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들

천유상
2023-06-07 01:04
264

1.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가 세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 대차고 까다롭고, ‘집시의 음울함’을 풍기고, 탁월한 지성을 갖추었으나 세심하지 않고, 감성은 공격적이지 온화하지 않으며, 말투와 태도는 냅다 직설적이고, 우아함이나 겸손함 따위는 결여되어 있으며 아슬아슬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2쪽)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병원에 취직하여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녹록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는 주인공(차정숙)의 모습이 판타지 같지만은 않아서 공감하며 보고 있다. 나에게 주인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인물은 같은 과 선배이자 주인공 아들의 여자 친구 ‘소라’이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은 후배 교육에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jtbc. 닥터 차정숙. 인물 소개) 드라마 속 그녀는 주인공의 실수에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책은 온 병동에 울리고 이를 보다 못한 남자 친구(주인공의 아들)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고 조언하자 ‘나는 잘하고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의 전개 상 소라는 자신이 그렇게 다그치던 나이 많은 주인공이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텐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태도를 후회할 것인가? 그 상대가 시어머니인데’. 소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이불킥 하지만 ‘우리가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왜 나는 시어머니라고 해서 그녀가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전형적인 구조 안에서만 관계를 한정지었기에 다른 유형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드라마 마지막 소라는 남편의 불륜 사실로 실의에 빠진 주인공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로한다. 할 말을 솔직하게 다 하고야 마는 ‘기가 센’ 소라의 캐릭터가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것이 여성이기에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을까? 아니면 그냥 성별에 상관없는 개인적인 호불호였을까? 오래 전 작은 이모가 나에게 ‘너 여자애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 하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고집 센’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묻기도 전 나는 그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했고 ‘나에게 무슨 단점이 있는 것일까’ 하며 고민했다. 수다스럽지 않거나 사교성이 없어서였을까. 고집 센 여성은 별로라는 것일까. 이모가 생각하는 여성은 어떤 이미지일까. ‘그들은 따지고 말대꾸하는 아내를 원하지 않는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4쪽) 는 비비안 고닉의 말처럼 나 역시 ‘그들’의 입장으로 ‘여성’의 자기 주장과 당당함에 대해 낯선 이질감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했다.

 

 

2.

“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자고 싶었죠?”

“지유씨는 아니었나봐요?”

“전, 반반?”

뭐 이런 게 다 있지.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뭐 이런 게 다 있지.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75쪽)

 

 

이야기의 말미 남자 주인공은 지유 씨에게 거절 받는다. 함께 료칸도 가고, 공원도 가고 분위기가 다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는데 지유 씨는 아니었다. 그러자 남자는 생각했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소설을 읽으며 나도 생각했다. 지유 씨가 남자 주인공에게 착각을 줄만한 행동을 한 건 아니었을까? 남자 주인공의 억울함에 동조하는 나의 시각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런 비슷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로 임용이 되고 처음 근무지는 경기도 여주였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풍물을 배우는 교사 동아리에 가입해 장구를 배우게 되었다. 동아리를 이끄는 남자 교사가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그는 미혼이었고 혼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장구를 더 가르쳐주겠다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여자 혼자 남자 혼자 있는 집에 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한다는 것에 대해 나도 싫지는 않았다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런 제안이 단지 호감만으로 그치리라는 것은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는 내게 장구의 리듬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은근슬쩍 나를 만지기 시작했고, 내가 그의 손을 쳐내며 싫다는 신호를 보내도 손길은 더욱 거세져 갔다. 급기야 나를 침대로 끌고 가 눕히는 상황에 이르자 나는 정말 있는 힘껏 그를 밀쳐내야 했고 울면서 그의 집을 뛰쳐나와야 했다. 그날 밤 나는 어떻게 나의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의 집 안까지 들어갔던 나 자신을, 그것도 단둘이, 얼마나 혼란스럽게 여겼었는지 기억이 난다. 다음 날 내가 사과를 요구했을 때 그는 사과를 회피했던 것 같다. 나 혼자로는 사과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가까운 선배 여자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선배 교사는 그에게 교육청에 신고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제야 그는 두려워하며 사과의 뜻을 건네왔다. 교육청으로의 신고는 나에게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비난은 나에게도 쏟아질 수 있었기에 나도 거기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이 일을 사귀었던 남자 친구도 알게 되었고 남자 친구는 그를 불러내 주먹을 날리며 분을 풀었지만 그 일은 남자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로 남았다. 남자 친구는 그의 집까지 단 둘이 들어간 나에게 실망감을 표했고, 그로부터 얼마 안되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건넸다. (물론 여러 다른 이유도 많았으리라). 애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성의 호감(그것이 순수한 호감인지, 아니면 같이 자자는 표현이었는지)에 반응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님 그가 나의 이런 모호한 마음을 이용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 일에 대한 나의 혼란스러움이었다.

