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회] 안자, 사람을 잘 사귄다는 것

진달래
2021-07-2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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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제자들이 아닌 『논어』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리고 공자는 그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런 작은 궁금증으로 <논어 카메오 열전>을 시작합니다. 

 

 

『논어』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뿐 아니라 공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 혹은 옛날 현인(賢人), 성왕(聖王) 등등이 있다. 공자는 이들에 대한 다양한 평을 논어에 남겼는데 아마도 이러한 인물평은 대체로 제자들과의 강학(講學) 과정에서 남게 된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소회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사교성 좋은 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 오래되어도 그를 공경하는구나.”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논어』「공야장」, 16

 

안평중은 우리가 흔히 안자(晏子)라고 알고 있는 제나라의 대부이다. 이름은 영(嬰)이고 자가 평중이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그가 죽은 해는 기원전 500년으로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보다 50세 정도 많다. 『안자춘추』라는 책이 남아 있는데 안자가 쓴 것은 아니고, 안자의 언행을 모아서 후대 사람들이 만든 책이다. 사마천은 『사기』 「관안열전」에 안자를 소개하면서 “만약 안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를 위해서 마부가 되어 채찍을 드는 일이라도 할 정도로 나는 안자를 흠모하고 있다.(假令晏子而在,余雖為之執鞭,所忻慕焉)”고 평했다. 흔히 가장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이야기 할 때 관중과 제환공을 예로 드는데 안자와 제경공도 그에 못지않게 본다. 그러니까 안자는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명망이 높았던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논어』에는 안자에 대해 이렇게 단 한 줄의 평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평도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라니, 지금으로 치면 ‘사교성이 좋았다.’ 뭐 이런 뜻일까? 사마천과 비교하면 공자의 이 한 마디는 너무 박한 평가인 듯 보인다. 혹시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안자가 그의 등용을 막은 적이 있었다는데 그것이 서운했던 건 아닐까?

공자가 30대에 노나라 소공이 당시 권력자였던 세 가문과 맞서다, 쫓겨난 사건이 있었다. 소공이 쫓겨나 제나라로 갈 때 공자도 노나라의 이런 무도한 상황을 한탄하며 제나라로 갔다. 이 때 제나라 군주였던 경공을 만났는데 경공이 공자가 마음에 들어 바로 등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를 안자가 반대했다고 한다. 요지는 공자가 주장하는 예법은 너무 세세하여 다 배울 수도 없고, 제나라의 풍습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경공은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고,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자가 안자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평을 남겼는지가 궁금하다. 게다가 그냥 사람을 잘 사귄다가 아니라 오래되어도 그를 공경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논어집주』를 보면 주자는 정자(程子)의 말을 빌려 “사람은 사귀기를 오래하면 공경이 쇠해지니, 오래되어도 공경함은 사귀기를 잘함이 되는 것이다.(人交久則敬衰 久以能敬所以爲善)”라고 주를 달았다. 이렇게 보니 이 문장의 포인트는 ‘오래되어도 그를 공경하는구나(久而敬之)’인 듯하다. 이 구절은 사람들이 안자를 공경했다고 볼 수도 있고 안자가 사람들을 공경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상 별 차이가 있진 않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관계 속에서 서로 공경한 태도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니 공자가 안자에게 한 이 말이 달리 보인다. 나는 사람을 잘 사귄다는 것이 여러 사람들과 잘 지내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사람을 잘 사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키가 작고 생김새가 볼품없었다고 한다

 

대부들의 시대

 

안자와 공자가 살았던 춘추(春秋)시대 말기는 ‘하극상의 시대’라고 불릴 만한 때였다. 천자의 나라인 주(周)나라는 쇠퇴하고 제후국들이 서로 다투며 패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제후국 안에서는 귀족인 대부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실질적인 권력이 제후가 아닌 그들의 집안에서 나왔다. 당시 대부들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안자는 진(晉)나라 대부 숙향과 만났을 때 제나라의 앞날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제나라의 정권은 결국 전씨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전씨는 비록 천하에 큰 덕을 행하지는 못하였지만, 공공의 권력을 사사로이 행사하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이 그들을 좋아합니다.(齊政卒歸田氏。田氏雖無大德,以公權私,有德於民,民愛之)” 『사기』 「제태공세가」

 

제나라의 상황만 이런 것은 아니었다. 숙향 역시 진나라가 얼마가지 않을 것으로 예견했다.

