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우리는 동양문화의 기본 가치에서 떠날 수 없다

진달래
2025-03-03 13:31
489

이 글은 2024년 4분기 '읽고쓰기1234'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이 코너를 유심히 보시면 문탁네트워크 회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주로 어떤 공부를 하는지 나아가 앞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동양문화의 기본 가치에서 떠날 수 없다

『동양문화 다시 읽기』, 여영시 지음, 김병환 옮김, 교육문화사, 2014 

진달래

 

 

여영시(余英時), 위잉스

어느새 2024년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이다. 작년에 뚜웨이밍(두유명)의 글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학자들의 책을 좀 읽어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올해 ‘읽고쓰기1234’에 펑유란(풍우란), 머우쭝싼(모종삼), 천라이(진래)의 책을 읽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이 책들은 1930년대, 1960년대, 1990년대 순으로 쓰였으며, 거기다 중국 본토, 대만 등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을 고루 만나게 되었다. 이에 마지막으로 읽게 된 『동양문화 다시 읽기』는 1983년 대만에서 위잉스(여영시)가 공개 강연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나온 책이다.

위잉스(余英時,1930~2021)는 중국 텐진(天津) 출생으로 옌칭대학(燕京大學/현재 북경대)에 입학했으나, 가족들이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홍콩 신아서원(新亞書院/지금 홍콩중문대학의 전신)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얼마 뒤 지도교수였던 첸무(錢穆)의 추천으로 하버드-옌칭학사의 연구원으로 1년간 가게 된다. 또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 위잉스는 미국에 남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후, 미시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동양학자가 되었다. 책 소개에 의하면 위잉스는 ‘동서양을 모두 포괄하는 박학함과 식견을 가진 석학’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수여하는 인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클러지(Kluge) 상을 받았다고 한다.

2005년에 우리나라에서 ‘중국과 서양의 대화’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다는데, 나에게는 낯선 현대 신유학자, 그와 좀 더 친해져 볼 요량으로 이번에 『위잉스 회고록』도 함께 보았다. 그러고 나니 책꽂이에 떡 하니 꽂혀있는 양장본, 위잉스의 『주희의 역사세계』 상·하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고정된 동양문화는 없다

일단, 이 책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건 제목이었다. ‘중국문화’가 아니라, ‘동양문화’라니.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서문에 보니 원서의 제목은 ‘가치체계로 보는 중국문화의 근대적 의의’라고 한다. 찾아보니 같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었다. 아마도 책을 다시 내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이다. 옮긴이는 본문의 내용이 중국에 제한되지 않고, 전체 동서 문화비교라 할 수 있어서 제목을 ‘동양문화 다시 읽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나도 글을 쓸 때 ‘중국문화’, ‘동양문화’ 혹은 ‘전통문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생각이 났다. 우리의 전통문화 혹은 가치관이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동양문화’가 좋은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문화와 우리 문화를 그냥 한 번에 동양문화라고 지칭하는 것이 과연 맞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서로 겪은 일들이 달라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일까, 위잉스 역시 먼저 ‘문화’의 정의와 ‘동양문화’에는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짚어 본다.

문화는 광의로 혹은 협의로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된다. 인류학자인 알프레드 크로버(A.L.Kroeber)와 클라이드 클러크혼(Clyde Kluckhon)은 문화를 일련의 행위체계로 파악하고, 문화의 핵심을 일련의 전통 관념으로 말미암은 ‘가치체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위잉스는 이러한 문화관과 다원주의적 문화관을 차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모든 민족은 각각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각 문화의 구성이 그 구성원의 민족성과 서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지리, 기후 조건이 같은 곳에서 생활하더라도 동일한 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한 문화를 기준으로 하여 다른 문화를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위잉스는 문화는 어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문화가 존재할 뿐 보편적인 문화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동양문화’가 따로 존재하거나, ‘현대생활’, 혹은 ‘전통문화’라는 것이 각각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전통적인 ‘동양문화’와 ‘현대생활’을 확연히 구분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이상에서 필자는 동양적 가치체계의 핵심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동양문화의 현재적 전환이라는 문제를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러한 다방면의 고찰이 이 책의 서두에서 제시하였던 주된 의도, 즉 동양문화와 현대생활은 서로 배척하는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해명해 주었으면 한다. 현실에서 추상적 현대생활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각 민족의 구체적 현대생활만이 있을 뿐이다. 동양인의 현대생활이란 현 단계에서의 동양문화가 재현되는 구체적 표현이다.”163쪽

 

문화적 가치체계

위잉스는 문화를 ‘가치체계’로 보고 서양을 ‘외재초월 형태의 문화권’으로 동양을 ‘내향초월형 문화’로 규정했다.

