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뢰무망]'무망'한데도 병이 생겨?

자작나무
2026-02-10 15:30
114

겨울방학을 마치고 오랜만에...그래서 더 기쁜 개학을 맞은 한문강독 세미나팀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방학중이신 분도 계시지만, 우리의 세미나는 가늘어도 길게...쉬어도 끊임없이...해도 해도 끝없는 혹은 했지만 안 한 듯한^^ 한문의 세계를 탐구하는 팀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봐도 좋고 언제 봐도 좋은, 팀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여전히 <주역전의>를 읽고 있습니다. 역경 원문에 송대의 정이천과 주자의 해석이 함께 달린 책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헷갈리죠. 이게 그거 같은데 왜 주자는 반복하고  있지? 혹은 주자가 이렇게 달았다면 정이천과는 다른 내용일 텐데....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하지만 어쟀든 우리는 진도를 나갑니다. 한 주에 한 괘씩 그래서 지금은 천뢰무망 괘에 도달했습니다.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그 바른 것이 아니라면 재앙이 있을 것이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괘사)

 

무망괘는 하늘 아래 우레가 치는 형상입니다. 이런 형상에 '무망'이라고 괘명을 달았는데, 괘사는 전체적인 상황을 말하는 바,  "지극한 성실(지성)"의 상황 즉 하늘의 도가 펼쳐지는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는 괘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성실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물을 화육하여, 낳고 낳음이 끝이 없어서 각자 그 성명을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천뢰 두 체로 이뤄진 이 괘에 무망이라는 괘명이 달리는 순간, 이 괘는 보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좋은^^' 괘입니다. 그리하여 전체 상황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지키는 것이 이롭습니다." 원문으로 보자면,  '원형이정'인데 건괘의 '원형이정'과는 다르게 해석됩니다. 건곤괘를 중요시한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럼에도 무망괘는 원형이정을 괘사에 다 갖고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괘입니다.

 

하지만 주역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전체 괘사가 좋다고 해서 그 부분 혹은 그 상황의 진행 과정인 효사도 일괄적으로 좋다고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효사 중에 길하다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죠. 그래서 참 흥미롭습니다.  왜 전체적으로 좋은 시절인데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험난(?)할까, 좋은 봄날에 정신을 잃고서 주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지 말라고 미리 말해주는 것일까요. 사실 정이천이 읽어내는 방식은 이러한 '경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무망하니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개별 상황에 따라서 혹은 자기가 가진 자질이나 자리 등에 따라서는 전체적 상황과  저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무망이라고 하는 것도, 너도 나도 다 무망한 것이 아니라, "무망은 크게 형통한 이치를 갖고 있으니, 군자가 무망의 도를 행한다면 크게 형통함을 이룰" 수 있을 것이나, 군자가 아니라면, 지극한 성실성의 도를 행하지 않는다면 형통함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상황에 대한 질문은, 상황과 그 상황에 처한 나에 대한 반성과도 닿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길은? 정이천은 천도를 말할 때면 항상 인도를 말하는데, 인간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천도=무망의 도를 행하는 자가 인간입니다. 

 

초구효를 보면, "무망이니, 감에 길하리라"라는 효사가 달렸습니다. 분명 괘사에서는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가는 것이 길하답니다. 위에서 봤듯, <주역> 전체가 인간 삶에서의 경계를 두기 위해서 지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래도 요령부득입니다. 그렇기에 왜 그런지에 대한 주석이 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무망괘의 하체인 '뢰'입니다. 뢰는 '사진뢰'와 '진하련'으로 이야기됩니다. 두 음 아래의 하나의 양이 바로 진괘가  진괘가 되는 이유(주)입니다. 이 양은 무망의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초는 자신이 가진 열악한 자리와 일의 시작, 초기라는 핸디캡을 딛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야 길한 것이죠. 여기서 '감'은, 문맥에 따라서는 무망인 상태로 계속 가는 것(초구)을 일컫기도 하지만, 괘사에서 보이는 '감'은 무망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일컫기도 합니다. 정이천이 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괘사에,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미 무망하다면 다시 감을 둬서는 안 됨을 이른 것이니, 지나치면(혹은 간다면) 망령하게 된다. 효사에 '감에 길하리라'고 말한 것은, 무망의 도로써 간다면 길할 것임을 이른 것이다."(정이천의 전)

 

