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기     목공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목공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 할 만 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목공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특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물론 그것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익히는 것을 포함하겠지만, 요즘처럼 충분히 정보화된 세상에서 그런 정보는 접근이 매우 쉬워졌다. 이런 정보의 접근성은 때로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언젠가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던 도중 그가 느닷없이 가구의 구조와 수축 팽창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담 전 이미 원목 가구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들을 찾아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못지않게 클라이언트가 알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더 이상 이 관계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의 우위에 설 수 없음을 뜻한다.   다만 실제로 만드는 일, 그 중에서도 도구를 다루어 그가 생각하고, 실제로 구현하지는 못하는 그런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구를 다루는 일은 정보를 찾는 일에 비하여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카락 두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도구를 활용해야할지, 이 도구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것 또한 물론 ‘정보’에 속하지만, 그것은 영상을 한 번 본다고...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마찰과 저항을 마주하기     목공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목공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 할 만 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목공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특정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물론 그것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익히는 것을 포함하겠지만, 요즘처럼 충분히 정보화된 세상에서 그런 정보는 접근이 매우 쉬워졌다. 이런 정보의 접근성은 때로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언젠가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던 도중 그가 느닷없이 가구의 구조와 수축 팽창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담 전 이미 원목 가구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들을 찾아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못지않게 클라이언트가 알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더 이상 이 관계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의 우위에 설 수 없음을 뜻한다.   다만 실제로 만드는 일, 그 중에서도 도구를 다루어 그가 생각하고, 실제로 구현하지는 못하는 그런 일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구를 다루는 일은 정보를 찾는 일에 비하여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카락 두께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떤 도구를 활용해야할지, 이 도구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그것 또한 물론 ‘정보’에 속하지만, 그것은 영상을 한 번 본다고...
지원
2020.11.09 | 조회 656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    문탁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문탁샘이 청소년인 악어떼들을 데리고 직업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전 시간이 비는 틈에 악어떼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음 프로그램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묻는데 녀석들이 도통 대답을 안 했다. 답답해진 나의 음성이 커졌던지 지나가던 문탁샘은 “애들이랑 얘기 좀 해 보랬더니 싸우고 있냐?”고 했다. 싸우기까지야 싶었지만 여튼 청소년들을 상대하는 일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 어린이 서당에서 수업을 맡은 후, 문탁의 청소년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 운영하는 ‘주권없는 학교’(이하 주학) 활동까지 겸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에 있다 보면 적성운운 할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주학은 문탁에서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유익한 배움의 장을 함께 만드는 실험”을 하려는 활동 단위였다. 당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친구들로 구성되었다. 현재 학교에서 연령별로 나누는 제도를 넘고, 청소년은 공부 어른은 일이라는 분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함께 경험하는 활동을 비전으로 삼았다. 동시에 흔히 좋은 교육이라는 표상에 맞서 “사심 가득하고 당파성이 분명하고 주관이 뚜렷한 공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 주학 프로그램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학생기록부에 쓸 수 있는 이력을 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신청했다. 매년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데 그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주중에 그들이 모여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친구도 만들고 자기 삶의...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    문탁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문탁샘이 청소년인 악어떼들을 데리고 직업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프로그램 전 시간이 비는 틈에 악어떼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음 프로그램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묻는데 녀석들이 도통 대답을 안 했다. 답답해진 나의 음성이 커졌던지 지나가던 문탁샘은 “애들이랑 얘기 좀 해 보랬더니 싸우고 있냐?”고 했다. 싸우기까지야 싶었지만 여튼 청소년들을 상대하는 일은 나랑 맞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 어린이 서당에서 수업을 맡은 후, 문탁의 청소년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 운영하는 ‘주권없는 학교’(이하 주학) 활동까지 겸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공동체에 있다 보면 적성운운 할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주학은 문탁에서 “학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유익한 배움의 장을 함께 만드는 실험”을 하려는 활동 단위였다. 당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친구들로 구성되었다. 현재 학교에서 연령별로 나누는 제도를 넘고, 청소년은 공부 어른은 일이라는 분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함께 경험하는 활동을 비전으로 삼았다. 동시에 흔히 좋은 교육이라는 표상에 맞서 “사심 가득하고 당파성이 분명하고 주관이 뚜렷한 공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 주학 프로그램은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학생기록부에 쓸 수 있는 이력을 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신청했다. 매년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데 그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주중에 그들이 모여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친구도 만들고 자기 삶의...
기린
2020.10.31 | 조회 816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좋은 사람, G   G는 좋은 사람이다. 인상은 우악스럽고 언사도 직설적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둔다. 머리가 비상한데다가 익살스러운 면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올바름’의 외피를 입은 고집이 그의 우정의 경계선을 좁게 제한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병색이 깊어질수록 어깨의 힘은 빠지고, 커져가는 외로움에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이제는 완연한 노인인 그의 취미는 아침마다 집 청소를 끝내고 대문 앞에 앉아 시가를 피우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건다. 집 앞 공원에서 뛰어 놀던 꼬마들이 종종 목이 마르다며 물 한 잔 달라고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G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동네의 원주민이다. G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G의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집이었다. 그 후 어린 시절은 부모님을 따라 다른 지방에서 보냈지만, 어른이 된 후 아바나로...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좋은 사람, G   G는 좋은 사람이다. 인상은 우악스럽고 언사도 직설적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둔다. 머리가 비상한데다가 익살스러운 면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올바름’의 외피를 입은 고집이 그의 우정의 경계선을 좁게 제한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병색이 깊어질수록 어깨의 힘은 빠지고, 커져가는 외로움에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법을 익혔을 것이다. 이제는 완연한 노인인 그의 취미는 아침마다 집 청소를 끝내고 대문 앞에 앉아 시가를 피우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건다. 집 앞 공원에서 뛰어 놀던 꼬마들이 종종 목이 마르다며 물 한 잔 달라고 찾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G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동네의 원주민이다. G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G의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집이었다. 그 후 어린 시절은 부모님을 따라 다른 지방에서 보냈지만, 어른이 된 후 아바나로...