 

“인간의 질서와 도덕가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것은 모든 문화가 부딪히는 문제이다.” 34쪽

 

가치의 근원을 신, 혹은 천(天)이라고 볼 때 서양과 동양이 초월적인 가치의 근원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양인들은 이러한 초월적 근원에 대해 긍정할 뿐 궁구하는 데까지 나가지 않았다. 이에 반해 서양인들은 이 부분을 철저하게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의 차이로 서양은 초월 세계‧신의 영역‧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인간의 세계‧경험 세계가 분리되거나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그에 반하여 동양은 이러한 세계 간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으며, 개인의 이해와 실천 정도에 따라 도(道)와 합일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위잉스는 이러한 차이를 바탕으로 서양은 외재적 초월을 동양은 내향적 초월을 특징으로 한다고 본다.

동양이 내향적 초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에 대해 위잉스는 맹자의 ‘본성론’부터 시작한다. 특히, ‘마음’을 강조한 내향적 초월은 개인의 내면적 자각을 중요하게 여겼다. 개인의 수양, 혹은 수도(修道)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잉스는 『대학』의 “그칠 곳을 알아야 마음이 정해지고, 마음이 정해져야 마음이 고요해지며, 마음이 고요해져야 편안해지며, 편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는 경(經) 1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내향적 문화의 특성으로 ‘그침(止)’, ‘정함(定)’, ‘고요함(靜)’, ‘편안함(安)’을 들었다.

위잉스는 동양문화의 가치체계에 있어서 중요한 점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든다. 그는 이러한 개념이 공자의 ‘인(仁)’으로 시작하여 이후 약 이 천여 년 동안 동양 사회에 이어져 내려왔다고 보았다. 공자는 인(仁)을 인(人)으로 정의한다. 동양에서 인(人)은 가장 보편적인 개념이다. 위잉스는 동양문화의 가치체계 중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이 되고 이는 노예도 예외가 없었다고 보았다. 그 예로 도연명이 노비를 자식에게 주면서 “이 사람도 역시 사람의 자식이니 마땅히 잘 대해주도록 하여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주었던 것을 들었다.

이상이 동양문화의 가치체계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이 책에선 이후에 ‘인간과 천지 만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자아를 바라보는 입장’, ‘생사관’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서양문화와 동양문화를 비교한다. 그중에 내가 보기에 가장 생경하게 느껴졌던 ‘동양전통과 민주정치’에 대한 위잉스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동양문화는 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나

중국에서 5·4운동 이래로 근대화, 현대화를 논할 때 항상 쟁점이 되는 것이 두 가지인데 바로 ‘민주’와 ‘과학’이다. 동양적 전통은 민주적 정치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중국의 급진적인 개혁파들은 전통문화를 전면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위잉스는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전통에서 이어진 것이라기보다, 혁신적인 제도로 자산계급의 흥기를 따라 제도가 정비 되고, 봉건귀족과 전제군주와의 오랜 투쟁 속에서 역량을 키워 정치권력과 법률적 보장을 확보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들은 전통 동양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강력한 황권 아래에 통일되어 있던 중국의 경우 상‧공 계층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따라서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제도가 발달할 수 없다.

