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7회] 어려움에 빠지면 물처럼 흘러라, 중수감

봄날
2022-07-25 22:06
509

 

고난이 연거푸 닥칠 때

나는 최근 부득이하게 한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았다. 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 사기업과는 달리, 그 운영과 사업은 사회적으로, 즉 공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사회의 일원이던 내가 대표를 맡은 것은 이같은 공적인 기능의 유지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고, 나를 이어서 누군가가 또 그 역할을 맡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맡은 역할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회사재정이 출렁거렸다. 적자로 시작한 회사재정 상황은 나의 임금은 둘째로 치고, 매달 직원들의 월급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앵벌이하는 사람처럼 나는 매일같이 입출금장부를 들여다보며 노심초사했다. 한 두달 사이 이제 숨통이 트인다 싶었는데, 이번엔 일 잘하던 직원이 퇴사하겠다고 나섰다. 성격이 싹싹하고 부지런해서 고객응대는 물론이고 연차에 비해 디자인 실력도 뛰어났다. 그 사람을 대신할 새 직원을 뽑는 일은 도대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어깨가 천근처럼 무거워졌고, 입맛이 똑 떨어졌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일에 신경질을 냈고, 모든 일에 심드렁해졌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런 고난이 찾아오는 걸까. 나는 이런 상황을 넘겨주고 쏙 빠진 전임대표가 원망스러웠다. 전화해서 화풀이라도 해볼까 하는 쪼잔한 생각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고난에 고난이 겹쳐 힘겨운 때가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갈수록 태산’ 같은 말은 이런 경우를 가리킨다. 주역의 중수감(重水坎)괘는 바로 이처럼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몰려오는 상황을 말하는 괘이다. 감(坎)은 물을 뜻하는데 중수감괘는 물(水)이 중복된다(重)는 뜻을 가진다. 주역에서 물, 즉 감괘는 험함, 고난, 어려움, 빠짐을 뜻한다. 그러므로 중수감괘는 험함이 겹치고 연달아 빠진다는 뜻이니 고난의 강도가 세다. 주역에는 이른바 4대 난괘(難卦)가 있다. 4대 난괘는 택수곤(澤水困), 수뢰둔(水雷屯), 수산건(水山蹇), 그리고 중수감(重水坎)괘이다. 네 개의 괘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감괘, 즉 물이 들어있다. 흔히 주역점을 쳐서 이 네 괘 중 하나가 나오면 점을 친 사람은 매우 낙담하고 불안해한다. 감괘가 험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수감처럼 위아래 괘가 똑같이 중복되는 괘는 주역에서 모두 8개인데, 이렇게 상하괘가 같은 경우, 그 성질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니까 물이 험함, 어려움의 상징이라면 특히 중수감괘는 그 어려움의 끝판왕인 셈이다.

 

험한데 형통하고 가상하다니

그런데 중수감괘의 괘사는 의외로 나쁘지 않다. 심지어 형통하고 가상함이 있다고 한다.

“습감은 믿음이 있어 오직 마음이 형통하니, 가면 가상함이 있을 것이다(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尙)”

괘의 의미를 해석하는 단전에서는 “습감은 거듭 험함이다”라고 말한다. 이때 ‘습(習)’은 ‘익히다’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거듭한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물이 거듭한다는 것은 물이 상징하는 성질, 즉 어려움, 고난이 두 배라는 소리다. 괘사의 ‘유부(有孚, 믿음이 있다)’에 대해서 단전은 “물이 흘러가서 고이지 않으며 험함을 행하니 믿음을 잃지 않는다(水流而不盈 行險而不失其信)”고 풀어내고 있다. 이 구절은 정확히 물의 성질에 비유해 사람의 실천을 제안하는 것이다. 물이 한곳에 고이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보고 사람은 험함을 향해 (움직여)나아가고 그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밀려오는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이때 물은 인간 실천의 본보기가 된다. 구덩이의 얕고 깊음에 상관없이 예외없이 구덩이를 채우면 거침없이 다시 흐르는 물처럼 사람들이 험함(고난) 앞에서 지레 겁먹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직 고난을 벗어나는 방향을 향해 조금씩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오직 마음이 형통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괘사의 뒷부분인 ‘유심형(維心亨)’에 대한 단전의 해석을 보자. “오직 마음이 형통한 것은 굳셈이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할 때, 이것은 상하괘가 똑같은 감괘의 가운데 양효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수감괘에서는 이효와 오효가 양효이다. 정이천은 감괘의 양효의 역할에 대해 “굳센 양이 중도(中道)로써 행하면 험난함을 구제하여 형통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도로서 행하는 주체는 바로 구오이다. 구이도 양효이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나 역량으로 봤을 때, 그 굳센 정도가 구오에 미치지 못한다. 구오처럼 굳센 양의 성질과 올바른 도를 펼 수 있는 중정(中正)의 존재 정도가 되어야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구오의 효사는 “구오는 (물이)고이지 않고 평지에 이르니 허물이 없다.(九五 坎不盈 祗旣平 无咎)”이다. 감불영(坎不盈)은 물이 구덩이에 차지 않았다는 뜻이고, 지기평(祗旣平)은 이윽고 구덩이를 채우고 넘쳐 흐르는 물이 평지에 이른 모습이다. 서서히 험함의 상황을 벗어나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구오의 자리에 선 사람이 이 어려움을 벗어나려면 앞에서 말했던 물의 덕성을 따라 험함을 벗어나려는 굳센 의지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감괘가 험한 것은 이미 주어진 상황이다. 그것을 푸는 실마리는 구오가 쥐고 있고, 구오는 군자에 비유된다. 상전에는 감괘에 임하는 군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물이 연거푸 이르는 것이 거듭 험함이니, 군자가 그것을 보고 덕행을 항상되게 하며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水洊至, 習坎, 君子以 常德行 習敎事).” 정이천은 물의 성질을 자세히 보라고 말한다. 물은 한 방울로부터 시작해서 계속 모여 한 길이 되고, 결국 강이나 바다에 이른다. 여기서 다루는 물에는 두가지 성질이 있다. 첫째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가는 도중 바위나 나무가 가로막는 일이 있어 그것을 돌아 흐르는 일은 있어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둘째, 물은 모든 구덩이를 채우고 흐른다. 빈틈을 남기고 흐르는 일은 없다. 군자는 예외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모든 구덩이를 채우고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자신의 실천의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위기에 위기가 이어지는 것은, 습감, 구덩이가 거듭되는 것이다. 이때 한 번의 위기, 하나의 구덩이는 요행으로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듭해서 만나는 구덩이를 운좋게 거듭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앞의 구덩이를 메우고 평지로 쉽게 흐를 수 있을 때까지 힘(정성)을 다해 헤쳐나가겠다는 마음이 중수감괘 전체를 형통하게 한다.

