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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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사전세미나 2회차 후기 :같이 읽으니 더 재미있다!!
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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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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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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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환 | 2026.01.15 |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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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사전 세미나 2회차 메모
(9)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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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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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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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 2026.01.12 |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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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사전세미나 1회차 후기 : 철학이 재미있다!!
(5)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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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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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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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 2026.01.06 |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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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사전세미나 1회차 메모
(8)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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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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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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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 2026.01.05 |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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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문탁 학술제 사회학팀 원고
(1)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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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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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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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 2025.12.21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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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사전세미나] 푸코 사유의 배경과 푸코라는 인간에 대하여(On/Off 동시진행)
(13)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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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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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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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 2025.12.14 | 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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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세미나]『자본』1권 15회차 후기
(4)
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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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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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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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은 | 2025.12.10 |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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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사회학] <자본> 읽기 _ 15주차 질문들
(8)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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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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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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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 2025.12.08 |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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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세미나]『자본』1권 14회차 후기
(2)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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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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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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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2025.12.06 |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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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사회학] <자본> 읽기 _ 14주차 질문들
(7)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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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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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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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 2025.12.01 | 51 |


내일 덧붙여 이야기할만한 내용을 정리한 개인 메모입니다^^
170 | 그리고 그후에 자주 인용되는 멋진 선언으로 푸코는 자신의 계획을 정의했다. "나는 이 언어의 역사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이 '침묵의 고고학'을 쓰려는 것이다.
- 최근 들었던 채운샘의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강의에 따르면 푸코가 '역사'가 아니라 '고고학'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다양한 활동들을 정리하는 이유는 과거 또는 현재에 출현된 다양한 사건들을, 그러한 파편들을 실체가 있는 유물과 같이 다루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이어붙이고 분석할 것이고 관계맺게 만들것인지 그래서 어떤 맥락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건이란 갑자기 일어난 일이고 이전에 반복되어 오던 연속성을 깨는 것이지요. 사건이 출현됨으로서 맥락과 의미들을 묻게 되는 거라고 합니다.
* 출판시기 : 《광기의 역사》 1961년, 《지식의 고고학》 1969년.
175 | "... 광기가 갑자기 사회 속에 투입되어 특권적이고 거의 배타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과거에 친숙한 이웃으로 눈에 띄지 않게 살거나 아무런 경계선 없이 온 나라를 방랑하던 광인들을 어느 사이엔가 한정된 지역 안에 한데 집어넣어 누구나 그들을 구별하고 비난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그때부터 경찰의 예방 또는 치안 대책의 차원에서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단숨에 몰아내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푸코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비이성이 인식의 대상이 되기 전에 우선 파문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 지난한 연속성을 깨트리는 다양한 것 중에서 푸코에게는 이 광기가 큰 영향을 준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이번에 읽은 내용들에서는 광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많길래 저자인 디디에리봉이 푸코의 광기에 관심이 많은 건가 싶기도 했지만요. 아무튼 이때의 '광인', '미친 사람', '광기' 등등은 수박 겉핥기 정도로만 설명된 것 같아서 책을 읽어봐야지 명확하게 알게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푸코가 광인에게서 당사자성을 느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맥락이 존재하는데 푸코가 광기라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에는 광기와 관련된 푸코 개인의 맥락이 기폭제가 되진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푸코는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기에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푸코 자신을 이해하기에 더 집중된 사유들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습니다. 물론 그 문화와 개인을 굳이 두 개로 분류할 필요는 없지만 푸코라는 사람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보니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푸코가 지내고 있는 시대, 나라, 문화, 사회 등에서 당연히 영향받았겠지만 뭔가 그보다 더 내면적이고 사적인 것이 푸코를 사고하게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푸코는 아니고 누구의 사진일까요? 궁금궁금.. 디디에 에리봉일까요?
1. 101쪽
내가 공산당을 탈당했을 때는 1952년 겨울, 스탈린에 대한 의사들의 음모 사건 직후였다. 뭔가 끈질긴 불안감의 느낌 때문이었다....전혀 믿을 수 없는 어떤 사실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해체'를 훈련하는 것이었고 '타자'가 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2. 107쪽
샤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물이 우리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환상을 제거했고, 사물이 우리들에게 양도한 부분을 사물에게 남겨 놓았다.'
