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4회] 제 경공, 임금답다는 것

진달래
2023-12-0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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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논어』 가운데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을 듣고 제 경공은 몹시 기뻤다.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경공은 공자를 바로 등용하겠다고 말했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대우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계씨와 같이 대우할 수는 없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대우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경공이 말했다.

“내가 늙어서 그대를 등용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셨다. (齊景公待孔子曰 若季氏 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미자,3」

 

당시 노나라의 권력자였던 계씨만큼은 안 되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는 대우해 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한 경공, 하지만 그는 공자를 등용하지 못했다. 경공의 최측근인 안자(晏子)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머쓱해진 경공은 공자를 만나 자기가 늙어서 그렇다며 말을 돌린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 중 제 경공의 모습

 

  1. 패셔니스타, 제 경공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은 『사기』나, 『춘추좌전』보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안자춘추』는 안자(晏嬰)에 대한 기록이지만 안자가 제 경공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경공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경공에게 안자가 간언하는 내용 등을 통해 경공의 됨됨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안자춘추』 앞부분에는 연달아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경공은 술꾼이었던 것 같다. 대부들의 집까지 찾아가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아침 조회에 늦는가 하면, 술자리에서 신하들과 너무 허물없이 어울리자, 안자가 경공에게 잔소리(?)를 한다.

경공은 옷차림에도 관심이 많았다. 요즘으로 치면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과한 패션으로 안자에게 또 잔소리를 듣는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에도 모피를 잔뜩 두른 제 경공이 노 정공과 회담을 하러 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안자춘추』에 따르면 경공은 호백구(狐白裘)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여우 가죽으로 만든 흰 무스탕으로 이 당시에도 무척 고급 의상이었다. 어느 추운 날, 다들 추위에 떨고 있는데 호백구를 입은 경공이 자긴 하나도 안 춥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안자가 백성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데 군주가 좋은 옷을 입고 안 춥다고 하는 건 군주가 가질 태도가 아니라고 간언한다. 그럼에도 경공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날에는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옷을 입고, 때로는 옥 장식을 잔뜩 한 금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 이번에는 발이 시리다고 했다.

경공의 사치스러움은 비단 옷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궁전의 건물을 새로 짓고, 사냥개나 말을 기르는 것을 좋아했다. 경공이 즉위한지 32년이 되던 해, 혜성이 나타났다. 경공이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탄식하며 말했다. “아, 이렇게 훌륭하고 당당한 나라를 누가 가지게 될까?” 이 말을 듣고 대신들이 다들 울고 있는데 안자 혼자 웃었다. 경공이 화를 내며 혜성이 나타나 제나라에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인데 왜 웃느냐고 물었다. 안자가 이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나 짓고 연못을 만들면서 세금을 못 걷을까 걱정하니 혜성이 나타난 게 무슨 대수이겠냐며, 백성들의 원망이 이렇게 높으니 뭐가 재앙이겠냐며 핀잔을 줬다.

술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제 경공은 정치에 그닥 관심이 없는 듯하고, 군주가 지녀야 하는 위엄 같은 것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즉위 과정을 보면 이런 태도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자기 의지로 군주가 되었다기보다, 최저에 의해 옹립된 그는 아마도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제나라는 대부들의 권력이 군주를 능가했고, 심지어 군주를 갈아치우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1. 환공을 닮고 싶었던 제 경공

 

그러나 『논어』에 보이는 공자와의 대화를 보면 경공이 정치에 아주 관심이 없었던 것 같진 않다. 또 제 경공의 재위 기간이 58년이나 되고, 그 사이 별 다른 큰 사건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정치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치를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을 듯하다. 제 경공의 치적은 여러 모로 제 환공과 비견되는데, 제 환공과 관중, 제 경공과 안자는 100여년을 사이에 두고 가장 안정된 국력과 위상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경공에게 공자가 한 대답, 즉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하는 이 말은 당시 군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제 경공에게 속이 시원한 말이었을 수 있다. 혹 공자의 대답을 듣고 경공은 명군(名君)까지는 아니어도 제대로 군주 노릇을 한 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지 않았을까? 아니 제 환공과 같은 패자가 되어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공자의 등용을 흔쾌히 약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자와 같은 유자(儒者)의 정치를 번거롭게 여긴 안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편 여기에는 공자와 같은 외부 세력이 들어오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대부들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져, 나라가 위태로워질지 모른다는 안자의 걱정도 들어 있었다.

제 경공의 치세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안자였다. 그는 다른 대부들에게 휩쓸리지 않았고, 경공의 칭찬이나, 비난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군주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던 안자는 경공이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심지어 그만두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 경공이 가장 잘 한일은 무엇일까? 그건 안자의 말을 잘 들은 것이다.

이는 제 환공과 제 경공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관중의 말을 잘 들은 환공, 안자의 말을 잘 들은 경공.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관중과 안자가 죽은 이후에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였고, 그들 사후에 제나라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1. 임금답다는 것

 

한편 제 경공이 공자의 말을 듣고 좋아했다고 했으나, 정말 그가 공자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임금이 임금답다’는 말은 무엇일까? 『대학』에 왕의 도성에는 백성들이 살고, 울창한 산언덕에는 꾀꼬리가 산다는 말이 있다. 새도 자기가 머물 곳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자기가 있을 곳을 알지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성왕(聖王)으로 알려진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의 처신에 대해 말한다.

 

“다른 사람의 군주가 되어서는 인에 머물렀고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는 경에 머물렀고, 다른 사람의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머물렀고,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애에 머물렀으며, 나라 사람들과 사귐에는 신에 머무르셨도다”(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 爲人子止於孝 爲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대학』 전3장

 

포인트는 문왕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자의 말을 잘 들은 것이 제 경공의 처지에서 보자면 ‘임금다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58년이나 되는 재위 기간을 별 탈 없이 보낸 것은 아닐까. 하지만 ‘00이 00답기’ 위해서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자세가 필요하다. 즉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군주답다는 것은 어떤 고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군주답기 위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안자가 꾸준히 경공에게 한 간언이 모두 그를 군주답게 만들어 주는 말들이었다. 신하들과 허물없이 술을 마시지 말고, 백성들은 춥고 배고파하는데 혼자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과시하지 말고, 세금을 많이 걷지 말고, 등등. 그러나 제 경공은 안자가 말을 하면 자기 태도를 반성하고 고치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지는 못했다.

그러한 제 경공에 대하여 『논어』에 공자의 한 줄 평이 남았다.

 

“제나라 경공이 말을 사천 필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었을 때 백성들이 그의 덕을 칭송하지 않았다.”(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계씨,12」

댓글 3
  • 2023-12-06 09:16

    제경공이 패셔니스타였군요. ㅎㅎㅎ

    그러게요....제 경공은 어떤 임금이었을까요?
    아니, 그 시절에 어떤 종류의 임금이 가능했을까요?

    다시 춘추전국시대 왕노릇이 궁금해집니다.

  • 2023-12-07 15:08

    춘추전국시대에는 군주보다 재상이 더 중요했을 것도 같네요.
    그럼에도 경공이 그리 오랫동안 왕자리를 지킨 것도 참 신기하기도 해요.
    대부들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게 그만큼 중요했었나봐요.

  • 2023-12-08 11:03

    패셔니스타 제경공^^ 재밋게 잘 읽었어용~*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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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10 | 조회 14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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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4.28 | 조회 148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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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2024.04.27 | 조회 151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6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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