 

“이상에서 동양문화는 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였는가에 대해 시론적으로 몇 가지 역사적 시각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동양적 정치 전통이 늘 서양보다 낙후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서양 근대 민주주의가 아직 출현하기 전에 동양사회의 일반적인 정치와 사회 상황은 서양에 비해 손색이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이었다.” 122쪽

 

가치체계의 측면에서 보면 내향 초월적 문화를 가진 동양에서는 인륜을 사회질서의 기본으로 삼고 있었다. 국가 즉 정치의 영역에서도 인륜이 기본 질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인륜은 의무를 우선시하는 데 – 이를테면 ‘자식 된 자는 효도 해야 한다.’ - 이는 권리를 우선하는 서양 근대 법률적 입장과 반대이다. 그러므로 동양인들이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 제도와 같은 제도를 세우려면 반드시 먼저 정치를 인륜 질서 속에서 분리해 내야 한다고 위잉스는 말한다. 그런데 정치를 인륜 질서 속에서 분리하고 나면, 오히려 인륜 질서 안에 있는 합리적 성분과 그 현대적 의미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모든 사람은 요순이 될 수 있다(人皆可以爲堯舜)”, 혹은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성인이다.(滿街皆是聖人)” 등을 통해 평등 의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학문을 논하고 정치를 토의하는데 “자기 자신부터 인하게 되는(爲仁由己)”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등, 전통문화 곳곳에는 민주주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위잉스는 이런 것들이 동양 민주주의의 정신적 원천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동양전통과 민주정치’라는 제목이 생경하다고 느낀 건, 민주주의는 서구 사상이라고만 생각해서 동양전통과 민주정치가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렇게 보니 동양전통 안에서 현대생활에 필요한 가치를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듯싶다.

 

일관되게 중국 공산당을 비판했던 그에 대해 웨이보에서 "덕망 있는 분을 우러러본다."는 등의 존경의 글과 함께 "거짓 선비", "미국에 빌붙은 미국의 문인이자 중화전통의 배반자"라는 비판이 서로 맞섰다고 한다. [출처 : 21세기 중국 역사학 태두 위잉스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별세, 중앙일보]

 

현대화의 곤경을 넘어

사실 『동양문화 다시 읽기』를 읽기도 전에 이미 내용이 뻔하다고 지레 단정을 했었다. 앞서 읽은 머우쭝산의 책이나 천라이의 책 이랑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양문화가 서구 현대문화와 만나는 순간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더 할 이야기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미 동양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 여전히 동양문화는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좀 뻔하다고 생각되었다. 뭐, 넓게 보면 이 책도 그냥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현대 동양의 변화는 매우 크다. 과학, 제도에서부터 일부 풍속과 관습에 이르기까지 모두 백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그러나 오히려 정신적 가치 방면에서는 결코 근본적인 전환이 없을 뿐 아니라 사실상 이전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버릴 방법이 없다. 근 백년 동안 학계의 사상적 분열과 혼동으로 인해 동양 문화의 기본 가치는 줄곧 체계적이고 의식적으로 현대적 맥락에서 사리에 맞게 정리될 기회가 없었다. 정서적 혼란이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서구문화’를 이용하여 ‘동양전통’을 붕괴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 전통’으로 ‘서구문화’에 대항하자는 주장이다.” 165쪽

 

위잉스의 이런 주장은 경험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그의 연구 태도로 기인했다고도 할 수 있다. 전통 가치가 이미 사라졌다고 하지만 동양 사람이라면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동양적 가치체계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문화와 동양문화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섞여 있어 이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위잉스가 보기에 동양에서 진행되는 현대화의 곤경 중 하나는 이러한 가치 관념의 혼란에 기인한다. 특히 혼란의 원인이 전통문화와 현대생활을 대충 일괄하여 서로 융화되지 않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립체로 보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먼저 언급한 민주주의와 동양 전통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이런 동양문화와 현대생활의 문제에 대한 진단은 그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1930년에 태어난 그는 한학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고, 그 바탕을 가지고 서양 학문이나 연구 방법 등을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적 가치체계에서 우리가 떠날 수 없음을 자각할 수 있는 것도 그가 미국에서 동양인으로 살아야 했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은 아닌지.

