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혜강은 “양생에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명예와 이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첫째 어려움이고,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음악과 여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고, 기름진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이며, 정신이 허약하고 정기가 흩어지는 것이 다섯째 어려움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가슴속에 없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과 행동이 자연히 올바르게 된다.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복이 오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오래 살게 된다. 이것이 양생의 큰 원칙이다”라고 하였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93쪽     혜강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이다. 이 문장에서 혜강은 양생을 어렵게 하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천 팔백 년 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양생과 관련해서 여전히 유효하게 읽혔다. 음악을 버려야한다는 부분만 빼면. 이 부분을 찾아보니 혜강은 성유애락론(聲有哀樂論), 즉 유가에서 음악이 심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함에 반대하는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을 펼쳤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음악에 본성이나 질서들의 인위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소리 자체의 자연스러움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취향에 따라 음악을 듣는데 이것은 양생일까 아닐까. 어렵다. 그래서 계속 이 문장을 읽다보니 양생보다는 어렵다는 형용사가 눈에 들어왔다. 어렵다는 이 말은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까?     관직에 나가서 이름을 날리는 명예를 바라는 시대는 지났다고 해도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름을 알리면 고소득의 이익도 따라온다. 감정을 표현하고...
혜강은 “양생에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명예와 이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첫째 어려움이고, 기뻐하고 성내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음악과 여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고, 기름진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이며, 정신이 허약하고 정기가 흩어지는 것이 다섯째 어려움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가슴속에 없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과 행동이 자연히 올바르게 된다.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복이 오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오래 살게 된다. 이것이 양생의 큰 원칙이다”라고 하였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93쪽     혜강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이다. 이 문장에서 혜강은 양생을 어렵게 하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천 팔백 년 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양생과 관련해서 여전히 유효하게 읽혔다. 음악을 버려야한다는 부분만 빼면. 이 부분을 찾아보니 혜강은 성유애락론(聲有哀樂論), 즉 유가에서 음악이 심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함에 반대하는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을 펼쳤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음악에 본성이나 질서들의 인위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소리 자체의 자연스러움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취향에 따라 음악을 듣는데 이것은 양생일까 아닐까. 어렵다. 그래서 계속 이 문장을 읽다보니 양생보다는 어렵다는 형용사가 눈에 들어왔다. 어렵다는 이 말은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까?     관직에 나가서 이름을 날리는 명예를 바라는 시대는 지났다고 해도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름을 알리면 고소득의 이익도 따라온다. 감정을 표현하고...
기린
2021.06.22 | 조회 644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문탁
2021.06.20 | 조회 877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관리자
2021.06.11 | 조회 994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올 초 파지사유가 문탁네트워크로부터 독립했다. 이곳에는 기존의 작업장 이외에 새로 일리치약국과 에코마켓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다. 공간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할 것이며 파지사유의 새로운 이름은 또 뭐라고 할 것인가? 구성원 사이에 토론, 협의, 다툼, 지지부진이 계속 되었다. 어떤 경우는 생각이 달랐고 또 어떤 경우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라 어느덧 공간 분할이 확정되었고 이름도 두 개로 압축되었다. <양생n에코실험실 파지사유> 혹은 <에코n양생실험실 파지사유>! 격론 끝에 후자로 결정되었다. 이유는? 양생이란 말이 너무 낯설다는 것이다. 양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시멘트 양생을 먼저 떠올린다나?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 청년에게 물어봤다. ‘양생’이라는 단어 아니? 뭐가 떠올라? 돌아오는 대답은, “후학양생이요?” 헐, ‘양생’이 낯선 단어가 맞구나. 조용히 정정해줬다. “음, 후학은 양생(養生)하는 게 아니고 양성(養成)하는 거야”       양생(養生)! 기를 양(養)에 날 생(生)! 직역하면 생명을 기르는 행위. 원출전은 장자(莊子)다. 이야기인즉슨 이런데, 한 백정이 그의 임금을 위해 소를 잡고 있었는데 살 한 점, 뼈 한 조각 건드리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칼질하며 소를 해체하는 모습이 가히 신출귀몰,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임금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 백정은 정색을 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이어서 자신이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지만 십구 년이 지난 지금엔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神) 본다고, 그러면 소의 자연스러운 결(天理)에 따라 칼도 자연스럽게...
