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 1234]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동은
2023-06-13 18:26
272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1.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전에 진행했던 <도시와 영성> 세미나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였다. 그때 같이 읽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예전부터 신화나 종교가 궁금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칭성 인류학>이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음 재밌긴 한데… 책에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고고학, 인간의 마음 등등. <대칭성 인류학>을 포함한 [카이에 소바주* 전집]에는 인간의 사상 전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려는 신이치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있었다. ‘시도’라고 강조하는 것은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내용이기보다는 하나의 공리를 제시해보는, 이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자체를 흔들리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신이치는 911테러를 목도하고 오늘날 이런 야만적이고 윤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대칭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슬람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보복으로 발생하는 ‘야만’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의 야만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가로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잘라버리는 공공기관들, 공장식 축산으로 불필요하게 도살당하는 수많은 동물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신이치는 오늘날의 이 수많은 행위가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져 비대칭적인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야만스러움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

* Cahier Sauvage '야생적 사고의 산책'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신이치가 레비 스트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 ‘대칭성’은 브루노 라투르의 ‘대칭성 인류학의 시도’에서 착안되어 나온 개념이다. 브루노 라투르는 비대칭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사고이며, 라투르는 이러한 사고가 근대인의 성공의 비결이 되었지만 동시에 위기도 불러왔다고 보았다. 

“이분법적인 사고도 물론 문제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분법이 분할한 세계의 두 부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시도도 비대칭성으로 볼 수 있어요. 그 절정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경험했지요.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념의 구분은 근대성 내부의 자연과 사회, 사실과 가치, 대상과 주체를 분할하면서 비대칭성을 드러냈지요.” (국내 제목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신이치가 신유물론자인 라투르의 논지와 닿아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해가 더 잘되기도 했고! 내가 라투르를 좋아해서…ㅎㅎ

 

 

 

 

2.

  대칭적 사고가 비대칭적인 현실 사고와 균형적이었던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 신이치가 주장하는 인지고고학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신이치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벌어진 뇌 조직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상징적 사고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영역의 의미를 중첩 시켜 비유나 상징 같은 '시적 표현'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인류는 현실의 평면 세계(세속세계)에서 벗어나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흐리면서 다차원적인 전체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다차원적인 전체적 사고’란 이를테면 “인간은 야생 염소가 될 수 없고, 야생 염소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뒤엎는 ‘논리’가 가능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전체적 사고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후로도 인류는 야생 염소와 인간의 관계나 곰과 인간의 관계,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기후 등등 세계와 적극적으로 연결하고 결합하며 인간의 인식과 존재, 가치를 탐구했다.

 

  물론 선인류가 정말 염소가 인간과 같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선인류 시대에도 인간과 동물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이질적인 대상이었다. 신이치를 이를 ‘비대칭적 관계’라고 표현하는데 시적 표현이 가능해진 선인류는 ‘전체적 사고’를 통해 ‘논리적’으로 사냥꾼(인간)과 염소 사이에 동질적인 연관성을 발견했다. 이 연관성을 통해 서로를 분리하기 어려운 유대관계가 만들어지고 이 관계는 현실의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전복시켜서 ‘대칭적 원리’를 작동시킨다. 선인류는 이렇게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어떤 싸움이나 교섭으로 일종의 타협이 성립된 결과가 곧 세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분리할 것(비대칭)’과 ‘유대관계를 형성할 것(대칭)’의 원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선인류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적 능력이었다. 선인류는 인간과 동물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서도 동질성과 대칭성을 찾아 현실을 극복하려 했다. 신이치는 이 지적 능력이 오늘날의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킨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의 내재한 능력이며 이를 ‘유동적 지성’이라 한다.

 

 

  선인류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대칭성 사고와 비대칭성 사고, 두 개의 논리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신이치는 선인류의 사회가 대칭과 비대칭이 ‘복논리’적으로 이루어진 균형적인 사회라고 보았다. 신이치가 이러한 '균형'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주변과 맺고 있던 관계 방식이 바뀌었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비인간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 않고, 비대칭적 논리가 강화되어 대칭적 사고가 억압되고, 결국엔 자연의 힘과 인간의 관계를 차단하는 일신교적 사상이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대칭적 사고가 억압되고 있는 오늘날과 과거의 차이를 진단한 신이치는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에 대해 되찾아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다만 '대칭적 관계'도, '비대칭적 관계'도 모두 인간에게 내재한 유동적 지성으로 가능했던 것이기에 그 능력을 믿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할 뿐이다.

 

 

 

3. 