위잉스는 그런 의미에서 동양 전통 안에 가치체계를 현대에 맞게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문화는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버려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맞추어 다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전통문화도 한때는 당대의 문화였고, 그 시대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위잉스는 전통문화가 꼭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반드시 폐기 되어야 하는 것도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옛날 책들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쉽게 대답을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재미있으면 되지!’라고 다독일 때도 있었다. 위잉스의 짧은 책을 읽으면서 그의 주장에 다 동의할 수도 없고, 가끔 인용된 것들이 맥락에 맞게 쓰인 건지도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정신 자원을 발굴하고 자신이 이미 이룬 가치체계를 갱신하여야 한다.”는 위잉스의 말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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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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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5.12.11 | 조회 318
      마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 리뷰         ‘도시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커뮤니티 디자인 도시화는 지역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중심 사회는 산업화하고 농촌 인구는 도시로 대거 이동했다. 한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00km 내외로 구성된 ‘수도권’은 교육, 일자리, 병원, 문화 심지어 사람들의 꿈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 인구 과밀화는 교통 혼잡, 주거 비용 상승, 사회적 불평등 심화의 문제를 가져왔고 다른 지역의 인구는 감소했다. 한국은 2024년 3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30곳(약 57%)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방 소멸 위험 현상은 지방 산업 및 고용 기반이 약화하는 문제를 가져왔고 교육시설, 교통시설 등 사회 기반 시설들이 와해되어 간다. 젊은 층은 또래를 사귀기 어렵고 고령층은 돌봄을 받기 어렵다. 사회적 고립은 도시에서도 확인된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떨어트렸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사회적 분리와 고립은 심화됐다. 젊은 층은 장기 실업 상태를, 장년층과 노년층은 구조조정과 해고 그리고 퇴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 상태를 겪게 된다.  도시화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커뮤니티 디자인의 목적은 지역의 활성화이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현지 주민과 함께 문제의식을 탐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간다. 야마자키료는 『커뮤니티 디자인』의 저자이자 커뮤니티 디자이너이다. 그는 사람과 마을이 서로 연결되는 커뮤니티 디자인을 선보인다. ‘관이 민을 지도한다’라는 메이지 이후 일본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지역 주민을 참여시키고 공공사업으로 연결하여 마을의 문제를 일본의 한 사례로 만든다. 그의 행적은...
      마을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 리뷰         ‘도시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커뮤니티 디자인 도시화는 지역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 중심 사회는 산업화하고 농촌 인구는 도시로 대거 이동했다. 한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00km 내외로 구성된 ‘수도권’은 교육, 일자리, 병원, 문화 심지어 사람들의 꿈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 인구 과밀화는 교통 혼잡, 주거 비용 상승, 사회적 불평등 심화의 문제를 가져왔고 다른 지역의 인구는 감소했다. 한국은 2024년 3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30곳(약 57%)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방 소멸 위험 현상은 지방 산업 및 고용 기반이 약화하는 문제를 가져왔고 교육시설, 교통시설 등 사회 기반 시설들이 와해되어 간다. 젊은 층은 또래를 사귀기 어렵고 고령층은 돌봄을 받기 어렵다. 사회적 고립은 도시에서도 확인된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떨어트렸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사회적 분리와 고립은 심화됐다. 젊은 층은 장기 실업 상태를, 장년층과 노년층은 구조조정과 해고 그리고 퇴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 상태를 겪게 된다.  도시화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커뮤니티 디자인의 목적은 지역의 활성화이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현지 주민과 함께 문제의식을 탐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간다. 야마자키료는 『커뮤니티 디자인』의 저자이자 커뮤니티 디자이너이다. 그는 사람과 마을이 서로 연결되는 커뮤니티 디자인을 선보인다. ‘관이 민을 지도한다’라는 메이지 이후 일본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지역 주민을 참여시키고 공공사업으로 연결하여 마을의 문제를 일본의 한 사례로 만든다. 그의 행적은...
새은
2025.12.01 | 조회 295
기학잡담
