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7회 방광염편

겸목
2020-10-16 22:53
522

뻔하지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을 처방합니다

 

 

  효숙씨는 일복도 많지

  효숙씨와 나는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여섯 살의 차이는 묘하다. 내가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땅꼬마였을 때 그녀는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서로의 관심사가 겹칠 수 없는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광염을 하소연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들었다. “아! 그거 되게 아프고 짜증나잖아요!” 나도 한때 비뇨기과를 들락거리며 방광염을 치료했던 적이 있었다. 비뇨기과 대기실은 내가 갔던 어떤 병원보다도 적막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말이 없고, 간호사들에게서도 무심함을 가장한 친절과 어색함을 감추려는 침묵이 느껴졌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고역이라 빈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비뇨기과 인테리어의 포인트는 발기부전의 원인과 전립선의 건강비법을 알려주는 게시물들이었다. 그래서 입 다물고 눈 감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명상시간처럼 고요했다. 내가 비뇨기과에 갔던 것은 사십대 초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때였다. 의사선생님은 급성 방광염은 항생제로 금방 치료되는데, 이게 반복되면 치료하기 힘든 만성 방광염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셨다. 만성 방광염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의사선생님의 ‘주의’가 늘 귓가에 맴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장과 방광의 기능도 노화될 것이고, 요실금도 걱정된다. 가끔 재채기를 하거나 뜀박질을 하다 깜짝깜짝 놀란다.

 

  효숙씨는 나보다 긴 방광염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대학생때 알바로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벌어야 했는데,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화장실을 안 가고 참게 되는 날이 많았고 그럴 정도로 일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에 몸에도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도 효숙씨에게는 일이 많았다. 시장에 장사 나가는 어머니 대신 오빠와 동생들 밥 차려주고 학교에 가야 했고, 김장과 명절 차례상도 혼자 다 해치웠다. 어머니는 바빴고, 남자는 집안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가부장제 집안의 맏딸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집에서 탈출하는 길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에는 시댁의 대소사가 효숙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둘 다를 손에 쥐고 놓지 못했던 것 같아.”

  효숙씨는 현재 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 둘을 기르며 평생교육원에서 ‘보육교사과정’을 이수했고, 당시로는 드물게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해서 인기 많은 강사였다고 한다. 돈도 잘 벌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 봉사활동도 했다고 한다. 도서관 봉사활동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의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최근 십 년 마을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기본이 되는 철학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였다. 친정과 시댁의 대소사와 두 아이의 양육, 가사노동 그리고 돈을 버는 일과 공부하는 일까지, 효숙씨는 ‘일복’도 많다. 일복 많은 효숙씨에게 방광염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방광염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효숙씨는 나름대로의 자가 치유법을 갖고 있다. 방광염이 재발되는 불길한 감이 느껴지면, 물을 많이 마셔서 염증을 빨리 배출하려고 하고 스스로에게 휴식시간을 준다.

 

  “젊었을 때는 무리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안 되더라.”

  이건 효숙씨만의 깨달음이 아닐 것이다. 만성 방광염을 걱정하는 ‘나’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당신’도, 그리고 ‘착한 딸’, ‘좋은 엄마’,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경험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뻔하고 지겨운 이야기라고? 그럴까?

 

 

  집안의 악역은 누구인가, 강화길의 음복

  올해 우리 집에서는 가사노동의 분담이 이루어졌다. 그 동안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남편이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아니고, 큰딸이 아버지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전담하는 ‘악역’을 자처하고 나서 가능한 변화였다. 밥상머리에서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던 큰딸은 급기야 더 이상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살 수 없다고 집을 나갔다. 딸의 가출을 외박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남편은 그것이 자신에게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는 딸의 ‘선전포고’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설거지를 하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의 다툼과 합의과정을 지켜보면서 ‘엄마이며 아내인’ 나는 불편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딸에게 미루었다는 죄책감이 들고, 딸의 투쟁에 ‘무임승차’한 것 같은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남편과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고, 그런 남편과 입씨름하며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내가 ‘악역’을 피하기 위해 남편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적 질서와 공모관계를 맺고 순응해왔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웠다.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남성권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안 여성들의 복잡한 권력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모습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혼 1년차 며느리인 세나는 시댁에서 치루는 첫제사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집안의 공모관계를 단박에 파악한다.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 미움받을 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못돼처먹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12쪽)인 시고모가 그 집안의 ‘악역’이 된 이유라든가, 며느리와 아들에게 쿨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집안 제사를 혼자서 도맡아하는 시어머니의 처세술, 이러한 역학관계를 눈치조차 못 채는 남편의 ‘무지’까지 세나는 영특하게 알아챈다. 이러한 영리함은 세나의 비범한 감수성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세나의 집에서도 외할머니와 엄마 사이 펼쳐졌던 애증의 드라마가 있었고, 자신과 엄마 사이에도 미움과 연민의 서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가 우는 걸 자주 봤으니까. 외할머니가 외삼촌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큰딸을 여러 번 아프게 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대학교를 갈 수 없게 했고, 결혼식에 돈을 보태주지 않았고, 사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그 사위가 보증 빚을 졌을 때 매일 전화를 해서 한숨을 쉬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댔다. 울었다. 하소연하고 속을 풀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주니.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그리고 다시 전화를 해서 말했다. 너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래? 너 때문에 내가 잠이 안 와.

