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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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 인간다움 3회차 - 메모 올려 주세요
(3)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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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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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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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4.15 |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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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_인간다움 2회차 후기] 인간은 어떻게 개인이 되었나
(1)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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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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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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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2026.04.15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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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 인간다움 2회차 -메모 올려 주세요
(3)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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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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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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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4.08 |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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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 인간다움 1회차 - 세미나 후기
(1)
가마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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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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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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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 2026.04.07 |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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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 인간다움 1회차 - 메모 올려주세요
(3)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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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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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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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4.01 |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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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3회차 후기] 이른바, 안다는 것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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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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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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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3.31 |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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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2회차 후기] 공부는 어떻게 하나? 삼강령, 팔조목
(1)
가마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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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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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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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 2026.03.19 |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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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1회차 후기] 대학이란 무엇인가?
(2)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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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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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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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2026.03.11 | 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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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세미나] 개강 공지 (3/4)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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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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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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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3.01 | 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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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한교-단기세미나] 고요한변화 세번째 시간(마지막) 후기
(5)
hanskim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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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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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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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kimmo | 2026.02.06 |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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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학교-단기세미나] 고요한 변화 세번째 메모
(6)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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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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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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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2.04 |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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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한교-단기세미나] 고요한변화 두번째 시간 후기
(3)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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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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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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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2026.02.02 | 177 |


1.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을 좀 정리했으면 합니다. 매번 진화론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도킨스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그러니까 도킨스는 진화는 개체가 아니라 자신을 끝없이 복제하는 '유전자'차원에서 발행하는 것이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유전자가 자기 복제를 위한 '생존기계'하는 거네요. 저자 김기현은 여기에 동의하는지 어떤지 잘 분간이 안가네요.
2. 소극적자유와 적극적자유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간섭이 없는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많은 부분이 이 소극적 자유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거네요. 적극적 자유는 '자율성'이 핵심인데, 이 자율성이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스스로 자기 의지에 따라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그 도덕법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대학에서 수신의 첫 단계가 격물-치지라고 하는 것과 뜻이 통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3, 어쨌든 저자는 19세기 반이성주의와 진화론을 거쳐 인간이성이 다시 회복된 현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존엄의 구도를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는 모든 이들이 자유주의적 기본권을 가지고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주의적)개인이 기본권이 무시된 결과, 니체의 이론은 나치즘을 낳았고, 푸코의 이론도 이슬람 혁명에 명분을 주었으며, 레비 스트로스는 근대성에 대해 부정적 평가는 낳았지 않냐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성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인간다움의 나머지 두 요소인 공감과 자유에 대해서 조금씩 부연하는 식으로 기술을 하지요. 자신도 결론을 확실히 내리지는 못하고 있어요. SNS로 전세계가 묶여있는 가운데 각자 고독한 시대, AI가 오히려 친근한 이 시대에서 어떻게 해야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있을까...저자는 소심하게 한 가지 실천을 이야기하고는 있어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소극적 자유를 택할 때 "선택의 이유를 물어라" 하는 겁니다. 뭐, 이것도 선택 자체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일상에 점차 물들어가는 우리를 발견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 미래가 달라진다”
뭔가 다 읽었는데, “그래서 인간다움이 뭐예요?“ 뭐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논어》에서 공자님의 제자들이 계속 “그래서 인이 뭔가요?”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결론은 매번 ‘인간다움’이란 질문되어야 하는 거다..... 뭐 이런 건지.
일단 현대 철학의 흐름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굉장히 유용했다.’가 이 책에 대한 총평입니다. 그런데 계속 이런 질문은 남았습니다. 인간도 그저 동물의 일원일 뿐이면 안 될까요?
‘인간다움’이 종의 생존을 위한 키가 되면 우리가 거기서 윤리를 세울 수는 없을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전제에서 인간이 동물일 뿐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정당한가?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영리함의 정도 차이에 불과한가? 혹시 양적 차이가 커지던 어떤 순간에 질적 차이가 나타난 것은 아닌가? 그런데도 진화라는 동일선상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중요한 차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13쪽
생존이라는 문제를 너무 간단하게 이야기하시는 건 아닐까요?