 

“진나라는 현재 쇠하는 시기입니다. 주군은 조세를 많이 거두어 누대나 연못을 만들며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정사는 마침내 사가(私家)들의 문(門)에서 나오고 있으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소?(晉,季世也。公厚賦為臺池而不恤政,政在私門,其可久乎!)” 『사기』 「진세가」

 

이런 사정은 제나라와 진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비슷했다. 『논어』에도 ‘삼환’이라는 세 대부들이 노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나라는 안자의 예상대로 후에 군주의 자리가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바뀌게 되고, 진(晉)나라는 대부들의 다툼으로 나라가 망하고 조(趙), 위(魏), 한(韓)의 세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춘추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시작되었다.

안자는 영공, 장공, 경공의 세 군주를 모셨다. 이 중 장공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를 당했다. 장공이 최저의 집에서 죽었는데 신하들은 최저가 무서워 장공의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었다. 장공의 이복동생을 경공으로 옹립한 후, 최저는 신하들에게 “최씨와 경씨를 돕지 않는 자는 죽는다!(不與崔慶者死)”라고 맹세하도록 시켰다. 이런 일들은 당시 대부였던 최저의 세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준다. 그런 최저의 권력도 오래가지 못했다. 최저는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경봉에게 죽임을 당하고 경봉도 그의 수하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최저와 같은 세력이 사라졌다고 해서 군주의 힘이 세진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 대부들의 힘이 군주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최저에게서 또 다른 최저로 넘어 간 것일 뿐이었다.

경공이 재위하던 시기에 제나라에는 고씨, 국씨, 포씨, 전씨와 같은 대부들이 세력을 잡고 있었고, 언제 또 최저가 장공을 시해한 일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대부들은 이익 앞에서 서로 연합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하면서 힘을 겨루고 있었다. 경공의 재위 기간 중 제나라는 제환공의 시대를 넘볼 정도로 안정된 듯 보였지만 사실 경공의 자리는 늘 불안했다. 그럼에도 경공이 58년 동안 별 탈 없이 군주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안자가 그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되어도 공경한다

 

안자는 경공 즉위 후 48년 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경공은 당시 대다수 군주들이 그러했듯이 그다지 능력 있는 군주는 아니었다. 『안자춘추』에 보면 그는 사치스러웠고, 술 마시는 거 좋아하고, 사냥하는 것 좋아하는, 한 마디로 놀고먹는 거 좋아하는 군주였다. 그럼에도 제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안자의 간언에 귀를 기울이고 대체로 그의 의견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8년이나 경공의 최측근으로 있었던 안자의 권세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고, 경공과의 관계도 각별하지 않았을까?

경공이 술을 마시다 밤중에 안자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안자는 경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공복(公服)으로 갈아입고 경공을 문에서 맞았다. 그리고는 이웃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나라 안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인지 물었다. 경공이 그저 좋은 술과 음악이 있어서 함께 즐기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안자가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리를 깔고 술그릇을 마련해 드리는 일은 따로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감히 그런 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夫布薦席,陳簠簋者,有人,臣不敢與焉)” 『안자춘추』

 

어느 날, 경공이 좀 추웠는지 곁에 있던 안자에게 옷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안자는 자기는 수발을 드는 신하가 아니라서 가져다 드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경공의 입장에서 보자면 군신관계를 떠나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자기의 부탁을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안자는 공적인 관계 외에 경공과의 자리를 피했다. 사람이 오래 함께 지내다보면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것을 친하다고 여기지만 안자는 경공과 오랫동안 함께 했음에 군신의 예를 넘지 않았다. 안자는 오래된 사람과의 사이에서 공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자가 이렇듯 군주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평소 생활에서 드러난다. 안자는 당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늘 가난했다. 그는 자기의 녹봉을 집안사람들과 나누어 썼고, 아내에게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밥도 늘 모자란 듯이 먹었다고 한다. 이에 경공이 그의 녹봉을 올려 주려고 할 때 안자는 집안 식구들과 나누어 쓰기에 모자라지 않다며 거절했다. 안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기 지위에도 연연하지 않았는데 경공이 무리한 일을 시키면 바로 그만두겠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안자를 보통의 대부들은 대부분 불편해했다. 그러나 재물이나 지위와 같은 것으로 매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안자는 백성들에도 신망이 높았다. 안자가 저잣거리의 허름한 집에 사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 경공이 안자에게 새로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안자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경공은 안자가 사신으로 다른 나라에 가서 없는 틈을 타, 주변의 집을 헐고 큰 집을 지었다. 안자가 돌아와 이것을 보고 다시 그 큰 집을 헐어 땅을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안자였기 때문에 최저는 장공을 시해 했을 때 그의 집에 찾아와 장공의 시신에 예를 다하고 간 안자를 죽이지 못했다. 제나라의 다른 대부들도 그를 탐탁히 여기지는 않았지만 내치지는 못했다. 경공도 안자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공경했다’는 것은 이런 안자의 모습에서 나온 것이다.