 

 

3.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남편과 나의 달콤한 신혼 생활은 끝이 났다.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온종일 어린 아이를 돌보는 일은 굉장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이었다. 육아를 통해 나는 그동안 몰랐던 나의 모습을 직면했다.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심한 기복을 보였다. 아이가 사랑스러워 정성을 다하다가도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 잠투정, 음식에 대한 거부에 직면하면 젖 먹던 아이를 침대, 소파 위에 던져버리거나, 숨 막히게 꽉 껴안아 버리거나 접시를 던져버리는 등 충동적인 폭력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거칠게 대한 뒤 밀려오는 ‘실패했다’는 죄책감과 좌절감은 무겁게 나를 끌어내렸지만 나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화’, ‘짜증’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감정적인 기복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분출되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자주 싸웠다. 아마도 남편이 문자도 없이 늦게 오거나, 아니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거나 그런 종류의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는 남편과의 싸움 도중 화가 나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물건을 던졌다. 아이의 장난감을 포함한 집 안의 물건들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서로를 때리는 육탄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두고 ‘지랄맞다’고 했다. 그리고 숨 막힌다고 했다. 나로서도 남편에게 할 말은 있었다. 밤에 왜 나만 깨어서 아이를 돌봐야하는지, 공공장소에서 왜 나만 아이를 동동거리며 안고 다녀야하는지, 너는 회식하며 늦는 게 당연한데 나는 왜 매일 집에 있어야 하는지 등. 그 시절 남편과 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나의 힘듦만을 이야기하며 상대방이 왜 더 나를 ‘배려’하지 않는지만 따지고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표출하지 않았던 나의 공격성은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 남편과 연약한 존재였던 아이들을 향해 맹렬히 뿜어져 나왔고, 나는 그 사실이 몹시 괴롭고 막막했다. ‘나는 정말 지랄 맞은 사람인가?’.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문제의 화살을 나에게만 돌리는 건 절망적이었다.

 

 

4.

 

‘조화롭고 온전한 여성의 모델, 즉 강하고 관능적이고 야심 있으며 자신의 다양한 욕구와 요구를 잘 파악하고 그 모든 욕구와 요구를 탐색할 수 있는 자유와 자원을 갖춘 여성의 모델을 제시해주는 문화에 살기만 했더라면 ~ 동시에 공 아홉 개를 공중에 띄우고 던지고 받고 해야 한다는 강박을 덜 느꼈더라면, 그리고 그 공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토록 쉽게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이 덜했더라면 (이하 생략)’ ((「욕구들」, 캐럴라인 냅, 298쪽)

 

 

글쓰기를 하며 내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어느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럴라인 냅이 표현한 조화롭고 온전한 여성의 모습이 이상적으로만 느껴졌고, 세상과 조화로우면서도 온전하다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공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토록 쉽게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이 덜했더라면’의 표현은 나에게 많이 와 닿았다.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자가 나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는 상황에 나의 잘못도 들어가 있는지 아닌지를 고민할 때,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나의 감정이 부드러운 것만은 아닐 때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내 안에서 나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그들’을 이제 조금 덜어내고 싶다.

 

 

댓글 1
  • 2023-06-08 09:32

    유상샘, 유상샘, 유상샘, 유상샘, 유상샘... 엄청난 공감 속에서 잘 읽었어요.

    우리 여성들이 처한 이 모든 문제, 우리 대부분이 겪었던 이 모든 문제는, 옳고 그른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매번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구요, 그래서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나봐요.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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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142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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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72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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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03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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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2024.04.15 | 조회 182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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