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5회] 노 애공, 공자에게 묻다

진달래
2024-02-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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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아들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고 3년 뒤에 즉위했다. 28년간 재위했으며 말년에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강자가 죽자 삼환과 대치하였다. 당시 강국(强國)으로 부상하고 있던 월(越)나라의 도움을 받아 삼환을 정벌하려고 했으나 역으로 이들에게 쫓겨났다. 결국 노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월나라에서 죽었다. 그의 시호인 애(哀)는 시법(諡法)에 따르면 ‘공인단절(恭仁短折)’ 즉 ‘공손하고 어질기는 하지만 단명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애공은 열 살쯤에 즉위했다고 한다.

따라서 공자를 처음 만났을 때 애공은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즉위한지는 11년이나 지난 뒤였다. 애공 16년, 공자는 노나라에 돌아온 지 약 5년 뒤에 죽었다. 그 사이 애공과 공자가 몇 번이나 만났을지는 알 수 없다. 『논어』에는 애공이 다섯 번 나오는 데, 세 번은 공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두 번은 공자의 제자인 재아(宰我) 그리고 유약(有若)과 문답을 나눈다.

그러면 『논어』에 애공과 공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먼저 애공은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두 번째,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들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세 번째, 이번에는 공자가 애공에게 제나라 토벌을 청하러 갔다. 애공 14년에 제나라에서 진성자가 제 간공을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듣고 공자가 애공에게 토벌을 해야 한다고 간언한 것이다. 그러나 애공은 공자의 청을 들어 주지 않고 세 대부 즉, 삼환(三桓)에게 가서 말하라고 했다. 당시 노나라는 삼환의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애공이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물론 공자가 이런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자는 한 때 노나라에서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군주에게 이를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2년 뒤 공자가 죽었다.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니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 이 한 노인마저 남겨두지 않으시다니. 나 한 사람을 도와 임금의 자리에 있도록 하지 않으니 나는 외롭게 병들어 있는 듯하도다. 아아, 슬프다 이보(공자)여! 내가 본받을 사람이 없게 되었도다.”(旻天不弔 不愸遺一老 俾屏余一人以在位 煢煢余在疚 嗚呼哀哉 尼父 毋自律)

 

공자가 죽자 애공이 뇌문(誄文)을 내렸다. 뇌문은 애도문의 일종으로 그 내용이 『공자세가』, 『춘추좌전』, 『공자가어』 등에 남아 있다. 뇌문의 내용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은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공자는 대부(大夫)의 신분도 아니었고, 당시 관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망 있는 나라의 원로였다고 하지만 지위도 없는 자에게 군주가 뇌문을 지어 보낸다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뇌문 아래에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의 코멘트가 함께 실려 있다.

 

“군주께서는 노나라에서 제 명에 돌아가시지 못하겠구나. 공자께서 ‘예를 잃으면 어두워지고 명분을 잃으면 허물이 생긴다.’고 하셨다. 뜻을 잃으면 혼미해지며, 그 잃은 바가 허물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께서 살아계실 때는 등용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뒤에야 뇌문을 지으시니 예에 맞지 않는다. 또 ‘나 한 사람’이라 칭하시니 명분에도 맞지 않는구나. 군주께서는 두 가지를 잃었다.”(君其不沒於魯乎 夫子之言曰 禮失則昬 名失則愆 失志為昬 失所為愆 生不能用 死而誄之 非禮也 稱余一人 非名也)

 

