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내 소원은 초(등학교)졸(업) 시키기?!

모로
2024-03-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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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그러면서도 푸쉬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은근슬쩍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지막엔 ‘뭐 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며 퇴로도 만들어준다. 2주 전부터 이어온 물밑 작전에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감자의 모습이 심상찮다. 이제껏 떼쓰면서 드러눕는 행태가 아닌…. 뭐랄까 정말 낙심한 듯한 모습. “엄마 정말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안 생겨요….” 마음이 약해진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 했던 아이였다. 모범생도 아니고 날라리도 아닌,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공부하다 졸고,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가 간식을 사 먹던 그저 그런 평범하고도 평범한 아이. 공부하기 싫었지만 늘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고, 아파도 학교를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다른 삶의 루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특한 아이를 키우면서, 유치원 때부터 한 번도 편하게 교육기관에 가지 못하는 감자를 보면서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학교, 정말로 가야 할까.

 

 

  어린이집 시절부터 겨우 출석 일수 만 채울 정도로 힘들게 기관을 다닌 감자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늘 혼자 책을 읽거나, 중얼거리거나, 알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내는 아이. 그게 감자였다. 수업도 지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도 안 들어오고, 쉬는 시간에 같이 놀 친구도 없이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있는 게 과연 감자의 삶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학업도 친구 관계도 아니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을 이 아이가 알지 못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자기의 관심사 말고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감자는 어릴 때 그 흔한 명작동화 한 장 읽지 않았다.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를 과연 알까. 이솝 우화를 알기는 할까. 그런 것이 걱정이었다. 나는 감자가 분수를 소수 계산을 모르는 게 걱정인 게 아니라, 블랙핑크를, 유재석을 모를까 봐서 걱정이다.

 

 

  대망의 개학 첫날. 감자는 아침부터 학교 가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같이 등교를 하기로 했다. 아직 씻지 못해 떡진 머리를 핀으로 틀어 올리고 대충 옷을 걸쳐 입고 감자와 집을 나섰다. 5학년이지만 이미 내 키를 넘어서선 감자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 이미 조금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한 학교는 적막했다. 나는 다 큰 감자의 손을 잡고 1학년 학부모가 된 기분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5층까지 같이 올라갔다. 교실 앞. 한 발짝 떼고, 한 발짝을 주저하며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감자는 정말로 두려워 보였다. 벌벌 떠는 사이 5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얼떨결에 그 앞에서 인사를 하고 천천히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감자의 긴장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겨우 뒷문까지 갔는데, 문을 쾅쾅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나 여기 왔소. 그러나 들어가지는 못하겠소’를 전교에 알렸다. 아호. 부끄러웠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 지켜보고 기다려주자 마지못해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려왔는데 띠링 문자가 온다. ‘저 학교에 있는데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이제 저를 포기했나요?’

 

 

 

  아. 오늘은 실패다. 아직도 감자를 전혀 포기하지 못한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럼 그냥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 사이 1교시 쉬는 시간 종이 치고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하…. 정말 힘들다. 이 많은 아이 사이에서 혼자가 된 기분. 저 멀리 담임 선생님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감자의 모습이 보였다. 막상 내려오자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감자. 하지만 이때는 단호해야 한다.

 “학교는 가야 하는 거고, 혹시 힘들면 안 갈 수도 있지만 네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선생님도 수업 들어가셔야 하는데 이만 가자.”

  억지로 돌려보내면 다시 교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감자를 데리고 나왔다. 감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묻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나요?”

 “어떤 일을 해도 감자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어. 그건 사실이야.”

  긴장해서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푸식 하고 꺼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생님이 엄격해 보이지 않던데요? 내일은 학교를 한 번 가볼까요?”

 

 

  하지만 다음날. 분명 기분좋게 등교했는데, 학교가 마치자마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감자를 어느 정도로 제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감자가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려서 집에 들어왔다. 씩씩거리면서 이 겨울에 땀까지 흘리면서 분노했다. 그리고 자기가 너무 나쁜 짓을 했다고, 나쁜 아이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고. 조그만 일이었는데 너무 크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물러서 감자를 더 힘들게 했을까. 감자는 컸는데 내가 보는 눈은 유치원생에 머물러 있는 걸까. 하면 안 되는 것을 좀 더 단호하게 해야 했나. 선생님께 연락해서 3일은 학교를 안 보내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제껏 학교를 빠지는 날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때는 감자가 힘들어해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감자가 쉬는 게 아니라 학교가 못 오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3일을 아주 심심하게 아무런 놀이감도 던져주지 않고, 혼자 집에 두었다. 일하다가 집에 가서 점심만 차려주고 왔다. 퇴근해서 보니 책을 산더미 같이 읽고, 종이접기도 하고 찬장을 뒤져서 과자를 먹고, 김을 까먹고, 하루를 알차게 보낸 흔적들이 보였다. 잘 있었구나. 학교에 안 가는 감자는 편안해 보였다. 그래, 학교를 정말 다니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마음을 먹고 물어봤다.

