 잠들게 되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계절 감각은 주말에만 즐기게 된다. 그래도 아예 계절감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거실 풍경은 계절감을 충분히 선사해준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2층 단독주택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짙은 어둠을 지나 해가 길어지니 출근하기 전에 거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좁쌀 같던 산수유 꽃은 꽃다발이 되었고 오밀조밀 새하얗게 피었던 살구꽃은 살구로 변신 중이다.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가 신기했는데 힘없이 붉은 잎이 나오더니 파릇한 초록 잎으로 변했다. 산수유나무 위에서 먹이 활동하는 새들의 소리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내 눈높이에서 이루어진다. 나무를 올려보거나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준다. 산수유 꽃이 만개하던 날 안개꽃 다발 속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올해는 양생프로젝트에서 ‘돌봄’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과학분야의 책을 읽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직장을 다니며 어려운 책을 공부하다보니 계절을 즐기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던 아침 산책은 올해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손에 꼽힌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보면 늦게 잠들게 되고 늦게 일어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계절 감각은 주말에만 즐기게 된다. 그래도 아예 계절감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거실 풍경은 계절감을 충분히 선사해준다.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2층 단독주택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짙은 어둠을 지나 해가 길어지니 출근하기 전에 거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좁쌀 같던 산수유 꽃은 꽃다발이 되었고 오밀조밀 새하얗게 피었던 살구꽃은 살구로 변신 중이다.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가 신기했는데 힘없이 붉은 잎이 나오더니 파릇한 초록 잎으로 변했다. 산수유나무 위에서 먹이 활동하는 새들의 소리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내 눈높이에서 이루어진다. 나무를 올려보거나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준다. 산수유 꽃이 만개하던 날 안개꽃 다발 속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루틴 2023.04.30 조회 268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똥 냄새, 땅 냄새         냄새 공동체   새벽이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고기 냄새’와 ‘새벽이 냄새’가 동시에 감각되어 혼란스러웠다, 고 지난 글에 적었다. 하지만 새벽이를 만날수록 새벽이 냄새는 n가지 냄새로 확산되었다. 식단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또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냄새라고 딱 구분 짓기 어려운 다양한 냄새를 풍겼다.   새벽이생추어리를 오가며 새벽이 이외의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할수록 새벽이 냄새와 새벽이 아닌 냄새는 마구 섞여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익숙하고 공유된 냄새가 점차 우리 안에 스며들고, 흐르고, 쌓이는 것 같았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비인간 존재들은 서로의 신원을 냄새로 알아볼 수 있을까? 킁킁.. 저기 혹시?)       똥과 부식토학   새벽이생추어리의 냄새들 중에서 새벽이가 갓 배출한 응가 냄새는 꽤 강렬했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응가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을 땐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근데 맡으면 맡을수록 우리의 관계가 점점 더 끈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맡다 보니 또 익숙해졌다. 사람 똥과 비교하면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숨을 참지 않았다. (후-하-, 후-하-)   새벽이는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조금 걷고 뛰다가 일정한 장소에 볼일을 본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똥 냄새, 땅 냄새         냄새 공동체   새벽이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고기 냄새’와 ‘새벽이 냄새’가 동시에 감각되어 혼란스러웠다, 고 지난 글에 적었다. 하지만 새벽이를 만날수록 새벽이 냄새는 n가지 냄새로 확산되었다. 식단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또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냄새라고 딱 구분 짓기 어려운 다양한 냄새를 풍겼다.   새벽이생추어리를 오가며 새벽이 이외의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할수록 새벽이 냄새와 새벽이 아닌 냄새는 마구 섞여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익숙하고 공유된 냄새가 점차 우리 안에 스며들고, 흐르고, 쌓이는 것 같았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비인간 존재들은 서로의 신원을 냄새로 알아볼 수 있을까? 킁킁.. 저기 혹시?)       똥과 부식토학   새벽이생추어리의 냄새들 중에서 새벽이가 갓 배출한 응가 냄새는 꽤 강렬했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응가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을 땐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근데 맡으면 맡을수록 우리의 관계가 점점 더 끈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맡다 보니 또 익숙해졌다. 사람 똥과 비교하면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숨을 참지 않았다. (후-하-, 후-하-)   새벽이는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조금 걷고 뛰다가 일정한 장소에 볼일을 본다....