 

가면 가상함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나의 위기를 벗어날 수도,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개의 사람들은 한번 구덩이에 빠지면,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힘이 든다. 빠지기 싫은데 빠졌으니 낭패감이 들고, 일단 패닉에 빠지면 구덩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앞의 구덩이를 넘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비로소 구덩이 너머를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회사에 닥친 거듭된 어려움을 당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이것이 중수감괘가 말하는 구덩이에 빠진 상태, 험함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전임대표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난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 더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었다. 하찮은 일에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구오인 군자가 실천하는 올바름의 도, 중도(中道)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내가 구오라면 중도의 덕행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구덩이를 벗어나 형통함으로 향하는 일일까.

 

우선 나에게 닥친 고난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업체를 꾸려가면서 직원들의 퇴사는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적자를 메꾸는 상황에 비교하면, 위기라 할 수도 없었다. 우선 잡코리아나 인쿠르트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등록을 했다. 퇴사하겠다는 직원과 함께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챙겨나가는 사이, 전임대표를 원망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질부리던 내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절대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은 너무 가까운 곳에서 구해졌다. 지인의 딸이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찾아왔다. 언제 위기가 찾아왔냐 싶게 나는 구덩이를 훌쩍 넘어 거침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이 모든 어려움의 근원이 내 마음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나와 회사의 모든 사람이 한동안 빠졌던 그 황망함과 괴로움은 우리 것이 아니었을 텐데. 중수감괘 괘사의 마지막 구절, “행유상(行有尙, 가면 가상함이 있을 것이다)”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시선을 구덩이 너머에 두고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머물지 말고 물처럼 흘러라

지금 당장은 해피앤딩이지만 좌충우돌, 내가 사업체 대표로서 맞이할 고난은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눈앞에 닥친 고난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고난을 헤쳐나가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에 있다. 마음의 방향타를 바꾸는 것만으로 실제 고난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많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선,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려는 나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마음을 형통한 방향으로 잡을 때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변하기 시작하고 고난의 끝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위기가 거듭해서 닥칠 때마다 믿음을 잃지 않고 위기 너머를 향해 무언가를 하다 보면, 어느새 고난의 절정을 지나 서서히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즈니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소한 우리 일상에서도 어려움에 빠지는 일이 흔하다. 그럴 때마다 메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넘쳐 흐르는 물처럼, 흐르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중수감괘를 기꺼이 떠올려야겠다.

댓글 8
  • 2022-07-26 08:28

    하하... 이거 CEO들의 주역으로 널리널리 알려야겠어요^^

    • 2022-08-02 14:15

      고민끝에 달아주신 댓글에 감사드립니다.ㅎㅎ

  • 2022-07-26 14:16

    저는 매일매일 주문을 외우듯 외워야할 듯요.

    • 2022-08-02 14:16

      어려운 일이 늘상 주위에 있는 것 같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 2022-07-27 22:53

    넵! 멈추지 않고 흘러보겠습니다

    • 2022-08-02 14:17

      누군지 알 것 같은 '중수감괘가 올해 운수인 자'에게 응원의 몸짓을 보냅니다.

      네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평지에 이를 거라니까요!

  • 2022-07-31 22:39

    얼마 전에 우현이가 수산건을 뽑았는데, 그 괘사도 나쁘지 않은 것이 신기했어요. 나쁜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해주니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봄날쌤처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막힌 지점을 뚫을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정이 가네요 주역 후후

    • 2022-08-03 01:33

      주역은 한없이 낙관적이라면 낙관적인 텍스트같아요.

      인간이 원래 고난앞에 쉽게 무너지잖아요...그 가운데 어디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지점에서 주역이 분명 도움이 되기는 하죠! 모두에게 세상 살아가는 힘을, 위기에 처했을 때 조금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지혜를 주는 주역의 세계...이때문에 주역을 사랑하고 공부하는가 봅니다.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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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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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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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9 | 조회 20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97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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