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7회] 남자(南子)는 왜 공자를 만났을까

진달래
2022-07-26 06:56
546
  1. 남자(南子)와 공자의 만남

 

공자께서 남자(위영공의 부인)를 만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맹세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옹야,26)

 

남자(南子)는 위나라 영공(靈公)의 부인으로 송(宋)나라 사람이다. 춘추시대 군주의 부인을 부를 때는 자기 나라의 성을 붙여서 불렀는데 예를 들어 애강(哀姜)의 강(姜)은 제(齊)나라의 성으로 제나라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남자(南子)의 자(子)는 송나라 성(姓)이다.

위(衛)나라는 『논어』에서 노(魯)나라 만큼이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곳으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14년간의 주유 생활 중 거의 베이스캠프와 같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공자가 머물렀을 당시 위나라 영공은 나이가 많았다. 영공의 후비였던 남자(南子)는 노쇠한 남편을 대신해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군주만큼 권력을 가진 남자(南子)가 위나라에서 등용되기를 원하는 공자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벼슬을 구하는 사(士)라면 당연히 그 나라에 힘 있는 귀족에게 줄을 대어 군주를 만났기 때문이다. 공자가 영공을 만난 것과 남자(南子)를 만난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를 자로가 싫어했다고 하고, 거기다 공자가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予所否者 天厭之)”라고 했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다. 공자 후대의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다. 『논어』에 남은 이 한 문장은 이후 수많은 추측들을 불러 일으켰고, 그렇게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은 공자 일생에 가장 흥미로운 스캔들이 되었다.

 

영화 <공자> 중에서

 

  1. 자로가 싫어한 첫 번째 이유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주유를 하고 있는 중에 위(衛)나라에 도착하여 거백옥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위 영공에게는 남자(南子)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일렀다. “사방의 군자들은 우리 군주와 친하게 사귀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그 부인을 만납니다. 우리 부인께서 뵙기를 원합니다.” 공자는 사양하다가 나중에는 부득이 가서 만났다. 부인은 휘장 안에 있었다. 공자가 문에 들어가 북쪽을 향해 절을 하자, 부인도 휘장 안에서 답례했는데 이때 허리에 찬 구슬 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돌아와서 공자가 말했다. “나는 원래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부득이해서 만났으니 예로 답해야겠다.” 자로는 역시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만일 잘못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反乎衛 主蘧伯玉家 靈公夫人有南子者 使人謂孔子曰 「四方之君子不辱欲與寡君為兄弟者 必見寡小君 寡小君願見」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夫人在絺帷中 孔子入門 北面稽首 夫人自帷中再拜,環珮玉聲璆然 孔子曰「吾鄉為弗見 見之禮答焉 」子路不說 孔子矢之曰「予所不者 天厭之天厭之」)『사기』「공자세가」

 

자로가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을 싫어한 이유로 가장 흔히 여기는 것은 ‘남자(南子)가 음란한 여자’였다는 것이다. 「공자세가」에서 사마천은 남자(南子)가 공자에게 만나기를 청했는데 공자가 여러 번 거절하였고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만났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권력자에게 유세를 하기 위한 만남이라면 군주의 부인인 남자가 굳이 이렇게 여러 번 청하지도 않았을 테고, 공자 입장에서도 계속 거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공자와 남자(南子)가 만나는 장면에 ‘허리에 찬 구슬 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環珮玉聲璆然)’는 등의 묘사와 함께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마천이 이렇게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을 쓴 이유는 아마도 남자(南子)와 송조(宋朝)의  스캔들 때문일 것이다. 송조(宋朝)는 송나라의 공자로 남자(南子)가 영공과 결혼하기 이전부터 연인 사이였다고 알려졌다. 남자(南子)는 결혼 후 영공에게 졸라서 송조를 위나라로 불러들였고, 이 두 사람의 관계는 공공연한 것이어서 송나라에서는 저잣거리에서 노래로 불려 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미 당신의 암퇘지로 정했는데 어찌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수퇘지를 돌려보내지 않는가.”(旣定爾婁豬 盍歸吾艾豭)

 