올 초 파지사유가 문탁네트워크로부터 독립했다. 이곳에는 기존의 작업장 이외에 새로 일리치약국과 에코마켓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다. 공간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할 것이며 파지사유의 새로운 이름은 또 뭐라고 할 것인가? 구성원 사이에 토론, 협의, 다툼, 지지부진이 계속 되었다. 어떤 경우는 생각이 달랐고 또 어떤 경우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라 어느덧 공간 분할이 확정되었고 이름도 두 개로 압축되었다. <양생n에코실험실 파지사유> 혹은 <에코n양생실험실 파지사유>! 격론 끝에 후자로 결정되었다. 이유는? 양생이란 말이 너무 낯설다는 것이다. 양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시멘트 양생을 먼저 떠올린다나?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 청년에게 물어봤다. ‘양생’이라는 단어 아니? 뭐가 떠올라? 돌아오는 대답은, “후학양생이요?” 헐, ‘양생’이 낯선 단어가 맞구나. 조용히 정정해줬다. “음, 후학은 양생(養生)하는 게 아니고 양성(養成)하는 거야”       양생(養生)! 기를 양(養)에 날 생(生)! 직역하면 생명을 기르는 행위. 원출전은 장자(莊子)다. 이야기인즉슨 이런데, 한 백정이 그의 임금을 위해 소를 잡고 있었는데 살 한 점, 뼈 한 조각 건드리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칼질하며 소를 해체하는 모습이 가히 신출귀몰,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임금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 백정은 정색을 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이어서 자신이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지만 십구 년이 지난 지금엔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神) 본다고, 그러면 소의 자연스러운 결(天理)에 따라 칼도 자연스럽게...
문탁
2021.06.08 | 조회 686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얼마 전에 길드다 청년들과 일민미술관 전시에 다녀왔다. 사정인즉 이렇다.      일민미술관이 <운명상담소 : Fortune Tell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길드다의 친구인 티슈오피스(청년 디자인 스타트업)에 이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임형 모바일 전시 어플리케이션 ‘Fortune Telling Center’를 맡겼고, 티슈오피스는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주제를 주역으로 잡았고, 그 게임에 들어갈 텍스트 (주역 괘 해설)를 길드다에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드다는 이 전시에 아주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이런 신박한 청년들(길드다)”을 신기하게 본 일민미술관 측에서 새로 기획하는 온라인 전시 웹페이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무조건 한다” 였다. 운명에 대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뭐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전시를 먼저 보자. 하여, 평생에 걸쳐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을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반쯤은 의무방어전으로.          내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서였다. 고미숙샘 덕분에 우연히 사주명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처음으로 나의 신체적 운명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왜 비위가 약한지 (난 편식이 심하고 그래서 늘 주변에서 놀림을 받는다^^) 왜 계속 넘어지고 발이 삐끗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쓰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투비 오지라퍼구나. 그러니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프지.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남 탓, 세상 탓을 할 것인가? 사주명리를 공부한...
    얼마 전에 길드다 청년들과 일민미술관 전시에 다녀왔다. 사정인즉 이렇다.      일민미술관이 <운명상담소 : Fortune Tell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길드다의 친구인 티슈오피스(청년 디자인 스타트업)에 이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임형 모바일 전시 어플리케이션 ‘Fortune Telling Center’를 맡겼고, 티슈오피스는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주제를 주역으로 잡았고, 그 게임에 들어갈 텍스트 (주역 괘 해설)를 길드다에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드다는 이 전시에 아주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이런 신박한 청년들(길드다)”을 신기하게 본 일민미술관 측에서 새로 기획하는 온라인 전시 웹페이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무조건 한다” 였다. 운명에 대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뭐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전시를 먼저 보자. 하여, 평생에 걸쳐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을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반쯤은 의무방어전으로.          내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서였다. 고미숙샘 덕분에 우연히 사주명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처음으로 나의 신체적 운명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왜 비위가 약한지 (난 편식이 심하고 그래서 늘 주변에서 놀림을 받는다^^) 왜 계속 넘어지고 발이 삐끗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쓰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투비 오지라퍼구나. 그러니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프지.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남 탓, 세상 탓을 할 것인가? 사주명리를 공부한...
문탁
2021.05.20 | 조회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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