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방석에 앉아 호흡할 수만 있다면

도라지
2024-03-10 23:01
328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앉아 대략 한 시간 정도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매일 명상하지는 못한다. 지난 여름에는 제법 매일 했는데 겨울이 되면서 날이 늦게 밝으니 눈 뜨는 시간도 덩달아 늦어졌다. 하루 일정에 따라 일찍 집에서 나서야 하는 날은 명상을 못하거나 하더라도 30~40분 정도로 짧게 한다. ‘꼭 해야 한다!’라는 강박은 없지만 마음 같아서는 명상을 매일 하고싶다. 명상을 매일 하고 싶지만 매일 하지 못하는 나의 명상 생활은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명상에 대해 한동안 냉담자로 지낸 시절이 있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으로 잘 알려진 ‘위빠사나’는 명상자가 명상 중 자신이 경험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도록 한다. 주의할 점은 알아차린 것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것. 아무 생각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산만한 생각들에서 벗어나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지켜보는 것만 가능해도 평온을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쉽지 않다는 것을.

 

눈을 감고 앉아서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감각들에 가드를 치는 순간 가라앉아 잘 의식되지 않던 무의식 속의 이미지들은 개연성 없이 튀어 오르기 시작한다. 서로 소식도 모르고 지내던 친구의 얼굴이 불쑥 보여 어이가 없는가 하면, 전날 본 드라마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속으로만 몰래 곱씹던 부끄러운 망상들은 시끄럽게 귀를 때리고, 써야 할 글의 명문장은 때마침 떠올라 마음을 안달나게 한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던 때 명상이 무슨 비의적인 행위도 아니건만 명상을 통해 금방이라도 피안을 경험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만큼 명상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참을성도 집중력도 약한 나는 눈을 감으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이미지와 소리들 때문에 금방 혼란에 빠졌다. 지각되는 이미지들에 판단이 들러붙어 맥락 없는 망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호흡에 숫자를 붙여보았지만 서넛까지만 세어도 마음은 자꾸 딴 데로 달아났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무릎관절에도 안 좋을 것 같은 이 명상이란 것을 계속해야 하나? 그래야지만 불교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걸까? 알아차림을 하고 못 하고는 나중 문제. 한마디로 ‘명상 부정기’를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요요쌤께 용기 내어 물었다. “쌤~ 저는 명상이 너무 힘들어요. 눈만 감으면 시끄럽게 나타나는 망상들도, 그걸 지켜보는 것도 힘들어요. 이렇게 힘든 걸 계속해야 하나요? 그리고 무릎도 많이 아파요.” 요요쌤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하지마!”

 

이것은 요요쌤의 공부 공력이 낳은 대답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서 일어나는 연기(緣起)를 보셨나? 확신컨대 쌤은 본인이 그런 대답을 하신 것도 기억 못 하실 거다. 이날의 선문답 같은 대화 이후 나는 명상을 속 시원하게 그만두었다. 명상에 미련 두고 명상 방석에 앉아 몸을 뒤트는 것보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면 운동화를 신고 나가 탄천을 걸었다. 하루에 만 보는 기본으로 걸었다. 걷는 것으로 부족하면 돌아와 적당량의 술을 마셨다. 그때는 그걸로 충분했다.

 

 

 

 

 

 

방석의 힘?

 

친정 엄마의 유방암 수술, 뇌경색을 앓던 아빠의 알츠하이머, 작은 아이의 공황 증세와 고등학교 자퇴. 줄줄이 한 해에 일어나고 악화되었다. 나와 내 가족이 운이 없다거나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생긴 일도 아니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질만해서 벌어졌다. 하지만 아픈 엄마 아빠를 돌봐 드릴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마음은 억울함과 원망에 시달렸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내 잘못 같아 미안하면서 두려웠다. 매일 만 보, 만 오천 보 닥치는 대로 걸었다. 덩달아 술도 점점 늘었다. 그러나 걷는 순간과 잠깐 취해 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돌아와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 즈음 봉옥쌤이 정토회에서 쓰시던 절 방석을 문탁에서 나눔 하셨는데 나는 그 방석을 네 개 얻어왔다. 방석을 동천동 집에 하나 나머지는 양양 집에 가져다 놓았다. 방석이 날 부른 것인지 내가 방석을 부른 것인지 봉옥쌤의 공덕이신지. 푹신한 절 방석에 앉아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지켜보았다. 이후로 방석이 눈에 크게 들어오는 날이면 명상을 했다. 그렇게 명상 횟수를 점점 늘려갔다.

