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양생 10회> 나만의 아침시간 활용법

기린
2021-10-26 08:58
461

올해 초 인문약방 활동의 확장으로 일리치 약국을 열었다. 상담을 주로 하는 약국에서 한약처방전일 경우 계량하고 달이고 포장하는 일 등을 내가 맡기로 했다. 약국 영업시간인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근무시간도 정해졌다. 이십 대 초반에 정규직으로 일했던 이십 개월 이후 삼십 여년 만에 다시 사대보험이 되는 정규직에 취업을 한 셈이다. 약국을 개업하기 이전에도 대부분 열시 전에 공동체 안에 있는 공부방으로 출근했다. 밥벌이는 물론 공동체에서 벌이는 다종다양한 일에 연루되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모자라고 세미나 준비는 미흡해서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약국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아홉 시간의 근무시간이 정해졌다. 약국의 일상과 인문약방의 활동, 세미나 공부 등으로 활용해야 했다. 출근해서 닥치는 일부터 해내다보면 책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퇴근시간을 맞았다. 게다가 약국이 있는 파지사유는 에코와 관련 활동이 펼쳐지고 용기내 가게가 열려 있고 약국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공부방에서처럼 책을 읽는 일은 그야말로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공간을 함께 쓰는 친구들과 공부 좀 하자,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등등 언쟁까지 붙으니 피곤이 점점 가중되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몸은 여전히 예전 공부방의 환경을 원했다. 더구나 그 시절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왜 이러고 사는지 나 자신한테 불쑥불쑥 짜증이 치솟기도 했다. 그렇게 정념에 휩싸이면 일상에서의 집중력은 더 떨어졌다.

 

 

예전이라면 해야 할 일을 끝내면 공부방에 자리 잡고 세미나 책을 읽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간이 하루 종일 북적대는 것은 아니어서 제법 한가한 시간도 있었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약국 일 사이 한가한 시간, 소란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난 시간이면 몸도 거기에 맞춰 좀 나른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좀 늘어져 쉬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하면 책은 세미나 전날 벼락치기로 허겁지겁 읽을 수밖에 없다. 한숨 돌리는 몸과 책을 읽을 몸 사이의 조절이 문제였다. 저녁에 퇴근하고 혹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집중해서 책을 읽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 오면 대체로 더 산만해졌다. 동시에 집에는 유혹이 더 많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궁금하고 때로는 피곤하니 일찍 자고 싶기도 한 것이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다르게 쓰는 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아침 시간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랫동안 공부 해온 동양 경전을 펼쳤다. 요즘 읽고 있는 경전은 <논어>다. 저절로 읽히는 문장으로 뇌를 워밍업 시킨다. 이 워밍업은 대부분 10분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그 대신 소리 내어 읽으면서 문장에 집중한다. 그렇게 한 편이 술술 암송될 때까지 계속 읽었다. 그 다음은 팟캐스트를 위해 선정된 책이나, 읽고 싶었던 신간 등을 읽는다. 이 책들을 읽는 시간도 20분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쉽게 읽히는 문장이라도 꼼꼼하게 읽으면서 집중한다. 10분정도 암송하고, 20분정도 다른 책 읽으면서 이 집중에서 저 집중으로 옮겨가 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세미나 책을 읽었다. 그건 출근 준비 전까지 계속 읽는다. 여섯시 무렵에 일어나면 한 시간 정도 읽을 수 있고, 늦잠을 자면 30분 정도밖에 못 읽는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 세 번에 걸쳐 각각 다른 책을 나누어 읽었다. 그러고 나서 여덟시 사십 분이 지나면 출근을 준비 한다.

