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내 소원은 초(등학교)졸(업) 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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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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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그러면서도 푸쉬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은근슬쩍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지막엔 ‘뭐 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며 퇴로도 만들어준다. 2주 전부터 이어온 물밑 작전에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감자의 모습이 심상찮다. 이제껏 떼쓰면서 드러눕는 행태가 아닌…. 뭐랄까 정말 낙심한 듯한 모습. “엄마 정말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안 생겨요….” 마음이 약해진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 했던 아이였다. 모범생도 아니고 날라리도 아닌,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공부하다 졸고,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가 간식을 사 먹던 그저 그런 평범하고도 평범한 아이. 공부하기 싫었지만 늘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고, 아파도 학교를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다른 삶의 루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특한 아이를 키우면서, 유치원 때부터 한 번도 편하게 교육기관에 가지 못하는 감자를 보면서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학교, 정말로 가야 할까.

 

 

  어린이집 시절부터 겨우 출석 일수 만 채울 정도로 힘들게 기관을 다닌 감자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늘 혼자 책을 읽거나, 중얼거리거나, 알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내는 아이. 그게 감자였다. 수업도 지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도 안 들어오고, 쉬는 시간에 같이 놀 친구도 없이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있는 게 과연 감자의 삶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학업도 친구 관계도 아니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을 이 아이가 알지 못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자기의 관심사 말고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감자는 어릴 때 그 흔한 명작동화 한 장 읽지 않았다.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를 과연 알까. 이솝 우화를 알기는 할까. 그런 것이 걱정이었다. 나는 감자가 분수를 소수 계산을 모르는 게 걱정인 게 아니라, 블랙핑크를, 유재석을 모를까 봐서 걱정이다.

 

 

  대망의 개학 첫날. 감자는 아침부터 학교 가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같이 등교를 하기로 했다. 아직 씻지 못해 떡진 머리를 핀으로 틀어 올리고 대충 옷을 걸쳐 입고 감자와 집을 나섰다. 5학년이지만 이미 내 키를 넘어서선 감자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 이미 조금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한 학교는 적막했다. 나는 다 큰 감자의 손을 잡고 1학년 학부모가 된 기분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5층까지 같이 올라갔다. 교실 앞. 한 발짝 떼고, 한 발짝을 주저하며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감자는 정말로 두려워 보였다. 벌벌 떠는 사이 5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얼떨결에 그 앞에서 인사를 하고 천천히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감자의 긴장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겨우 뒷문까지 갔는데, 문을 쾅쾅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나 여기 왔소. 그러나 들어가지는 못하겠소’를 전교에 알렸다. 아호. 부끄러웠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 지켜보고 기다려주자 마지못해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려왔는데 띠링 문자가 온다. ‘저 학교에 있는데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이제 저를 포기했나요?’

 

 

 

  아. 오늘은 실패다. 아직도 감자를 전혀 포기하지 못한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럼 그냥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 사이 1교시 쉬는 시간 종이 치고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하…. 정말 힘들다. 이 많은 아이 사이에서 혼자가 된 기분. 저 멀리 담임 선생님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감자의 모습이 보였다. 막상 내려오자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감자. 하지만 이때는 단호해야 한다.

 “학교는 가야 하는 거고, 혹시 힘들면 안 갈 수도 있지만 네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선생님도 수업 들어가셔야 하는데 이만 가자.”

  억지로 돌려보내면 다시 교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감자를 데리고 나왔다. 감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묻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나요?”

 “어떤 일을 해도 감자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어. 그건 사실이야.”

  긴장해서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푸식 하고 꺼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생님이 엄격해 보이지 않던데요? 내일은 학교를 한 번 가볼까요?”