붓다의 향기가 나는 문장...
3. 122쪽
푸코의 편지를 읽어 보면 그가 바라케를 자신의 복종적 성향에 딱 부합되는 이상적인 성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푸코의 복종적 성향이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그러한 줄은 모르겠지만 그의 성격 전반이 그러하다면 그의 성정체성이 얼마나 그를 괴롭혔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다. 그 괴로움만큼 사유가 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젊은 푸코인 것 같아요 ㅎㅎㅎ
1. 푸코는 1950년에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맑스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헤겔주의를 거부하면서, 실존주의의 한계에 불만을 느끼면서 공산당에 입당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94쪽)라고 회고한다. 그는 스스로를 '니체적 공산주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리봉에 따르면 그는 공산당 세포 모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조직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유형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산주의 연구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정신병과 인격>을 쓰는 등, 그만의 방식으로 개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푸코가 맑스주의와 얼마나 관련되어 있었는지를 두고 논쟁했다. <라 누벨 크리티크>에 기고한 글이 푸코의 대필이었는지를 두고서도 증언이 엇갈린다. 이 부분을 보면 당시 유럽에서 맑스주의가 지식인의 철학적, 정치적 입장을 가늠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맑스주의를 계승하는지, 수정하는지, 비판하고 거리를 두는지, 아주 바깥으로 이탈하든지. 지금은 어떨까? 오늘날 특정한 '~주의ism'로 자신의 정치적, 학문적 입장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맑스주의의 영향이 막강했던 시대와 어떻게 다를까? 우리는 여전히 특정한 정치적, 학문적 분파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설명할까? 딱히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공부 또한 정치적일 수 있을까?
2. 푸코가 프랑스를 떠나 웁살라, 바르샤바, 함부르크에 체류하던 '국외 유배' 기간은 박사학위 논문인 <광기와 비이성 -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역사>를 쓰던 시기와도 겹친다. 이 시기는 <정신병과 인격>을 쓰던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병, 광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논조가 꽤 달라진다. 이시기에 푸코는 니체의 책에 깊이 심취했고, 음악가 애인과 사랑에 빠졌으며("음악은 그러니까 앞으로 푸코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게 만들었고, 결국 현상학과 맑시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에게 음악이 니체의 독서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121쪽), 문학에 열광했다(블랑쇼, 베케트, 바타유, 야스퍼스, 르네 샤르...). 그러면서 맑스주의와 '결별'하게 된다. 푸코가 만난 니체, 음악, 문학, 사랑 등의 '비철학의 양식'들은 그의 연구 주제인 비이성, 즉 '광기'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박사논문의 서문에서 파스칼을 인용한다. “인간은 누구나 광인이므로 미치지 않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광기다.”(169쪽) 여기서 '미치지 않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광기'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누군가를, 또는 스스로를 ‘미쳤다’고 판단할까? 푸코가 책 끝 부분에서 "광기에 대한 지식은 결코 이 세계에 확신을 주지 못하며 오로지 그 광기의 작품들만이 이 세계를 설명해 줄 뿐이다."(178쪽)라고 말할 때, '광기에 대한 지식'과 '광기의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5장, <스탈린의 구두장이>에서는 젊은 시절 푸코가 프랑스 공산당과 맺었던 관계를 다루는 동시에 모리스 블랑쇼, 조르주 바타유, 르네 샤르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이 중 블랑쇼는 문학을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닌 인간이 언어를 통해 마주하는 근원적 고독과 공백의 경험으로 정의해 문학 비평의 새 지평을 연 학자입니다. 그는 또한 논리와 이성의 바깥, 죽음이나 침묵 같은 한계 상황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구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바타유는 에로티즘을 인간이 금기를 부수고 개별적 자아를 넘어 연속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파악한 학자입니다. 또한 그는 이성을 중시한 근대 사회가 잃어버린 ‘신성함’을 되찾고자 했으며 그를 위해 종교적 제의나 집단적 열광 속에서 포착되는 근원적 공동체성에 주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르네 샤르는 짧고 응축적이며 파편적인 문체를 특징으로 하는 시인입니다. 블랑쇼는 그의 시를 두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방식’으로 칭하며 격찬했다고 합니다.