*226쪽, 니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삶이 법칙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환경에서 자신의 욕구와 부단히 부딪히며 자신을 실현해가는 생명력이 삶의 본질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를 이성과 근대적 개인관에 대한 비판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근대적 개인관’입니다. 뒤에 언급된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과 함께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242쪽,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오며서 저자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소극적 자유야말로 권위주의로의 복귀를 맏는 처방제”라고 했는데 제가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소극적 자유로 표현되는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과 위의 근대적 개인관과 연관성은 없을까요?
*300쪽, 인터넷의 확대와 공감 능력의 저하에 관한 보고서에 대한 부분은 흥미롭기도 했고, 수긍도 많이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감정이입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하고 이는 공감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신체성’에 이러한 문제와 연결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소통은 상대방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읽어내는 훈련의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고 하는 부분에서 “예(禮)”의 역할 같은 게 바로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28쪽, “왜 행복하려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말에서 마치 다음 책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이^^
고대에 탄생한 이성은 근대에 개인이 탄생하면서(지난 시간) 권위주의를 대체해 새로운 시대의 그림은 그린다. 이성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며 순수이성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산업혁명까지 이루어내 인류의 (경제적)발전을 이룬다.
산업혁명의 그림자는 이성을 비판하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니체는 인간이란 자기만의 색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며, 개인의 고유한 틀 내에서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존재다. 인간의 고유한 힘, 그리고 진정한 힘은 개별성, 개체성, 고유성에서 나오는데 이성은 일반적 원리 속에 인간을 묶어 놓아 그 생명력을 질식시킨다.”(195) 이성이 요구하는 보편성에서 도덕으로 나아가 개인의 고유함을 폭력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비판했다는 생각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위와 삶을 지배하는 주요 동력을 이성이 아니라 성적인 본능에서 찾았고. 마르크스는 도덕과 이념의 근원을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경제적 구조에서 찾았다”(196)
여기에 진화론과 생물학/유전학의 발달은 인간의 자유(자율성)에 의문을 던진다.
“진화는 유전자 풀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인간이라는 개체는 유전자 풀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해된다”(208)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다른 종과 구분시켜주는 인간적 윤리도 진화에 도움이 되는 장치로 발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윌슨). 도킨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행동은 인간을 이루고 있는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기 위한 최선을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211)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다움이, 인간의 자율성이 항상 종의 보존의 방향으로 움직인 것만은 아니다(동성애, 비결혼, 비출산)라고 볼 때, 진화론/유전학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아닐까?
저자는 인간성 회복의 이름으로 확산하는 반이성주의인 니체, 사르트르,카뮈,하이데거 등이 이후 세계를 지배한 파시즘과 나치즘의 이념적 발판(혹은 참여)이 되었다고 해서 다소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인상이다.
“니체에서 파시즘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개인의 이성과 자유를 뿌리째 흔드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개인의 이성과 자유의 포기는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성과 그에 기반한 보편적 인권을 부정할 때 상대주의가 고개를 들었고, 권력이 상대주의와 자신의 이념을 결합해 폭압적 권력을 행사했다. (중략) 파시즘의 출현이 잘 보여주고 있다.(234)”
하지만, 개인의 개별성, 고유성, 주체성을 찾아나가는 그들의 사상이 보편성을 담지하는 이성주의의 대척점에 선다는 이유로 비판받아야 하는 점이 다소 의문시 된다. 그들이 이성을 부정한 게 아니라 보편성으로 포장되는 도덕의 폭력성을 부정한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자유의 확대와 이성의 과장 측면에서 한 가지 제안 혹은 확신은 소극적 자유의 보장에 둔다. “소극적 자유로 표현되는 기본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신념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신체 이동의 자유에 해당하는 소극적 자유에 어떤 가치를 구현할까?(중략. 에 질문을 던지고) 소극적 자유를 엄격히 지키자”(244)고 한다. 지금으로썬 여기서부터 인간성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해서 이를 산업혁명 당시의 변화에 빗대어(4차 산업혁명) 어떻게 이해하고 미래를 그려 볼 것인가?하는 접근은 신선했다. 산업혁명의 시대의 사람들의 혼돈이 지금 우리가 내가 겪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런 측면에서 또 인류는 어떻게든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혹은 새로운 인간다움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 갈 것이라는 희망이 보여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