여기에서 암퇘지는 남자(南子)를 아름다운 수퇘지는 송조를 뜻한다. 또 송조는 춘추시대의 잘생긴 남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송나라를 지나 던 위나라 태자 괴외(蒯聵)가 이 노래를 듣고 너무 부끄러워 남자(南子)를 죽이려고 했다. 남자(南子)는 영공의 부인이므로 괴외에게는 새어머니인 셈이다. 그러니 자식이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괴의의 계획은 실패하고 영공에 의해서 괴외는 위나라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스캔들 속에 있던 남자(南子)를 공자가 만나는 일을 자로가 싫어했다는 것이다. 자로만 싫어했을까. 자로처럼 생각한 이후 주석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공자를 비호한다. ‘당시 군주의 부인을 만나는 것이 예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났다.’, ‘남녀가 만나지 않는 것이 예인데 공자가 남자를 만난 것은 권도(權道)이니,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공자를 만난 것은 영공에게 도(道)를 행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등등. 심지어 북송때 어느 주석가는 남자(南子)가 영공의 부인이 아니라 남괴라는 사람이라는 설을 내놓기도 했다. 노나라 비땅의 읍재인데 계씨에게 반란을 일으키려고 공자를 만났고, 이 때 공자가 그에게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서 만났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주자(朱子)는 남자(南子)에게 “음란한 행실이 있었다(有淫行)”라고 주를 달았고 이것은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 내려왔다.

 

  1. 자로가 싫어한 또 다른 이유

 

그런데 아무리 공자가 당시 유명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공자세가」에 나온 대로 남자(南子)가 굳이 공자와의 만남을 여러 번 청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보니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에 나오는 해석이 눈에 띠었다. 다산은 춘추시대에는 덕(德)을 어지럽힌 여인들이 많은데 유독 남자(南子)만이 음란하다고 칭하면서 공자와 남자의 만남을 비호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였다. 다산은 또 사마천이 공자가 위나라에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남자(南子)를 만났다고 했으나 그 때는 괴외가 남자(南子)를 죽이려고 했던 때로 이렇듯 어수선한 때 두 사람이 만났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만남을 영공이 죽고 난 직후라고 보았다.

영공은 태자 괴외를 쫓아낸 후 3년 뒤에 죽었다. 괴외를 내쫓고 영공과 남자(南子)는 영공의 다른 아들인 자영(子郢)을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자영은 사양하고 괴외의 아들인 첩(輒)을 추천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영공이 죽고 남자(南子)는 첩(輒)을 즉위시켰으니 그가 출공(出公)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쫓겨나 진(晉)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괴외가 자기가 영공의 자리를 이을 후계자임을 주장하며 위나라로 돌아오려고 했다. 이 때 『사기』와 『춘추좌전』 등의 기록을 보면 위나라 사람들이 그의 귀국을 막았다고 한다. 다산은 공자와 남자(南子)와의 만남이 이 시기, 어디쯤이라고 보고 두 사람이 만난 목적이 바로 영공이 죽고 난 후 후계자를 세우는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그리고 자로가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을 싫어한 이유를 공자와 정치적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공자는 출공이 즉위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자식인 출공이 아버지 괴외를 나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식답지 않은 일이고, 이미 아들이 군주에 자리에 올랐는데 이를 뺏으려하는 괴외도 아버지답지 못하다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출공이 즉위하면 후에 위나라에 혼란이 닥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로는 이미 아버지에게 쫓겨난 괴외가 후계자가 되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출공의 즉위를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자로가 공자와 남자(南子)의 만남을 싫어한 것은 자기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공자가 남자(南子)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공자가 “내가 잘못된 짓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予所否者 天厭之)”라고 한 말은 뻔히 위나라에 난(亂)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토로한 말이라고 보았다.

 

  1. 남자(南子)는 정말 음란한 여자일까

 

태자 괴외는 정말로 단지 남자(南子)에 대한 소문이 부끄러워서 죽이려고 했을까? 『춘추좌전』을 보면 괴외가 남자(南子)를 죽이려고 한 사건 바로 전에, 남자(南子)의 일당을 제거하려던 위나라 대부 공숙수(公叔戍)가 영공에게 쫓겨나 노나라로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그 사건 이후에 영공은 송조를 위나라로 불러들였고, 이후 괴외는 송조와의 스캔들을 빌미로 남자를 죽이려 하였다. 이 일들은 모두 영공이 죽기 3년 전쯤의 일이다. 이런 일들을 보면 남자(南子)와 괴외는 후계 문제로 세력 다툼이 있었고, 결국 괴외가 패하여 쫓겨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딱히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자 한 것도 아닌 남자(南子)가 굳이 괴외를 물리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는 괴외의 성정(性情)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출공이 즉위한 지 12년이 되던 해에 괴외는 결국 난을 일으켜 장공(莊公)이 되었다. 그런데 즉위한 지 3년 만에 다시 쫓겨나는 것으로 보아 괴외는 군주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듯하다. 『사기』에 의하면 괴외는 즉위한 후에 자기가 나라 밖에 있을 때 대부들이 인사를 오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다. 또 어느 부락 추장 아내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잘라서 자기 부인의 가발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결국 괴외가 쫓겨났을 때 하필 그 부락으로 도망을 가서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괴외의 이런 결말을 보면 남자(南子)의 예측이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송조와의 스캔들 역시 앞서의 내용으로 보자면 위나라에서 자기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친정인 송나라 사람들을 불러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연인인 송조를 불러들인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남자(南子)가 괴외를 물리친 이유도 공자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녀 역시 위나라에 닥쳐올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1. 다시 보는 남자(南子)