자공은 공자의 말을 빌려 애공의 뇌문이 예법에 맞지 않고, 그가 자기를 칭하면서 천자를 칭하는 말인 ‘나 한 사람(余一人)’이라고 한 것이 명분에도 맞지 않는 일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자공의 말을 살펴보면 이미 애공이 노나라에서 쫓겨나 월나라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쓰인 글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즉 후대에 만들어져 삽입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애공이 직접 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공과 공자의 관계는 단순한 군신관계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이전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공과 손을 잡고 삼환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일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자는 14년이란 기간을 나라 밖에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제자 염구가 노나라와 제나라의 전쟁에 큰 공을 세운 뒤, 그가 스승인 공자의 귀국을 청하였고, 그제야 공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권력자였던 계강자는 공자에게 귀국을 허락하는 대신에 노나라 국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공자는 문헌 정리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자면 공자와 애공의 만남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라기보다, 나라의 원로를 가끔 뵙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노나라의 정치는 모두 계손씨가 장악하고 있었고 공자의 제자들 역시 상당수가 계손씨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정치적 권한이 거의 없는 애공이었는데, 그가 공자와 혹은 공자의 제자들에게 묻는 내용은 ‘정치(政)’에 관계된 것들이다. 힘도 없는 군주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가 지금은 힘이 없지만 장차 권력을 되찾기 위한 야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아직 젊은 군주에게 공자가 그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공자가 애공에게 제나라를 토벌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굳이 애공을 군주의 지위로 대우한 듯하기 때문이다. 애공이 공자의 죽음에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하고, 이제 ‘내가 본 받을 사람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애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애공과 공자와의 문답식 글들이나 위의 뇌문 등은 대체로 후대에 만들어져 끼워 넣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경전(經典)이라고 부르는 고전의 대부분은 주로 한(漢)나라때 정리된 것이다. 진(秦) 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분서갱유(焚書坑儒) 등의 사건을 거치며 많은 문헌들이 유실되고 흩어졌다. 한(漢) 무제는 유교를 정통 사상으로 승인했는데 동중서(董仲舒/기원전176?~104?)의 건의를 바탕으로 오경(五經)박사제도를 도입하고 문헌들을 수집, 정리하도록 했다. 제국의 풍모를 갖춘 한나라는 정본(定本)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현재의 『논어』도 이 때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공자의 지위는 점점 높아져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사기(史記)』를 편찬한 사마천은 공자의 지위를 ‘소왕(素王)’으로 높여서 그를 「열전(列傳)」이 아니라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世家)」에 넣었다. 전한(前漢) 중기 이후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더 심해져 공자를 ‘흑룡의 정기에 감화되어 태어난 신인(感黑龍之精所生)’에 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공자를 터무니없이 높이는 것에 반대하는 학자들에 의해 공자의 위치는 주공(周公)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더불어 경전(經典)의 지위도 고대 사료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공자의 지위는 시대를 관통하는 스승으로 꾸준히 유지되어 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孔子曰)’, 또는 ‘애공과 공자의 문답(哀公問)’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공자와 만났던 여러 군주들 중 애공이 특히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애공과 공자와의 관계가 다른 군주들과 다르게 설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나이 어린 군주와 노년의 공자는 군주와 신하라기보다, 제자와 스승의 모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공은 공자와 약 40세 이상 차이가 나고 이는 공자 말년의 제자들인 증자(曾子), 자장(子張), 자유(子游) 등과 비슷한 연배다.

또 이런 설정은 후대의 유학자(儒學者), 또는 사대부(士大夫)와 같은 이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한 몫을 하게 된다. 이들은 교학(敎學)으로 세상의 풍속을 바꾸어 선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 가르치고 배우는 대상은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적용된다. 즉 애공과 공자의 관계처럼 군주 역시 ‘공부해야 하는 자’로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다(哀公問政)”로 시작되는 『중용』 20장의 내용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士)에게 군신관계는 때로는 군주를 올바로 이끄는 자로써 군주와 함께 정치를 이끌어 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논어를 어떻게 읽는가

 

‘노 애공’편을 끝으로 15편의 ‘논어 카메오 열전’을 끝내게 되었다. 돌아보니 시작한 지 근 3년이 지났다. 어쩌다보니 『논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거기에 『낭송 논어』를 풀어쓰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어를 읽다보면 마치 처음 보는 듯한 문장들이 튀어나와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처음 논어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카메오 열전은 여기에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먼저 인물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논어 자체는 재미없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 속에 인물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훨씬 쉽고 흥미롭게 논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보다 ‘카메오 열전’을 쓰면서 이런 저런 공부를 해서인지 등장인물에 대한 것뿐 아니라 시대적 맥락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빈약하지만 여러 자료들을 비교하며 쓰는 재미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전의 이야기를 어떻게 나에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설명하는 글이 되어 간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글들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논어』를 한 번쯤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9
  • 2024-02-09 10:35

    진달래님의 논어카메오 열전을 읽으면서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맥락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진달래님 덕분에 아는게 많아졌으니 다시 논어를 읽게 된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재하느라 고생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2024-02-09 10:40

    3년이군요! 덕분에 얼핏 들어본 이름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감사해요^^ 애쓰셨습니다~

  • 2024-02-09 10:55

    진달래샘과 함께 논어 공부를 다시 한번 한 느낌?
    3년간이나 쓰셨다니 놀랍네요 ㅎ
    수고많으셨고 언젠가 논어에 대한 더욱 심도깊은 글이 또 연재되기를 기대해봅니다 ㅎㅎ
    수고많으셨어요~~

  • 2024-02-10 19:31

    어언~젠가 논어를 공부하게 되면 진달래샘의 열전이 문득문득 떠오를것 같은 예감! 이 얘기 어디서 들었더라 ᆢ 하면서~

    수고하셨어요 쌤!

  • 2024-02-10 23:45

    와! 짝짝짝!!
    나중에 책 읽다가 카메오 등장하면 다시 샘 글 찾아 읽어야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 2024-02-11 11:54

    그동안의 까메오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1회가 안영이었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나네요.
    공자와 대조적인 알맞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잘 기억 나지 않는 다른 까메오들도 제 머릿속 어딘가에는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의 논어도 훨씬 풍부해 졌을 거구요.
    그동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조그마한 선물 드리고 싶어요~^^

  • 2024-02-13 09:43

    3년의 글쓰기, 그 묵묵함 대단^^ 이제 다음 글쓰기로 ㅋㅋ 고고~~ 함께 가야쥐~~

  • 2024-02-16 12:52

    와~~~완주, 마침표...수고 하셨어요~~

  • 2024-02-17 00:12

    진달래샘, 고생하셨어요. 나도 얼른 문을 닫아야 할텐데...부럽다!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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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10 | 조회 6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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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4.28 | 조회 145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145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6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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