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4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신화로 바라보는 한자 문화권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김성재 지음, 동녘선서, 2000    문자가 갖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역사성, 기록의 수단, 개념의 표현... 심지어는 예술성까지. 내가 한자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문자와는 다르게 ‘신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때 얘기하는 신화는 구체적인 이야기나 사물의 기원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감각이다. 이를 다르게 얘기하면 그들이 가졌던 어떤 초자연적인 감각, 보이지 않는 것과 교류하려고 했던 노력들이다. 일종의 영성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 감각을 알아보고자 신화에 뛰어들었고, 문화에 따라 변신하는 신화, 은유를 통해 기호와 상징으로 표현되는 신화의 특성, 신화와 떨어질 수 없는 종교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신화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한자에 신화적인 감각이 담겨 있을까? 막연한 나의 느낌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애기해볼 수 있을까? <갑골에 담긴 신화와 역사>를 통해서 그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문자를 만든 창힐과 갑골문의 등장배경   중국의 신화는 천지를 창조한 반고씨로 시작해 삼황(수인씨, 복희씨, 신농씨)시절을 보내고 오제(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의 시대로 끝이 난다. 이 중에서 문자를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창힐은 오제시대에 속한 신이다. 그는 황제의...
이 글은 2024년 4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신화로 바라보는 한자 문화권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김성재 지음, 동녘선서, 2000    문자가 갖고 있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역사성, 기록의 수단, 개념의 표현... 심지어는 예술성까지. 내가 한자를 흥미롭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문자와는 다르게 ‘신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때 얘기하는 신화는 구체적인 이야기나 사물의 기원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어떤 감각이다. 이를 다르게 얘기하면 그들이 가졌던 어떤 초자연적인 감각, 보이지 않는 것과 교류하려고 했던 노력들이다. 일종의 영성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 감각을 알아보고자 신화에 뛰어들었고, 문화에 따라 변신하는 신화, 은유를 통해 기호와 상징으로 표현되는 신화의 특성, 신화와 떨어질 수 없는 종교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신화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한자에 신화적인 감각이 담겨 있을까? 막연한 나의 느낌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애기해볼 수 있을까? <갑골에 담긴 신화와 역사>를 통해서 그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문자를 만든 창힐과 갑골문의 등장배경   중국의 신화는 천지를 창조한 반고씨로 시작해 삼황(수인씨, 복희씨, 신농씨)시절을 보내고 오제(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의 시대로 끝이 난다. 이 중에서 문자를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창힐은 오제시대에 속한 신이다. 그는 황제의...
동은
2025.03.09 | 조회 326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장자』 내편은 총 일곱 편이다. 이 편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겠다는 발심을 하고 1회로 「양생주」편을 업로드 한 날을 찾아보니 2023년 4월이다. 다른 편들까지 써 보는 동안 2년여가 지나갔다. 장자의 문장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매번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변심해서 쓰기를 멈추기도 해서 기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제물론」은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미룬 편이자 뭘 쓸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는 편이었다.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이야기가 나오는 편이기도 하다.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제물론」을 다시 읽다보니 모른다는 대답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장자가 지은 이야기에 담긴 ‘모른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장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 스승 왕예와 제자 설결의 문답     설결이 스승 왕예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그런 것을 알고 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스승님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인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인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낭송 장자』 164쪽)       왕예는 제자의 질문에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吾惡乎知之). 누구나 옳게 여기는 그런 것(同是)을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어찌 알겠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설결은 그런 스승의...
『장자』 내편은 총 일곱 편이다. 이 편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겠다는 발심을 하고 1회로 「양생주」편을 업로드 한 날을 찾아보니 2023년 4월이다. 다른 편들까지 써 보는 동안 2년여가 지나갔다. 장자의 문장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매번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변심해서 쓰기를 멈추기도 해서 기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제물론」은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미룬 편이자 뭘 쓸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는 편이었다.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이야기가 나오는 편이기도 하다.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제물론」을 다시 읽다보니 모른다는 대답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장자가 지은 이야기에 담긴 ‘모른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장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 스승 왕예와 제자 설결의 문답     설결이 스승 왕예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그런 것을 알고 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스승님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인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인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낭송 장자』 164쪽)       왕예는 제자의 질문에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吾惡乎知之). 누구나 옳게 여기는 그런 것(同是)을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어찌 알겠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설결은 그런 스승의...