6장, <사랑의 불협화음>에서는 앞서 우리가 에리봉이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말했었던, 푸코의 ‘사랑’ 장 바라케를 통해 음악이 푸코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음악은 푸코로 하여금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기존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깨뜨렸고”, 이후의 푸코가 “다른 모든 것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게 만들어 현상학과 맑시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상 121p) 이러한 ‘낯설어지기’의 경험은 이후 푸코의 작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6장의 후반부에서는 심리학에 대한 푸코의 초기 작업들을 분석하면서 정신병리학의 핵심을 ‘어떤 숨겨진 구조의 발견 혹은 인간 자신의 진실된 모습의 포착’이 아닌, ‘인간 자기모순의 절대적 요소 혹은 진실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발견하는 것에 두는 푸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상 130p) 이는 다음 7장에서 스웨덴, 폴란드, 독일을 누비며 탁월하고 유능한 실무자로서 활약한 푸코를 보여주는 동시에 같은 기간 그가 집필한 『광기의 역사』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에리봉은 『광기의 역사』의 내용을 요약하며 ‘진정한 언어’, ‘침묵의 고고학’, ‘한 문화의 외부, 한계의 역사’, ‘광기가 분리되고 분리되는 과정’을 언급하는데, 이 내용들과 앞서 언급된 이름들 ― 블랑쇼, 바타유, 샤르, 다시 뒤메질, 라캉, 니체 등을 연결해보면 푸코가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에 대해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내용은 푸코가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와 어떤 관계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챕터였습니다. 또한 그가 프랑스를 떠나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연구가 부정당하거나 학생들에게 외면받는 일화, 밤을 새우며 글을 썼던 일화 등을 통해 그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며 성장해 나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쟁 직후 스무 살을 맞았던 사람들,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던 이 비극을 몸으로 느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탈린의 소련과 트루먼의 미국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또는 프랑스 사회당과 기독교 민주당을 선택해야 했을 때 과연 정치란 무엇이었을까?" (93p)
그가 공산당의 일원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고 적극적으로 공산주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았을 때, 그가 정치와 관련하여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정치라는 것을 두 개의 당으로 나누어 어떤 당이 더 유능한지에 대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푸코는 이러한 담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탐구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죽은 지 3개월 후에 우리는 의사들의 음모가 순전히 날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뷔름세르에게 음모에 관한 이야기를 와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흔한 일이고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는 공산당에서 멀어졌다."(102p)
"흔한 일이고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다"라는 문장을 통해 당시 푸코가 공산당에 느꼈던 분노가 짐작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부조리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듣는 얘기는 "이게 원칙이어서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말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시스템의 존속이 가장 중요하게 됩니다. 푸코는 이러한 현실에 실망하며 자연스럽게 공산당에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96쪽
"그의 강의는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는 알코올 중독의 가난한 구두장이 예화로 마무리되었는데 이 예화는 바로 스탈린의 것이었다. 그는 정신병리가 가난과 착취의 산물이며 따라서 인간 조건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그것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가난한 구두장이를 예로 들었다."
- 여기서 '인간 조건의 근본 개혁'이라고 할 때 인간 조건은 무엇일까요?
146쪽 주
" 알제리 출신인 카뮈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알제리에 살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가 지하 조직원들에 의해 살해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말이 “내 어머니는 정의에 앞선다”라는 것이었다. … 지금 옮긴이의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라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대의를 위한 운동은 고귀한 일이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더 높은 인간적 가치이다." 인상적이라서 옮겨 봅니다.
이 시기 '광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성과 광기를 짝으로 놓고 보자면 이성에 반하는 것은 광기가 되는 걸까요?
174쪽
"시대는 광기에서 비이성으로 다시 말하면 광기가 특수성으로 갖고 있던 시대에서 그것이 다른 수용자 그룹 속에 녹아 들어가 '교정' 대상이 된 시대로 넘어갔다."
이 문장에서는 광기와 비이성을 나누어 설명하네요. ....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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