 

『춘추좌전』이나 『사기』의 남자(南子)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음란하다(淫)’는 글자는 볼 수 없다. 남자(南子)에게 ‘음란하다(淫)’는 글자가 처음 보이는 곳은 『열녀전(列女傳)』이 아닌가 싶다. 남자(南子)는 『열녀전』 속 「얼폐전(孼嬖傳)」에 12번째 이야기로 ‘위나라를 어지럽힌 두 여인(衛二亂女)’에 나온다. 길지 않은 글인데 마지막에 남자(南子)에 대한 평을 남기면서 ‘남자가 음란한 성품이 있다.(南子感淫)’라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열녀전』은 한나라 때 유향이 지은 것이고, 그 중 「얼폐전」에는 15명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흔히 ‘나라를 망하게 한 여자들’의 이야기로 본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체로 음란한 행동(淫行)을 하고, 권력욕으로 당시의 예법이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들의 면모를 잘 살펴보면 똑똑하고 정치적 수완이 있어서 정치권력에 깊게 개입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춘추시대 군주의 결혼은 일종의 국가 간의 동맹이었다. 그러니까 남자(南子)가 위나라에서 권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위나라에 송나라 세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괴외가 남자(南子)를 죽이려고 한 것 역시 위나라 토박이 세력과 송나라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는 대부분 이렇게 여자 쪽 세력이 커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권력을 가진 여자들은 대체로 음란한 여자, 혹은 패악을 부리는 여자로 기록되었고, 그녀들의 정치적 역량은 지워졌다.

공자와 남자(南子)가 실제 어떻게 만났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남자(南子)는 음란한 여인으로 혹은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여인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남자(南子)를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음란한 여인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남자(南子)를 보다보니 남녀평등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여성의 정치적 역량을 평가하는데 인색한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댓글 8
  • 2022-07-26 08:35

    맨 마지막 문장이 맘에 드네요.

    南子는, 정말 다시 발굴되어야 하는 이야기이고 캐릭터인듯.

    (춘추전국시대에에 南子 말고 역사적 인물인 여성이 또 누가 있을까요?)

    • 2022-08-05 09:52

      뭐, 잘 모르지만 노나라 문강에 대해서는 한 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오빠인 제나라 양공과 바람나 남편인 노나라 환공을 죽게 했다는 부분만 부각되었는데 

      남편이 죽고 문강의 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도 그렇고 노나라에서 쫒겨나지도 않는 것도 그렇고 (제나라와 국경지대로 옮겨가긴 했지만)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2022-07-26 13:36

    문득, 한 번만 대강 알 거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편견을 만들 바에야.... 하는 생각이 드네여.  

    공부 안하겠단 변명처럼 들리나요?  

    아니구요..ㅋ

    이리 저리 읽으면서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놔야죠.  인색해지지 않으려면 !!

  • 2022-07-28 09:14

    여성의 정치력 능력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는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 2022-07-31 22:31

    와 이렇게 보니 남자도 <열녀전>에 위험을 예측한 현명한 여자 중 한명이 되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22-08-14 09:53

    저는 에세이 쓸때 남자를 '비선실세 여인' 이라는 표현으로 쉽고 재밌게(?) 퉁~쳐버렸었는데.

    진달래샘의 남자에 대한 복합적 설명을 읽으니 상당히 흥미롭네요.

    암튼 남자가 실세였던건 확실하고,

    혼란한 정계에서 고도의 정치술이든, 권모술수든, 능수능란했구나 싶은데

    '음란한 여자'였다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니 아쉽긴 하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 2022-08-14 10:00

    그나저나 <논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했기에 글을 이해하며 읽었어요;;;;;

    논어를  전혀 모르던 작년 이었다면 아마 읽지 않고 패스 했을거예요.

    춘추시대 국가, 역사를 전혀 몰랐으니까요.ㅎㅎ

  • 2022-08-14 13:41

    저도 논어 공부 쬐끔했다고... 이 글이 재밌게 읽혔어요.
    우와~  신기하군요! ^^
    잘 읽었습니다.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2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57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96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