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이 글은 2024년 1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술 만능과 기술 거부의 사이에서    정군 기술 만능 VS 反기술 모두에게 익히 알려지고, 실제로 조금씩 체감하는 것처럼 현재 ‘인류’는 큰 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위기’가 흔히 수식하는 것처럼 지금껏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위기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위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 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모든 ‘위기’는 그 이후를 크게 바꿔놓는다. 이 ‘위기’ 이후 우리의 삶과 이 세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가장 부정적으로 전망할 경우 지구 상의 생명체들의 상당수가 대멸종에 가까운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반대로 가장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면 문명과 지구 환경 사이의 순환적 균형점을 찾아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사는 길이 인류에게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 두 극단 사이에는 꽤 다양한 경로들이 있을텐데, 어찌되었건 우리 앞 놓여 있는 이 문제는 OX퀴즈도, 5지 선다도, 단답형 문제도 아니다. 몹시 까다로운 논술형 답안을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이 글은 2024년 1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읽고쓰기1234'는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1년에 4번, 3개월에 한번씩, 1박2일 동안 각자 읽고 공부한 책에 관해 쓴 글들을 발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회원들이 발표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술 만능과 기술 거부의 사이에서    정군 기술 만능 VS 反기술 모두에게 익히 알려지고, 실제로 조금씩 체감하는 것처럼 현재 ‘인류’는 큰 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위기’가 흔히 수식하는 것처럼 지금껏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위기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위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 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모든 ‘위기’는 그 이후를 크게 바꿔놓는다. 이 ‘위기’ 이후 우리의 삶과 이 세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가장 부정적으로 전망할 경우 지구 상의 생명체들의 상당수가 대멸종에 가까운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반대로 가장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면 문명과 지구 환경 사이의 순환적 균형점을 찾아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사는 길이 인류에게 열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 두 극단 사이에는 꽤 다양한 경로들이 있을텐데, 어찌되었건 우리 앞 놓여 있는 이 문제는 OX퀴즈도, 5지 선다도, 단답형 문제도 아니다. 몹시 까다로운 논술형 답안을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정군
2024.06.17 | 조회 847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2) 술이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술(術)은 일반적으로 ‘권모술수’라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의 전략전술이 정당하지 못할 때 주로 권모술수라고 하지 않는가. 가령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료를 향해 우영우는 “권모술수 권민우”라고 별칭을 붙인다. 이처럼 우리에게 권모술수는 부정적이다. 정말 한비의 술은 권모술수일까? 왜 권모술수라고 불리는 걸까? 한비의 술을 탐구해보자.     『순자』의 욕망론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다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에 모인 학자들(제자)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다양했다. 이 당시 유세가였던 그 역시 이런 제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저서 『한비자』에서 순자에 대한 언급이 소략한 점, 마찬가지로 순자의 저서에서 그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따져볼 때 이들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한비가 당시 유행하던 『순자』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한비자 교양강의』, 가이즈카 시게키, 돌베게)   나는 이전 『순자』에 대한 글에서 그의 성악설을 욕망론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순자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그에게 욕망을 좇는 일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다만 자기 욕심만 채우다 분별심을 잃게 되는 것이 악이다. 한비는 순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간 관계론을 펼친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양육을 등한히 하면 자식이 자라서 원망한다. 자식이...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2) 술이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술(術)은 일반적으로 ‘권모술수’라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의 전략전술이 정당하지 못할 때 주로 권모술수라고 하지 않는가. 가령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료를 향해 우영우는 “권모술수 권민우”라고 별칭을 붙인다. 이처럼 우리에게 권모술수는 부정적이다. 정말 한비의 술은 권모술수일까? 왜 권모술수라고 불리는 걸까? 한비의 술을 탐구해보자.     『순자』의 욕망론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다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에 모인 학자들(제자)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다양했다. 이 당시 유세가였던 그 역시 이런 제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저서 『한비자』에서 순자에 대한 언급이 소략한 점, 마찬가지로 순자의 저서에서 그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따져볼 때 이들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한비가 당시 유행하던 『순자』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한비자 교양강의』, 가이즈카 시게키, 돌베게)   나는 이전 『순자』에 대한 글에서 그의 성악설을 욕망론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순자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그에게 욕망을 좇는 일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다만 자기 욕심만 채우다 분별심을 잃게 되는 것이 악이다. 한비는 순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간 관계론을 펼친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양육을 등한히 하면 자식이 자라서 원망한다. 자식이...
두루미
2024.06.11 | 조회 1496
한문이예술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1. “왜 이렇게 달라요?”   <한문이 예술> 수업을 마무리 할 때마다 오늘 배운 한자를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 대부분 한자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난 칸 안에 몇 번 써보는 것 조차 어려워 하는데, 더구나 배운 한자랑 모양이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갑골문으로 잔뜩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는 수업에서 다룬 모습과 다르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업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고대 사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사용하고 만나게 될 한자는 오랜 시간 속에서 의미가 바뀌어온 오늘날의 그것일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어나 문자의 모양과 의미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최근 유행하는 80년대 뉴스 패러디 컨텐츠만 봐도 몇 십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거나 새 단어를 추가한다. 우리나라 말도 몇 십년만에 포괄하는 어휘의 범위나 원래의 의미가 바뀔 바뀔 정도인데, 한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6000년 동안 쓰였다고 하니 그 변화가 얼마나 더 다채로울까! 한자의 경우에는 종이가 없던 시기부터 뼈, 돌, 대나무에 새겨지기 시작해 시기마다 필요에 따라 수 많은 한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바뀐 한자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의문을...
  한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동은     1. “왜 이렇게 달라요?”   <한문이 예술> 수업을 마무리 할 때마다 오늘 배운 한자를 써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 대부분 한자를 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네모난 칸 안에 몇 번 써보는 것 조차 어려워 하는데, 더구나 배운 한자랑 모양이 다르다고 투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수업에서는 갑골문으로 잔뜩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작 오늘날 사용하는 해서체는 수업에서 다룬 모습과 다르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업에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고대 사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사용하고 만나게 될 한자는 오랜 시간 속에서 의미가 바뀌어온 오늘날의 그것일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어나 문자의 모양과 의미는 자연스럽게 변한다. 최근 유행하는 80년대 뉴스 패러디 컨텐츠만 봐도 몇 십년 사이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거나 새 단어를 추가한다. 우리나라 말도 몇 십년만에 포괄하는 어휘의 범위나 원래의 의미가 바뀔 바뀔 정도인데, 한자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 6000년 동안 쓰였다고 하니 그 변화가 얼마나 더 다채로울까! 한자의 경우에는 종이가 없던 시기부터 뼈, 돌, 대나무에 새겨지기 시작해 시기마다 필요에 따라 수 많은 한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니 바뀐 한자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의문을...
동은
2024.05.14 | 조회 1039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기린
2024.05.10 | 조회 101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띠우
2024.04.28 | 조회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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