 

 “그래서 학교를 때려칠꺼야? 정말 혼자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겠어?”

 “아니요. 엄마. 월요일에는 학교에 갈래요. 혼자 있으니까 심심한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어요.”

 

  이런 말을 하는 감자를 보니,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자란걸까 싶었다. 키만 큰 어린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껏 나는 감자를 자라지 못한 아이로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건 똑같지만 들여다보니, 그건 자라난 사회성에 대한 부대낌이었다. 관심이 없어서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이제야 조금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힘든것. 하고 싶은 데 잘 되지 않아서 분노하는 마음이 그것이었다. 이제는 내 눈치도 보고, 선생님 눈치도 보고, 친구들의 눈치도 보는 아이. 그러나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아이. 이건 좋은 부대낌이야.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줘야지. 감자가 학교에서 제일 힘든 3가지, 수업시간에 의미없는 말을 계속 내뱉고, 양말을 벗고 발을 만지작 거리며, 식사를 깔끔하게 먹지 못하는 것. 정말 정말 오랫동안 배우고 있는 부분인데도 잘 안된다. 그럼 어떡해. 또 해야지.

 

 “감자야 손가락과 발가락은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금지된 만남이야. 이제부터 손과 발이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서로 만나는 건 없는거다?”

 

  ‘빰빠라 빠빠 빰빠빠빠’ 그 옛날 주얼리의 노래에 맞춰 발가락에 손가락을 끼우는 모습을 재연했다. ‘노 베이비 원모어 타임’ 예쓰! 이해했다. 이제 손과 발은 만날 수 없어! 밥 먹고 난 후 뒷처리 부분은 미흡하지만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김치를 워낙 좋아해서 산더미 같이 김치를 먹다보니 입술 주변이 벌겋다. 밥 먹고는 무조건 거울보고 입 닦기. 이건 지속적으로 지적하면 가능할 거 같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장 난관인데... 수업시간에 소리지르지 않기. 이건 정말 무의식의 치원이여서 어렵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에만 그치는데 반해, 감자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밖으로 나온다. 계속 지적하면 더 불안해서 소리가 더 많아지는 악순환. 약물 복용도 해보고, 인지, 언어 치료도 하고 있지만 다들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요즘 하고 있는 불교공부가 생각났다.

 

 “엄마가 요새 불교 공부를 하거든, 거기서 명상을 함께 하는데, 명상의 기본이 알아차림이래. 감자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그 마음이 들 때마다 한 번 멈춰보는 건 어떨까? 당연히 소리가 또 나오겠지. 그러면 다시 멈춰보는거야. 그러다보면 소리를 내기도 전에 멈추는 마음이 든대.”

 

  이게 될까. 나도 어려운데. 하지만 나 역시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서 생각이 한정되니까 이게 최선이다. 걱정과는 달리 바로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감자가 4교시까지 정말 소리도 안내고 수업 참여도 잘 했어요(희) 그런데 5교시가 되자 진단평가 채점지를 받았는데... (비) ”

 

  아. 그랬구나.. (알아차림) 감자가 잘 했다가(알아차림), 또 흐트러졌구나.(알아차림) 역시 감자는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다! 이렇게까지 일상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다니. 우리 같이 잘 해보자!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댓글 13
  • 2024-03-25 11:03

    좋은 부대낌!! 이걸 알아차리기까지 모로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좋은 부대낌이니 또 기대해봅시다~

  • 2024-03-25 11:16

    나는 엄마 때문에 득도할 지도 모르고 그대는 감자 때문에 깨달을지도 몰라^^

  • 2024-03-25 11:56

    모로, 모로님, 감자, 감자님...
    그대들이 나의 스승입니다,진정!

  • 2024-03-25 15:52

    와 알아차림을 바로 실천하는 감자라니요! 감자 너무 기특한데요!
    알아차림이 그렇지요. 알아차렸다가도 순간 방심한 사이 놓치고... 그러다 다시 생각이 나 알아차리고...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로바로 실천해보는 감자~~
    감자가 저보다 낫군용ㅋㅋㅋㅋ

  • 2024-03-25 17:07

    학교 가기 싫어 현관 앞에 드러누운 감자는 반항하는 감자인가요?
    저희 작은 아들 사진인 줄... 저도 저런 사진 여러 장... 모로네 감자보다 아주 왕감자! ㅎㅎ
    곧 지나갈 시간들입니다.
    같이 공부와 알아차림 속에서 죽도 밥도 지으며 지나가봅시다!
    도처에 우리를 공부시키는 부처님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공부가 끝이 없습니다요~^^ 우리 같이 화이팅!