경덕 2023.04.20 조회 279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1년이 금방 지나갔다. 힘든 일도 금방 잊혀 진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환자 같지 않은 내가 작년 이맘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답! 표적항암과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난 암이 림프절까지 침범하였기에 수술에서 림프절을 40개 넘게 떼어내었다. 림프액은 림프관을 따라 흐르면서 몸의 순환과 균형을 맞추는 일은 한다. 림프액이 잘 흐르지 않아 부종이 올까 늘 조심해야 한다. 일단 왼손으로 5kg 넘는 짐을 들면 안 되고, 압박 스타킹을 왼팔에 끼고 있어야 되고, 림프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 림프절이 부어서 팔이 코끼리 다리처럼 되면 다시 큰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림프절을 보호한다고 왼팔을 안 쓰다 보니, 어느 날 왼쪽 어깨가 굳어 버렸다. 대신 오른쪽 어깨를 많이 쓰다 보니 그 어깨에도 문제가 생겼다. 밤마다 어깨가 아파 울면서 잠을 깼다. 난 재활의학과로 옮겨가 도수치료를 받아야 했다.             도수치료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0분씩 받는다. 한 번에 10만원씩 지불하다보니 돈이 푹푹 들어갔다. 국가에서 암환자라 주던 중증환자 혜택은 (치료비의 5%) 여기서는 없다. 첫 날 치료를 받으며 난 ‘독립투사’는 절대 못 하겠다 생각했다. 고문기구판 같은 곳에 매달려서 협착된 근육조직을 뜯어내는 것은 너무 아팠다. 신음과 고함을 지르는 고문을 자발적으로 받으러 가야했다. 치료사는 매일 팔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 주에 해야...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1년이 금방 지나갔다. 힘든 일도 금방 잊혀 진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환자 같지 않은 내가 작년 이맘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정답! 표적항암과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난 암이 림프절까지 침범하였기에 수술에서 림프절을 40개 넘게 떼어내었다. 림프액은 림프관을 따라 흐르면서 몸의 순환과 균형을 맞추는 일은 한다. 림프액이 잘 흐르지 않아 부종이 올까 늘 조심해야 한다. 일단 왼손으로 5kg 넘는 짐을 들면 안 되고, 압박 스타킹을 왼팔에 끼고 있어야 되고, 림프 마사지를 해줘야 한다. 림프절이 부어서 팔이 코끼리 다리처럼 되면 다시 큰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림프절을 보호한다고 왼팔을 안 쓰다 보니, 어느 날 왼쪽 어깨가 굳어 버렸다. 대신 오른쪽 어깨를 많이 쓰다 보니 그 어깨에도 문제가 생겼다. 밤마다 어깨가 아파 울면서 잠을 깼다. 난 재활의학과로 옮겨가 도수치료를 받아야 했다.             도수치료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0분씩 받는다. 한 번에 10만원씩 지불하다보니 돈이 푹푹 들어갔다. 국가에서 암환자라 주던 중증환자 혜택은 (치료비의 5%) 여기서는 없다. 첫 날 치료를 받으며 난 ‘독립투사’는 절대 못 하겠다 생각했다. 고문기구판 같은 곳에 매달려서 협착된 근육조직을 뜯어내는 것은 너무 아팠다. 신음과 고함을 지르는 고문을 자발적으로 받으러 가야했다. 치료사는 매일 팔운동을 해야 한다며 그 주에 해야...
문탁 2023.04.19 조회 83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문탁 2023.04.19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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