기린
2025.03.05 | 조회 55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이 글은 2024년 4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동양문화의 기본 가치에서 떠날 수 없다 『동양문화 다시 읽기』, 여영시 지음, 김병환 옮김, 교육문화사, 2014  진달래     여영시(余英時), 위잉스 어느새 2024년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이다. 작년에 뚜웨이밍(두유명)의 글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학자들의 책을 좀 읽어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올해 ‘읽고쓰기1234’에 펑유란(풍우란), 머우쭝싼(모종삼), 천라이(진래)의 책을 읽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이 책들은 1930년대, 1960년대, 1990년대 순으로 쓰였으며, 거기다 중국 본토, 대만 등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을 고루 만나게 되었다. 이에 마지막으로 읽게 된 『동양문화 다시 읽기』는 1983년 대만에서 위잉스(여영시)가 공개 강연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나온 책이다. 위잉스(余英時,1930~2021)는 중국 텐진(天津) 출생으로 옌칭대학(燕京大學/현재 북경대)에 입학했으나, 가족들이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홍콩 신아서원(新亞書院/지금 홍콩중문대학의 전신)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얼마 뒤 지도교수였던 첸무(錢穆)의 추천으로 하버드-옌칭학사의 연구원으로 1년간 가게 된다. 또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 위잉스는 미국에 남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후, 미시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동양학자가 되었다. 책 소개에 의하면 위잉스는 ‘동서양을 모두 포괄하는 박학함과 식견을 가진 석학’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수여하는 인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클러지(Kluge) 상을 받았다고 한다. 2005년에 우리나라에서 ‘중국과 서양의 대화’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다는데, 나에게는...
이 글은 2024년 4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동양문화의 기본 가치에서 떠날 수 없다 『동양문화 다시 읽기』, 여영시 지음, 김병환 옮김, 교육문화사, 2014  진달래     여영시(余英時), 위잉스 어느새 2024년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이다. 작년에 뚜웨이밍(두유명)의 글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학자들의 책을 좀 읽어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올해 ‘읽고쓰기1234’에 펑유란(풍우란), 머우쭝싼(모종삼), 천라이(진래)의 책을 읽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이 책들은 1930년대, 1960년대, 1990년대 순으로 쓰였으며, 거기다 중국 본토, 대만 등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을 고루 만나게 되었다. 이에 마지막으로 읽게 된 『동양문화 다시 읽기』는 1983년 대만에서 위잉스(여영시)가 공개 강연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나온 책이다. 위잉스(余英時,1930~2021)는 중국 텐진(天津) 출생으로 옌칭대학(燕京大學/현재 북경대)에 입학했으나, 가족들이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홍콩 신아서원(新亞書院/지금 홍콩중문대학의 전신)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얼마 뒤 지도교수였던 첸무(錢穆)의 추천으로 하버드-옌칭학사의 연구원으로 1년간 가게 된다. 또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 위잉스는 미국에 남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후, 미시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동양학자가 되었다. 책 소개에 의하면 위잉스는 ‘동서양을 모두 포괄하는 박학함과 식견을 가진 석학’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수여하는 인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클러지(Kluge) 상을 받았다고 한다. 2005년에 우리나라에서 ‘중국과 서양의 대화’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다는데, 나에게는...
진달래
2025.03.03 | 조회 487
우리는 모든 것을 분류하고 분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 속에서 동물과 식물, 광물을 가지런히 질서짓고 조금 더 나아가면 높고 낮은 계열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이같은 구분의 능력은 더 세분화하면 할수록 과학적이라고도 생각한다. 영혼과 신체를 구분해서 존재의 근원을 밝히려는 철학의 세계에서는 경험론과 관념론이 서로의 당위 혹은 상위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그런데 삶에서 진정으로 이렇게 동물과 식물이 분리되고 영혼과 신체가 분리되는가? 그것은 늘 공존하고 결합된 형태로 있지 않은가? 분리하고 구분하는 지적인 노력은 과연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여기에 동물과 식물, 혹은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지 않고 그것들을 일체화된 우주로서 파악하는 사유방식이 있다면 이것이 전자의 방식보다 생활양식 혹은 문화, 믿음의 영역에까지 더욱 깊숙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내가 길가에서 하나의 풀을 발견하고 이것이 동물이 아닌 식물이며, 꽃을 피우는 식물과 구분해서 잎만을 가진 존재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쪼개어 나가는 사이, 원주민은 이것이 먹을 수 있고 일상에서 어떤 증상에 대응하며, 나아가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는 의례에 쓰이는 것으로, 점점 사회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통합시켜 나아간다. 언제부터 나와 원주민의 인식체계는 이렇게나 극단적으로 멀어져 버렸을까? 여기에서 이것을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언젠가부터 미개하고 원시적이라고 간주해왔던 사고체계를 다른 시각으로 본 사람이 있고, 그가 전통적인 원주민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오랫동안 그들이 이뤄온, 자연과 문화가 완전히 결합된 통찰의 방식이 근대 과학과 대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양자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우리는 모든 것을 분류하고 분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 속에서 동물과 식물, 광물을 가지런히 질서짓고 조금 더 나아가면 높고 낮은 계열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이같은 구분의 능력은 더 세분화하면 할수록 과학적이라고도 생각한다. 