  • 2024-03-26 08:12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좋네요.
    전생의 인연이 깊고깊어 이생에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서로 배움을 주는 관계라..자식을 가져본 경험이 없어 어떤 감정인지 상상과 이입만으로 다 알수가 없지만 좀 부럽네요. ㅎㅎ
    앞으로도 둘의 지지고 볶고 또 맛나게 먹는 관계의 이야기가 기대되요~~~^^

  • 2024-03-26 09:23

    자식은 늘 나를 공부시키죠
    감자가 사회인이 되느라 부대끼고 있는 중이네요
    감자의 알아차림
    모로의 알아차림
    모두 화이팅!!!

  • 2024-03-26 09:27

    유재석. 블핑. 뉴진스. 게임 용어. 축구팀. 선수들.
    이런거에 전혀 관심없는 애들 은근 꽤 있어요.

    꼭 알려주고 싶어서리....

    • 2024-03-26 14:55

      맞아요! 울집에도 있어요^^ 이런거 몰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큰일은 없는듯

  • 2024-03-26 12:01

    언젠가는 감자의 취향을 이해하는 친구도 선생님도 생기겠죠? 감자에게 세상이 점점 더 넓어질테니!

  • 2024-03-31 00:10

    감자 홧팅!!! 이번주 감자랑 한 듀오링고 프렌즈퀘스트 성공!

  • 2024-04-01 12:50

    감자도 모로도 홧팅~!!
    알아차림을 바로 쓸 줄이야~~!!

  • 2024-04-18 02:10

    샘 글 너무 좋아유 ㅠㅠ 감자 생각하면서 저도 초등학교 때 애들끼리 기싸움, 서열싸움 때문에 학교 다니는 거 진짜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이제는 학교를 안가도 되서 너무 기뻐요.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아버지의 미수연   지난달에 가까운 친척들을 모시고 아버지의 88세 미수연을 했다. 다들 나이가 들어 왕래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뵌 후 2년 만에 만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홀로 된 아버지를 걱정하고 계실 듯해서 겸사겸사 식사 대접을 했다. 축하 인사 후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말씀하실 때는 청산유수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 80이 되면 무덤 속에 누운 이나 살아있는 이나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도 내년이면 90이니 오래 살았습니다.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갈 때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때때로 아버지의 심경을 적어 놓은 메모가 들어있다.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사는 낙이 없다. 빨리 죽고 싶다.” 밥도 잘 드시고 컨디션이 좋아 보일 때도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 아버지의 평소 정조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증상에는 우울감도 포함된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친척들은 다들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큰아들이 옆에 살아서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아침에 오고 저녁에도 와서 챙긴다.” 아버지의 대답을 듣는 나는 어이가 없다. 자식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아버지 집에서 지내온 것이 벌써 햇수로 4년째! 큰아들과 며느리를 앞세우는 것은 그래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허세일까, 아니면 자식들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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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5.27 | 조회 76
아스퍼거는 귀여워
  그 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감자가 한 50일쯤이었을까. 분유 냄새가 폴폴 나는 뽀시래기 시절,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감자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 위에 앉아 다리 위에 아이를 끼워놓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배부른 아이는 나른하게 누워있고, 모처럼의 평화로운 분위기. 그때 감자는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등줄기부터 짜르르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감자를 낳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회복이 늦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었고, 씻지도 먹지도 못해 사랑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처음 눈이 서로 딱 마주친 그때.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그날부터 감자 입덕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한다. “호옥시... 우리 아이가 천재?” 누구나 에겐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아이만 보이는 시절이 있었더랬다. 첫 뒤집기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싶다. 태어나서 한 줌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꼬물거리고, 울고, 웃었다. 그때는 손가락만 쥐었다 펴도 대단해 보인다. 그런 아이가 뒤집기라니!! 혼자서 뒤집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가 없다. “우리가 아이가 뒤집었어요.” 동네방네 플래카드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1~2개월이 뭐라고, 인터넷에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6개월이 지났는데…. 우리 아이 왜 뒤집기를 안 할까요’부터 ‘6개월인데 벌써 일어나 앉았어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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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5 | 조회 14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가마솥
2024.05.25 | 조회 136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현민
2024.05.24 | 조회 12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김윤경~단순삶
2024.05.20 | 조회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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