  그리고 엄마는 외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외삼촌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는 성적이 어느 정도니. 친구는 있니? 살이 너무 찐 거 아니야? 운동을 해라 운동을. 응? 아직도 용돈 받니? 우리 애는 이제 독립했는데, 너는 결혼은 안해? 남자친구는 있니?

  그래. 내 엄마가 우리집의 악역이었다.              (<음복>,  『화이트 호스』, 문학동네, 2020년, 37쪽)

 

 

  가부장제의 대표적인 피해자인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가장 많이 의존하면서도 그 딸을 아들과 차별한다. 딸들은 출가 후에도 친정어머니의 ‘심리적 의지처’ 역할을 해야 하고, 시댁의 며느리 역할도 잘 해내야 한다. 그 딸이 어머니가 되어서는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어머니로 인정받는 일로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고 싶어진다. 여기서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여성’의 왜곡된 욕망이 왜곡되게 표현되는 ‘기괴함’이 연출된다.

  나는 효숙씨의 일에 대한 욕심과 방광염에도 이러한 기괴한 판타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큰딸이 ‘못된 기집애’ 소리 들으며 제 아버지와 싸우는 모습을 목격하며 나도 스위트홈 판타지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돈 벌어오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그의 비위를 잘 맞춤으로써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즐거운 나의 집’을 지키고 싶었다. 나는 이 뻔하고 진부한 욕망을 딸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러한 사실을 없었던 것처럼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민망하다.

 

 

  종종 충동은 들어. 확……말해버릴까.

그러니까 내가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말이다. 이를테면 시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며 함께 살고, 제사를 열심히 챙기기로 한 대신 시아버지는 너의 삶에 어떤 상관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 약속에는 나의 삶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며느리인 내게만 말해주기로 역시 약속했다는 것.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까.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내용이 담긴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그러니까 앞으로 제사에 오지 않아도 된단다.’

  그녀는 강조했다.

  ‘정우는 다 모르게 해줘.’                                   (<음복>, 35~36쪽)

 

 

  ‘시할머니-시고모-시어머니-며느리’로 이어지는 카르텔은 오늘날 희미해진 것 같지만, 아주 없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리고 효숙씨는? 우리는 이 뻔하고 지겨운 여성 카르텔을 바꿀 수 있을까?

 

 

  ‘할머니-어머니-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효숙씨의 자식들은 이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자식들의 양육이 끝나자, 치매가 시작된 친정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효숙씨에게 돌아왔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오빠들에게 맡기기도, 그 배우자인 올케들에게 맡기기도 여의치 않아, 친정어머니의 간병은 효숙씨의 몫이 되었다. 효숙씨는 한 달에 두 번은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를 탄다. 대구에 혼자 사는 친정어머니가 드실 반찬을 만들고,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함을 달래드리려 한다. 갑작스런 호출이 있으면 수시로 대구로 내려간다. 용인과 대구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락가락하는 친정어머니의 기억력에 더 억장이 무너진다.

  “이렇게 일이 많은데 어떻게 안 아프겠어?”

  “맞아. 아픈 게 정상이야.”

  갱년기와 동시에 친정어머니의 간병이 시작된 효숙씨는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취업을 해서 독립을 한 우리 집 큰딸의 일상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혼자 사는 이십대 여성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다. 밤늦은 시각 인적 드문 길을 걸어갈 때, 회식 후 택시를 타고 귀가할 때, 택배기사가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를 때, 매순간 불안과 안심 사이를 오간다. 특히, 상사가 자기 아버지보다 더 말이 안 통하는 ‘꼰대’라면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 없어 한다.

 

  나는 가끔 딸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햇반만 먹지 말고 밥을 해먹으라고, 시간을 내서 꼭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내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는 효숙씨와도 가끔 차를 마신다. 젊은 작가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을 어떻게 읽었는가 소감을 묻고, 요즘 애들은 우리보다는 똑똑한 것 같다는 내 독후감을 들려준다.

 

  “나는 내가 한 일들의 가치가 제거되는 것 같아서, 소설을 읽으며 거부감도 들었어.”