 

 

  하지만 다음날. 분명 기분좋게 등교했는데, 학교가 마치자마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감자를 어느 정도로 제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감자가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려서 집에 들어왔다. 씩씩거리면서 이 겨울에 땀까지 흘리면서 분노했다. 그리고 자기가 너무 나쁜 짓을 했다고, 나쁜 아이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고. 조그만 일이었는데 너무 크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물러서 감자를 더 힘들게 했을까. 감자는 컸는데 내가 보는 눈은 유치원생에 머물러 있는 걸까. 하면 안 되는 것을 좀 더 단호하게 해야 했나. 선생님께 연락해서 3일은 학교를 안 보내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제껏 학교를 빠지는 날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때는 감자가 힘들어해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감자가 쉬는 게 아니라 학교가 못 오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3일을 아주 심심하게 아무런 놀이감도 던져주지 않고, 혼자 집에 두었다. 일하다가 집에 가서 점심만 차려주고 왔다. 퇴근해서 보니 책을 산더미 같이 읽고, 종이접기도 하고 찬장을 뒤져서 과자를 먹고, 김을 까먹고, 하루를 알차게 보낸 흔적들이 보였다. 잘 있었구나. 학교에 안 가는 감자는 편안해 보였다. 그래, 학교를 정말 다니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마음을 먹고 물어봤다.

 

 “그래서 학교를 때려칠꺼야? 정말 혼자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겠어?”

 “아니요. 엄마. 월요일에는 학교에 갈래요. 혼자 있으니까 심심한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어요.”

 

  이런 말을 하는 감자를 보니,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자란걸까 싶었다. 키만 큰 어린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껏 나는 감자를 자라지 못한 아이로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건 똑같지만 들여다보니, 그건 자라난 사회성에 대한 부대낌이었다. 관심이 없어서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이제야 조금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힘든것. 하고 싶은 데 잘 되지 않아서 분노하는 마음이 그것이었다. 이제는 내 눈치도 보고, 선생님 눈치도 보고, 친구들의 눈치도 보는 아이. 그러나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아이. 이건 좋은 부대낌이야.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줘야지. 감자가 학교에서 제일 힘든 3가지, 수업시간에 의미없는 말을 계속 내뱉고, 양말을 벗고 발을 만지작 거리며, 식사를 깔끔하게 먹지 못하는 것. 정말 정말 오랫동안 배우고 있는 부분인데도 잘 안된다. 그럼 어떡해. 또 해야지.

 

 “감자야 손가락과 발가락은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금지된 만남이야. 이제부터 손과 발이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서로 만나는 건 없는거다?”

 

  ‘빰빠라 빠빠 빰빠빠빠’ 그 옛날 주얼리의 노래에 맞춰 발가락에 손가락을 끼우는 모습을 재연했다. ‘노 베이비 원모어 타임’ 예쓰! 이해했다. 이제 손과 발은 만날 수 없어! 밥 먹고 난 후 뒷처리 부분은 미흡하지만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김치를 워낙 좋아해서 산더미 같이 김치를 먹다보니 입술 주변이 벌겋다. 밥 먹고는 무조건 거울보고 입 닦기. 이건 지속적으로 지적하면 가능할 거 같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장 난관인데... 수업시간에 소리지르지 않기. 이건 정말 무의식의 치원이여서 어렵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에만 그치는데 반해, 감자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밖으로 나온다. 계속 지적하면 더 불안해서 소리가 더 많아지는 악순환. 약물 복용도 해보고, 인지, 언어 치료도 하고 있지만 다들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요즘 하고 있는 불교공부가 생각났다.

 

 “엄마가 요새 불교 공부를 하거든, 거기서 명상을 함께 하는데, 명상의 기본이 알아차림이래. 감자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그 마음이 들 때마다 한 번 멈춰보는 건 어떨까? 당연히 소리가 또 나오겠지. 그러면 다시 멈춰보는거야. 그러다보면 소리를 내기도 전에 멈추는 마음이 든대.”

 

  이게 될까. 나도 어려운데. 하지만 나 역시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서 생각이 한정되니까 이게 최선이다. 걱정과는 달리 바로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감자가 4교시까지 정말 소리도 안내고 수업 참여도 잘 했어요(희) 그런데 5교시가 되자 진단평가 채점지를 받았는데... (비) ”

 

  아. 그랬구나.. (알아차림) 감자가 잘 했다가(알아차림), 또 흐트러졌구나.(알아차림) 역시 감자는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다! 이렇게까지 일상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다니. 우리 같이 잘 해보자!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댓글 13
  • 2024-03-25 11:03

    좋은 부대낌!! 이걸 알아차리기까지 모로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좋은 부대낌이니 또 기대해봅시다~

  • 2024-03-25 11:16

    나는 엄마 때문에 득도할 지도 모르고 그대는 감자 때문에 깨달을지도 몰라^^

  • 2024-03-25 11:56

    모로, 모로님, 감자, 감자님...
    그대들이 나의 스승입니다,진정!

