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생극장 / 4회> 도행역시(倒行逆施),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소!

기린
2019-09-30 15:19
533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1.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어찌 골육 같은 자식을 멀리하려고 하십니까?

 

비무기는 그런 오사가 아니꼬워 두 사람을 싸잡아 반란세력이라고 고했다. 화가 난 평왕은 오사는 감옥에 가두었고, 태자에게는 사람을 보내 죽이라고 명했다. 태자는 한발 앞서 그 명령을 접하고 도망갔다. 비무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 그들을 불러들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평왕은 사자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사의 두 아들은 조정으로 들라. 너희가 오면 네 아비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

 

큰 아들 오상이 조정으로 나서려 하자 둘째 아들 오자서가 말렸다. 그 길은 세 사람이 모두 죽게 되는 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하고 달아나자고 했다. 오상이 말했다.

 

-너는 달아 나거라. 살아서 이 원수를 꼭 갚아다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오자서는 스스로 잡혀가는 형을 뒤로 하고 사자에게 화살을 쏘며 도망쳤다. 갖은 고생 끝에 오(吳)나라에 들어간 그는 수완을 발휘하여 오나라 조정에 줄을 대었다. 그리고 초나라를 공격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제대로 초나라를 공격하니 초나라에서 도망친 지 십 육여 년이 흘러 평왕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소왕이 즉위한 후였다. 오나라의 공격에 소왕은 수도에서 달아났다.

 

 

그는 소왕이 도망쳤다는 소식에 평왕의 무덤을 찾았다. 장례를 치른 지 십 년이 넘은 무덤을 파헤치고 평왕의 시신을 향해 매를 휘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옛 친구 신포서가 사람을 보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자네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네. 일찍이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이보다 천리에 어긋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자서는 이렇게 응답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전해 주시오.

 

2. 저무는 복수의 시간 앞에서

 

오자서는 십 육년이 흐른 후에야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수는 무덤 속에 있었다. 원수의 아들(초 소왕)을 몰아내고 초나라 수도를 점령한 것으로 원한은 갚은 셈이다. 하지만 오자서는 무덤까지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니 신포서가 지나치다고 할 만하다.

 

오자서가 아버지를 따라 죽으러 가는 형과 한 약속, 꼭 복수하겠다고 다짐한 이후 십육 년은 긴 시간이었다. 도망 길에서 병에 걸려 죽을 뻔도 했다. 너무 배가 고팠을 때는 구걸을 해야 했다. 오나라에서는 왕권다툼의 소용돌이에서 왕좌를 차지하는 쪽에 줄을 대기 위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나날이었다. 초야에서 농사일로 연명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 세월을 견디고 마침내 초나라 수도에 이르렀지만 한 발 늦었다. 도망간 초 소왕을 잡기 위해 주변국을 수색하는데 더 이상 시간을 쓸 수 없다. 오왕 합려가 아무리 그를 신임하더라도 한낱 신하의 사정에 맞춰 한정 없이 기다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무덤 앞에 선 오자서는 자신의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복수의 시간이 느껴졌다. 이대로 돌아선다면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사연은 잊히고 말 것이다. 그는 회초리를 들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매질을 시작했다. 「오자서열전」에는 삼백 번을 휘두르고서야 멈추었다고 적혀있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선택에 대해 “작은 의(義)를 버리고 큰 치욕을 갚은 강인한 대장부”였다고 평했다. 신하의 도리를 지키기에 아버지와 형의 억울함이 더 무거웠다. 군신 간의 의리보다 부자간의 정이 더 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정을 뒤로하고 도망쳐야 했던 치욕은 더욱 생생했다. 그것을 갚지 않고는 남은 생을 감당할 수 없는 절실함. 도리를 어기더라도 끝내야 했다. 그래서 오자서의 복수에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 끝내야하는 부득이함이 느껴진다. 그 부득이함은 차마 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야 복수를 끝내게 했다. 사마천이 강인하다고 여긴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3.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오나라로 돌아온 오자서는 합려를 도와 오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서쪽으로는 초나라와 접전하고 북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하고, 남쪽으로는 월(越)나라를 굴복시켰다. 그 와중에 월나라와의 접전에서 합려가 전사했고 그의 아들 부차가 왕위에 올랐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력을 키웠고 마침내 월나라의 항복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자서는 월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여 화친을 맺으려는 부차에게 제동을 걸었다.

 

 

-지금이 월나라를 완전히 정복할 시기입니다. 화친은 월나라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그는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는 인물입니다.

 

 승리에 도취한 부차는 오자서의 간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백비는 화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부차는 주변국과 전쟁에 나가면서 월나라는 안중에 없었다. 오자서는 그 때마다 간언을 서슴지 않았다. 부차는 그런 오자서가 불편했다. 왕의 심기를 눈치 챈 백비는 이렇게 참소했다.

 

-오자서는 불만이 많으니 결국은 주변 제후들과 공모하여 쳐들어 올 것입니다. 그전에 오자서를 처리해야 합니다.

 

부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자서에게 칼을 내리며 자결할 것을 명령했다.

 

 

-아첨과 비방을 일삼은 신하의 말로 나에게 칼을 내리다니! 제 아비와 저를 왕으로 만든 나의 공이 한낱 신하의 아첨에 무너진단 말인가. 내 죽어서도 오나라의 멸망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니, 내가 죽으면 눈알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에 걸어다오.

오자서의 마지막 말을 전해들은 부차는 대노했다. 오자서의 시신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말가죽에 쌓여서 강에 버려졌다.

 

 신하는 임금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보필하는 자리이다. 아버지가 죽어나간 자리이기도 했다. 오자서 또한 그 자리에 서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불행을 본보기 삼아 자식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오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바른 길을 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자의 시신을 훼손하는 작은 도리는 어겼을지언정, 신하로써 바른 길을 가는 강인한 대장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오자서가 죽은 이후, 때를 기다렸던 월나라 구천이 공격을 감행했고 오나라는 패배했다. 이 패배는 결국 오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오자서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던 아들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회사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생긴 재해로 처리하려고 했다. 부모가 보기에 그 재해는 안전을 무시한 온갖 불법이 묵인되는 현장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불법을 가리기 위해 사고 무마에 급급한 회사에 맞서 부모는 아들의 장례를 거부했다.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아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대통령이 위로의 면담을 제안했을 때도 거부했다. 이러한 처사를 두고 항간에서는 자식 장례도 치르지 않는 독한 사람들이라고 수근 댔다. 면담을 거절한 것은 보상금 흥정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그런 수모를 견디면서 싸운 끝에 아들의 장례를 치른 것은 아들이 죽은 후 육십 이일만 이었다고 한다. 고 김용균씨의 가족 김미숙씨의 이야기이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도리를 어기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선을 넘어서서야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이후 김미숙씨는 ‘다시는’(산업재해 유가족 연대모임)에서 아들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연대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에 주저앉지 않고 그런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오자서를 넘어 진정한 ‘복수’의 길을 내는 사람들이다.

댓글 2
  • 2019-09-30 16:27

    다시 더워진 날씨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서늘함을 주는 글이네요!!

  • 2019-10-08 09:48

    선을 넘을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선이라는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닐거구...
    선만 보지말고 사람을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토용의 서경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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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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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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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27
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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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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