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우리가 ‘함께’합니다

김윤경~단순삶
2024-03-20 05:20
333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감독과의 대화, 비폭력대화 강의 등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인연의 끈을 묶어 나갔다. 연말에 다이어리 만들기 TF팀을 만든단 공지를 보고 나도 이 좋은 단체를 위해 일 하고 싶어 신청했다. 첫 회의에서 6공 바인더를 장착하고 가죽자켓을 입은 다이어리로 하자고 결정했다. 디자인과 편집 비용이 많이 올라 각자 품앗이하여 손수 만들어야 했다. 나는 삽화를 맡았다. 3년여 동안 보았던 영화와 읽었던 책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편집과 인쇄도 하게 되었고, 가죽공방 사장님을 도와서 가죽 원단 사러 동대문에도 나가고 바느질도 하게 됐다. (가죽공방 사장님은 나의 동네베프^^) 나의 손길과 발품이 들어간 2024 마젠마 다이어리가 완성되었을 때 힘을 보탰다는 뿌듯함이 나의 온몸을 빵빵하게 채웠다. 이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단 생각에 3기 운영진으로 자원했다. 이젠 마젠마 운영진이다~. 올해는 나의 자율적 활동이 가져다주는 기쁨(전문가들의 사회/이반일리치 외/신수열/사월의책/41)을 마젠마 활동과 엮어가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빵과 장미 : 마을에서 연대를 외치다

 

 

 

마젠마 운영진으로서 나의 자율적 활동의 첫 기쁨은 ‘3.8여성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되었다. 마젠마는 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하여 마을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공식 구호를 외치며 마을을 행진하는 행사를 몇 해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올해도 하기로 했기에 나에게도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나의 역할은 카드뉴스 만들기이다.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배운 디자인 편집 기술을 배우자마자 써먹을 기회가 생겼다.^o^) 행사 웹포스터와 카드뉴스를 만들면서 여성의 날에 대해 조사했다. ‘빵과 장미’는 들어본 적 있었는데 그 유래와 의미는 사실 몰랐었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는 문구와 연대여, 영원하라~”는 구호가 인상 깊었다. 20세기 초반이나 지금이나 이윤을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건비를 깎는 것에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모두 열악했지만, 여성들에게는 더욱더 가혹했다.

 

 

 

 

 

 

 

 

여성 섬유 노동자들은 먼지가 가득한 노동 현장에서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씩 일했지만, 임금은 너무나도 적었고(특히 남자보다 더 적었다)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도 없었다. 결국 열악한 노동환경의 한 작업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여성 노동자 여러 명이 숨지는 사고가 터졌다. 참다못해 거리로 뛰쳐나온 여성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 향상, 참정권 등을 요구했고, 그때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했다. 일하면서 굶느니 차라리 싸우면서 굶는 게 나았다. 그렇게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 1만 5천여 명은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였다. 그 이듬해 미국사회당이 이를 기념하여 국가 여성의 날을 발표하고 뉴욕시 행진을 기획한 것이 세계여성의 날의 시초로 꼽힌다.

 

 

 

‘24년 금천 3.8 여성의 날’ 기념식 행사 당일, 따뜻하던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안양천을 행진하기로 했기에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나서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마을밴드와 단톡방 등 마을 주요 커뮤니티에 홍보하고, 구청 여성정책과에서도 나셔주어서 마음들이 모일 수 있었다. 운영진들은 저녁 6시경 미리 금천구청 광장에 도착해 빵과 물을 준비했고, 속속 도착하는 분들에게 나누었다. 작년엔 빵과 장미를 준비했는데, 올해는 경비 문제로 장미꽃은 준비 못하고 장미스티커를 붙인 빵을 나눠 주었다. 금천구청 앞에서 3.8 세계여성의 날의 선언문을 낭독하고 안양천으로 옮겨가며 행진을 이어 나갔다. 금천구청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한 번 더 보도록 연대의 구호를 외쳤다. 우리가 함께합니다~” 나는 이 구호가 참 마음에 들었다.

 

 

 

 

 

 

코로나 이전에 광화문에서 하는 3.8 여성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보통은 서울 중심부에서 그런 행사를 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꼭 중앙에 나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소소하지만 적지 않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런 행사를 하는 경험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마을에서 이런 행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지역 단체들끼리 우리가 공통의 위험을 마주하고 있다는 인식(감정의 문화정치/사라 아메드/시우/오월의봄/164)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을 단체 연합이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을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에겐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수많은 공통의 위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애니웨이~ 마젠마 운영진으로 참여하는 첫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하여 기분이 방끗방끗했다.

