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7] 편지가 맺어준 인연- 중앙역

기린
2024-04-20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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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라의 회심

 

리우(브라질의 도시) 중앙역에서 문맹자들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중년의 도라, 하고 싶은 말을 가득 품고 마주 앉는 이들과 달리 무표정하게 그들의 사연을 받아 적었다. 말문이 막힌 이들을 위해서는 몇 줄의 문장들까지 만들어 주면서 대필 비용으로 1달러와 우편요금 1달러를 챙겼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편지들 대부분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일부는 책상서랍 안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한 아이와 연루된 이후 도라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편지를 대필해줬던 고객으로 처음 만난 도라와 열 살 소년 조수아. 엄마의 손을 잡고 왔던 조수아는 돈만 받고 편지를 안 부쳐주면 어떻게 하냐고 되묻는다. 서로를 경계하며 그렇게 헤어진 후, 조수아의 엄마는 역 앞 사거리 건널목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중앙역은 온갖 범죄와 연루된 이들까지 뒤얽히는 공간, 고아가 된 아이에 눈독을 들이는 업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도라는 조수아의 꼬셔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하룻밤 재워주며 환심을 산다. 하지만 거기서 조수아는 책상 서랍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들을 발견했다. 다음 날 도라는 조수아를 업자한테 넘겨주며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 리모컨 딸린 스테레오 TV를 사와서 친구에게 자랑한다. 평소 도라의 행동을 묵인해 주었던 친구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 없었다. “도라, 아이들의 장기를 밀매한다는 얘기 못 들었어? 도라, 세상에는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거야!” 친구의 말을 마음에 걸려 잠을 설친 도라는 다음 날 아침 그 업자를 다시 찾아간다. 아슬아슬하게 조수아를 찾아 도망친다.

 

2.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업자의 추격을 받게 된 도라는 조수아와 함께 ‘붐 제수스’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곳은 조수아의 아빠가 살고 있다는 곳이다. 조수아는 엄마로부터 들은 아빠 이야기를 하지만 도라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두 사람은 함께 가는 내내 티격태격한다. 도라를 믿지 못하겠는 조수아는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 도라는 어쩔 수 없이 떠난 여행인데다 자신의 속내까지 들통 난 터라 조수아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조수아는 아빠가 이사했다는 마을에 도착한다. 그러나 조수아의 아빠는 이미 오래전 집을 떠난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술주정뱅이였으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고 말한다. 조수아는 눈물을 터뜨리며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도라는 “소용없어. 돌아올 사람이 아니야.”라며 조수아를 달랜 뒤 리우로 돌아가 함께 살자고 말한다.

 

도라는 열여섯에 무능했던 아버지를 떠나 가출한 후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 열 살 조수아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니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괴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아가 된 조수아와 함께 살아보기로 마음먹고 떠나려고 하는데 한 청년이 다가왔다. 도라가 찾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밝힌 청년이었다. 그의 집 벽에 걸린 남녀의 사진 속에 조수아의 엄마가 있었다. 거기서 6개월 전에 집으로 보낸 조수아 아빠의 편지를 읽게 된 도라. 조수아와 엄마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난 사연과 돌아와서 함께 살자는 내용은 들은 조수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도라는 조수아를 가족들에게 남겨 두고 혼자서 그 집을 나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중앙역에서 악연으로 얽히게 된 두 사람이 브라질을 종단하는 여행을 하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영화다. 냉소적이었던 도라가 당돌한 열 살 꼬마를 보살피면서 타인을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다정함을 찾아내며 성장하는 스토리가 감동적이다. 나이를 초월하여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져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

 

 

3.영화 소개

 

<중앙역>의 모티프는 ‘다른 어떤 곳의 삶(Life Somewhere Else, 1996)’이라는 살레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비롯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신을 학대한 남편을 살해하여 21년 4개월의 장기수로 복역 중이던 한 브라질 여성과 홀로코스트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브라질에 망명한 폴란드 조각가 프란츠 크라이츠 베르크가 펜팔을 통해 새로운 인생과 삶에 대한 간증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레스는 이 작업 과정에서 ‘한 장의 편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만약 그 편지가 받을 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이라는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실제로 이 여성은 감옥에서 문맹자들의 편지 쓰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도라는 그녀를 모델로 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조수아. 난 오랫동안 못 부칠 편지만 써왔어. 하지만 이 편지는 꼭 부친다고 약속하마. 너희 아빠는 네 말대로 꼭 돌아오실 거야. 우리 아빠도 좋은 면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트럭 운전사가 되거든 날 꼭 기억해다오. 나보다 형들과 있는 것이 더 행복할 거야. 날 기억하고 싶을 땐 우리의 작은 사진을 꺼내보렴. 두렵지만, 언젠간 너도 나를 잊겠지. 나도 아빠가 보고 싶구나. 그리운 게 너무 많다,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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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2024-04-20 06:17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화인데, 찾아보니 마침 DVD가 있네요. 혼자있는 날 찬찬히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 2024-04-20 07:12

    DVD 라니... 언제 같이 볼까요? ㅋ

  • 2024-05-03 10:26

    넷플엔 없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