 

 

아무리 걷고 술을 퍼마셔도 잘 풀리지 않던 복잡한 마음들이 방석 위에서 호흡을 지켜보고 널뛰는 마음을 관찰하는 동안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억울함에 화나 있고 두려움에 우울해지곤 하던 마음을 나로 동일시하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 ‘알아차림’하면서 내가 그 감정들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끔씩은 방석에 앉아 명상을 핑계로 편히 혼침을 즐길 때도 있었는데 그 시간도 지나고 보니 소중한 휴식이었다. 명상을 한다고 고민이 해결되거나 처한 상황이 달라지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잠시 은둔하여 나를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변화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유방암 수술 후 절제한 한쪽 가슴 때문에 왼팔을 못 쓰시던 엄마는 세월을 약으로 많이 나아지고 계시다. 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작은 아이는 약을 한 보따리 챙겨 군에 갔어도 군 생활을 잘 하고 있다. 어제의 괴로움이 오늘은 덜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늘은 밉던 이가 내일은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간절히 바라던 지난날의 소망이 지금은 기억에도 없을 수 있다는 걸. 이렇게 한순간도 변화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자주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무상한 것들에 대한 바램과 집착이 줄어드니 괴로움의 원인들 또한 조금씩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가끔 ‘나 좀 잘 살고 있는 듯!’ 이런 망상도 알아차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만족스러운 삶은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명상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 중에 가장 가성비 좋은 훈련법. 살아있는 한 나를 떠나지 않는 호흡과 방석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도라지

 

현재 일리치약국 자매 브랜드인  '로이, 기쁨이되는차' 직원.

일주일의 반은 경기도, 반은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농경영체 등록을 한 양양군 농민이란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자랑이다.

차 마시기, 요리하기, 빵 굽기, 텃밭 가꾸기, 걷기, 바느질하기, 명상하기, 술 마시기,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가끔 책도 읽는다.

 

댓글 15
  • 2024-03-11 08:45

    "일상에서 잠시 은둔하여 나를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변화하고 있음을 경험"
    : 요 문장이 눈에 쏙^^ 일상의 은둔일 수 있겠습니다요 명상이^^

  • 2024-03-11 08:46

    나마스떼!

    나마스떼소.jpg

  • 2024-03-11 09:00

    초등학생때 명상의 시간~재미있네요.
    그때 뭔지는 몰랐어도 왠지 혈기왕성한 어린친구들에게 멈춤의 시간이었을듯요~ㅎ

  • 2024-03-11 09:01

    저도 봉옥샘의 나눔으로 절방석 하나 얻어왔었는데 명상을 하려면 두 개가 필요했던 것이군요. 우째 자세가 불안정하더니만… ㅋ
    덕분에 저도 절방석에 앉아 명상하고 있습니다. 잘 되진 않지만요. ^^

  • 2024-03-11 09:05

    라지쌤의 명상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명상을 시작해야하는데 워낙 많이 좌절(?)하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한 터라 이번엔 쉽게 앉아지지가 않네요. 도라지쌤 처럼 일상의 루틴을 명상을 통해 가져가고 싶네요.
    그나저나 양양 명상방인가요? 뷰가 너무 좋아요!!

  • 2024-03-11 09:10

    양양의 저 방에 -게다가 '그' 방석에 앉으면 앉아만 있어도 풍성한 명상의 시간이 될 듯...
    "일상명상, 어렵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도라지님의 목소리와 미소가 담긴 글이네요^^

  • 2024-03-11 09:28

    방석깔고 앉아봐야겠어요~ㅎㅎ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3-11 09:41

    도라지샘의 명상경력이 ㅎ 어쩐지 ㅋ
    저도 봉옥샘방석덕을 많이 보고있답니다
    저는 아마도 방석이 저를 부른것같아요^^

  • 2024-03-11 09:44

    저 창문에, 그 방석에, 따뜻한 햇살이란. .
    잠자기. . 아니, 명상하기 좋은. .
    가서 앉아보고 싶게 만드네요!!! 방에 방석 하나 뒀을 뿐인데~ㅎㅎ

  • 2024-03-11 10:04

    '써야할 글의 명문장은 때마침 떠올라 나를 안달나게 한다' ㅎㅎㅎ

    저는 잠을 자려고 명상(?)을 이용한 적은 많지만 '정식' 명상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ᆢ 도라지님의 글을 보니, 아! 마음이 뭔가 꿈틀!했어요.
    명상일지, 좋아요^^

  • 2024-03-11 10:37

    조용조용한 도라지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네..... 다들 그렇겠지? 어마어마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네.