 

 

 

 

 

함께 하는 공동체

 

 

 

갑자기 나에게 훅 다가온 20세기 초반 여성들의 빵과 장미의 투쟁에서 우리가 아직도 투쟁하고 연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빵과 장미’는 여성들에게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표현이다. 예전 여성들은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끊임없는 투쟁과 무조건적인 연대로 극복해왔다. 저항하고 극복해야 하는 수많은 장벽은 사람들이 함께 연대할 때 깨부수고 넘어설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20세기 초반 여성들의 상황과 같지는 않다. 그리고 투쟁은 너무 거창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깨부수고 넘어설 수많은 장벽이 있다. 그래서 투쟁과 연대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

 

 

 

 

 

 

 

작년에 처음 마을에 들어갔을 때 나는 마을에서 잘 활동하고 싶었고 마을에 안착(安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이 단체 저 단체의 행사에 참여했었다. (이런 활동들로 마을에 안착은 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 마젠마가 가장 끌렸다. 마젠마는 나의 정체성과도 잘 맞아 보였고, 또 소속감을 느끼게 해줄 든든한 동료들이 많았고, 그리고 서로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올해는 그런 마젠마 운영진으로 참여하며 더 넓고 깊이 있는 마을 활동을 하고 싶다. 원래 3년여를 이어온 구청 양성평등기금 사업(우리 금천구는 여성친화도시이다. ^o^)을 올해는 쉬어가기로 했는데, 내가 계속하자는 의견을 냈다. 나의 의견에 다른 운영진분들도 찬성해서 올해도 양성평등기금 사업을 이어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제안서 초안을 작성하겠다고 했다. (물론 활동의 기본 방향은 운영진 회의와 신년회에서 회원들이 정해주셨다) 문서를 작성하면서 책임을 더 느끼게 되었다. 올해는 마젠마란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마을에 착근(着根)하고 싶다.

 

 

 

나는 이제 마젠마란 든든한 버팀목에 기대어, 마을에서 비공식적이고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도움의 비공식 네트워크(전문가들의 사회/이반일리치 외/신수열/사월의책/81)를 한층 더 튼튼하게 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런 활동들이 모여 마을의 표면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마을이 공통의 위험에 마주하고 어떤 형식이 되었든 간에 투쟁하고 연대할 수 있는 그런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기에 여성으로서, 마젠마 일원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활동해 나갈 것이다. 마을의 공식적인 친구 윤경이가 되는 날까지 쭉~^^;;;;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댓글 9
  • 2024-03-20 08:34

    와... 마젠마... 한번 방문해야겠어요.
    킨사이다 모임을 언제 한번 금천구에서 하고, 마젠마도 방문하고...생각만해도 근사하네유~~

  • 2024-03-20 08:56

    요즘 평비글쓰기에서 읽고 있는 <오웰의 장미>(리베카 솔닛)의 한 꼭지도 '빵과 장미'!! 마젠마회원들과 <오웰의 장미> 독서토론회 한 번 해보세요! 넘 좋아하실 거예요~~

  • 2024-03-20 10:51

    포스터에 다이어리에... 참... 금천구에 사는 금손이구려 ㅋㅋㅋ

  • 2024-03-20 13:55

    그때 그 다이어리가 마젠마 모임에서 한거였군요~~!
    너무나 멋진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는 군요~
    샘의 활동력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지네요~^^

  • 2024-03-20 14:46

    와, 윤경님의 동선을 보면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보여요!!
    마젠마라는 이름도 입에 착착 감깁니다..ㅎㅎㅎ

  • 2024-03-20 20:41

    오마나! 윤경쌤이랑 저랑 같은 센터 출신이군요.
    남부여성발전센터! ㅎㅎ 저는 거기서 케이크 데코레이션을 배웠지요. 그게 언제 적 일인지.... 가물가물
    암튼 제 친정 옆동네엔 재미있고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군요!
    거기에 윤경쌤이 계셔서 더욱 반갑고 괜히 자랑스럽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윤경쌤의 또 어떤 멋짐을 발견하게 될런지.... (기대해야지!ㅎㅎㅎ)

  • 2024-03-21 01:39

    윤경샘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

  • 2024-03-21 22:24

    마젠마와 빵과 장미라니, 윤경샘의 에너지와 활동력에 한계는 없는 것 같군요. 다만 무릎이 부실한 게 약점이라면 약점? ㅎㅎ 기분좋아지는 글 잘 읽었습니당^^

  • 2024-03-31 00:17

    어떤 물건으로 자신을 소개했는지 많이 궁금하네요! ^^ 마젠마! 이름 멋집니다. 마젠마 활동 응원해요!!!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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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15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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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78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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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03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185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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