  대칭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유동적 지성이지만, 유동적 지성이 대칭적 사고를 위해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대칭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이치는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적 사고는 무의식에서 이루어진다”는 언급을 통해 오늘날의 정신분열증과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는 무의식의 유사함을 비교***하면서 분열증-무의식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의식은 개체화가 아닌 일반화를 지향하며 종種과 강綱같은 객체 구분을 흐려버리고, 선형적인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부분이 전체와 동일하다는 사고가 가능한 영역으로, 무의식 속에서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구분되지 않고 인식되는 상태라고 한다. 비대칭적인 세계에선 이러한 구분과 선형적인 시간 순서뿐만 아니라 감정도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대칭적인 상태에선 뒤섞인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기 때문에 마치 골룸처럼 불안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로 보여 병리적 문제로 치부되어 버린다. 신이치는 우리가 정신분열적인 망상이라 여기는 상태와 선인류가 만들어 온 신화의 지혜가 깊은 곳에서 구조적으로 일치한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의 말대로 신화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분열증적인 실언들이나 우리가 잠꼬대****로 하는 말이나 꿈속에서 보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같은 작용의 결과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는 우주를 탐구한 인간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고, 분열증은 병으로 치부되어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어 사회 바깥으로 내몰린다. 무의식의 원리로 오늘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신화와 분열증. <대칭성 인류학>의 부제가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신이치는 무의식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강하게 억압받고 있는 무의식을 통해 다시 대칭적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분열증의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신이치의 주장대로 억압된 인류의 본성인 대칭적 사고를 발현시키면 오늘날 사회의 대칭성이 다시 균형을 이뤄 이 사회의 ‘야만’스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신이치는 자연 세계와 인간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서 자연 세계에 있다고 여겼던 '힘의 원천'을 인간사회의 국가권력이 독점하게 되었고, 점점 자연 세계와 인간사회가 분리되면서 국가 등장 이전까지 지켜온 자연 세계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대칭성을 수호하는 사회에 국가란 없다고 분명히 밝히며 권력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을 독점하게 된다면 비대칭성의 극단인 ‘일의 원리’에 지배당할 것이라 보았다. 결과적으로 신이치는 국가 안에서 유동적 지성으로 가능했던 전체적 사고는 인간사회의 부분적 사고에 한정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적어도 신이치에게는 오늘날의 국가체계에서 대칭성이 유지되는 유동적 지성, 즉 신화적 사고가 발현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국가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가치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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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 마테 블랑코의 분열증 연구를 참고해 비교한다.

**** 어렸을때 동생과 함께 방을 쓸 때, 동생이 “언니 학교에 가서 콩나물 좀 사다줘”라고 잠꼬대를 했던 적이 있다. 동생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멀쩡히 얘기해서 나는 동생이 자고 있는 줄도 몰랐다. 신이치가 말하는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4. 

 

 우리는 과거 지향적인, 향수에 젖은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그런 학문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형이상학화된 세계 속에 살아 있는 야생의 사고를 회복하는 것, 곧 유동적 지성을 본질로 하여 대칭성의 논리로 작동하는 무의식의 작용에 창조적인 표현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칭성 인류학은 그런 창조적인 지성의 활동으로서 구성되었습니다. (<대칭성 인류학>, 295)

 

  신이치는 지금까지 두 번의 ‘형이상학 혁명*****’이 있었다고 한다. ‘제 1차 형이상학 혁명’에는 비대칭성의 일의 논리가 강화되어 일신교가 등장하게 되었고 ‘제 2차 형이상학 혁명’을 통해 야생의 사고능력(대칭적 사고)이 과학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은 2차 형이상학 혁명 이후의 시대이지만 신이치는 기술이나 사회제도, 신화나 제의로 표현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유동적 지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시도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대칭과 비대칭도, 컴퓨터의 이진법도, 사물을 이중으로 나누어 복합적으로 사고했던 신화적 사고도,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유동적 지성은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이치는 인류의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인 무의식을 발견했고 이후 다가올 ‘제 3차 형이상학 혁명’을 이야기한다. 유동적 지식을 가지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은 세 번째 형이상학 혁명을 향한 것이었다.

 

 물론 이 3차 혁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이치는 ‘창조적인 표현 형태’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할 뿐이다. 과연 창조적 표현 형태를 무엇이라 보면 좋을까? 나는 본문에서 이러한 요소로 샤먼과 수장, 장군, 하마차(식인) 이니세이션같은 다양한 역할과 의례가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동적 지성을 갖게 된 이후로 세상을 이해하며 그들이 찾아낸 각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장치로 사회를 유지해 왔다. 이는 이미 세상에 있는 ‘구성된 질서’와 무의식의 대칭적 사고로 ‘스스로 구성한 질서’의 결과로 보인다. 신이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장치들 - 화폐, 제도, 법령 - 도 국가 이전의 사회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능력으로 또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발견하기 어려운 무의식의 가능성을 대칭성을 품고 있는 창조적 표현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 새로운 표현형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에서 사용한 용어다.

