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고전 중]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진달래
2025-11-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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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있지 않고, 『주역전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생각해 보니 공부할 때 이 책의 이름이 『주역전의』인 것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주역이면 주역이지 『주역전의』는 또 뭔가.

『주역전의』의 원래 명칭은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으로 명나라 때(1415년) 호광(胡廣) 등이 칙명을 받아 편찬한 것이다. 본래 이 책은 명초 사상 통일을 위하여 반포된 ‘리학대전(理學大全)’ 3부 가운데 하나인 『오경대전(五經大全)』의 일부이다. 『주역전의대전』은 정이천의 『역전(易傳)』과 주자의 『주역본의(周易本義)』를 근거로 여러 학자들의 역학설(易學說)을 모아 만든 것이다. 즉 명칭에서 보이는 ‘전(傳)’은 『역전』을 ‘의(義)’는 『본의』를 뜻한다.

그러면 목차를 한번 보자. 괘의 설명에 들어가기 전 「역본의도(易本義圖)」, 「역설강령(易說綱領)」, 「역전서(易傳序)」, 「역서(易序)」, 「상하편의(上下篇義)」, 「오찬(五贊)」 「서의(筮儀)」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역전서」, 「역전」, 「상하편의」의 경우 정이천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역전서」의 경우 이천이 『역전』을 지은 후 꾸준히 수정 작업을 한 후 마지막에 지은 것으로 후대 학자들은 정이천의 학문 중에 정수로 꼽았다. 나머지 편들은 주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중 「역본의도」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시작으로 팔괘도(八卦圖)와 여러 방위지도(方位之圖)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주자의 상수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보여주는 글이다. 또 「역설강령」은 의리역에 치우친 당대 주역 해석을 비판하며 역이 원래 복서(卜筮)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정이천의 「역전서」 앞에 「역본의도」와 「역설강령」을 두었다는 것은 『주역전의』가 주자를 좀 더 중요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역전의대전』은 이후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교과서와 같은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건국이념을 성리학으로 채택한 조선에서는 이 책이 학문, 정치, 행정 등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주자의 역학 철학

 

『주역전의』가 주자의 의도를 더 높이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괘의 설명에 들어가면 정이천의 주(注)가 대부분이고 주자의 경우 그 아래로 [본의]를 붙여 두었는데,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고, 덧붙인 수준으로 보인다.

 

“주희가 젊은 시절에 가장 신봉했던 역학은 정이의 의리역학이었다. … 주희는 소흥 30년(1160)에 정순과 함께 소학(蘇學) 및 정학(程學)에 대해 논변할 때 『역전』이야말로 정학의 정화가 모인 것으로 보았다. 그가 융흥 2년(1164)에 지은 『잡학변』은 정씨의 설에 근거해서 『소씨역해(蘇氏易解)』등 함부로 불교와 노자를 끌어들여 역을 해석하는 사람들을 공격한 책이다.” 『주자평전』 상, 634쪽

 

따라서 『주역전의』의 내용에서 비중이 가장 많은 것은 『역전』이다. 주자는 이천의 『역전』을 신봉하여 별도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주자가 이천의 리본론(理本論)을 자기 철학 체계의 기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송대가 되어 새로운 유학이 발흥했을 때 송학자들이 가장 먼저 주목하였던 것은 『역』과 『중용』이었다. 이 두 책은 天 · 地 · 人 삼재를 관통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를 새롭게 구상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최적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세계의 착종된 현상을 음양 이기로 또 더욱 근원적인 일자인 태극으로 환원한 역은 그들에게 세계 파악의 원리를 열어 보여 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주돈이의 『태극도설』, 『통서』 장재의 『역설』, 소옹의 『황극경세서』, 정이의 『역전』, 사마광의 『잠허』와 같은 대표적인 저술은 『역』을 매개로 하여 이 세계를 근저에서부터 포착하고자 한 송학자들의 사색의 궤적을 보여준다. 이것을 기반으로 나타난 것이 주희의 『주역본의』이며 『역학계몽』이었다.” 『주자어류선집』, 241쪽

 

이 세계가 음양(陰陽)의 두 기(氣)의 응집과 흩어짐으로 생성, 소멸한다고 생각한 것은 중국에서는 매우 오래된 사고이다. 가벼운 기는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거운 기는 밑으로 내려가 땅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열자』를 비롯하여 이미 전국시대부터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기(氣)의 움직임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이다. 장재는 기만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운동성은 음양의 대립적 성격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정이천은 여기에 리(理)를 도입함으로써 우주 만상을 아우르고 관장하는 천리(天理)를 이야기했다. 주자 역시 정이천의 ‘리본체’론을 받아들임으로써 세계가 리(理), 이치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리(理)를 주역에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정이천은 『유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나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괘마다 하나의 일만을 고집하면 384효가 384건의 일이 되므로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주자 역시 이 견해를 기초로 해서 “『역』은 단지 하나의 빈 사물이다(易只是個空底物事)”라고 말한다. 즉 『역』의 괘효사를 ‘공설의 도리(空說的道理)’ 그러니까 추상적 의의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역』에는 ‘리’는 있지만 구체적인 ‘일(事)’은 없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일’은 어디에 있을까?