영혼과 신체를 구분해서 존재의 근원을 밝히려는 철학의 세계에서는 경험론과 관념론이 서로의 당위 혹은 상위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한다. 그런데 삶에서 진정으로 이렇게 동물과 식물이 분리되고 영혼과 신체가 분리되는가? 그것은 늘 공존하고 결합된 형태로 있지 않은가? 분리하고 구분하는 지적인 노력은 과연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여기에 동물과 식물, 혹은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지 않고 그것들을 일체화된 우주로서 파악하는 사유방식이 있다면 이것이 전자의 방식보다 생활양식 혹은 문화, 믿음의 영역에까지 더욱 깊숙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내가 길가에서 하나의 풀을 발견하고 이것이 동물이 아닌 식물이며, 꽃을 피우는 식물과 구분해서 잎만을 가진 존재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쪼개어 나가는 사이, 원주민은 이것이 먹을 수 있고 일상에서 어떤 증상에 대응하며, 나아가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는 의례에 쓰이는 것으로, 점점 사회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통합시켜 나아간다. 언제부터 나와 원주민의 인식체계는 이렇게나 극단적으로 멀어져 버렸을까? 여기에서 이것을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언젠가부터 미개하고 원시적이라고 간주해왔던 사고체계를 다른 시각으로 본 사람이 있고, 그가 전통적인 원주민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는 오랫동안 그들이 이뤄온, 자연과 문화가 완전히 결합된 통찰의 방식이 근대 과학과 대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양자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의...
봄날
2025.03.01 | 조회 30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군중과 공중 - 가브리엘 타르드의 『여론과 군중』 리뷰     타르드는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시도한 초기 현대 사회학자로 불린다. 허나 그가 집필한 논문들을 보면 오히려 통계 자료에 기반한 현대 사회학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타르드의 대표 저서인 『모방의 법칙』이나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을 보면 그의 기획은 철학과 과학을 기반으로 사회를 넘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으며, 심지어는 당대에 떠오르던 심리학까지 끌어들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이번에 다룰 『여론과 군중』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프랑스 혁명 속에서 출현했던 군중에 대한 속성을 이야기하는데, 그 개념의 정교함이 현대 사회학의 명확함보다는 형이상학과 심리학같이 추상적인 언어로 쓰여진 학문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군중심리학과 드레퓌스 사건 타르드가 군중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폴리트 텐Hypolite Taine(1828~1893)과  스키피오 시겔레Scipio Sighele(1868~1913)의 영향이었다. 텐은 『현대 프랑스의 기원』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과정과 그 결과를 혁명군중들의 사회심리적인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며, 이후 시겔레는 혁명군중을 범죄학적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군중을 언제나 개인보다 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며, 나아가 군중은 본질적으로 개인과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하에 개인심리학과 구분되는 집단심리학이라는 학문분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대의 군중심리학은 주로 군중에 대한 범죄학적 관점, 그러니까 혁명군중이 가진 죄와 혁명에 가담한 개인의 죄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만 다루어졌다. 타르드가 이야기하는 군중 또한 현대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군중이라기보다는 프랑스 혁명의 그것을 떠올려야 더 매끄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군중과 공중 - 가브리엘 타르드의 『여론과 군중』 리뷰     타르드는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시도한 초기 현대 사회학자로 불린다. 허나 그가 집필한 논문들을 보면 오히려 통계 자료에 기반한 현대 사회학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타르드의 대표 저서인 『모방의 법칙』이나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을 보면 그의 기획은 철학과 과학을 기반으로 사회를 넘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으며, 심지어는 당대에 떠오르던 심리학까지 끌어들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이번에 다룰 『여론과 군중』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프랑스 혁명 속에서 출현했던 군중에 대한 속성을 이야기하는데, 그 개념의 정교함이 현대 사회학의 명확함보다는 형이상학과 심리학같이 추상적인 언어로 쓰여진 학문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군중심리학과 드레퓌스 사건 타르드가 군중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폴리트 텐Hypolite Taine(1828~1893)과  스키피오 시겔레Scipio Sighele(1868~1913)의 영향이었다. 텐은 『현대 프랑스의 기원』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과정과 그 결과를 혁명군중들의 사회심리적인 메커니즘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며, 이후 시겔레는 혁명군중을 범죄학적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군중을 언제나 개인보다 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며, 나아가 군중은 본질적으로 개인과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하에 개인심리학과 구분되는 집단심리학이라는 학문분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대의 군중심리학은 주로 군중에 대한 범죄학적 관점, 그러니까 혁명군중이 가진 죄와 혁명에 가담한 개인의 죄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만 다루어졌다. 타르드가 이야기하는 군중 또한 현대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군중이라기보다는 프랑스 혁명의 그것을 떠올려야 더 매끄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현
2025.02.27 | 조회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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