 

 

 

5.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고대 중국의 절기와 연결해 보면 어떨까? 신이치의 책에서는 대부분 일본과 북미와 동북아시아 원주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한국과 중국의 이야기는 한漢민족이 국가를 세우고 주변 소수민족을 포획하며 국가권력이 커졌다는 몇 문장이 전부일 정도로 짧게 언급될 뿐이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중국에는 아주 이전부터 국가형태가 등장했고 지금도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거대 권력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대칭성을 수호하는 사회에 국가란 없다.”는 신이치에게 고대 중국은 일찍이 국가를 통해 대칭성과 비대칭성 사고의 균형이 깨져버린 예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부족의 과도기를 일찍이 거쳤던 고대 중국에서 그들만의 창조적 표현 형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절기와 한자 염불을 외고 있는 내가 약간이라도 신이치의 주장에 반박을 해볼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_+)?

 

  이 지역 사람들은 여름과 겨울의 생활 형태에 철저한 변화를 줍니다. 여름 동안은 공동의 영토에서 어로나 수렵, 채집을 합니다. 이런 작업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활동입니다. (…) 겨울이 왔습니다. 여름에는 넓은 영토에서 가족 단위로 분산해서 오두막을 지어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겨울이 되면 모두 일제히 여름의 오두막을 버리고 한곳으로 모여듭니다. 겨울의 마을이 부활하는 겁니다. (<곰에서 왕으로 >,197)

 

 

 

 

  고대 중국의 절기는 <곰에서 왕으로>에서 소개하는 콰키우틀족의 생활과 일면 비슷해 보인다. 고대 중국 사람들이 발견한 '때'의 구분은 절기로 정리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절기는 농업의 생산 활동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가짐과도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일정한 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그 시기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야 했다. 고대 중국에서도 콰키우틀족처럼 그들이 만들어 낸 시공간의 규칙에 따라 일정한 리듬을 갖춰 생활해 온 시기가 있었으며 두 경우 모두 시기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태도를 갖춰 생활했다. 절기는 농사력으로서 제도 안에서 그들의 경제생활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시기에 맞춰 제사를 올리고 의례를 실행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했다. 그들이 절기를 통해  세상과 유대적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수 있다면, 고대 중국에도 대칭적 사고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맞춰 살아가려 노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대 중국에서 이러한 시공간의 구분으로 절기를 만들어 낸 것은 시공간의 지식을 독점하고 있던 권력 계층이었다. 시공간을 구분 짓는 것은 국가 권력을 작동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절기 같은 역법이 비대칭적 사고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의 통치자들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맡은 바를 다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어야 했다. 통치자는 그 자리에서 세상의 모든 위치를 배정하는 자였으며 각각의 시공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세상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자로 여겨졌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태도’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고대 중국은 일찍이 세상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을, 변한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고대 사람들에게 계절이나 날씨 같은 자연의 변화를 피하거나 없앤다는 건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었다. 어차피 세상이 변한다면, 그 변화와 함께 사는 것이 그들에게 '잘 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국가권력으로서 세계를 통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그 통치자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어쩌면 샤먼과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나는 절기를 자연세계의 진리를 완전히 인간 내부 세계로 갈취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끊기 위한 제도나 법령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문화로서 관계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창조적 시도로 바라보고 싶다.

 

  한자에 담겨있는 대칭적 사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선인류는 국가권력을 거부했던 것처럼 언어를 기호화시키는 문자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거부해 왔다고 한다. 한자도 절기와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며 거북이 등딱지나 소뼈에 새겼던 기호로부터 발전되었다. 다만 한자는 6000년 이상 그 시스템을 오늘날까지 유지해 온 유일한 문자다. 초기 갑골문 상태를 보면 선인류가 벽화로 남겨두었던 흔적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한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형태가 신이치가 말하는 ‘대칭적 사고’와 비슷하게 소리를 도형으로 표현하거나 은유적으로 표현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다 일정한 규칙이 생기면서 수만 개의 문자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자 중에서는 육서로 설명되지 않는 한자도 많으며 여전히 초기에 만들어진 문자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자의 굴곡을 보면 신이치가 말하는 유동적 지식의 여러 작용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어떤 한자에서는, 신이치가 말하는 대칭적 사고가 드러나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한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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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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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5.14 | 조회 128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기린
2024.05.10 | 조회 18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띠우
2024.04.28 | 조회 183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165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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