관리자
2020.10.25 | 조회 776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개인들을 이런저런 속성이 부착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원자론적 인간관은 개인적 정체성들과 여러 능력들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과정들과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목공 반장님이 타카 핀을 갈아 끼우다가 집어던지면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형, 그렇게 성격대로 할 거면 여기 왜 왔어! 그럴 거면 직접 일 받아 해!”   ‘이 형’이라는 분도 성격이 만만찮다. “어 알았다 그래!” 하고선 작업벨트를 풀어놓고 현장에서 ‘휙’하고 나가버린다.   당황한 내가 이 형을 따라 나가려는데 반장님이 나한테도 버럭 한다. “김 실장! 내버려 둬. 내가 혼자 끝내면 되니까 가는 사람 잡지 마!” 고래 싸움에 기가 눌린 새우 실장은 현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혹여 등이 터질까 잠자코 반장님 말을 듣는다.   버럭 반장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하던 목공 반장님이 최근 많이 바빠져서 이번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주변 작업자 분들에게 수소문해 새로운 목공 반장님을 소개받았다. 최근에서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 ‘버럭 반장님’은 보기 드문 목수다. 한옥으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일들은 두루 해본 분이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개인들을 이런저런 속성이 부착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원자론적 인간관은 개인적 정체성들과 여러 능력들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과정들과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목공 반장님이 타카 핀을 갈아 끼우다가 집어던지면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형, 그렇게 성격대로 할 거면 여기 왜 왔어! 그럴 거면 직접 일 받아 해!”   ‘이 형’이라는 분도 성격이 만만찮다. “어 알았다 그래!” 하고선 작업벨트를 풀어놓고 현장에서 ‘휙’하고 나가버린다.   당황한 내가 이 형을 따라 나가려는데 반장님이 나한테도 버럭 한다. “김 실장! 내버려 둬. 내가 혼자 끝내면 되니까 가는 사람 잡지 마!” 고래 싸움에 기가 눌린 새우 실장은 현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혹여 등이 터질까 잠자코 반장님 말을 듣는다.   버럭 반장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하던 목공 반장님이 최근 많이 바빠져서 이번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주변 작업자 분들에게 수소문해 새로운 목공 반장님을 소개받았다. 최근에서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 ‘버럭 반장님’은 보기 드문 목수다. 한옥으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일들은 두루 해본 분이다....
지원
2020.10.12 | 조회 773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토성의 위성들 사이에 술탄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아주 추상적인 인간을 하나 떠올려 보자. 그러면 인간이 경이롭고 장엄하며 비통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인류 전체를 생각하면 당대의 사람들이거나 유전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대부분 쓸모없는 복제품 군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천한 신분이어서 고귀한 인간성의 모범 사례와는 거리가 멀지언정 피쿼드호의 목수는 결코 복제품이 아니었다.” (허먼 멜빌, 강수정 역, <모비딕 하>, 열린문학, 107장, 2013)       누군가의 존재감이 미치게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다. 고귀함이나 미천함과는 상관없다. ‘인간 추상’의 성질 중 하나로 돌리기에는 너무 새로운데, 그 얼굴은 복제품처럼 늘어선 군중 속에 묻히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긴다.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서 결국 그 사람의 이름만 고유명사로, 하나의 개념으로서 남는다. 지난 7년 간 나는 “피쿼드호의 목수”를 찾아다녔다.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마엘처럼 광대한 바다를 항해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몸담았던 아메리카 대륙의...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토성의 위성들 사이에 술탄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아주 추상적인 인간을 하나 떠올려 보자. 그러면 인간이 경이롭고 장엄하며 비통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인류 전체를 생각하면 당대의 사람들이거나 유전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대부분 쓸모없는 복제품 군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천한 신분이어서 고귀한 인간성의 모범 사례와는 거리가 멀지언정 피쿼드호의 목수는 결코 복제품이 아니었다.” (허먼 멜빌, 강수정 역, <모비딕 하>, 열린문학, 107장, 2013)       누군가의 존재감이 미치게 가슴을 파고들 때가 있다. 고귀함이나 미천함과는 상관없다. ‘인간 추상’의 성질 중 하나로 돌리기에는 너무 새로운데, 그 얼굴은 복제품처럼 늘어선 군중 속에 묻히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긴다.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서 결국 그 사람의 이름만 고유명사로, 하나의 개념으로서 남는다. 지난 7년 간 나는 “피쿼드호의 목수”를 찾아다녔다.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마엘처럼 광대한 바다를 항해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몸담았던 아메리카 대륙의...
관리자
2020.09.26 | 조회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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