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한교-단기세미나] 고요한변화 두번째 시간 후기

봄날
2026-02-02 22:52
116

지난 시간에 유럽 근대사유는 하나의 대립상태와 다른 대립상태는 늘 단절시킴으로서 인식하는 방식으로 굳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한 단절적인 인식은 동양적 사유의 방식인 이행과정과는 양립할 수 없죠. 5장은 이행과정 또는 횡단의 사유방식을 ‘늙음’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비록 베르그손 등이 ‘지속’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사유하지만 그 역시 방향성을 가진, 즉 A에서 B로 향하는 양극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집니다(하지만 베르그손의 사유는 더 찬찬히 봐야할 것입니다).

 

5장 초반의 종(種)과 류(類)에 대해 가마솥샘이 “변화는 종이고, 운동은 류”라는 설명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체계화하고자 할 때, 질료가 형태를 갖춰가는 모든 과정을 ‘운동’이라는 ‘류’ 아래 두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종’으로 세분한다”고 한 메모는 아주 유용했습니다. 어쨌든 젊었을 때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현타’를 느끼는 우리는 매우 불완전하게 양쪽의 사유를 왔다갔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언어’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는 한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럽과 중국의 언어가 주는 차이를 새삼 느꼈습니다. 유럽은 주어+술어 형식이 갖춰져야 하지만 중국의 한자는 한 글자가 동사가 되기도 하고 명사가 되기도 하고, 과거-현재-미래 시제 또한 불분명하며 맥락에 따라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것 자체가 매우 유동적이라는 점,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의미가 확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요요샘이 <장자>의 대종사편의 사례를 늙음의 사유로 제시하신 것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 낭송유랑단 활동을 하면서 <낭송장자>를 통째로 외우겠다는 대담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중도폐지했지만 그 가운데서 이 구절은 개인적으로도 아주 감명깊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날 때부터 늙고 있고 죽음으로 이행하고 있는 존재이며,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고요한 변화는 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6장 ‘반전의 모습’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이행과정의 한 표현입니다. 혁명처럼 들끓어오르고 폭발적인 사건도 복원의 과정을 생각하면 고요한 변화일 뿐입니다. 줄리앙은 심지어 “행동과 혁명은 촉매 작용이라기보다는 단지 표시요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변화의 변화’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줄리앙은 역경에서 그것을 찾습니다. 주역의 64괘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건괘와 곤괘, 그리고 마지막 두괘, 즉 수화기제와 화수미제괘로 배치된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그가 말할 때 어느 정도는 예상되었던 설명입니다. 이미 주역을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 배치가 말하려는 “세계는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 그 자체”라는 의미를 알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바로 주역은 ‘주체’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역경이 표현하는 이행과정은 군주나 왕국같은 주체가 아니라 “그 고유의 배치를 통해 어딘가로 이끌리는 것은 바로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변화’라고 말하는 한 단어도 ‘변’과 ‘화’로 구분할 경우, 일반적으로 변이 고요하고, 화가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줄리앙은 어느덧 나타나는 것이 변이고, 고요한 것이 화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구분이 아니라, 그 정합성이 ‘가시와 비가시의 장을 동일하게 가로지른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겠지요.

 

7장의 제목은 <삶의 유동성>입니다. ‘또는 어떤 것이 어떻게 이미 다른 것이 되어있는가?’라는 부제를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여기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순자/헤라클레이토스/헤겔이 다 나옵니다. 삶의 유동성을 이들 각각이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 정리해보면 좋겠지만 나눴던 이야기들이 다 휘발되어서 난감할 따름입니다. 다만 이전의 장에서도 거듭 줄리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각 방법론에서는 다르다 해도 주체의 문제, 즉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한편 존재의 지배와 술어기능의 바깥을 사유했던 헤라클레이토스와 헤겔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는 헤겔뿐만 아니라 베르그손이나 니체, 들뢰즈 등 ‘생성’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네요. 저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가 가지는 독특성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는 것이 소득이었습니다. 한편 줄리앙은 순자를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논리학자”라고 말합니다. 그 순자조차 주체-기체에 한정한 사유에 얽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는 단지 이름으로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존재는 ‘사변의 관점’보다는 ‘정치적 관점’에서 이름을 부여받을 뿐입니다.

 

다음 장에는 ‘시간’이 등장한다고 줄리앙은 예고합니다. 시간은 저에게 가장 어려운 개념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과연 시간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댓글 3
  • 2026-02-04 09:15

    샘 후기를 보니, 변과 화를 가시와 비가시로 이해하면 좀 이해가 되는 듯도 합니다.
    잘 정리된 후기, 감사합니다.

  • 2026-02-04 19:51

    서양철학은 늙음을 사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주체-기체-실체 중심의 존재론으로는 이행을 해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바로 그런 이유로 존재에서 비존재로 가는 단절인 죽음이 철학에서 중요했다고 줄리앙은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베르그송주의자였던 장켈레비치가 <죽음>에서 죽음의 신비를 남겨놓은 것도 그래서였을까, 라는 생각을 했답니다.ㅎ
    이와 같은 관점을 견지하면서 서양철학의 노년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중국 사유 혹은 인도사유와 비교하며 살펴보면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 2026-02-05 07:59

    주역이 미제(未濟)로 끝난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그 전 괘가 기제(既濟, 이미 건넜다)인데, '아직 건너지 않았다'로 끝나는 반전이 있죠.
    '그런데'의 반전
    세상은 계속 살아 움직인다. 네가 있든 없든..
    그런데
    그러니까
    삶은 완성되지 않음으로써 지속된다는..
    너는 완전하지 않아. 그래서 살 맛 나는 거지..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46
[고*금세미나] 개강 공지 (3/4)
진달래 | 2026.03.01 | 조회 47
진달래 2026.03.01 47
1245
[고전한교-단기세미나] 고요한변화 세번째 시간(마지막) 후기 (5)
hanskimmo | 2026.02.06 | 조회 109
hanskimmo 2026.02.06 109
1244
[고전학교-단기세미나] 고요한 변화 세번째 메모 (6)
진달래 | 2026.02.04 | 조회 100
진달래 2026.02.04 100
1243
[고전한교-단기세미나] 고요한변화 두번째 시간 후기 (3)
봄날 | 2026.02.02 | 조회 116
봄날 2026.02.02 116
1242
[고전학교-단기세미나] 고요한 변화 두번째 메모 (6)
진달래 | 2026.01.28 | 조회 120
진달래 2026.01.28 120
1241
[고전학교-단기세미나] 고요한 변화 첫 번째 시간 후기 (3)
동은 | 2026.01.26 | 조회 136
동은 2026.01.26 136
1240
[고전학교-단기 세미나] <고요한 변화> 첫 번째 시간 메모 (4)
진달래 | 2026.01.20 | 조회 190
진달래 2026.01.20 190
1239
대학×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4)
진달래 | 2026.01.09 | 조회 548
진달래 2026.01.09 548
1238
고전학교 학술제 원고
진달래 | 2025.12.20 | 조회 178
진달래 2025.12.20 178
1237
[고전학교-단기세미나] <고요한 변화> : 일정변경 (1/22~2/5)3회 (5)
진달래 | 2025.12.13 | 조회 580
진달래 2025.12.13 580
1236
[2025 고전학교 ]2학기 에세이데이 후기 : 또 만나요~ (1)
진달래 | 2025.11.28 | 조회 205
진달래 2025.11.28 205
1235
[고전학교] 에세이 발표회 합니다.(11월27일 오전 10시) (9)
진달래 | 2025.11.25 | 조회 245
진달래 2025.11.25 24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