  효숙씨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나는 딸을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저 혼자 큰 줄 알고 잘난 척 하는 모습이 밉상일 때도 있다. 효숙씨와 나 그리고 내 딸과 효숙씨의 친정어머니, 우리는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까? 치매가 시작된 80대 여성과 갱년기의 50대 여성,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여성은 ‘할머니-어머니-딸’이 아닌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효숙씨와 연옥씨(나) 그리고 소영씨(딸)의 이름을 되찾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효숙씨의 친정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일까?)

 

  “효숙씨는 매사에 혼자 결정해버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

  “내가 결혼도 일찍 하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사회성이 부족해. 대인관계가 조심스럽고 어려워.”

  효숙씨는 ‘밀당’의 기술이 부족하다. 의견을 나누고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해 “그냥 내가 할게!”라고 먼저 손을 드는 사람이다. 스스로 한 선택이지만,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을 견디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그의 복심을 읽으려 애쓰고, 거리를 조절해가는 능력이 관계의 기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어.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겠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최근 효숙씨는 ‘밀당’의 기술을 연마하는 비법을 눈치 챈 것 같다. 나는 효숙씨에게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를 추천하고 싶다. 국수집 아들 뚱보 팬더 포가 ‘용의 전사’가 되는 영웅담을 담고 있는 ‘쿵푸 팬더’에서 거북 대사부, 시푸 사부, 무적의 5인방이 없다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력자 조연들의 ‘조언’으로 주인공 포는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효숙씨의 드라마도 그러하다. 미리 벽을 쌓고 기대하지 않았던 주변사람들을 ‘빛나는 조연’으로 캐스팅해본다면, 효숙씨의 스토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주는 ‘갓띵작’이 될 것이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혼자 짊어지고 가던 짐을 남자형제들과 남편과 아들딸과 나누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카톡방에서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가족들의 냉담함에 분노하기보다는 ‘촌철살인’의 이모티콘을 보내는 신공을 갈고닦자. 간병의 ‘달인’이 되어가는 친구들에게 실전노하우를 전수받자. 너희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이야기라고 철벽을 치지 말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이 수행들 가운데 있다.

 

 

댓글 5
  • 2020-10-17 11:19

    ‘할머니-어머니-딸’이 아닌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효숙씨와 연옥씨(나) 그리고 소영씨(딸)의 이름을 되찾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가족 안에서 역할로만 존재할 때, '즐거운 집'의 내장이 썪어 문드러진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요. 이제는 이름을 되찾고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야 될 때! 곱게 포장되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희생대신, 우정의 가치를 들여놓으면 어떨까요.

    친구로 만나고자 발악을 해보니, 오랫동안 위계로 묶여있던 남편과의 관계도 서서히 동료 인간으로 변해가더군요. 그 이면에 '서로 이름을 부르며 반말 하기'의 공로가 컸답니다. 아이들에게도 내 이름을 부르라고, 이제는 네 엄마로 살기 싫다고, 친구먹자고 했는데. 잘 못하긴 합니다만.

  • 2020-10-17 20:10

    느티나무님의 ' 빛나는 조연' 캐스팅을 응원합니다~~
    처방전의 기술이 날로 오묘해지는 새털님도 응원합니다~~~

  • 2020-10-18 16:45

    예전에 딸을 나면 '사돈집 종년 낳았다"라고 했다던 남녀 차별하던 시대가 불과 100년도 안된일입니다.
    그동안 세상도 변하고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그 틀을 깨느라 애쓰고 있지요.
    당장 사는게 살맛 안나니까요.
    엄마 세대인 나도 딸들이 더 나은 세상 살기를 바라고 여자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엄마, 시어머니, 언니 ,시누,동생이 그냥 인간으로 이해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방적일수는 없는 관계의 오묘함.
    그 역할과 틀을 넓히지 못하는 무지와 나이듦을 어찌하리요....
    사태 파악했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고 시간이 들겠지만 그 과정이 삶이고 인생이고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문제는 여전하고 세세한 것에 불편을 감수 하지 않으려 하고 세상은 더디지만 변화의 파고는 막을 수 없겠지요.

  • 2020-10-19 08:41

    효숙씨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만만치 않지요
    그래서 50넘어 방광염 처음 앓아봤고요
    한동안 고생하다 지금은 저도 나름 방법을 찾아 자주 걸리진 않지만 늘 불안하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훨씻 나은 것 같아요
    한슬씨(딸)의 시댁과의 관계를 보면 ......

    이제 우리집도 머지 않아 할머니-어머니-며느리가 한 집에서 살게 될 것 같은데
    성도 다 다른 세 여자 형심씨-선미씨-언주씨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겠군요 ㅋ

  • 2020-10-22 09:30

    엄마는 요즘 제사를 넘길 절을 알아보고 계세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며느리에게 제사를 넘길 순 없다는 거죠. 이제 여자들의 가부장제 카르텔은 와장창~ 끝난 거죠. 아니,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그 자리를 메꾸는 건가..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모로
2024.04.25 | 조회 181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90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현민
2024.04.17 | 조회 21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193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1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