이번에 강독을 하면서 재미났던 부분은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두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육이효의 "밭 갈지 않고서도 수확하며 일년 된 밭을 만들지 않고서도 삼년 된 밭이 되니, 갈 바를 둠이 이롭다." 라는 부분입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습니다만, 정이천이 천뢰무망괘를 천도와 인도로 설명하듯 여기서 인간이 어떻게 천도를 따르는지를 잠시 엿볼 수 있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밭 갈 '경'과 수확할 '확'/일년 된 밭 '치'와 삼년 된 밭 '여'를 통해서 "앞장서서 일을 만들지 않고 사리의 당연한 바를 따름"을 설명합니다. 만약 "앞장서서 일을 만든다면 이것은 인심으로 작위한 것이므로 바로 망령된 것이요, 일의 당연한 바를 따른다면 이는 이치와 사물에 순응하는 것이므로 망령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경과 치는 이치에 순응한 바요, 확과 여는 망령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주의 농법을 쓰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유가는 인간의 행동, 즉 인위에 대해서 긍정합니다. 그런데 인심으로 작위하는 것과 천도에 따른 작위는 뭐가 다른 걸까요. 작위의 대표적인 것으로 얘기되는 성인들이 만든 법과 예는 어떻게 봐야 하나요. 그래서 누군가가 묻습니다."성인이 제작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다 단서를 만드는 것이니, 어찌 망이 아니겠는가?" 정이천왈, "성인은 때에 따라 제작하여 기풍의 마땅함에 합하게 하였고,일찍이 때에 앞서서 열어 놓지 않았다. ...때는 바로 일의 단서이니, 성인은 때에 따라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육삼은 무망의 재앙이니 설혹 소를 매어 놓았다 하더라도 행인이 얻음은 거주민의 재앙이로다." 여기서는 소를 매어 놓았다고 하지만, 해석에는 말도 나옵니다. 도대체 누가 매었고 그 매는 행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얻음은 그의 재앙이고, 나의 재앙은 그의 얻음인 이런 상황을 말하는데, 결국은 육삼이 처한 상황 때문입니다. 즉 "삼은 음유로써 중정하지 못하니 이는 망령된 것을 하는 자이며, 또 뜻이 상과 응함은 하고자 함이어서 또한 망이니, 무망의 도에 있어서 재해가 된다. 사람이 망동함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무망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바름을 지킬 수 있으냐, 그 바름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그래서 효사들은 양의 자리에 양이 오면 정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정이라고 하는 자리값을 가지고 풀이를 합니다. 또한 망령되이 감을 응/불응과 관련해서 푸는데, 육삼의 경우는 완전히 부정하고 응하여서 바름을 지킬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괘가 무망인데, 육삼은 '무망의 재앙'이라는 말로 상황이 표현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구사입니다. "정고히 지킬 수 있으니, 허물이 없으리라." 그런데 구사의 경우, 음의 자리에 양이 왔으니 부정인데 효사는 '정고히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양이 음의 자리에 거하고 있는데 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걸까요ㅠㅠ 정이천의 답은, 상체가 바야흐로 건체로 진입했다는 점을 들어 설명합니다. "양으로서 건체에 거하니,만약 다시 강한 것에 처했다면 지나침이 될 것이니, 지나치면 망령된 것"이지만, 사의 경우는 음의 자리에 온 구(양)이기 때문에 음자리가 양의 망동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음의 자리 힘으로 정고히 지킬 수 있어 허물이 없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구사는 다행히 초구와 응하지 않으니 망동하진 않기에 허물이 없는 것이겠죠.

 

또 다른 하나는 구오효입니다. "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쁜 일이 있으리라." 처음 읽었을 때, 무망한 때에 왜 병?  병은 망령되었을 때 생기지, 지극히 성실한 시기에, 천도가 거스름없이 실현되는 시기에 병이 생긴다?! 그렇다면 구오에서 말하는 무망의 병이란, 망령되어 생긴 재앙이 아니기에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회복된다는 의미로 봐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아주 현실주의자(!)인 정이천의 경우,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고 인솔하여도 따르지 않고 교화하여도 고쳐지지 않아서 망령된"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말하는 '무망의 병'은 바로 이런 존재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가령 순임금 시기의 유묘, 주공이 정벌했던 관숙, 채숙 등.

 

 

댓글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73
[택풍대과] 휘어진 들보, 마른 버드나무 대과괘
동은 | 2026.03.10 | 조회 27
동은 2026.03.10 27
272
[산천대축] 쌓느냐 막느냐 무엇이 다른 것이냐?! (2)
동은 | 2026.02.18 | 조회 100
동은 2026.02.18 100
271
[천뢰무망]'무망'한데도 병이 생겨?
자작나무 | 2026.02.10 | 조회 114
자작나무 2026.02.10 114
270
[한문강독세미나] 『주역』강독, 온/오프 병행합니다!! (1/28일 시작)
토용 | 2026.01.11 | 조회 255
토용 2026.01.11 255
269
[지택림괘]괘명; 그냥 좋은 괘도 있다.
자작나무 | 2025.11.03 | 조회 177
자작나무 2025.11.03 177
268
택뢰(澤雷) 수(隨)괘: 수시처변(隨時處變) (1)
콩땅 | 2025.10.14 | 조회 139
콩땅 2025.10.14 139
267
지산겸괘: 겸허한 마음 (1)
콩땅 | 2025.09.23 | 조회 197
콩땅 2025.09.23 197
266
화천대유괘: 광명으로 세상을 덮어 버리고 싶다.
콩땅 | 2025.09.17 | 조회 171
콩땅 2025.09.17 171
265
천화동인괘-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을까? (2)
콩땅 | 2025.09.09 | 조회 185
콩땅 2025.09.09 185
264
천지비괘 否 후기 (1)
동은 | 2025.09.01 | 조회 173
동은 2025.09.01 173
263
지천태(泰)괘 후기
누룽지 | 2025.08.26 | 조회 181
누룽지 2025.08.26 181
262
소축-혼자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냐.
자작나무 | 2025.07.06 | 조회 148
자작나무 2025.07.06 14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