 

주역은 복서(卜筮)이다

 

『주자어류선집』의 미우라 구니오(三浦國雄)의 설명을 한번 보자.

 

“‘일’과 ‘리’에 의해 존재가 완결된다고 하면 그 ‘일’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읽는 사람 쪽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림자도 없고 형체도 없는’ 단지 상징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을 읽는 사람의 ‘일’로 온전하게 지켜가는 행위야말로 다름 아니라 복서이다. 여기에 『역』 = 복서라는 설이 새롭게 부활한다.” 『주자어류선집』, 244쪽

 

주자는 모든 사물은 각각의 리(理)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역』이 리만을 갖추고 있다면 그 구체적인 사물은 『역』을 해석하여 실행하는 자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역』이 ‘빈 사물’이 되어 어떤 일, 또는 어떤 것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복서는 말 그대로 점치는 책을 의미한다. 주자는 생전에 딱 두 번 점을 쳤다고 하는데 굳이 『역』을 복서의 책으로 부활시킨 의도가 무엇일까? ‘고전학교’ 세미나 중에도 이 이야기가 종종 나왔다. 그래서 주자는 점을 치라고 하는 거냐!

 

“주희의 ‘『역』이란 하나의 비어 있는 사물’이라는 설은 역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한편으로 이 설은 『역』의 복서 기능에 대하여 비교적 합리적인 해석을 가하였다. 즉 주역에 예지(豫知) 및 결의(決疑)의 기능이 갖추어지게 된 것을 결코 시괘(蓍卦)가 영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 부류의 사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추상적인 도리가 괘효상과 괘효사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주역철학사』, 517쪽

 

주자는 복서의 의미를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괘효사 혹은 상(象)이 갖추고 있는 보편적인 이치를 더 잘 드러내게 했다. 따라서 점치는 행위는 신비롭거나 영험한 것이 아니라, 이치를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숙고를 유도하는 것이 되었다. 점서에서 번다한 상수학을 거쳐 통일된 원리를 탐구하려 했던 선유(先儒)들의 노력은 의리학의 정점에서 다시 점서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는 점치는 행위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림으로써 새로운 윤리서로 회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주자는 한나라 비직이나 위나라 왕필이 전(傳)을 경(經)에 합치기 이전으로 다시 단전(彖傳)과 상전(象傳)을 경(經)으로부터 분리하여 『역』을 오래된 모습으로 재현하려고 했다.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롭다

 

다시 『주역본의』를 살펴보자. 그에 대한 해제를 보면 『주역본의』의 판본에는 4권본과 12권본이 있다고 한다. 12권본은 상경(上經)과 하경(下經) 그리고 십익(十翼)을 합쳐 12권이 되는 데 권말에 「오찬(五贊)」 「서의(筮儀)」가 편집되어 있다. 또 괘효사(經)와 십익(傳)이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주역의 원래 체제인 고역(古易)을 따른 것이다. 『주역절중』이 이 편집 체제를 따르고 있다. 4권본은 『주역본의』를 왕필의 『주역주』와 같은 체제로 재편성한 것으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주역전의』는 이 체제를 따르고 있다. 원래 주자는 경과 전을 따로 분리했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다시 이를 합쳐 놓은 것이기 때문에, 주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주자가 『역』에서 ‘경(經)’과 ‘전(傳)’을 분리한 것은 ‘경’과 ‘전’을 하나로 합하면 ‘경’의 본래 뜻을 탐구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자의 태도는 『대학장구』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전(傳)을 버리고 경(經)으로 경을 탐구하자는 주자의 주장은 당대에는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을 복서의 책으로 되돌리자, 주자는 이제 점학(占學)으로서의 원칙을 세워야 하는 문제에 도달한다. 「서의(筮儀)」는 점을 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점을 칠 때 시초를 나누어 거는 것을 설시(揲蓍)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주자는 소옹의 ‘선천상수학’을 도입하고 수학으로 점학을 정비한다. 이에 주자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합하고 정이천의 의리학을 기본으로 한 리(理)-수(數)-점(占)의 역학 체계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을 확립한 주자는 공자와 문왕을 거슬러 복희의 원시 『역』의 ‘본의(本義)’를 탐구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자의 새로운 발견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역』을 다시 점서로 강등시켰다고 여겨 거세게 비난하였다고 한다. 새롭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오니 문득 『주자평전』을 읽던 때가 떠올랐다. 2,000쪽에 달하는 『주자평전』을 읽으면서 평소에 잘 보지 못한 주자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주자의 학술 활동을 꼼꼼히 보면서 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해답(?) 비슷한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것들을 모으는 주자가 언뜻 보면 매우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의 이러한 학문 태도가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것을 새롭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역전의』를 읽을 때, 정이천의 『역전』에 가려 늘 ‘이게 뭐야’라고 생각했는데, 정리하고 보니 다시금 주자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댓글 2
  • 2025-11-20 08:14