  • 2024-03-11 21:54

    아... 저도 봉옥샘 방석을 두개나
    거기에 요요샘 방석까지 탐을 내었으니,
    저도 방석의 불음에 응해야하나 보네요....

  • 2024-03-13 15:24

    농경영체 등록을 한 양양군 농민이셨군요! 넘 멋져요!!^^
    명상 글로 만나는 도라지샘이 반갑고 새롭고 뭉클하고...
    어제 오랜만에 방석 위에 앉으니까 좋더라고요.
    꾸벅 꾸벅 졸았지만.. 혼침이 밀려왔지만.. 샘들 사이에 껴있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2024-03-16 11:08

    우리 언제 명상말고 한잔 합시다.
    방석깔고. 서로 위로 하면서.
    콜?

  • 2024-03-17 11:02

    앗 저랑 비슷한 시기에 거의 근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셌군요.
    저도 국민학교 시절 오전 오후반 거의 70명은 됐던거 같은데.. 73 74 75가 진정한 베이비부머세대라니까요.

    "만족스러운 삶은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명상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 중에 가장 가성비 좋은 훈련법. 살아있는 한 나를 떠나지 않는 호흡과 방석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마지막 글이 좋아요.
    전 공부로 만족스런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27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28
일상명상
오영
2024.02.11 | 조회 381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요요
2024.01.10 | 조회 434
일상명상
  버섯에 빠지다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장마에 가슴이 두근두근   장마가 시작되었다. 덥고 습하여 불쾌지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장마가 싫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격하게 장마시즌을 반기고 있다. 숲에서 버섯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작년 봄 내내 탄천변에서 풀꽃을 탐색하던 내가 여름 장마가 그친 뒤 뒷산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버섯에 눈이 갔다. 그 뒤로 산에 갈 때마다 눈을 땅바닥에 두고 버섯 찾는 재미에 푹 빠지고야 말았다. 버섯 도감을 샀고, 산책을 다녀 오면 도감을 뒤지며 내가 본 버섯과 비슷한 버섯 그림을 찾고 이름을 확인했다. 도감에서 찾지 못하면 인터넷을 뒤졌다. 버섯 이름을 하나 둘 익히니 버섯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양도 재미있는 방귀버섯이며, 닭다리 버섯이며 말불버섯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유레카’를 외쳤다. 십년 넘게 뒷산 산책을 다니면서 그동안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버섯과 갑작스레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자 버섯이 사라졌다. 봄이 오면서부터 은근히 버섯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더워지면서부터 마치 아열대성 기후의 스콜처럼 갑작스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섯에 빠지다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장마에 가슴이 두근두근   장마가 시작되었다. 덥고 습하여 불쾌지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장마가 싫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격하게 장마시즌을 반기고 있다. 숲에서 버섯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작년 봄 내내 탄천변에서 풀꽃을 탐색하던 내가 여름 장마가 그친 뒤 뒷산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버섯에 눈이 갔다. 그 뒤로 산에 갈 때마다 눈을 땅바닥에 두고 버섯 찾는 재미에 푹 빠지고야 말았다. 버섯 도감을 샀고, 산책을 다녀 오면 도감을 뒤지며 내가 본 버섯과 비슷한 버섯 그림을 찾고 이름을 확인했다. 도감에서 찾지 못하면 인터넷을 뒤졌다. 버섯 이름을 하나 둘 익히니 버섯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양도 재미있는 방귀버섯이며, 닭다리 버섯이며 말불버섯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유레카’를 외쳤다. 십년 넘게 뒷산 산책을 다니면서 그동안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버섯과 갑작스레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자 버섯이 사라졌다. 봄이 오면서부터 은근히 버섯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더워지면서부터 마치 아열대성 기후의 스콜처럼 갑작스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요요
2023.07.01 | 조회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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