  • 2024-03-25 15:52

    와 알아차림을 바로 실천하는 감자라니요! 감자 너무 기특한데요!
    알아차림이 그렇지요. 알아차렸다가도 순간 방심한 사이 놓치고... 그러다 다시 생각이 나 알아차리고...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로바로 실천해보는 감자~~
    감자가 저보다 낫군용ㅋㅋㅋㅋ

  • 2024-03-25 17:07

    학교 가기 싫어 현관 앞에 드러누운 감자는 반항하는 감자인가요?
    저희 작은 아들 사진인 줄... 저도 저런 사진 여러 장... 모로네 감자보다 아주 왕감자! ㅎㅎ
    곧 지나갈 시간들입니다.
    같이 공부와 알아차림 속에서 죽도 밥도 지으며 지나가봅시다!
    도처에 우리를 공부시키는 부처님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공부가 끝이 없습니다요~^^ 우리 같이 화이팅!

  • 2024-03-26 08:12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좋네요.
    전생의 인연이 깊고깊어 이생에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서로 배움을 주는 관계라..자식을 가져본 경험이 없어 어떤 감정인지 상상과 이입만으로 다 알수가 없지만 좀 부럽네요. ㅎㅎ
    앞으로도 둘의 지지고 볶고 또 맛나게 먹는 관계의 이야기가 기대되요~~~^^

  • 2024-03-26 09:23

    자식은 늘 나를 공부시키죠
    감자가 사회인이 되느라 부대끼고 있는 중이네요
    감자의 알아차림
    모로의 알아차림
    모두 화이팅!!!

  • 2024-03-26 09:27

    유재석. 블핑. 뉴진스. 게임 용어. 축구팀. 선수들.
    이런거에 전혀 관심없는 애들 은근 꽤 있어요.

    꼭 알려주고 싶어서리....

    • 2024-03-26 14:55

      맞아요! 울집에도 있어요^^ 이런거 몰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큰일은 없는듯

  • 2024-03-26 12:01

    언젠가는 감자의 취향을 이해하는 친구도 선생님도 생기겠죠? 감자에게 세상이 점점 더 넓어질테니!

  • 2024-03-31 00:10

    감자 홧팅!!! 이번주 감자랑 한 듀오링고 프렌즈퀘스트 성공!

  • 2024-04-01 12:50

    감자도 모로도 홧팅~!!
    알아차림을 바로 쓸 줄이야~~!!

  • 2024-04-18 02:10

    샘 글 너무 좋아유 ㅠㅠ 감자 생각하면서 저도 초등학교 때 애들끼리 기싸움, 서열싸움 때문에 학교 다니는 거 진짜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이제는 학교를 안가도 되서 너무 기뻐요.