보편학문으로서의 ‘기학’   혜강 최한기(1803~1877)는 19세기 조선에 살았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한 폐해가 극심했다. 소수의 권력독점에 정치가 문란해지고 가혹한 수탈로 농민은 몰락해갔다. 가난한 나라, 비참한 백성, 거기에 외세의 압력까지 최한기가 목도한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양반이었지만 벼슬살이를 하지 않은 그는 읽고, 쓰고, 공부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독립연구자였다. 그는 가진 재산을 책을 사는데 다 써버렸다. 오죽하면 책 사다 망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을까. 사대문 안에 살았지만 결국 도성 밖으로 셋집을 얻어 이사 갔을 정도였다. 그가 산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학문과 관련된 책이었다. 특히 천문학과 서양의 자연과학 및 기술에 관련된 책은 그의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방대한 저술들을 읽고 공부한 최한기는 무려 1000여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철학과 과학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최한기가 55세 때 쓴 『기학』은 그의 기철학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최한기는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 명명했다. 그가 말하는 기는 운화유형(運化有形)의 기이다. 그것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가진 것으로서 우주 안에 가득차서 조금의 빈틈도 없다. 이 기는 우주의 궁극적 본원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고 순환하고 변화시킨다. 기화(氣化)에 의해 생성된 만물에는 각각의 고유한 작동원리가 있다. 이것이 리다. 리는 기의 내재적 조리, 속성, 법칙일 뿐이다. ‘기학’에서의 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리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학’은...
보편학문으로서의 ‘기학’   혜강 최한기(1803~1877)는 19세기 조선에 살았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한 폐해가 극심했다. 소수의 권력독점에 정치가 문란해지고 가혹한 수탈로 농민은 몰락해갔다. 가난한 나라, 비참한 백성, 거기에 외세의 압력까지 최한기가 목도한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양반이었지만 벼슬살이를 하지 않은 그는 읽고, 쓰고, 공부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독립연구자였다. 그는 가진 재산을 책을 사는데 다 써버렸다. 오죽하면 책 사다 망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을까. 사대문 안에 살았지만 결국 도성 밖으로 셋집을 얻어 이사 갔을 정도였다. 그가 산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학문과 관련된 책이었다. 특히 천문학과 서양의 자연과학 및 기술에 관련된 책은 그의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방대한 저술들을 읽고 공부한 최한기는 무려 1000여권의 책을 썼다. 대부분 철학과 과학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데,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최한기가 55세 때 쓴 『기학』은 그의 기철학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최한기는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 명명했다. 그가 말하는 기는 운화유형(運化有形)의 기이다. 그것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본성을 가진 것으로서 우주 안에 가득차서 조금의 빈틈도 없다. 이 기는 우주의 궁극적 본원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의해 만물을 창조하고 순환하고 변화시킨다. 기화(氣化)에 의해 생성된 만물에는 각각의 고유한 작동원리가 있다. 이것이 리다. 리는 기의 내재적 조리, 속성, 법칙일 뿐이다. ‘기학’에서의 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리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학’은...
토용
2025.11.24 | 조회 346
방과 후 고전 중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역,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주자가 『본의(本義)』를 지은 까닭은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주역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을 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2017년 처음 근사록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근사록』의 1편 「도체(道體)」를 보면 괘에 대한 문장이 많은데,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다. 『주역』을 읽어본 적도 없었고, 다음 편인 「위학(爲學)」편의 글들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 생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도체」에 나온 글들이 주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훨씬 후에 알았고, 그 글들이 왜 『근사록』의 첫머리가 되어야 했는지는 그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역, 주역, 주역전의, 주역본의 …   고전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이름이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본명도 있고, 호(號)도 있고, 자(字)도 있고, 관직명을 같이 부르기도 하고, 죽고 난 뒤에 시호(諡號)도 있고. 이걸 다 섞어서 쓰니까, 읽으면서 같은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떨 때는 따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책 이름도 비슷한 예가 있다. 인명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다르게 부르면 처음 공부하는 입장에선 매번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자면 서경(書經)을 서(書), 상서(尙書) 등으로 부르는데 경전의 의미를 밝히면 서경으로, 존귀한 책의 의미로는 상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주역(周易)도 역(易), 역경(易經),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이문서당’에서 공부한 주역 책에는 단순히 ‘주역’, 혹은 ‘역’이라고 되어...
진달래
2025.11.19 | 조회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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