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여성부의 추억 (아젠다 15호 / 20210820)

문탁
2021-08-2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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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특별한 주문이자 격려 같은 것! 그리고 당시 지은희 장관은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것의 의미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인재’(?!)로 날 영입했던 것이다. 아마도 민중당 시절에 지은희 장관과 내가 당내 여성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선전물을 함께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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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라떼~는 말이야~

 

  알다시피 여성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만들어졌다. 대선공약을 지킨 셈인데 재밌는 것은 당시에는 김대중 뿐 아니라 이회창, 이인제 등 15대 대선후보 모두가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여성운동은 80년대 후반부터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고, 호주제 폐지를 비롯해서 가정폭력, 인신매매, 성매매, 일본군위안부, 고용평등 등의 의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성과들을 아우를 수 있는 화룡점정이 (적어도 그 때는) 여성부 신설이었다. 위의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별도의 정부조직을 만들어라!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라! 아무도 토를 달수가 없었다. 그 때 여성부 신설은 사회 전체의 뉴노멀이었고, 정치권에서도 누구든 선점하면 좋은 아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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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부의 첫 숙원사업은 호주제 폐지였다. 아니 그것은 1950년대 이래 모든 여성운동단체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과제였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여전히 전국의 유림아저씨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미풍양속의 사수’를 외쳐댔지만 2003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었다. 일제 잔재이지만 전통의 이름으로 둔갑하여 잘 만나지도 않는 시아버지나 혹은 한 살짜리 아들이 나의 호주戶主가 되어버리는 남성혈통중심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너무 후진 일이었다.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권김현영... 부모성을 함께 쓰는 여성셀럽들도 많아졌다. 16대 대선의 주요후보들은 – 이회창씨를 제외하고 – 모두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호주제 폐지가 대세가 되긴 했지만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확실히 참여정부의 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호주제 폐지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걸었고, 무엇보다 초기 내각에 네 명의 여성장관을 임명했다. 법무부 장관에 강금실, 환경부 장관에 한명숙, 보건복지부 장관에 김화중, 여성부 장관에 지은희. 그리고 1대 여성부 장관이었던 한명숙 장관의 백업과 강금실-지은희 투톱의 환상적 콜라보를 통해 호주제 폐지가 추진되었다. 그들 모두는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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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매매특별법의 추억

 

  성매매특별법은 참여정부 여성부의 첫 사업이었다. 맥락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내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렸다. 미국 국무부에서 발생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인 3등급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쪽팔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법을 추진하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2000년, 2001년, 2002년 연속적으로 발생한 군산과 부산의 성매매 업소 화재였다. 2000년 9월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 성매매 업소에서 불이 나서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했는데 이유는 포주들이 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창문에 쇠창살을 달아놓고, 출입구도 두꺼운 철제문으로 잠가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들 여성은 모두 20대로 10대에 가출했다가 인신매매되어 감금되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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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윤락행위등방지법(1961)의 저촉대상이었던 성매매. 그러나 이것은 윤락淪落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지는 것”(국어사전)을 처벌하는 법이다. 이 용어는 성매매가 여성의 성을 도구화하여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조직화된 산업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감춘다. 그리고 이 산업이 마약산업과 마찬가지로 인신매매, 감금, 폭행, 경제적 착취를 일상화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범죄라는 것을 감춘다. 성매매특별법은 바로 이 악랄한 성산업 카르텔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포주의 폭력과 착취로부터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그 법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침해한다고 했으며, 심지어 소복을 입고 시위를 했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학자들도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문화적이고 윤리적 영역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 문제라고 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성노동’ 혹은 ‘성노동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여성부와 여성단체가 순결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모든 쟁점은 이 문제의 복잡성을 나타낸다. 그만큼 토론과 숙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여성부는 무조건 방어해야했고 여성부 공무원인 나는 입에 단내가 나고 발바닥에 땀이 나게 토론이 아니라 홍보를 위해 뛰어다녀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를 일으킨’ 장관은 조용히 교체되었다.

 

 

 

  4. 여성부 잔혹사의 세월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던 것처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념에 너무 사로잡혔던 것일까? 문화적이고 다차원적인 이슈를 손쉽게 금지와 처벌의 사법모델로 환원했던 것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둘 다. 다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어떤 장면 하나. 성매매특별법 첫날, 경찰의 압도적이고 경쟁적이고 전시적인 단속. 다음 날 신문의 대서특필. 솔직히 나는 좀 당황했다. 구조적인 성산업을 해체하겠다는 여성부의 바람은 경찰이 매일 매일 발표하는 성매수 남성들의 검거숫자에 묻혀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포주와 밀착관계를 맺고 있던 경찰들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강경하게 단속을 했다. 성매매특별법은 경찰의 협조 없이는 집행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경찰의 행동에 딴지를 거는 것도 불가능했다. 장관도 나도 속앓이를 했지만 별다른 도리는 없었다.

 

  나중에 영화 <한공주>로 널리 알려진 끔찍하고 잔혹한 밀양여중생 집단성폭력 사건 때도 그랬다. 나는 사건을 인지한 그날 당일 바로 KTX를 타고 밀양으로 내려갔다.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의 이모, 그리고 평생 남편한테 맞고 산 피해자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 일은 경찰의 관할이었다. 난 경찰의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을 믿을 수 없었고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단 한 순간도 조사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여성부 직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중에 그 경찰들은 성폭력 사건을 이렇게 다루면 절대 안 된다는, 2차 가해의 전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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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부는 처음부터 별로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진보적인 대통령들이라도 여성부가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고 여성표도 얻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성표를 잃는 것을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여성부의 조직개편과정이다. 2001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가 되고(이 때는 보건복지부의 영유아 보육업무를 이관 받았다) 2008년 여성가족부가 다시 여성부가 된다.(영유아 보육업무를 다시 보건복지부로 보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영유아 보육업무가 아니라 청소년 업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이관 받아 다시 여성가족부가 되었다. 좀 더 온건한, 좀 더 관습적인 활동을 하라는 ‘윗분’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찍’ 소리라도 내려면 라이트플라이급에서 벗어나서 플라이급이나 밴텀급은 되어야 한다는 내부의 절실함 때문일 수도 있다. 라이트플라이급으로는 슈퍼헤비급인 재정경제부를 상대하여 예산을 따오거나 헤비급인 국방부를 상대하여 성인지 예산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구조로는 여성부의 1급 실장도 메이저 부서의 4급 사무관을 상대하긴 어렵다.

 

  여성가족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유승민이나 하태경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으니 당장 폐지되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얻어맞는 동네북 신세를 면하려면 말빨도 좀 세지고 덩치도 좀 커져야 하지 않겠는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부터 뭔가 액션을 취해보는 건 어떨까? 이 정부의 전 현직 여성장관들이 연판장이라도 돌리거나 공동기자회견이라도 하는 것도 모양이 좋아 보이고 모모한 유력인사들, 앞 다투어 김대중-노무현을 좇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두 전직대통령만큼의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로 삼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하태경 등의 덕분에 여성가족부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까지 여성부 추억팔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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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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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4.28 | 조회 122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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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2024.04.27 | 조회 127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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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43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80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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