아스퍼거는 귀여워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조금은 부끄럽고, 지루하며, 우울한 이야기임을 미리 밝힌다. 원래 나는 (믿기 힘들겠지만) 선천적으로 텐션이 낮은 종류의 인간이다. 자주 우울하고, 늘 하는 일에 절망하고, 자신이 없으며, 자신에 대해 의심하며, 반성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삶의 딜레마는, 나는 굉장히 활달한 류의 인간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에서 평생동안 의문을 가지며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슬픔에 취해 사는 나르시시스트인 걸까. 우울한 내가 멋져 보이는 그런 유아적인 발상인 걸까. 그러면서도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두 가지 면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래서 늘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인 거겠지.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원래도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살면서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뭐지. 이건 ‘정말로’ 잘못된 거잖아.”   비행기에서의 공황 장애, 공포와 만나다     ‘정말로’ 이상함을 느낀 건 비행기 안에서였다. 발리로 가는 중이었는데, 비행기가 뜨자마자 답답해지더니, 조금 지나자 기체의 작은 움직임에도 비행기가 금방이라도 떨어져서 바다 위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공포에 부딪혔다. 몸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나며, 배가 꾸륵거리고, 심장이 튀어나오듯 쿵쿵거렸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증상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처방받거나 개인이 들고탄 것 이외에 약을 제공할 수 없다고...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조금은 부끄럽고, 지루하며, 우울한 이야기임을 미리 밝힌다. 원래 나는 (믿기 힘들겠지만) 선천적으로 텐션이 낮은 종류의 인간이다. 자주 우울하고, 늘 하는 일에 절망하고, 자신이 없으며, 자신에 대해 의심하며, 반성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삶의 딜레마는, 나는 굉장히 활달한 류의 인간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에서 평생동안 의문을 가지며 살아왔다. 어쩌면 나는 슬픔에 취해 사는 나르시시스트인 걸까. 우울한 내가 멋져 보이는 그런 유아적인 발상인 걸까. 그러면서도 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두 가지 면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래서 늘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인 거겠지.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원래도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살면서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뭐지. 이건 ‘정말로’ 잘못된 거잖아.”   비행기에서의 공황 장애, 공포와 만나다     ‘정말로’ 이상함을 느낀 건 비행기 안에서였다. 발리로 가는 중이었는데, 비행기가 뜨자마자 답답해지더니, 조금 지나자 기체의 작은 움직임에도 비행기가 금방이라도 떨어져서 바다 위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공포에 부딪혔다. 몸이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나며, 배가 꾸륵거리고, 심장이 튀어나오듯 쿵쿵거렸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증상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처방받거나 개인이 들고탄 것 이외에 약을 제공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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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 조회 22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연결 1       “윤경샘, 청춘삘딩 대표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지난번 윤경샘이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을 때 거기 대표가 청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문탁에서 마을 주간 행사를 주관하는데 패널로 모실라구요.”     작년 1년 동안 양생프로젝트에서 같이 공부한 겸목샘의 전화였다. 내가 직접 캐스팅하는 것은 그렇고 연결은 해드릴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건넸다. 나는 23년 6월부터 청춘삘딩과 연이 닿아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었다. (노랑식탁 이야기는 2월 연재 참고.^^) 그때 박대표를 알게 되었다. 청춘삘딩의 센터장, 박대표는 금천구 토박이다. 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금천을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나도 태어나고 자란 금천이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금천을 떠났다가 20여 년 만에 돌아온 것도 엄마가 살고 계셨기 때문이지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       나고 자란 마을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은 청소년들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금천구청소년의회’였다. 이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박대표의 마음속에 금천마을은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닌 ‘내가 가꿔나갈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금천의 청년으로서 금천을 가꿔나갈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다 <청소년독서실 기능전환>이란 타이틀로 주민참여예산에 공모했다. 그것이 청춘삘딩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16년에 문을 연 청춘삘딩은 청년들의 커뮤니티 플랫폼이자 사회참여의 통로가 되었다. 지금 청춘삘딩의 대표 사업은 커뮤니티 지원사업 ‘두잇’과 1인 가구 청년을 위한 소셜다이닝 ‘노랑식탁’,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를 누리는 체육활동지원사업 ‘피지컬100’등이 있다.       박대표가 나의 연결로(^^) 참여한 행사는 2024...