 

 

사귀기를 잘한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근래 세상이 천박하여 서로 즐기며 친압하는 것을 허여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규각이 없음을 서로 즐기고 사랑하는 것인 양 여기고 있다. 이와 같이 하면서 어찌 능히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지속시키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공경으로 해야 한다. 군신붕우의 관계가 모두 의당 경을 위주로 해야 하는 것이다.(伊川先生曰 近世淺薄 以相歡狎爲相與 以無圭角爲相歡愛 如此者安能久 若要久 須是恭敬 君臣朋友 皆當以敬爲主也)” 『소학』, 「광명륜」

 

이렇게 보니 공자가 안자에 대해 평한 “남과 잘 사귄다.”는 것이 단순히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또 공자는 사람들과 사귐에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안자에 대한 평에 주를 달았던 송대의 정이천(程子)도 사람들과의 사귐에 있어서 공경함이 없다면 그 관계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 ‘규각이 없다’는 것은 서로 두루뭉술하게 지내는 것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를 이른다. 당대의 사람들이 서로 즐겁게 지내는 것만을 좋아하여 허물없이 함부로 대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잘 사귀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조금이라고 불편한 일이 생기는 것을 꺼려해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귐이 예의를 차리는 것이고, 이것이 ‘경(敬)’의 태도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지나도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을 수 있으려면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敬)’을 ‘집중’이라는 의미로 보면 그저 거리를 두는 것으로 ‘잘 사귄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 그것은 때로는 불편한 상황까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조심하고, 때로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사귐의 깊이를 넘지 못하고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인 듯하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까지 해가며 조언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귀는 것’인지 늘 헷갈린다.

한편, 안자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람을 잘 사귀는 것은 내가 누구와 어떻게 사귀느냐 이전에 자기 삶에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 것 같다. 공경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자기를 낮추고 늘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자리가 올라가거나 돈이 많아지거나 하면 교만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드시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만 그럴까? 평소에도 우리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가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에 무조건 수긍하는 것이 겸손한 태도일까? 자기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일관된 태도를 잃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다른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안자에 대한 공자의 평이 너무 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사마천의 칭송에 버금가는 문장인 듯하다. 그나저나 ‘남과 잘 사귄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댓글 7
  • 2021-07-24 07:35

    논어 글쓰기 출발을 경축합니다~~~~~짝짝짝

    '오래'의 내용인즉슨 敬의 효과다~~ 이 말씀^^?  敬의 태도는 집중에서 드러난다는 것이고^^

    사람과 사귐뿐 아니라^^ 논어와 오래한 진달래님이 집중했던 시간도 있네요^^

    <논어 카메오 열전>에서 진달래님과 논어의 오랜 사귐의 향연을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

  • 2021-07-24 08:21

    와...시작했군요.

    재밌을 것 같아요. 두근두근 기다릴게요^^

  • 2021-07-24 09:12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논어 속 등장인물의 이야기와 지금 우리의 고민을 잘 엮은 진달래샘의 이야기!!

    쏙쏙 들어오네요~ㅎㅎㅎ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만땅입니다~~^^

  • 2021-07-24 10:51

    주연을 넘어 조연까지!

    이런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가 숨어있는 보물같은 논어네요.

    다음 인물은 누구일까 기다려집니다^^ 

  • 2021-07-25 07:49

    맞아요!! 사람과 잘 사귄다는 일 넘 어려운 일이에요!!

  • 2021-07-26 07:01

    그러게요 '경'의 태도로 사람을 사귀는 건 정말 쉽지 않네요.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수긍하는 것도 아니고...

    새삼 안자가 대단해보입니다..!

  • 2021-07-29 07:10

    사람 사는 일이 사귐이 처음이자 끝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군요

    쭈욱 힘있게 글써주세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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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5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85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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