    오~ 주자가 <본의>에서 점치는 자의 입장을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한문강독 세미나에서 <주역전의>를 읽으며 정이의 해석보다 주자의 해석이 더 어렵다며 늘 툴툴대고 있는데,
    진달래샘의 글을 읽으니 다 무지의 소치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역시 주자선생님!'이라는 감탄이 나오는군요.^^

  • 2025-11-26 18:58

    얼마전 점심시간에 주자의 코가 니코냐 내코냐라는 얘길 들으며 주자의 코가 뭔지... 되게 재밌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달래샘 글 덕에 주자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아 재밌네요 ㅎㅎ..
    그리고 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에 해답을 찾으셨다니!!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공성의 지혜'를 주제로 올해 불교학교에서 공부하는 요요, 인디언, 두루미가 릴레이로 글을 올리는 코너입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경전을 읽는 불교학교의 공부와 연재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팔분의 일의 지혜, 불완전함 속에서 길을 여는 눈   한동안 누군가의 게시글에 댓글 한 줄 달 때도 나는 머뭇거렸다. 커서가 깜빡이는 빈 칸 앞에서 나는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내가 댓글을 망설였던 이유는 단순히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 안의 견고한 ‘아상(我相)’ 때문이었다. “이 짧은 한 줄에 ‘나’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학기 『금강경』을 읽으며 나는 아상의 실체를 마주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은 단순한 교만이나 자의식 과잉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를 실체화하고, ‘내가 옳다’는 착각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재단하려는 집착을 말한다. 나는 이 오만한 집착을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상을 경계하려던 나의 노력은 오히려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높은 벽이 되었다. 그렇게 점점 더 위축되어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나는 “불교가 불편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티벳 불교의 수행서 『람림』을 만난 첫 시간, 아티샤 존자의 가르침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완벽한 스승을 찾기 어려운 시대이니, 공덕의 팔분의 일만 갖추었더라도 그를 스승으로 의지하라.” (『람림』 청전 번역, 73~74p)   공덕의 팔분의 일이란 『묘비청문경』에서 제시한 스승의 최저한도 기준이다. 처음에는 ‘팔분의 일’이라는 기준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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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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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은
2025.12.01 | 조회 182
기학잡담
보편학문으로서의 ‘기학’   혜강 최한기(1803~1877)는 19세기 조선에 살았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한 폐해가 극심했다. 소수의 권력독점에 정치가 문란해지고 가혹한 수탈로 농민은 몰락해갔다. 가난한 나라, 비참한 백성, 거기에 외세의 압력까지 최한기가 목도한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양반이었지만 벼슬살이를 하지 않은 그는 읽고, 쓰고, 공부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독립연구자였다. 그는 가진 재산을 책을 사는데 다 써버렸다. 오죽하면 책 사다 망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을까. 사대문 안에 살았지만 결국 도성 밖으로 셋집을 얻어 이사 갔을 정도였다. 그가 산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학문과 관련된 책이었다. 특히 천문학과 서양의 자연과학 및 기술에 관련된 책은 그의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방대한 저술들을 읽고 공부한 최한기는 무려 1000여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철학과 과학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최한기가 55세 때 쓴 『기학』은 그의 기철학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최한기는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 명명했다. 그가 말하는 기는 운화유형(運化有形)의 기이다. 그것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가진 것으로서 우주 안에 가득차서 조금의 빈틈도 없다. 이 기는 우주의 궁극적 본원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고 순환하고 변화시킨다. 기화(氣化)에 의해 생성된 만물에는 각각의 고유한 작동원리가 있다. 이것이 리다. 리는 기의 내재적 조리, 속성, 법칙일 뿐이다. ‘기학’에서의 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리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학’은...