      #연결 1       “윤경샘, 청춘삘딩 대표님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지난번 윤경샘이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을 때 거기 대표가 청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문탁에서 마을 주간 행사를 주관하는데 패널로 모실라구요.”     작년 1년 동안 양생프로젝트에서 같이 공부한 겸목샘의 전화였다. 내가 직접 캐스팅하는 것은 그렇고 연결은 해드릴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건넸다. 나는 23년 6월부터 청춘삘딩과 연이 닿아 ‘노랑식탁’에서 활동했었다. (노랑식탁 이야기는 2월 연재 참고.^^) 그때 박대표를 알게 되었다. 청춘삘딩의 센터장, 박대표는 금천구 토박이다. 금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금천을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나도 태어나고 자란 금천이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금천을 떠났다가 20여 년 만에 돌아온 것도 엄마가 살고 계셨기 때문이지 결코 자의가 아니었다.)       나고 자란 마을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은 청소년들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금천구청소년의회’였다. 이 프로젝트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박대표의 마음속에 금천마을은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닌 ‘내가 가꿔나갈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금천의 청년으로서 금천을 가꿔나갈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다 <청소년독서실 기능전환>이란 타이틀로 주민참여예산에 공모했다. 그것이 청춘삘딩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16년에 문을 연 청춘삘딩은 청년들의 커뮤니티 플랫폼이자 사회참여의 통로가 되었다. 지금 청춘삘딩의 대표 사업은 커뮤니티 지원사업 ‘두잇’과 1인 가구 청년을 위한 소셜다이닝 ‘노랑식탁’, 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를 누리는 체육활동지원사업 ‘피지컬100’등이 있다.       박대표가 나의 연결로(^^) 참여한 행사는 2024...
김윤경~단순삶
2024.07.20 | 조회 169
현민의 독국유학기
    나 아시아 여자     최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작년 겨울에 만났던 서경과 반년 만에 만나 24시간 동안 한국 음식을 잔뜩 먹었다. 들기름 막국수, 불닭볶음면, 팥빙수, 연어 덮밥, 식혜. 타지에서 어렵게 구해 만든 한국 음식은 맛도 좋았지만, 그걸 같은 마음으로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최근 서경은 외국살이에 정이 떨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묵은 인종차별 경험담을 서로에게 들려주며 한바탕 분노를 풀고나면 씨발...하지만 어쩌겠나 하며 끝낸다. 아시안 얼굴의 여자여서 겪는 차별의 경험은 분명 화가 나지만 세상엔 절대불변의 좆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서경은 삼일 뒤 한국에 간다고 했다. 한국 가면 뭐 할 거야? 몰라 그냥 집에서 강아지랑 고양이 만지면서 쉬고 싶어. 나에겐 한국에 가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비행기에 앉아 반나절 있으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경과 네덜란드에서 빙수를 해먹은 뒤, 집에 돌아와서 플랫메이트들과 팥빙수를 만들었다. 단팥이라는 게 유럽에서는 굉장히 드물어서 다들 굉장히 신기해하며 먹었는데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내 남자친구 니키는 네덜란드에 오랫동안 살았다. 우리는 그의 친구 그리스인 에반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네덜란드에 갔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에반스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잘 긴장하는데 그날도 담배를 핑계로 집 뒤편에 있는 테라스에 의식적으로 숨어있었다. 그때 한 아시안 여자애가 다른 사람들과 들어왔다. 그 애의 이름은...
    나 아시아 여자     최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작년 겨울에 만났던 서경과 반년 만에 만나 24시간 동안 한국 음식을 잔뜩 먹었다. 들기름 막국수, 불닭볶음면, 팥빙수, 연어 덮밥, 식혜. 타지에서 어렵게 구해 만든 한국 음식은 맛도 좋았지만, 그걸 같은 마음으로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최근 서경은 외국살이에 정이 떨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묵은 인종차별 경험담을 서로에게 들려주며 한바탕 분노를 풀고나면 씨발...하지만 어쩌겠나 하며 끝낸다. 아시안 얼굴의 여자여서 겪는 차별의 경험은 분명 화가 나지만 세상엔 절대불변의 좆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서경은 삼일 뒤 한국에 간다고 했다. 한국 가면 뭐 할 거야? 몰라 그냥 집에서 강아지랑 고양이 만지면서 쉬고 싶어. 나에겐 한국에 가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비행기에 앉아 반나절 있으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경과 네덜란드에서 빙수를 해먹은 뒤, 집에 돌아와서 플랫메이트들과 팥빙수를 만들었다. 단팥이라는 게 유럽에서는 굉장히 드물어서 다들 굉장히 신기해하며 먹었는데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내 남자친구 니키는 네덜란드에 오랫동안 살았다. 우리는 그의 친구 그리스인 에반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네덜란드에 갔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에반스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잘 긴장하는데 그날도 담배를 핑계로 집 뒤편에 있는 테라스에 의식적으로 숨어있었다. 그때 한 아시안 여자애가 다른 사람들과 들어왔다. 그 애의 이름은...
현민