 

 출근 후에 약국 일을 하는 사이 시간이 비면 될 수 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화요일부터 세미나가 있는 토요일 전까지 주로 세미나 책만 읽었다. 예전에 공부방에서는 일을 하고나서 공부를 하려면 예열하는 시간이 길었다. 이제는 환경이 바뀌어 그렇게 예열하는데 시간을 쓰다가는 할 일에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세미나 준비에만 집중하면 그 예열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퇴근을 해서 저녁까지 먹고 나면 여덟시가 훌쩍 넘어 있다. 그러면 별다른 예열 없이 세미나 책이나 글쓰기 등에 진입하기가 좀 더 수월했다. 열한시를 넘기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

 

그러나 나의 일과를 온통 약국 일과 세미나 준비만으로 채울 수 없다. 부모님 간병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친 친구가 마음을 가누기 위해 파지사유에 들렀다. 그 친구와 마주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시간도 필요하다. 손 작업장에 작업하러 오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일상의 수다를 푸는 시간도 있다. 파지사유에 장이라도 서는 날에는 그 왁자함에서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공동체 밥상에서 벌어지는 갖은 일에 참견하고 살피고 빈틈을 메우는 일도 해야 한다. 더구나 공간에서는 예정에 없던 일들도 수시로 벌어진다. 반가운 손님이 오기도 하고, 육아에 지친 친구가 아기를 안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 때 아기와 눈 맞추고 놀다보면 시간은 잘도 간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아침의 시간을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나누어 써보는 실행을 한 지가 석 달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아침의 루틴을 만드는 방법으로 암송을 해보기도 했고, 매일 아침 글쓰기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보내본 시간도 있었다. 그런 시도들이 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흔적이 되어 내 몸 어디엔가 장착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의 이런 실행들도 시간이 쌓여가다 보면, 어느 샌가 일의 한가운데서 그 순간에 집중하는 몸이 되어있기를 상상해본다. 그런 일상이 곧 자연스럽게 사는 양생의 순간일 것이라는 상상 말이다.

 

댓글 8
  • 2021-10-26 13:27

    나만 (혹은 우리들만 - 직장인들) 직장인이라고 징징대고 있었네요.

    반장님도 직장인인데.... 그래도,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건 역쉬 반장임을 입증하심입니다요. 

    "일상이 곧 자연스럽게 사는 양생의 순간일 것" 

    매번 번다하게 일어나는 정념들을 잡아당겨야겠습니다. 양생이니까 ^^

    • 2021-10-27 09:03

      그러게요. 저도 직장인이라고 징징징했는데...

      갑자기 공생자 행성을 담달에 못한다고 말씀드린게 마음에 걸리네요 ㅠ 다음번에는 꼭 참여한다는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바쁜 스케줄에도 변화하는 흐름을 파악하고 몸을 변형하시는 기린샘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내려주신 쌍화탕~항상 감사드립니다~~^^ 


       

  • 2021-10-26 13:34

    근무일을 줄여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

  • 2021-10-26 17:44

    일하고 공부하고

    틈틈이 사람들과 만나는 기린샘~

    응원합니다!

  • 2021-10-28 16:00

    밤 보다는 아침이 좋고,

    아침에 생기있는 사람인지라,

    아침 일찍 깨는 또다른 누군가가 생겼다는게 반갑네요. 아침에 청소당번이라 일찍 갈때마다 기린샘이 먼저 와계셔서 저는 늘 안심입니다. 기린샘 노고에 감사!

     

     

  • 2021-10-29 14:41

    이렇게 새로운 공간에서 서서히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군요....

    기린쌤의 변화!!! 다음번이 매번 궁금한 건 저만이 아니죠? ㅋㅋ 

    • 2021-10-29 22:44

      저희도 물방울 샘이 궁금합니다. 잘 지내시죠?ㅎㅎ

  • 2021-11-01 12:15

    나랑 비슷하네 ㅋㅋㅋ

    나는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삼시세끼 챙기느라 바빠서 틈틈이 짬짬이 세미나 책 읽어요 ㅎ

    특히 아침시간 활용. 근데 그것도 내 시간이 많이 날아가버렸다는 ㅠㅠㅠ

    9시쯤 일찍 잠이드는 날이 있는데 그러면 3시쯤 깨지더라구요

    이때부터 약 3시간이 황금같은 시간.ㅎㅎㅎ

    점점 더 일찍 일어나야하는건가???  

    기린은 4대보험 되는 정규직이니까 그렇다치고 나는 뭐란 말입니까~~ 켁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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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2024.04.27 | 조회 14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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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2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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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64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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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20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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