보편학문으로서의 ‘기학’   혜강 최한기(1803~1877)는 19세기 조선에 살았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한 폐해가 극심했다. 소수의 권력독점에 정치가 문란해지고 가혹한 수탈로 농민은 몰락해갔다. 가난한 나라, 비참한 백성, 거기에 외세의 압력까지 최한기가 목도한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양반이었지만 벼슬살이를 하지 않은 그는 읽고, 쓰고, 공부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독립연구자였다. 그는 가진 재산을 책을 사는데 다 써버렸다. 오죽하면 책 사다 망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을까. 사대문 안에 살았지만 결국 도성 밖으로 셋집을 얻어 이사 갔을 정도였다. 그가 산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학문과 관련된 책이었다. 특히 천문학과 서양의 자연과학 및 기술에 관련된 책은 그의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방대한 저술들을 읽고 공부한 최한기는 무려 1000여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철학과 과학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최한기가 55세 때 쓴 『기학』은 그의 기철학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최한기는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 명명했다. 그가 말하는 기는 운화유형(運化有形)의 기이다. 그것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가진 것으로서 우주 안에 가득차서 조금의 빈틈도 없다. 이 기는 우주의 궁극적 본원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고 순환하고 변화시킨다. 기화(氣化)에 의해 생성된 만물에는 각각의 고유한 작동원리가 있다. 이것이 리다. 리는 기의 내재적 조리, 속성, 법칙일 뿐이다. ‘기학’에서의 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리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학’은...
토용
2025.11.24 | 조회 226
방과 후 고전 중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역,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역,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진달래
2025.11.19 | 조회 241
Socio-sociolgy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리뷰          “요즘은 무슨 공부해?”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 지 2년 정도 되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첫인사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실 그보다 만나는 친구들이 거의 인문학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중심으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어.” 라고 답했다. 이 말을 할 때 내가 어색해서 참기 힘든 지점은, 마르크스도, 공부도, 자본도 아닌 ‘경제학’이라는 표현이 내 입에 오를 때다. ‘인문학’을 제외하면 ‘학’자 들어간 단어들 하고는 정말 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꽤 ‘학술적’으로 느껴지는 ‘경제학’이라는 말을 내 입으로 쓰다니. 낯 간지럽다. 사실 지금의 ‘경제학’은 좀 더 ‘수학적’이고, ‘경영’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알라딘의 카테고리만 봐도 경제는 경영과 함께 묶여있고, 주로 기업 경영이나 세일즈, 재테크와 투자에 관련된 책들을 다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친구들에게 “자본주의의 발생과 원리, 또 그 한계점을 공부하며 대안적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답해야 맞다. 말하자면 내가 집중하는 지점은 ‘국부와 자본 운영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서의 경제’에 가까운 셈이다.  한편, 자산 증식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보니, 현대의 경제 관련 기사를 볼 때는 여전히 힘든 지점이 있다. 마르크스가 바라고, 분석한 대로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국가는 여전히 마르크스가 비판하던 고전 경제학자들과 그 후예들의 이론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리뷰          “요즘은 무슨 공부해?”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 지 2년 정도 되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첫인사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실 그보다 만나는 친구들이 거의 인문학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중심으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어.” 라고 답했다. 이 말을 할 때 내가 어색해서 참기 힘든 지점은, 마르크스도, 공부도, 자본도 아닌 ‘경제학’이라는 표현이 내 입에 오를 때다. ‘인문학’을 제외하면 ‘학’자 들어간 단어들 하고는 정말 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꽤 ‘학술적’으로 느껴지는 ‘경제학’이라는 말을 내 입으로 쓰다니. 낯 간지럽다. 사실 지금의 ‘경제학’은 좀 더 ‘수학적’이고, ‘경영’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알라딘의 카테고리만 봐도 경제는 경영과 함께 묶여있고, 주로 기업 경영이나 세일즈, 재테크와 투자에 관련된 책들을 다룬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친구들에게 “자본주의의 발생과 원리, 또 그 한계점을 공부하며 대안적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답해야 맞다. 말하자면 내가 집중하는 지점은 ‘국부와 자본 운영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서의 경제’에 가까운 셈이다.  한편, 자산 증식의 관점으로 보는 경제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보니, 현대의 경제 관련 기사를 볼 때는 여전히 힘든 지점이 있다. 마르크스가 바라고, 분석한 대로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국가는 여전히 마르크스가 비판하던 고전 경제학자들과 그 후예들의 이론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이다....
우현
2025.11.10 | 조회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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