2024.07.19 | 조회 239
일상명상
    길에서 만난 지렁이   어제 아버지 집으로 오던 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햇살이 내리쬐는 뜨거운 인도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못 본 척하고 길을 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지렁이에게 되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올려서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런 뒤 지렁이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곧바로 흙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렁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렁이는 머리 부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오래도록 흙의 상태를 탐색했다. 이렇게 자세히 지렁이를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부터 비 온 다음날이면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파놓은 흙 속 터널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기 어려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지렁이는 물속에서 오랫동안 피부호흡이 가능하다며 비가 흙에 부딪칠 때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 소리로 알고 위협을 느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협을 느껴 밖으로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들이 지렁이 사체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는 포식의 축제가 되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지나치게 된다. 간혹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지만 지렁이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지렁이를 향한 연민이 가볍고...
    길에서 만난 지렁이   어제 아버지 집으로 오던 길에 지렁이 한 마리가 햇살이 내리쬐는 뜨거운 인도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못 본 척하고 길을 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지렁이에게 되돌아갔다. 나뭇가지를 주워 지렁이를 올려서 흙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런 뒤 지렁이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곧바로 흙을 뚫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렁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렁이는 머리 부분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오래도록 흙의 상태를 탐색했다. 이렇게 자세히 지렁이를 지켜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부터 비 온 다음날이면 지렁이가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파놓은 흙 속 터널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기 어려워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지렁이는 물속에서 오랫동안 피부호흡이 가능하다며 비가 흙에 부딪칠 때의 진동을 천적인 두더지 소리로 알고 위협을 느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 위협을 느껴 밖으로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는 비극을 맞이한다.   지렁이가 죽으면 개미들이 지렁이 사체에 와글와글 모여든다. 어떤 존재에게는 죽음이지만 또 다른 존재에게는 포식의 축제가 되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지나치게 된다. 간혹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를 보게 될 때도 있었지만 지렁이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지렁이를 향한 연민이 가볍고...
요요
2024.07.15 | 조회 202
K장녀_돌봄을 말하다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2021년 1월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잘 들어보니 미래에셋증권이다. 예전에 남편이 우리사주 받을 때 엄마도 조금 사두었던 주식이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나보다. 엄마는 주식을 팔고 있었다. 좀 더 두면 더 오를 것도 같은데 엄마는 결단을 하신 듯, 아무 미련 없이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청한다. 원래 돈 욕심이 없으신 분이다. 주식은 아주 오랫동안 갖고 계시던 건데 그래도 잘 기억하고 있다가 팔아서 천만 원 정도 챙기신 듯. 며칠 후. 은행에 가야한다고 계속 가까운데 당신 거래은행 지점을 찾으신다. 불행히도 그 은행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무슨 일인지 여쭤보니 통장 정리하고 돈도 좀 찾으시려 한단다. 가까운 타은행 ATM기로 모시고 갔다. 돈을 찾고 잔고를 확인해보시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하신다. 100만원을 찾더니 집에 와서 그걸 사위에게 주신다. 엄마, 왜? 사위 덕에 산 주식이었으니까. 남편과 나는 엄청 웃었다.   2021년 2월 15일 엄마의 말이 약간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 싫어서 우리 집에 안가. 딸이 다 해 주니까.” 이 전에는 ‘몸이 아파서 와 있는 거야. 이제 곧 가야지.’ 이런 식이었다. 2층에서 내려드린 자전거 운동기구도 자랑하시고 손주네가 설 선물로 사다드린 손바닥 안마기도 자랑하신다. 그러면서 2주에 한 번씩 맞으러 가던 통증 주사도 별 소용없다고 하시는 엄마. 전에는 그것 때문에 집에 가야한다고도 하셨는데...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져가는 것이면 좋겠다. 식탁에서 책 읽다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엄마 목소리를 살짝 들었다.^^   엄마가...
인디언
2024.07.15 |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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